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사랑의 기술 후기

사랑의 기술

발제자 박종찬

후보였던 책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일시 2016년 5월 21일


준민

(예전에 한 번 이야기했지만) 모든 자기계발서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이상한 현실 인식을 기반으로 이상한 행동을 권하는 이상한 자기계발서가 나쁠 뿐입니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처럼 쉽고 재미있으면서 현실에 대한 고민을 해보고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지침까지 내려주는 자기계발서는 그런 범주에 속하지 않습니다. 물론, 지금에 와서 프롬의 해결책이 무조건 맞는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가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객관성의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정색하고 말꼬리를 잡을 필요는 없겠지요. 객관성을 적당히 거리를 두고 무언가를 바라본다는 의미로 여기고 실천한다면 그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겁니다.

결국 신앙의 문제입니다. 믿고 따를 것인가, 따르지 않을 것인가. 제가 근대적인 사람이라서 그럴까요? 저는 프롬의 조언이 대체적으로 옳다고 믿으며 그렇기 때문에 따를 생각입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사랑의 기술』을 읽기 이전부터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노력을 한다고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고 특히 통속적인 의미에서 남녀 간의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아닙니다. 그저 지금보다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을 뿐입니다. 

연인과의 사랑은 삶을 풍성하게 바꿉니다. 심지어 핑크 빛 기류만 흘러도 삶이 화사하게 변합니다. 그런 짜릿함은 다른 경험에서 좀처럼 얻기 힘듭니다. 아니,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연인과의 관계에서만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외부에서 주는 자극이 너무 짜릿하고 달콤해서 내부에 있는 소리를 듣는 힘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요? 프롬의 말처럼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어야 타인과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법인데요. 

그래서 루시아는 노래 불렀나 봅니다. “네게 정말로 필요한 그 모든 것들은 그대의 안에 다 있어요.” 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깊이 들어갔지만 파고든 방향이 제 취향이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는 아쉬웠습니다. '사랑' 하나만 가지고 토론에서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 회의적이었는데, 발제자분과 토론자분들께서 '사랑의 기술' 한 권을 가지고도 살아가는 모든 이야기를 끌어내주셨습니다. 덕분에 토론 내내 즐거웠습니다. 새로 오신 분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못해 아쉬운데 다음 토론을 기약하겠습니다.


윤영

아버지적 양심과 어머니적 양심 사이에서 나는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나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추상적인 사랑에 관한 것을 실생활 적용을 통해 재밌게 풀어서 즐거운 시간이였습니다^^


미정

벼르고 벼러왔던 사랑이라는 주제가 드디어 독서토론에 오픈이 되었군요! 이 점에서 기존 주제들과는 달리 재미있는 토론이 되었습니다.
대상에 집착하지 말고 사랑의 태도를 중시한 에리히 프롬의 이야기는 저를 많이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사랑이라는 겉도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고민하고 다듬어준 발제문 덕분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할 수 있었고요. 사랑을 줄 수 있는 성숙함에 대해 되새기는, 개인적으로는 다짐이 남는 일기장 같은 토론이었습니다.


동희

토론 하면서,
사랑의 정의에 대해서
저는 "충만함"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충만함(감정의)"은 제게 사랑하고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인 것 같습니다.

다시 사랑의 정의를 말하자면...
"자아탐구를 하면서 상대방과 함께 자아실현"
이라고 생각합니다.

음..,
개인적으로 저는 
사랑이 끝난 후?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이 폭풍처럼 휘몰아 쳤던 것 같습니다. 
폭풍이 지나간 후,
빛나는 드래곤볼이 하나 생겼달까


영진

아침운동과 친구 결혼식의 여파일까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시종일관 수동적인 자세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결혼식 시즌에 열린 ‘사랑의 기술’ 토론은 지나갔다. 발제자의 의도는 사랑에 대한 개인적 이야기를 꺼내주길 바라는 눈치였으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이야기가 쉽게 나올 수 있었을까? 아무튼 그렇다.
이성과의 사랑, 부모와의 사랑, 친구와의 사랑. 많은 생각거리를 준 날이었다.


병준

자기계발서든, 에세이든, 혹은 심리학 도서든
그게 뭐 중요할까
지나간 사랑을 회고하고
지금 사랑을 점검하고
다음 사랑을 기대할 수 있게 해준 것만으로도
장르를 뛰어넘는 의미가 있다하겠다 

사랑에도 능력이 필요하다는 게
어찌보면 서럽기도 하지만
우리의 숱한 헤어짐은 결국 그 능력의 한계를 넘지 못한 까닭이 아니겠는가

내가 좋은 사람이어야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게
상대가 좋은 사람이어도 내가 그렇지 못하면 결국 불행이더라

훈련이든 정신집중이든 인내든
오롯이 내 스스로 일어날 수 있을 때야 비로소
남에게 어깨를 내어 줄 여유도 가질 수 있겠지

생각보다 많은 스토리를 듣진 못했지만
나처럼 자기 자신을 오해하고 사랑에 뛰어든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타인에게 객관적이기에 앞서 내 스스로 객관적이 되어 내 깜냥과 생활, 그리고 사랑까지 되짚어 볼 일이다

부모가 어땠다는 핑계를 대기엔
이제 우리 나이가 적지 않은 관계로.


