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토론: 사랑의 생애







발제: 배병준


준민

송년회 때 저는 제가 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새 감수성이 많이 올라오기도 했고 뭐 그럴 만한 자리였으니까. 놀랍게도 안 울었고 대신 눈물이 글썽거리는 순간은 있었습니다.

책 이야기 다하고 뒤풀이로 이런 저런 음식을 먹으면서 음악을 들었습니다. 멤버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으로 성시경의 킬링 보이스를 틀었고 대충 다 아는 노래다 보니 다들 따라 불렀습니다.

중간 즈음에 "넌 감동이었어"가 나왔고 후렴구를 따라 부르는데 울컥했습니다. 제 스스로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이는 게 느껴져서 아 이러면 큰일 나겠구나 감정 조절. 

그래 그랬었지 널 사랑하기에

세상은 나에게 커다란 감동이었어

성시경 <넌 감동이었어>

그래 그랬었지. 이 부분이었어요. 저 말이 어떤 감정에서 나올 수 있는 건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사건들이 예전 이야기가 되어버렸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새삼스럽게 알게 된 이후에 비로소 할 수 있는 말. 그랬었구나. 별별 일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많이 좋아했었구나 사랑했었구나 하는 마음. 

독서 모임 10년 했고 저는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독서 모임의 효능이 대단하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매달 한 권의 책을 읽고 모여서 이야기하는 걸 10년을 했으니 그렇지 않은 저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물리적으로 다른 거죠. 

최근 은유 선생의 강의를 들었는데 재미있는 문답이 기억에 남습니다. 수강생 누군가가 "10년 정도 매일 자기 인생에 관해 글 쓰면 좋은 책을 낼 수 있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은유 선생은 "아니"라고 답하더군요. 그리고 "대신 인생이 변합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프레시안 기사 <월요일, 출판사 투고가 넘쳐나는 이유는?>

가지 않는 길은 알 수 없는 법이고 어쩌면 독서 모임을 안 한 제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걸어온 사람으로서는 지나온 버전의 제가 더 나은 사람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분명히 지금보다 훨씬 이기적인 사람이었을 거예요. 고마웠어요.

나야말로 너무 고마웠어요. 여러분들이 나 사람 만들어 줘서.

드라마 <김과장>


종찬

영석에게는 사연이 있다. 듣는 사람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사회적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애정 결핍의 원인이 있다.

문제는 사연이 없는데 증상이 똑같은 경우에 일어난다. 개인사 단위에서야 다들 사연이 있다. 하지만 자세한 사연들은, 즉 주의깊게 들어야 알 수 있는 사연들은 설득력이 없다. 한 방에 알 수 있는 강렬한 사연이 필요하다. 

이야기에서의 판타지란 다 그런 것 같다.

과학 좋아하는, 괴롭힘 당하는 남자 고등학생이 있다. 여기까지만 설정하면 현실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괴롭힘을 멈출 수 있는 실질적인 수단이 얼마나 적은지, 그 수단을이 어떻게 2차 가해를 일으키는지, 견디고 살아남아 잊는 것만이 현실적인 대응 수단인 이유가 무엇인지. 그런 아주 우울한 현실만이 이야깃거리다.

하지만 이 고등학생이 방사능 거미에 물리면 다르다. 스파이더맨이 어떻게 괴롭히는 학생을 응징하는지, 혹은 응징하지 않는지, 응징하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더이상 괴롭힘이 괴롭힘으로 느껴지지 않는지를 이야기할 수 있다.

영석은 애정을 갈구한다. 사랑하는 자기의 모습을 사랑한다. 이런 모습에 아무런 사연이 없다면, 그건 그냥 안타까운, 왜 그 나이까지 혼자인지 이해가 되는, 딱한 현실의 반영이다. 

하지만 거기에 사연이 있고 선희가 있으면, 그 남자는 비로소 이야기할 만한 대상이 된다. 

스파이더맨을 보고 공감했다고 해서 원자력 연구소 주변의 거미줄을 뒤지고 다니지 않는 것처럼, 영석의 이야기를 보고 내가 그런 사연이 있기를, 혹은 나의 선희가 있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는 자신의 힘과는 별개로 성장해 나간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해 보였던 괴롭힘 문제가 어떻게 가장 사소한 것이 되는지, 분노와 복수심이 왜 위험한지. 그런 장면들을 통해, 슈퍼 파워가 없더라도 나도 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준다.

