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한 권, 한 장, 한 곡


매 달 인상깊었던 책 한 권, 앨범 한 장, 노래 한 곡을 소개합니다.

강영숙라이팅 클럽

소설의 재미란 무엇일까요? 폭넓은 의미로 생각해보았을 때 읽고 싶게 만드는 텍스트의 매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소설은 재미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독자는 끝까지 읽을 수 있고 저자는 끝까지 쓸 수 있습니다. 강영숙의 『라이팅 클럽』은 재미있습니다. 특히 주인공의 고등학교 시절이 그렇습니다. 주인공의 행동에 책을 읽는 제가 이불 속으로 숨고 싶었습니다. 그런 오글거림을 경험하게 하는 소설은 흔치 않습니다.

『라이팅 클럽』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주인공이 동네 아주머니들의 글을 쓰레기라고 부르는 장면입니다. 글의 질적인 측면을 따진다면 동네 아주머니들의 글은 쓰레기가 맞을 겁니다.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나 요리 레시피는 소재로써 독특하지 않으며, 아마 문장도 별볼일 없을 겁니다. SNS가 널리 보급됨에 따라 이제는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대부분은 별 거 아닙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계속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글쓰기의 욕망에 대한 미사여구야 엄청나게 많지만 속 시원한 설명은 없어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책을 다시 펼쳐봤습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중요한 건 의지가 아니라 테크닉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그 때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테크닉이 부족했다.” 어떻게 이 문장을 그냥 지나쳤는지 의문입니다. 그 때 제게 사람을 사로잡는 테크닉이 있었다면 무언가 바뀌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풀 수 없는 아쉬움을 가슴에 품고 오늘도 씁니다. 표현하고 싶은 무언가가 담기길 바라면서.

Cymbals - Anthology

베스트 앨범은 어지간해선 사지 않습니다. 가지고 있는 베스트 앨범의 대다수는 음악을 막 듣기 시작하던 그러니깐 아무것도 모를 때 멋모르고 산 것들입니다. 웬만하면 거들떠도 보지 않을 베스트 앨범이지만 심벌즈의 베스트 앨범은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첫 번째, 심벌즈의 정규 앨범은 한국에서 구하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 유일하게 정식 발매된 베스트 앨범도 잘 안 보입니다. . 그래서 샀습니다. 막상 지르고 나니깐 여기저기서 보여 김이 샜지만 그래도 음악이 마음에 드니 다 용서가 됩니다.

심벌즈는 요즘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여성 보컬 토키 아사코(土岐麻子 Toki Asako)를 앞세운 트리오 밴드입니다. 경쾌한 락앤롤로 다소 거친 구석이 있지만 혈기왕성하고 왁자지껄해 듣고 있으면 즐겁습니다. 초기 페퍼톤스, 특히 뎁이 객원보컬로 참여했던 페퍼톤스의 노래를 좋아한다면 무척 익숙하게 들릴 겁니다. 페퍼톤스가 심벌즈의 영향을 받은 건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심벌즈가 해산한 아쉬움을 페퍼톤스의 데뷔 앨범으로 달래던 분도 제법 많았습니다.

다 좋지만 비슷비슷한 노래가 23곡이나 담겨 있어 어느 순간 지칩니다. 히트곡이 빽빽하게 수록된 베스트 앨범이라면 마땅히 칭찬해야 하거늘 별 이상한 트집을 잡고 있네요. 현실적으로는 저작권 문제로 한국 스트리밍 사이트에선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양파 - Deepest In Your Heart

취향은 변합니다. 예전에 좋아하던 무언가를 지금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예전에는 그저 그랬던 게 지금은 좋을 수 있습니다. 양파의 4집 『Perfume』이 그렇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 그러니깐 고등학교 때는 그냥 그랬는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앨범의 진가를 느끼게 됩니다.

귀에 꽂히는 노래도 바뀝니다. 예전에는 『Drive』와 『My Song』의 연타를 좋아했는데 이번에는 『Deepest In Your Heart』가 가장 좋았습니다. 적당한 템포의 밝은 노래. 곡 자체는 특별할 게 없을지 모릅니다. 결국 가사입니다. 이 노래의 가사는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화자가 불분명해서 힘든 게 나인지 그대인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위로를 해준다는 건지도 명료하지 않습니다.

그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겁니다. 내가 힘들 때 누군가 곁에 있어주길. 누군가 힘들 때 내가 힘이 될 수 있길. 그런 정경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Deepest In Your Heart』은 충분한 감동을 줍니다. 따뜻한 노래입니다. 한동안 아침에 일어나면 이 노랠 들었습니다. 매일매일. 그게 의외로 큰 위로가 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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