현정

삶을 살면서 특히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아도취적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느꼈고 이러한 것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하다, 현명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이는 다수 있었지만 또한 경계해야함을 일깨워주는 이는 없음을 깨달았다.
이로인해 앞으로 모든 것에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할 내가 보인다. 작가에게 설득 당한건가..ㅋㅋ

사람을 다양한 관점에서 보기위해 노력한 만큼 나 자신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깊이 있게 고민해볼 수 있었고 이 시간들이 꽤 흥미로웠다.

평소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한 번쯤 읽어볼만한 책이었던 것 같다.


재승

사랑의기술이 다른 번역본이 있는줄모르고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한 절반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한것 같네요 ㅠㅠ 그래서그런지 토론중에도 종종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힘든 부분들도 없지않아 조금은 힘든 토론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우리 뒤풀이는 최고였습니다. 손얼굴의 옥상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다음달 발제인게 조금 부담스럽기는하지만 아직 시간이 있으니 당분간 맘편히 있기로~~ 여튼 뒤풀이에 만족했던 토론이었습니다~! (물론 토론이 안좋았던건 아님, 그냥 제가 이해못함 ㅠㅠ)


세진

일단, 항상 늦은 후기로 발제자님들을 괴롭히는 것에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생각이 복잡하여 더욱 운을 떼기 어려운 후기였네요.

1. 분명 읽었는데, 책을 덮으면 기억에서 휘발되는 현상을 자주 겪었습니다. 근래에 가벼운 독서만을 해왔음을 반성했습니다. 완독을 하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토론에는 잘 참여할 수 있었고 처음 가지고 왔던 생각에서 많이 확장되는 경험을 해서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당분간은 다시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다시 찬찬히 정독해보고 싶은 책입니다.

2. <사랑의 기술>에 대해 토론한 이후로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심경의 변화를 겪었습니다. 첫째로 과거의 연애사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았습니다(^_^).... 프롬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서적 합일'이 진정한 사랑인 양 착각하며 스스로를 힘들게 했던 시간들이 참 많았구나 깨달으면서요. 질투나 집착 같은 감정의 파고도 있었고, 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휘청거리던 시간들도 있었음을 담담히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나약했던 내 마음을 이만큼까지 성장하게 해 준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만 남기고 남은 감정은 다 날리기로 했습니다. 보다 성숙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 되려고 마음을 다듬어가는 시간들을 겪는 중인 것 같습니다.
둘째로는 외로움에 많이 덤덤해졌습니다. 스스로 판단하기에 상당히 외로움(권태) 취약형 인간이라, 그 공간을 채우지 않으면 자주 우울해지곤 했었습니다. 차라리 바빠서 아무 생각도 안 들 때가 마음이 편할 정도로요. 그러다가 프롬의 메세지가 내면화가 되면서 모종의 자각이 생겼습니다. 내가 먼저 생산적으로 줄 수 있으려면, 마음이 충만하게 하려면 외로움을 다스릴 줄 알아야겠다는 브레이크라고 해야할까요...? 당장 외로움을 채우려고 사람들을 만나기보다는 내 안에 줄 수 있는 것들을 많이 키우자는 생각으로, 혼자 있는 시간들을 나를 위해 쓰는 법을 배워나가는 중입니다. 

3. 현실적으로 이런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를 성숙하게 하는 것과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상대방을 찾는 것 (지속적인 관계로 이어가려면 상대의 문제도 문제가 된다는 게 저의 생각.), 이 두 가지의 과제 모두 물리적, 심리적 여유가 우리에게는 사치스럽다는 생각도 들고요. 어쨌든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이전보다는 성숙한 사랑을 하려는 마음을 갖고 살면, 그런 방향으로 점점 발전하겠지 믿으려 합니다. 언젠가는 그런 성숙한 사랑의 순간을 경험해보면 좋겠습니다. :-) 끝!


종찬

이 책을 고르게 된 계기 중 하나가 첫 챕터인 ’사랑은 기술인가?’가 재밌었기 때문입니다. 그 마지막 문장은 이렇습니다.

“다른 분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실천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긴 하지만.”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는 말만큼 공허하고 부끄러운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떠들 줄만 알았지, 정작 행동은 미숙하기 그지없으니까요.

갈 길이 멉니다. 멀미가 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웃으면서 신나게 가는 법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울상인 채로는 아무 것도 못할 테고, 나한테 내가 쫄아서는 뭣도 안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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