그런데 영석은 이야기 안에서는 아직 받기만 한다. 위기는 있었지만 본인이 넘은 게 아니고, 위기가 사라져줬다. 나는 그래서 영석이 희선을 잃는 미래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 같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다가 그 품을 떠나는 것이 사람으로서의 성장이라면, 늦은 나이에 어머니 같은 사람을 만난 영석이 어떻게 그 곁을 떠나는지 혹은 떠나지 않더라도 어떻게 아들에서 벗어나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그 과정의 영석의 안에서 무엇이 변화하는지가 궁금하다. 그게 판타지일지라도.

그런 이야기 없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나 차갑고 무서운 이야기 같다. 결핍은 극복될 수 없고, 선희라는 구원자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결말. 마치 하나님을 기다리는 종교인 같다.

하지만 동시에 현실적이다. 답을 바라는 마음이 부질없는 것. 어떤 신화든 신화를 믿어야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고, 믿고 기다리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니까…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고도가 존재한다는 믿음이 전제된다.

생각해 보니 아마 답을 제시해 주었더라도, 그건 소설 속에서나 가능하지 하고 넘겼을 것 같다. 결국은 나도 믿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후기이기에 독후감보다는 모임 후 감상으로 채우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은데, 책에 대해 생각하니 빠져 들어서 길어졌다.

나는 상처입은 고라니 같은 인간이라, 세상 모든 것을 노려 보면서 그게 왜 잘못될 수 있고 어떻게 나에게 위해가 될 수 있는지를 바들바들 떨면서 노려보는 사람이다. 이 모임을 시작하기 전에도 그랬지만 이제는 10년 정도 나이가 더 들어, 심술이 강도와 횟수를 더더욱 높이며 기염을 토하는 중이다.

그런 나에게 처음 이 모임을 하자고 해 준 영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영진이 어떤 생각으로 나에게 권유해 주었는지는 모른다. 아무튼 그 생각 덕분에 지난 10년이 채워졌다.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그러니 나는 영진이 그런 사람임을, 그와 시드유지를 함께했음을 감사할 수밖에 없다.

행복과 감동, 우정 뿐만 아니라 분노, 슬픔, 자책과 원망도 생겼다. 뒤엣것들은 앞엣것들을 빛나게 해준다. 앞엣것들에만 집중하는 현명한 사람도 있고 뒤엣것들에만 집중하는 나같은 사람도 있다. 나같은 사람은 앞엣것들은 역시나 지나고 빈자리로 느끼게 된다. 그때 행복했었구나.

이렇게 지난 자리를 돌아보며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행사가 필요하다. 하나의 기간이 지났음을 선언해야 되돌아보고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들여다 볼 수 있으니까. 그래서 때로는 연에 두 번, 때로는 한 번 씩 결산 자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준비해준 병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오락부장이라고 불리고 있었으나, 그보다는 제사장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세리머니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제사장이다. 그 자리에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사람들 마음을 울릴 수 있는지 아는 일. 그것은 범인인 나에게는 신묘한 능력으로 느껴진다.

제사장이 제사인 시간을 위해 중요하다면, 제사가 아닌 시간들도 채워져야 한다. 우리는 발제를 로테이션 방식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각 발제의 책임은 각 발제자가 지었다. 하지만 다음 토론, 혹은 다다음 토론자를 어떻게 하는지, 새 맴버를 모집할건지 등등 정할 것들이 많다. 이것들을 언제 어떻게 정할지를 정하는 책임이 필요하다. 

그럴 때 우리는 항상 준민형한테 연락했던 것 같다. 농담처럼 회장님이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억울할 노릇이다. 권한이라기보단 책임만 있는 자리에 회장이란 말은 놀림일 뿐이다. 큰삼촌 같은 역할이지 않았을까. 사실 행보관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 애매한 권한과 과업범위, 위치, 고충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한국인 성인 남성 뿐이니 그만두고. 집안의 큰삼촌도 충분히 비슷한 것 같다.

읽는 사람도 이제 이 글이 대충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감이 올 것 같지만, 더하면 할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감사들이 꼬리를 물 것 같으니 눈물을 머금고 여기서 칼을 들어 꼬리를 내려치겠다. 그 마음들은 또 따로 전달할 수 있으리라 믿어 본다.

스스로에게 하나 다짐하면서 끝내고자 한다. 언젠가 다른 자리에서 모두가 이방인으로 처음 방문한 장소인 이번 생을 어떻게 환대를 통해 사랑의 생애로 채울 수 있는지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이번에는 꼭 그 시간이 끝나자마자 지난 2시간이 행복했음을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모두들 고마웠어요.


