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한 권, 한 장, 한 곡

매 달 인상깊었던 책 한 권, 앨범 한 장, 노래 한 곡을 소개합니다.

다나베 세이코 – 춘정 문어발

저는 음식에 예민한 편이 아니라 적당히 먹을 수 있으면 그걸로 행복합니다. 『춘정 문어발』의 주인공들은 다릅니다. 그들에게는 각자 너무나도 사랑하는 음식이 있으며 그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사랑하는 음식에 대해서 만큼은 타협을 거부합니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음악을 생각했습니다. 모든 음악을 깐깐하게 따지면서 듣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좋아하는 장르만큼은 기대가 채워지기를 바라며 깐깐하게 따집니다.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타협할 수 없는 자신만의 기준이 있는 사람이라면 『춘정 문어발』에 푹 빠질 겁니다. 

물론, 음식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닙니다. 아무렴 다나베 세이코의 작품인걸요. 결국 남녀관계로 이어집니다. 외골수 아저씨가 여자와 만나면서 부딪히고 깨지고. 대체적으로 잘 풀리지 않습니다. 착각과 실제는 다른 법이죠. 외골수는 세상을 모릅니다. 그저 잘 아는 게 하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를 잘 아니 다른 것도 잘 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니 망할 수 밖에요. 그래도 『춘정 문어발』의 주인공들은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음식이 있으니까요.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이러니 저러니 해도 행복한 겁니다. 

신승훈 – Radio Wave

말끔하고 부드러운 앨범입니다. 깔끔한 기타와 피아노가 어우러진, 뭐랄까 투명한 사운드가 일품입니다. 더 이상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정갈하고 소박합니다. 그게 신승훈의 미성과 잘 어울립니다. 

나는 비록 너와 헤어지지만 그래도 아직 너를 사랑한다. 신승훈 노래의 일관된 정서입니다. 『Radio Wave』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래마다 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입니다. ‘조금씩 다르다’는 게 중요합니다. 가사가 짚어주는 디테일은 소박한 사운드와 시너지를 이룹니다. 그게 다는 아닙니다. 『Radio Wave』의 정점은 마지막 곡인 『너를 안는다』입니다. 지금까지 흘러나왔던 이별 노래가 『너를 안는다』를 만나며 기다림에 대한 노래로 바뀝니다. 이별 후에 외치는 사랑은 닿을 수 없어 공허합니다. 하지만 허무함을 견디는 것 또한 사랑입니다. 내가 잘못되지 않음을 결국 너로 향할 수 밖에 없음을 증명하는 과정입니다. 

저는 『Radio Wave』를 재회에 대한 컨셉트 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왕이면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듣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20분이 조금 넘는 미니앨범이라 부담스럽지도 않으니 꼭꼭.

에이핑크 – 네가 손짓해주면 

에이핑크는 2011년 4월 19일에 데뷔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부정적인 의견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걸그룹은 이제 끝물이다. 요즘 트렌드랑 안 맞는 청순 컨셉은 뭐냐 등등. 지금 보면 재미있습니다. 에이핑크가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둘 거라고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저도 데뷔할 때부터 주목이야 했지만 성공에는 회의적이었으니까요. 

『네가 손짓해주면』은 에이핑크가 발표한 네 번째 팬송입니다. 에이핑크의 팬 사랑은 유명합니다. 속으로는 몰라도 겉으로는 팬과 연애하기 때문에 열애설이 없다고 말하는 팀입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PANDA는 별로 없을 겁니다. 그래도 그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기분 좋은 게 팬이라는 존재입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아이돌과 팬은 유사연애를 합니다. 팬은 아이돌을 보며 즐거움을 얻고 아이돌은 팬이 있기에 활동할 수 있습니다. 『네가 손짓해주면』은 아이돌과 팬의 공생관계를 예쁘게 그려냅니다. 

꼭 에이핑크 팬을 위한 노래만은 아닙니다. 멜로디도 좋고 보컬 파트도 적절히 나눠져 있어 듣는 재미가 있습니다. 팬송이라는 선입견만 벗으면 가사도 제법 의미심장합니다. 정말정말정말 뜬금없지만, 저는 아내 한 사람을 독자로 생각하고 쓴다는 스티븐 킹이 떠올랐습니다. 글이든 노래든 결국 한 사람을 향해 갑니다. 음, 생각해보니 모두가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한 사람을 떠올리면서 썼던 글들이 스스로에게 더 큰 만족을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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