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토론: 아버지의 해방일지







발제: 배병준


종찬

결론부터 말하면 재미있었다. 나에게는 책이 재미있었으니 토론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뿐 아니라 발제문에서 제시된 주제들이 좋았다. 부모님, 이데올로기, 그리고 죽음 이렇게 3가지를 다루었던 거 같은데 상당히 사기적이다. 토론이 안되기가 어려운 이야기들이니까. 그렇다고 사회자가 거저먹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소재가 나올 만한 책을 고르는 것부터 토론이 격렬해질 수 있는 발제문을 제시하고 잘 정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좋은 재료를 골라서 잘 요리했을 때 “이게 맛없으면 이상하지…” 라고 하는 게 요리사에 대한 칭찬인 것처럼, 이 단락도 발제자에 대한 칭찬이다.

그러고 보니 토론에 대한 평가를 재미주의적으로 했다. 요즘의 이데올로기가 재미라는 말이 역설적이게도 상당히 재미있었다. 재미만 있으면 뭘 하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는 이야기에 동의하는 한편, 뭐 하나 재미만 있게 만든다는 게 상당히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재미가 있으려면 청자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듣는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시작한 의도가 단순 재미든, 놀라운 철학의 전달이든, 신기한 과학 지식의 학습이든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는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 곧 즐길만한 것이 많이 나온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안에는 싸구려 욕지꺼리나 포르노그래피도 섞여 있을텐데, 그 중에 보물을 찾는 과정도 참 *재미*있을 것 같다.

과거에 독서 토론을 왜 하는지 몇몇 멤버에게 물어본 일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사회적인 경험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책에 대해서 깊게 이해하고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좋다고 했다. 거기까지 물어봤을 때도 이미 뜬금없이 이런 걸 왜 묻느냐는 듯한 반응이 있었다. 나도 그때는 더 어떤 걸 물어봐야 할 지 몰라서 거기서 끝났던 거 같다. 오늘 다시 오랜만에 후기를 쓰면서 되돌아보니 한발짝 더 나아가서 물어봤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각각의 다음 차원의 질문이 있을 것 같다. 사회적인 경험을 하면 어떻게 되는거지? 사회적인 경험 그 자체가 인생의 목표라면 모르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그 경험을 계속 하고자 하는 더 본질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책을 깊게 이해하고자 하는 것도 마찬가지. 책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이 인생의 최종 목표일 리는 없을 것 같은데, 그 행동이 궁극적으로는 어떤 영향을 끼치기를 바라는 거지?

이 문제를 자꾸 다시 가져오는 건 내가 그 이유를 명확히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나는 내가 토론을 왜 하는지를 대답하기가 어렵다. 아마도 명확한 이유가 생기기 전까지는... 지난번 토론에서 느낀 *재미*이외의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재미주의가 이런 건가? 재미는 왠지 그 다음 이유가 필요없어 보인다. 재미를 느껴서 그걸로 뭘 할려고 하는 거야. 그런 건 안 궁금하다. 아마 나는 지독한 재미지상주의자일지도…

아무튼, 그 이외의 이유를 찾고자 하는 것은 토론을 계속하기 위한 이유를 찾기 위함이다. 토론이 매번 재밌을 수는 없으니까. 타율로 따지면 재미있는 토론보다 재미없는 토론이 많은데다 사실 재미만 따지면 솔직히 그냥 만나서 술이나 먹는 게 더 재밌을 것 같다. 그것도 아니면 각자 집에서 유튜브를 보던가… 그러니 재미보다 더 나은 게 필요하다. 이런 이야기를 토론 때 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재밌게**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영현

책 표지의 분위기를 통해 예상한 것과는 다른 도입, 도입에서 느껴진 정치적 분위기와는 다르게 생각보다는 잘 읽힌 책.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아버지"라는 인물과 그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집중해 읽혔습니다. 전직 빨치산이었던 아버지, 본인 신념에 누구보다 진심으로 보였으나 노동에는 부정적인 등 이중적 면모도 보였던 아버지. 썩 가정적인 아버지도, 좋은 가족으로 보기에 어려웠던 부분도 많았으나 다양한 사람을 통해 투영된 아버지의 모습을 돌아보니 인간적인 면모도 많았던 입체적인 인물임이 잘 드러났던 내용이 좋았습니다.

토론을 할 때는 일차원적인 책의 내용을 뛰어넘어 전반적인 구성과 내용의 기저에 깔린 이데올로기 및 현 사회의 이데올로기 등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한 부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민주주의는 원래 시끄럽다라는 말이 참 기억에 남고, 재미, 기술 등 지금 사회의 이데올로기로 제시된 다양한 단어들도 인상깊었습니다. 

토론 후 시간이 조금 지나고 후기를 쓰며 드는 생각은 이 책과 같은 상황이 아주 낯선 것만은 아닐 것 같다는 점입니다. 아버지라는 인물의 배경과 살아온 삶이 특별해서도, 당시 시대상이 지금과 달라서 이런 서사가 가능했다기보다 대다수의 사람은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다른 주변인들이 그의 각각의 얼굴 중 일부만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을 것 같습니다. 문득 내 얼굴 중 가장 많은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지, 나는 나의 부모님의 얼굴 중 얼마나 많은 얼굴을 알고 있는걸지, 언젠가 부모님의 모든 얼굴을 알게 되는 날이 올지 궁금해지네요. 