동진

1. 책을 오랜만에 재미있게 읽었다.(후기 쓰는게 항상 숙제 같은 느낌이었는데 뭔가 너무 아쉬워서 이상한 기분)

이 소설 혹은 에세이  이 책이 어떤 책이냐고 하는 물음에 난 에세이로 칭하고 싶다.(다른 사람들은 소설이라고 하기도 했지만)

우리가 사랑을 한다. 혹은 사랑에 빠졌어 이런 말을 할 때는 사랑의 시작단계에서 보통 애기를 많이한다. 드라마 영화 기타 등등 로맨스 관련물을 보게 되면 사랑에 빠지게 되는 시작 부분이 주된 내용이고 사랑이 빠져서 안정기에 돌입한 연인들이 어떤 양상으로 사랑을 나누는지는 생각보다 별로 없는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서 평소에 잘 생각하지 않은 부분인데  그런 부분들을 생각하게 만들어준 책이었고, 등장인물들은 다소 신파적인 인물도 있었고 작가가 중년 남자라는 것이 여기저기서 보여주는 그런 대목들이 있었으나 사랑의 감정을 좀더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는 부분들이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그리고 어떤 찌질한 사랑 연애 애기가 나의 취향이라고 할까나 

2.토론에서 준민이형이 애기한 현미경의 배율 애기가 기억이 나고 결혼이라는 제도에 발제가 는 결혼을 이제 좀 앞두고 있는 나에게 인상적인 발제문이었으며, 최근에 행복했던 경험은 자주 나왔던 단골 소재긴 하지만 연말에 맞춰서 또 나름대로 정의하는 재미가 있었고 항상 그때그때 생각이 또 달라지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행복의 정의 행복의 상태를 애기하는 부분에서는 그러하다.

3.사실 오늘의 글은 독토 후기라기 보다는 11년 간의 독토의 쉼표 혹은 되돌아보기?? 이제 후기를 쓸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되게 서운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생각이 잊혀지기 전에 글로 많이 남겨놀걸 그랬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 ....11년간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고 생각하다가 담달은 없다고 생각하니 그 서운한 감정이 글에도 묻어나오는 느낌이 든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2012년 1월부터 지금까지니 장장 11년이 되는 시간이었는데 상상유니브 인문독서토론- 발목잡힌청춘들- 독한녀석들로 이어지는 대장정이었다. 내가 맨 첨에 참여한 이유는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라고 봐야 될텐데 11년간의 시간중 그 사이에 중간중간에 새로운 멤버들이 또 들어오고, 사정이 있어서 나간 친구들이 있었고,  내가 공무원 시험준비할 때도 시험 보기 전 몇 개월 전까지는  책을 읽고 모임에 참여함으로서 수험의 스트레스를 위로받은 기억이 남는다. 다들 바쁜 일상에서 살면서 어떤 책을 읽고 그 경험을 같이 애기하고 또 그걸 애기하는 멤버들이 좋아서 나 또한 애정을 많이 가지고 그랬던 것 같다. 간단히 애기해보자면 우리 모임이  그동안에 한 책들은  아카이브에 있을 것이고, 우린 1달에 1번 모여서 발제를 하고 책을 읽고 애기를 나눴으며, 발제자가 장소를 예약하고 뒤풀이까지 책임지는 원스톱 시스템의 아주 바람직한 독서토론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라도 다시 우리가 다른 계획을 가지고 책을 읽고 애기를 나눌수 있는 기회는  항상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슬프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려 하지만, 뭔가 한달에 한번 편하게 마음둘 곳이 사라졌다는 것이 서운하기는 하지만, 다들 바쁜 상황에서도 이렇게 오랫동안 같이 했다는 것에 감사하고 나한테도 칭찬해줄만 할 것이다. 이제 진짜 담달부턴 정기모임은 없지만 앞일은 알수 없는 것이고, 우리 멤버들은 언제든지 서로 볼 수 있으니 다들 얼굴을 보여주는데 인색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의 검증된 맛집을 마다하기는 어려울테지만)  

지금까지 같이 참여한 모두에게 고맙고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다 동진이도 고생했다. ~ 나도 너도 해피뉴이어

(다음 언젠가 또 발제를 하게 된다면 내가 내년에 원래 하려고 했던 ‘월든’을 발제를 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병주

2017년 1월 처음 들어왔습니다. 햇수로 보면 7년이네요.  제가 가장 오래 속해있던 집단인 초등학교도 6년인것을 보면 진짜 적지 않은 시간이네요. 저도 제가 이렇게 길게 이 모임을 참가할 줄은 몰랐습니다. 다 좋은 책, 좋은 사람 덕분인듯합니다.

