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토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후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뇌

발제자 박동희, 진

후보였던 책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전복과 반전의 순간,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일시 2016년 3월 19일




종찬

요즘은 계절에 꽂혀 있다. 너무나 바쁘고 불안한 일상 속에서도, 계절이 변화하는 실마리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안정된다. 여기에는 이유가 없다. 이유가 없는 감동은 강력하다. 이유를 알면 (또는 붙이면) 망가지는 것이 많다. 어떤 것은 신비롭게 놔둘 일이다.

정확히 뭔질 모르는 것 뿐이지(그렇게 놔둘 일이다), 분명히 감각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계절을 느끼는 것은 온갖 이유를 붙여서 논리를 태우지 않고도 직접적으로 행복감과 연결된다. 이건 봄만 그런 게 아니다. 감정을 가려가며 느끼려고 하다간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게 된다. 봄만 있으면 다 죽는 거다. 모든 것은 균형 속에 있고, 계절은 그 균형을 놀랍도록 무심하게 지킨다. 진짜 겁나 상관 안한다. 당신 머릿속에서 폭풍이 치든 해일이 일든. 그런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고 살아있다는 증거다.

계절과 달리 인간의 뇌는 온갖 ‘겉질'들 때문에 복잡해서, 드는 감정도 단순하진 않다. 하나의 감정으로 가득찬 그런 상황은 잘 없다. 늘 이것저것에 치여서 복잡하고 생각보단 구질구질하고 드럽고 지치고 그러다 가끔 마약처럼 신난다.

술, 당신들, 산책, 골목, 하늘을 좋아한다. 행복했다.


준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뇌]를 읽는 건 무척 힘든 일이었습니다. 글이 산만해서? 전문용어가 많이 나와서? 책 자체의 문제도 있겠지만 제게는 책 외부의 문제가 더 컸습니다. 정신이 완전히 다른 곳에 가서 책을 붙잡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 일주일, 늘 멀티태스킹 상태였습니다. 화이트데이에 만난 그녀 생각에 어떤 일에도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멀티태스킹은 정말로 효율을 떨어트립니다.

화이트데이에 소개팅을 했습니다. 머리도 하고 옷도 사고 나름대로 준비를 한 후 혜화역 2번 출구에서 그녀를 기다렸습니다. 이래저래 사람 구경을 하던 중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프로듀스 101]의 기희현이 떠오르는 미인이었습니다. 스타벅스로 들어가는 그녀를 보며 떠오른 생각은 세 가지였습니다. 1) 와, 진짜 예쁘다. 2) 남자 친구 부럽다. 3) 나랑 소개팅 하는 사람도 저렇게 예쁘면 좋겠다.

약속시간이 가까워지고 그녀에게 연락을 하자 이미 도착해서 스타벅스에 있다는 답이 왔습니다. 네, 그녀가 그녀였습니다. 예약을 한 음식점까지 어떻게 걸어 갔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남자는 미인을 만나면 뇌 기능이 떨어진다는 속설을 그 때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이야기는 곧잘 통했습니다. 음악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서로 좋아하는 뮤지션에 대해서 소장하고 있는 음반에 대해서 다녀온 공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니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착각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혼자 흥분해서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그녀는 그저 들어주기만 했을지 모릅니다.

행복한 화이트데이틀 보낸 후, 늘 그녀 생각만 했습니다. 이 글을 보는 분들은 웃을 겁니다. 딱 한 번 만난 거 가지고 뭘 그렇게 호들갑을 떠느냐고. 사실 저도 웃깁니다. 그냥 한 번 만났을 뿐인데. 그게 뭐라고 주책 맞게. 일요일에 다시 만날 약속을 했을 때는 문자 그대로 뛸 뜻이 기뻤습니다. 마침 석양이 지고 있었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오래가진 않았습니다. 조금씩 무언가 틀어진다는 느낌이 계속되었고 결국 거절의 말을 들었습니다. 온 몸이 싸늘하게 식고 피가 굳었습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뇌]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7장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입니다. 한참 그녀 생각에 열중했을 때니 당연합니다. 이 글에서 저자는 사랑에 대한 몇몇 명언을 언급합니다. “사랑을 하고 잃는 것이 사랑을 아니한 것보다 낫다.” “현명하지 않게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하지 않는 편이 더 현명한가요?”

비록 일주일에 그친 짝사랑이었지만 그럼에도 하기를 잘했습니다. 우선 불면증이 줄었습니다. 생활이 바로잡히면서 몸도 좋아졌습니다. 운동도 시작했습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뇌]의 저자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더 많이 사랑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네 정말로 그렇습니다. 바닥으로 바닥으로 끝없이 내려가기만 했던 저에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활력이 생겼으니까요. 뭐랄까?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고 할까요? 비록 차였지만 지금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은 여전합니다. 나중에 제 인생을 돌아볼 때 이번 일주일은 짧지만 무척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할 겁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많은 감정을 경험했습니다. 일주일 전의 저와 지금의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이토록 짜릿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뇌]를 통해 그 경험을 뇌 과학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해준 진행자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이 빚은 두고두고 조금씩 갚아 나가겠습니다.