준민

세상의 많은 일은 가까이서 보면 서로 다르고 멀리서 보면 서로 비슷합니다. 그 중에서 경조사가 특히 그런 것 같습니다. 멀리서 보면 서로 비슷한 모양을 띄고 있지만 가까이서 보면 각자의 사연이 있게 마련입니다. 사연마다 즐겁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고 그렇죠.

<아버지의 해방일지>도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멀리 보면 여느 장례식에서 볼 수 있는 모습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서 보면 아버지의 인생 굴곡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서 소란스럽지만, 예부터 장례식은 조용한 것 보다 시끄러운 게 더 나았다고 하니 그런 것도 의도된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다룬 이번 모임은 무던했습니다. 대체로 위기는 없었고 몇몇 재미있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장례식 이야기가 좋았어요. 멀리서 보면 여느 모임과 비슷하지만, 참석한 분들에게는 또 다른 모임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현정

귀엽고 아기자기한 표지와는 다르게 전봇대에 머리 박고 세상을 떠나는 아버지로 시작을 담은 책.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높은 평점만큼 재미있거나 잘 읽히지는 않았다. 어쨌든 시작한 책을 무조건 끝까지 완독을 해야 한다는 주의가 아닌 나에게는 그래도 와닿는 만큼은 읽었다고 볼 수 있겠다. 정감 가고 가독성은 떨어지지만 흥미를 끌었던 사투리가 기억이 남고, 의외로 내 새끼들 챙기시던 비중 적은 할머니가 등장했던 많은 캐릭터들 중에서 애정이 간다. 개인적으로 그냥저냥 마무리될 수도 있었을 책이었지만 무엇보다 토론의 주제와 내용이 즐거웠어서 따뜻한 초록색 빛깔처럼 몽글몽글하게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동진

엄근진 하지 않은 아버지의 장례식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책표지만큼이나 무겁지는 않은분위기에서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여하는 여러인물들을 통해 딸이 몰랐던 아버지의 다양한 이면을 보여주면서 아버지를 더 이해해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책의 시대배경이 이념적이고 민감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초반에 책을 펼치지만 오히려 사람사는 애기가 주로 담겼기에 그런 느낌은 거의 느끼기 어렵다

오히려 사람간의 서로를 위함이 주된 내용이 되며 그 장치 중에 하나는 사투리가 그 장치가 된다. 소설에서 소제목을 지을만도 한데 굳이 만들지 않고 다소 산만한 전개는 오히려 시끌벅쩍한 장례식을 표현하기위해 일부러 그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장례식이었다는걸 화자의 아버지가 본다면 꽤나 흡족해할만한 분위기의 장례식이었을거라는 생각도 든다.

토론의 경우 소제목을 지어서 발제문에 있었던게 재밋엇으며 

난 이 책에서 이 구절 하나를 남기고 싶다 

152p “나는 정말 노동이 싫어 .....노동이 무서워” 


병주

미드의 경조사에는 친구들이 경조사의 주인공과의 일화를 소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훈훈한 이야기도, 재미있는 이야기도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며 분위기가 무르익습니다. 전 이게 참 부럽더라구요.

책에서도 내가 본 아버지 많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버지란 사람이 만들어 집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아버지를 생각하고 회상하며 용서하게됩니다.

이처럼 삶은 내 자신이 만족하는 것도 있겠지만 주변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소설에 묘사된 장례식 이야기가 정말 좋았고 맘에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제 장례식에도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 이야기 중에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도, 부끄러운 이야기도 또 제가 잊어버린 이야기도 있을 겁니다. 다만 그런 이야기 속에서 친구, 가족 등 소중한 사람들이 저를 추억하고 회상하는 시간이 되면 좋을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제가 좋아하는 Lukas Graham의 Funeral 의 가사로 마무리 해보고자합니다.

'Everyone welcome to my funeral'



병준

"그때게 할배 맴이 요상허드래. 아부지라는 거이 이런건갑다, 산에 있을 적보담 더 무섭드래. 겡찰보담 군인보담 미군보담 더 무섭드래." -p.265


아버지가 되기 전에 이 책을 읽었으면 지금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을까?

읽을 때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나고 또 공감되고 울컥하기는 처음이다.

아마 부모의 사랑 역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떠오르고, 깨닫고, 반성하겠지.

책을 읽을 때는 당연히 화자의 입장에 공감했다. 사과하지 않는 아버지를 둔 자식의 입장으로.

책을 덮고 나니 나 역시 한 아이의 아버지라 그런지 어쩔 수 없이 아버지에 나 자신을 대입하게 된다.

가끔 회사를 뛰쳐나가 아이를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아주 가끔.

하루 몇 시간도 이럴진대 몇 년을 철창 안에서 딸을 그리워했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어느 날은 문득 가슴이 아리더라.

토론은 내가 예상했던 대로, 아니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알차게 진행되었다. 패널들 덕분이다. 다시 하래도 이보다 잘할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토론 중 민주주의는 구조적으로 시끄러운 게 당연하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구조적으로 시끄러운 것이 당연한 것들은 또 무엇이 있는지 떠올려봤다. 장례식, 네 살 아이, 그리고 독서 토론까지...


책과는 관련 없는 이야기지만, 나의 해방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 잠시 생각해 봤다.

직장인이자 부모로서 지금 내게 남은 한낱 해방은 책 읽는 시간, 독서 토론을 준비하는 시간 정도이다.

아이가 없을 땐, 직장인이 아닐 땐 느끼지 못했던 그 짧은 순간의 해방감과 소중함...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는 인류의 반복된 후회는 어떻게 진화가 안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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