마지막이니만큼 모임 자체에 대해 써보려구요. 처음에는 독서 모임에서 ‘독서’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 같아요. 다만 1~2년이 지나면서 친해지고 나서는 저에게도 형, 누나들 보고 이야기하러가는 ‘모임’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던 것 같아요.

독토가 모임으로서 좋았던 이유는 1)주기적 만남 2) 풍부한 주제 입니다.

마지막 토론에서 가장 공감되었던 말은 ‘한달에 한번 친구를 보는 시간’입니다. 이 말이 오랜기간 모임을 할 수 있던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 이제 3년차 직장인입니나.회사를 다니니 친구 만나는게 쉽지 않더라구요. 대학교 때 가장 친한 친구도 사는 곳이 멀어지면서 명분이 없으면 두세달에 한번 보기도 힘들어졌습니다. 이 모임은 큰 명분 없이 독서모임이라는 이유로 한달에 한번 친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습니다.

또한 이야기 주제가 풍부하다는 것 돌이켜보면 이 모임이 편했던 이유였던 것 같아요. 요즘 느끼는 게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맴도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같이 시간을 보냈지만 점점 같이 보내는 시간이 줄어서겠죠. 결국 공감대가 있던 과거의 이야기만 하게 되더라구요. 전 그래서 친구들을 보면 공감대를 만들수 있는 새로운 것을 해보려고 해요. 그래야 더 기억이 남고 추억이 되더라구요. 새로운 것을 같이 할 수 있는 친구, 모임이 참 편하고 좋습니다.

그런 점에서 독토는 매번 책, 발제라는 새로운 공감대와 주제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발제를 통해 생각지도 못한 주제, 그리고 이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통해 멤버들도 더 이해할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저도 이야기도 많이 할 수 있구요. 가기전 지하철에서 발제를 보며 어떤 말을 할지 정리하는 그 시간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마지막 토론이 끝난 후 한동안 허했습니다. 독토는 언제나 그자리에 그렇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가봐요. 독토를 하면서 많이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이 좋은 기억 땜에 언젠가 다시 모임을 찾을 것 같아요!

독토는 끝이지만 독토 맴버들은 주기적으로 자주 봤으면 합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영진

2015년부터. 독한녀석들 이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12년. 12년간 몸담았던 독서토론 모임이 2023년 12월로 마무리되었다. 독한녀석들은 나에게 여러 의미가 있는데 20대부터 30대까지 나의 시간과 고스란히 함께 했다는 점이다. 우선 20대 대학생활 하면서 만들기 힘들다는 절친한 친구를 이 모임에서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토론모임이 유지된 시간이 중학교 고등학교 교육과정보다 길기에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둘째, 학생 때 만났던 친구들은 이제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 직장인이 되었고 그 중 몇 명은 자녀도 있다, 이젠 술 한 잔 할 때 맛있는 안주를 걱정없이 시킬 수 있는 사정이 되었다. 셋째, 쑥스럽지만 10여년간 지속된 이 모임은 종종 타인에게 나를 소개할 때 일종의 자랑이었다. 모임 유지에 많은 지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오래된 독서모임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는 점은 몇 안 되는 자랑거리 중 하나였다.

2023년 12월 마지막 토론은 좋은 마무리였다. 우리의 발제문 포맷은 그간 나름 이리저리 보완을 하며 한결같이 유지된 우리의 토론방식이었다. 마지막까지 토론 형식을 유지하여 마무리를 지은 점이 인상깊었다. 이리저리 생업과 육아에 정신없었을 발제자 병준이는 발제문 작성에 인터뷰 취합에 결산준비까지 정말 수고를 많이 해줬다. 다시 한 번 감사하다. 그간 모임의 중심을 잡아준 준민이형. 준민이형이 없었다면 진작에 모임이 마무리되어도 몇 번을 됐을 것 같다. 결산준비와 결산 진행까지(샴페인까지) 정말 감사했다. 12월 모임에 크게 작게 도움을 준 병주까지. 감사하다.  종찬이도 정말 많이 고마운데 이건 나중에 따로 만나게 되면 인사할 생각이다.

이젠 모임이 없어도 책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모임 없이도 친구들을 보고싶다.


보영


구구절절 쓴 후기가 보내기도 전에 삭제됐다. 

이 역시 하늘의 뜻 이거니... 


독토를 처음 참석하게된 목표는 책 읽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었다. 

목표는 달성했다. 다만 책을 편식한다. 

독토에 참석하면서 그나마 관심없는 부류의 책들도 읽게 되었다. 


그 부류의 책 중 하나가 소설이다. 

이번 책은 '사랑의 생애'로 소설 내 캐릭터들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감탄하며 읽는 구절들이 많은 책이었다. 