미정

날이 좀 풀리니 분위기도 함께 화창해져 토론하기 참 좋은 날이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뇌 속의 뇌용어가 다소 어려웠지만 질문이 심플해 이해가 쉬웠다. 다만 토론 초반의 질문들이 가치중립적인, 현상적인 질문이라 질문과 대답에 큰 흥미를 못끌게 했던 점이 아쉽다.
다만 토론 이틀 후임에도 돼지이야기는 생생하게 기억나게 만든 질문과 지문의 배합! 결코 색깔없는 토론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 날의 토론은 살구돼지색으로 기억에 심어둬야겠다.


영진

좋은 날씨에 좋은 토론이었습니다. 유난히 많았던 패널들의 북적임과 그로부터 오는 활기는 봄기운을 말 그대로 ‘내뿜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참여한 주씨와 혜리도 봄 기운을 전하는데 한 몫을 한 것 같습니다.
특히나 발제자들의 진행능력이 갈수록 좋아지는 것 같아서 벌써 그들의 다음 발제가 기대되네요.

2. 스크린을 내리는데 손가락에 따라 방향이 다르더군요. 상대가 폰을 들고 정면에서 보여주며 내리라 할 때 두 번 째 손가락으로 손가락을 아래로 움직이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다시 제가 폰을 들고 스크린을 내릴 때는 엄지손가락을 위로 올리고 있었다는..

8. 우리가 저녁에 먹은 요리는 돼지등뼈요리였죠.. 키르케의 돼지가 아니길..

슈퍼브레인을 만들어 시험을 잘 보겠다고 한 다짐은 어느덧 기억에서 사라져있더군요.. 슈퍼브레인은 무슨.. 일상생활 유지를 위한 두뇌 훈련이 우선이라고 느꼈습니다. 트럼프를 찾아봅시다.


주씨

저자가 뇌 이야기를 더 쉽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책을 즐겁게 읽지 못한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책에 대한 이야기를 깊게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토론이 유익했던 건 몇 가지가 있는데요. 돼지 이야기는 특히 많은 생각을 던져준 발제 질문 중 하나였습니다. ‘과학 도서를 선정할 땐, 너무 전문적인 분야로 파고들지 말자’는 교훈도 남겨준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비꼬는 거 아닙니다^^:;;) 독한 녀석들이 지금까지 소설, 수필을 주로 다뤄왔던 걸로 아는데, 과학책도 앞으로 많이 다뤘으면 좋겠습니다!


재승

발제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재미있었지만 뒤로갈수록 조금 어려운 내용들이 있어서 읽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조금더 쉽고 친숙한 내용으로 책을 썼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토론은 즐거웠고 유쾌했습니다. 두분이 발제를 준비하면서 많이 신경쓴 부분들을 엿볼 수 있었고, 저 또한 배울부분들이 많았습니다. 다만, 발제문 곳곳에 후속질문들이 더 있었으면 완벽한 발제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뒤풀이는, 음,,, 오랜만에 체력단련을 하면서 좋은 추억(?) 남겼습니다ㅎㅎ 발제하신 두분 고생많으셨습니다~!!


병준

책을 읽고 내 뇌가 더 똑똑해졌는가
책을 읽고 일상에 변화가 있었는가
하면 그런 것 따윈 없다.
내 뇌는 여전히 늘 디폴트 모드에 설정되어있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나보다

그래도 책을 읽고 한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
온종일 한 가지 문항이 떠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돼지의 삶을 살면서,
인간이었던 기억을 품고 살 것인가 하는 것.
하루종일 수 백 마리의 돼지 무리 안에서 인간이었던 기억을 숨기고 산다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형식이 말대로 일상의 자극이 필요하다
동희 말처럼 돼지우리 안에서 미끄럼틀을 타든
그날 우리처럼 늦은 밤 고개를 넘어 방황하든
일상의 변화만이 내 뇌 건강에 도움이 되지 싶다


윤정

이번 토론은 책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내용 외적인 부분도 함께 엮어서 비교적 균형감있었습니다.

책자체가 '어렵다', '난해하다'라는 지적이 꽤 있었지만 토론 후 돌이켜 생각해보면 책이 어렵다고 단순히 불평만 하지는 않았나? 책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충분히 노력했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서로 공부해온 분야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그렇기때문에 생각도 다른 독한녀석들 사람들이 함께 토론으로 '소통'한다는 것은 결국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려는 '노력'(시간적, 물리적)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 처럼,
이번 책에 대해서도 좀더 책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면 보다 풍부한 토론이 될 수 있지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최대한 소통하기 위해 발제문에 공을 들여준 발제자들과 언제나 즐겁게 진솔하게 토론에 참여해준 독한녀석들에 고맙습니다.

