5월의 한 권, 한 장, 한 곡

매 달 인상깊었던 책 한 권, 앨범 한 장, 노래 한 곡을 소개합니다. 5월에는 웹툰을 한 편 추가로 소개합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캐롤

올해 초에 국내에서 개봉해 호평 받은 영화 『캐롤』의 원작 소설입니다. 원작 소설을 읽어보니 영화 『캐롤』은 의외로 각색을 많이 한 작품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각색했는지 짐작이 가며 그 의도가 영화에 잘 반영되기도 했습니다. 소설 『캐롤』과 영화 『캐롤』은 벌어지는 사건은 유사하지만 캐릭터의 구도가 미묘하게 다릅니다. 그 미묘한 차이 덕분에 소설도 영화도 즐겁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인터넷을 조금만 살펴보면 소설 『캐롤』의 번역에 대한 불만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세세한 디테일에서의 오역과 캐롤이 테레즈에게 말을 놓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동의합니다. 분명히 캐롤이 말을 놓는 게 어울리는 장면이 몇 군데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캐롤과 테레즈는 서로를 어찌할지 몰라 합니다. 특히 서로의 감정이 닿고 엇갈리는 부분에서 그렇습니다. 이 작품은 로맨스라서 그런 장면들이 중요하다는 걸 생각해보면 전체적으로 존대를 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일 겁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저에게 테레즈와 캐롤의 이야기에 빠지는 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걸 무시할 만큼 이야기가 매력적이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이란 여러 장애물에도 불구하고빠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소설 『캐롤』에 푹 빠졌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찌릿찌릿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많아 노트에 옮겨가며 읽었는데 대부분은 테레즈가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알고 인정하지만 그 마음을 어찌할 줄 모르는 장면들.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테레즈가 캐롤에서 처음으로 아름답다고 말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 말을 하든 안 하든 캐롤은 자기 자신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이 분명함에도 테레즈는 캐롤의 아름다움을 찬미합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표현할 때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미루지 말고 해야 합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말하세요. 당신의 말이 그 사람에게 닿기를 바라면서.


겨울 모럴센스

『모럴센스』는 취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남자 주인공 지후의 취향은 독특합니다. 이상하게 보일까 다른 사람에게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어떤 해프닝을 통해 여자 주인공 지우와 엮이면서 자신의 취향에 대해 새삼 고민하게 됩니다. 지후가 고민하는 모습은 남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저 고민하는 대상이 조금 독특할 뿐입니다. 지후는 이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멀쩡하고 유능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인물입니다. 독특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이상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임을 새삼스럽게 알려주는 작품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거창한데 『모럴센스』는 근본적으로 로맨틱코미디입니다. 이래저래 루믹이 떠오르는 작품입니다. 개그센스도 그렇고 여성 주인공의 생김새에서도 루미코 여사의 향기가 느껴집니다. 코미코라는 다소 마이너한 플랫폼에서 연재되기 때문에 많은 분이 놓치고 있지만 그렇게 묻히기에는 너무 아쉬운 작품입니다. 꼭 한 번 읽어 보기를 권합니다. 일단 읽어보면 매주 금요일 오후 11시를 기다리게 될 겁니다. 저처럼 말이죠.

.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조윤 - Mobius Strip

제가 본격적으로 시디를 모으기 시작한지 10년 정도가 지났습니다. 그 때만 해도 시완레코드에서 나온 음반을 구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중고는 물론이고 새 거도 많았으니까요. 이제는 시완레코드에서 나온 음반을 보면 그게 뭐든지 그냥 반갑습니다. 조윤의 『Mobius Strip』도 그랬습니다. 반갑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애잔하기도 했습니다. 외국 음반들 사이에 있었거든요. 저기에 알아봐야 누가 알아는 줄는지. . 불쌍해서 집어왔습니다.

조윤의 『Mobius Strip』은 한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매니아들에게는 상징적인 작품입니다. 한국 최초의 프로그레시브 록 앨범이었으니까요. 다소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대놓고 프로그레시브 록을 표방한 앨범으로는 최초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합니다. 그런데 그최초라는 게 10년 전의 저에게는 삐딱하게만 다가왔습니다. 한국에서 최초. 이런 식의 표현에 이상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습니다. 굳이 찾아서 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편견이라는 게 그렇게 무서운 겁니다. 덕분에 이 훌륭한 음반을 만나는 게 10년이나 늦춰졌으니까요.

음악을 들어보고는 많이 놀랐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경탄을 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괜찮을 거란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흔히들 『Mobius Strip』을 핑크 플로이드 (Pink Floyd)와 클라우스 슐츠 (Klaus Schulze)를 섞어서 한국적으로 표현한 음반이라고 말합니다. 독일 일렉트로닉의 향기가 많이 나지만, 조윤의 기타 위에 얹혀지는 목탁소리나 아이 옹아리 같은 효과음이 독특한 색채를 만들어 냅니다. 벌써 20년이 지난 앨범임에도 의외로 요즘 친구들에게 추천 할 만합니다. 독특한 소리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음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꽤 즐겁게 들을 수 있을 거에요. 무엇보다 박자 감각이 끝내 줍니다.


Purson - Electric Landlady

처음 뮤직비디오를 틀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의 사이케델릭한 록 음악을 제대로 복원하고 있었으니까요. 레코딩은 확실히 깔끔하지만 그 시절 느낌이 납니다.

스타일을 고려해보면 아무래도 그 시절 사이케델릭 밴드들이 떠올라야 하겠지만, 저는 뜬금 없이 커브드 에어(Curved Air)가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소냐 크리스티나(Sonja Kristina)를 떠올리게 하는 고풍스러운 보컬 때문입니다. 꽤 고전적인 느낌을 줍니다. 푸르손의 음악은 포크나 클래식 느낌이 물씬 났던 커브드 에어와는 달리 약간 맛이 가 있는데 이게 또 의외로 잘 어울립니다. 일종의 갭 모에라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긴 다 떠나서 이렇게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니 어떤 음악을 한들 멋들어지긴 할 겁니다.

어떤 시대를 차용하는지는 조금씩 다르지만 레트로 밴드는 엄청나게 많이 나왔고 앞으로 더 많이 나올 겁니다. 90년대가 마무리되고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음악적으로 실험을 해야 하는 강박은 사라져버렸으니까요. 이제 절대적인 조류는 사라졌고 흘러간 스타일을 제대로 복원하면 애호가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요즘에 사이케델릭 하는 밴드? 솔직히 엄청 많죠. 그래도 얘들은 좀 다릅니다. 분명히 대박 날 겁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증명이 될 문제이고, 저는 미리미리 영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 어차피이 바닥에서 대박 나는 거라 메이저한 히트는 힘들 거라는 거 알고 있습니다. -_- 비겁한 변명 한 번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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