'사랑이 두 사람 사이로 들어와 자기 생애를 시작한다.' 어떻게 이런 문장을 생각해 낼까... 

의식의 흐름대로, 깊이 없는 글을 쓰는 나로써는 절대 생각할 수 없는 문장이다. 


'방향이 없는 간절함은 제자리를 맴도는 열뜬 몸짓이 된다.' 

지금 내 상황과 매칭되는 문장이라 생각되어 찔린다. 


책을 끝까지 읽으면 캐릭터에 대한 생각이 바뀔까 했으나, 끝까지 읽어도 여전히 캐릭터들은 별로다. 

그럼에도 이번 토론에서도 재밌었던 부분은 공감이 가는 캐릭터에 대해 나눔이었다. 

특히 선희가 포용력이 넓게 나온 점은 나에게 짜증나는 부분이었으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른 생각을 주었다는 부분이 새삼 신기했다.  

같은 책을 읽고도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것은 독토였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토론 이후, 유튜브로 다양한 노래를 틀면서 나눴던 이야기들 역시 재밌었다. 

펑펑 눈내리는 풍경, 주황 조명, 캐롤은 당분간 잊지 못할 것 같다. 

특히 자이언티 첫눈을 들으면 당분간 토론의 마지막 날이 떠오를 것 같다. 


그동안 다들 고생 많았고,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안녕~ 



병준


'사랑과는 달리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 우정의 장점이다.' - 이승우


마지막 토론과 결산을 준비하면서 줄곧 들었던 생각은 참 고마운 게 많다는 거다.

시간을 거슬러 이 모임에 처음 참석하게 된 계기를 생각해 보면 이렇다. (오늘은 말이 길어도 이해해 달라. 마지막이니까.)

워킹 홀리데이 출국일을 잡아 놓고 매일같이 술만 마셔대면서도 대학생으로서 대외 활동은 뭐라도 해보겠다고 꾸역꾸역 서대문까지 갔더랬다. 그날의 이유 없는 성실함이 지금의 나, 실상 정말 나라는 아빠, 남편, 당신들의 친구를 만들지 않았나 싶다.

가장 먼저 그날의 내가 가장 고맙다.


두 번째는 독서 토론 자체가 고맙다.

독서토론은 늘 어딜 가나 나의 자랑거리였다. "저 독서토론해요. 2012년부터" 이 한마디면 모두들 "이놈 대단한데?" "있어 보여요♡" 등의 찬사가 쏟아졌다. 

독서 토론은 내게 위로가 되어주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는 이직하고 혼자 외롭게 밥 먹으면서, 밥 먹고 발제책 읽는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참 한 글자 한 글자가 따뜻하고 또 포근했다.

뭣도 없는 나를 멋있게, 또 따숩게 만들어준 독서 토론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내가 가장 힘들 때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됐던 당신들에게 고맙다.

취업이 잘 안될 때, 회사가 어려울 때, 아이로 힘들 때 늘 곁에는 당신들이 있었다. 당신들과 함께한 시간이 내겐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단언컨대, 내가 태어나서 나의 의지로 만난 인연 중에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다.


매달은 아니지만 내 기준에서 참 많은 토론에 참석했던 것 같다. 때로는 책이 재밌어서 때로는 토론이 재밌어서 때로는 뒤풀이가 재밌어서 좋았다.

한 해에 한두 번씩 결산을 준비하면서 내가 뭐라도 된 양 으쓱해질 때가 많았고, 힘들지만 행사를 끝내고 나면 찾아오는 그 희열과 다음 행사에 대한 도전 의식 같은 것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별이라는 걸 참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결혼해서 같이 살고 있기도 하고.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누군가를 떠나오고 하는 것들이 내겐 굉장히 오랜 기간 동안 그리움과 상처로 남는다.

독토가 더 이상 싫어서 떠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다만 이제 우리에겐 독토보다 더 중요한 삶의 이유들이 있고, 우리 모두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보내주는 거다. 독토에 대한 예의로.

이제 막 정이 든 영현에게는 많이 아쉽고 미안하다. 제대로 된 결산 한번 같이 못 했네.


막상 독토를 끝내고 나니 뭘 해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뭐라도 해야지 하는 생각이긴 한데, 이제는 예전처럼 뭔가를 막 벌이기에는 체력도 한정적이고 시간도 한정적이라 리드 타임이 좀 길듯 하다. 


우선은 잠시 그리워해보련다. 추억해 보련다. 내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을 같이 해온 나의 친구들

더 많은 각자의 이야기를 잔뜩 모아서 다시 한번 모이자구.


고마워. 오래도록 내게 닿아있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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