다음토론에는 좀더 책과 소통된?모습을 스스로에게 기대해봅니다 :)


혜리

책을 펴기 전까지는 심리테스트 비슷한 가벼운 내용의 이야기 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표지가 꽤나 깜찍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읽는 비문학이여서인지 잘 읽히지는 않았지만 그 동안 제가 궁금해 했었던 뇌와 마음에 관해 알 수 있었습니다. 뇌구조나 신경세포에 관한 이야기는 어려웠지만 여러 사례들을 들어 설명하는 부분은 재밌게 읽었습니다.
1년만의 독서토론이여서 사실 좀 어색하기도 했는데 즐거운 분위기덕분에 금방 익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1년 전 보다 사람도 늘고 많이 밝아진 독서토론이었습니다. 다음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겠습니다.


동희

토론 전날 밤, 우리는 고민했습니다.
초반 질문들에 대한 우려는 아니나 다를까 미숙한 진행에 빛을 발하여 두각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래도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시름을 놓았습니다. 우리의 고민과 시간들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기분이 몽글몽글 합니다.

오랜만의 토론, 북적북적이는 따뜻한 마찰음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던 것 같습니다.

해방촌으로 넘어가면서, 오르막의 끝자락과 내리막이 시작되는 곳에서 고개를 한껏 뒤로 졎혀 밤하늘을 보았습니다. 우리들의 온기로 밤공기는 따뜻했지만 별이 빛나는 밤하늘에 대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지요.

별을 쳐다보며(노천명)

나무가 항시 하늘로 향하듯이
발은 땅을 딛고도 우리
별을 쳐다보며 걸어갑시다.

친구보다
좀 더 높은 자리에 있어 본댓자
명예가 남보다 뛰어나 본댓자
또 미운놈을 혼내 주어 본다는 일
그까짓 것이 다아 무엇입니까

술 한 잔만도 못한
대소롭잖은 일들입니다.
발은 땅을 딛고도 우리
별을 쳐다보며 걸어갑시다.

p.s 후기를 모으면서, 모두들 키르케의 돼지가 뇌리에 남으신 것 같아서 삽화 올립니다. 토론때 제가 돼지가 되면 제일 먼저 미끄럼틀을 만들어 진흙 속으로 다이빙 할 건데요, 그때의 bgm은 (예전에 무도가요제에서 유재석 노래인 메뚜기월드!?에서 메뚜기를 돼지로 바꾼) 돼지의월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입니다. 그냥,... 상상해 보시라구요 흐흐흥







친하지 않은 분야의 책으로 발제를 하게 되어 각오를 하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뇌에 들어오지 못한 뇌 구조가 어렴풋이 잔상만 남아 머릿속에서 뱅뱅 맴돕니다.
지난 첫 발제 때 논쟁거리가 될 만한 논제를 다수 들고 나왔으나 그 논쟁을 깔끔하게 정돈하지 못해 토론이 유연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그러할까 겁을 좀 먹고 있었습니다.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두고 지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발제를 한 탓에 이번 발제문은 (특히 1부 발제문은) 힘이 조금 빠진 모양새로 완성이 된 듯해 아쉽습니다.

책장을 넘겨보라는 질문이나 숫자나 기호 같은 것을 두고 공감각적 상상을 해보라 묻는 질문은 두셋이서 모여앉아 얘기할 땐 참 재밌었는데, 토론에선 막상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아 의외였습니다. 소수 그룹일 때와 다수 그룹일 때 적절한 질문 종류가 크게 다를 수 있음을 민망하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깨달았습니다.

발제하는 동안 저와 닮은 듯 달랐던 공동발제자 덕에 많이 웃었습니다. PSAT의 피케르 이야기가 많은 분들께 임팩트 있게 다가간 듯해 기쁩니다! 공동발제자의 미끄럼틀을 만들어 놀겠다는 대답도 참 임팩트가 컸습니다. 같이 머리 싸매고 고민하며 넣은 보람이 있었습니다.

지난번에 이어 이번까지 공동발제의 묘미에 빠져 독립을 하기가 두렵네요. 다음 발제 때는 다른 분과 같이 하게 되든 혹은 처음으로 혼자 하게 되든, 독한녀석들의 색과 제 색이 조화롭게 섞인 발제와 토론이 나오게끔 힘쓰겠습니다.





편집자의 변
요즘은 후기가 점점 재밌어 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 왠만한 감상으로는 택도 없습니다. 곧 결산도 다가옵니다. 화이팅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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