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정기모임 -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

토론 도서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

발제자

박종찬

장소

카폐 에무
(서울 종로구 경희궁1가길 7)


후기


윤정

이번 토론에서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고  남아있는 잔상들에 대해 가진 생각들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비교적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평소보다 소수의 인원이 깊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발제자의 장소선정과 날씨의 도움으로 꽤 멋진 날을 보냈습니다.

늘 좋아하고 소중히여기던, 혹은 익숙하던 것을 잃어하는 것이 두렵고 참 싫었던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은 어린시절에도, 지금까지도 여전히 같은 마음인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는 내가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이 영원할거라는 무지때문이었다면, 성인이 된 지금은 아무리 소중해도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것은 알지만 그 때를 알지못한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이제 내가 할수있는 것은, 어떻게 하면 사라져가는 것들을 잘 추억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지금은 허물어졌지만 8개월동안 예쁘게 가꿔왔던 신혼집. 지금은 다른 가게로 바뀌어 사라져버린 단골 밀싹주스 가게. 이제는 이사가고 없어서 다시는 가볼 수 없지만 밤새워 이야기하던 절친한 친구의 자취집. 그리고 떠나보낸 사람들, 물건들까지.

이번 토론도서를 읽지않고, 토론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추억하는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삶이 바쁘고, 기억하기위해 사진을 찍어도 그걸 다시 볼 시간을 갖기가 좀처럼 쉽지않습니다. 추억할 것이 너무 많아져서인지, 어렸을 때 만큼 추억에 잠기지 못하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독한녀석들에서 토론후에 책과함께 사진을 찍고, 6월과 12월에 결산을 하는 노력들이 우리가 책과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가장 멋진 방법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문득 블로그를 둘러보게 됩니다. 

'기억이 망각의 부분과 합쳐질 때 비로소 이야기가 되고 얘기할 가치가 생긴다.' p.238 

오늘의 토론에 대한 기억은 모두 다르겠지만 우리가 각자 기억하는 것과 망각된 부분을 통해 언젠가 이날을 떠올리며 이야기한다면 좋을것 같습니다.


미정

여름의 온도를 미리 경험하게끔 한 소설이었습니다. 덥고 습한 배경 속 이야기들이었습니다.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 편 때문에 유독 그랬던 걸 수도 있습키다) 미스테리한 서늘함도 있었지만 여름의 기억같은 뜨거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억은 늘 그렇게 강렬한 면이 있어야 오래 강하게 남을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뜨겁고 햇빛 쨍쨍한 대만 거리가 생각났습니다. 마냥 좋은 기억만은 아닙니다. 더워서 짜증이나고 때로는 화나는 기억입니다. 그래도 추억이랍시고 떠오르는 걸 보니 약간 황당합니다. 추억을 위해서는 여름처럼 늘 강하게 경험하고 살아야할까요??

세운상가의 사례처럼 추억을 재구성하고 남겨놓는 것은 실패할 확률이 높은 듯 합니다. 너저분한 옛 거리를 그대로 두는 것은 추억을 불러일으키보다는 현실적으로 위험하고 유쾌하지 않습니다. 또한 추억을 재현한다는 것은 지저분을 포함한 그 강렬한 느낌을 재현한다는 것인데, 기후도 변하고, 모든게 빠르게 빛바래는 현실의 속도에 비추어 재현 자체도 낡아서 너저분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습니다. 세운상가는 또한 누군가의 현실 생계 터전이었기 때문에, 추억만으로 박제할 수도 없습니다. 

매순간을 뜨겁게 불태우는 사람 혹은 공간으로 남고, 자연스레 추억으로 간직되거나 혹은 새로운 공간으로 변모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중화상창이 현재 없어지고 번화가가 된 것 처럼요. 그렇지 않았다면 우밍이의 이 소설도 여름의 추억같은 소설이 아니라, 슬럼가에서 일어나는 판타지 느와르 장르가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여름도 뜨겁고 시끄러운 계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병준

인상파 그림을 감상하듯 읽었다. 서사는 빼고 되도록 인상과 분위기 그리고 채색만 상상하며 그렇게 읽었다. 소설의 주된 분위기가 되는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와 모네의 '인상, 해돋이'를 연관 짓는 건 지나친 해석일까. 시먼딩의 보도블럭, 갑작스러운 소나기, 노르스름한 해질녘 골목길까지 기억 저편에서 떠올랐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아 내심 죽기 전에 내 고향 김천을 주제로 소설을 써보겠다 다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간 서사가 중요한 책들을 읽느라 지쳐있었는데 덕분에 한 숨 쉬어갈 수 있었다. 서사보다는 장면 위주의 삶을 산다고 자부하는 입장에서 때론 서사보다 장면이 중요할 때가 있고, 특히 대부분의 기억은 서사보다는 장면에 의지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옛 추억의 회상이라는 소설의 목적과 수단에 굉장히 부합하지 않았나 싶다. 심지어 색 바랜 표지까지도 의도적이라고 믿고 싶을만큼.

토론 역시 작품 속에서 나올 법한 분위기의 장소에서 진행되었다. 햇빛 어른 거리는 날 좋은 사람들과 추억 한 장을 더 남겼다는 것만으로 독토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 아닐까. 어쩌면 그간 욕심이 불거져 한 명이라도 더 많은 패널과 심오한 논제 등에 집착했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뒤돌아 본다.

가본 사람이든, 가보지 않은 사람이든, 가볼 일 없는 사람이든 소설 속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내가 사는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런 모임을 언제까지나 계속하는 것, 그것이 마술사의 진짜 마술이 아닐는지.


현정

한참 날씨가 변덕스러운 요즈음, 초여름이 온 것 같은 따뜻한 날이었습니다. 쨍한 햇빛 속에서 토론 장소에 급히 도착했을 땐, 굉장히 몽롱한 상태였습니다. 마치 제가 어른거리는 햇빛 위에 놓여져 있는 것처럼요. 평소라면 ‘아 날이 더워서 좀 어지럽네’ 하며 대수롭지 않게 느꼈을 잠깐의 느낌이었지만 그날 따라 너무 ‘찰떡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때부터 그날의 제 토론 방향이 잡혔던 것 같아요. 단어나 문장으로 설명하려니 어렵지만 ‘그 정도까진 아닌데, 좀 멀리 나갔네.’ 이런 느낌이요. 제가 생각해도 제가 생각했던 글의 해석들이 좀 억지스러운 부분이 많았거든요. 읽을 당시에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던 부분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토론을 하다 보니 색다른 결과물을 내놓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토론 전에는 읽기는 다 읽었는데 대체 무슨 주제로 이야기를 해야 할까 감이 전혀 잡히지 않았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운 토론이 되었습니다. 대만 소설이라는 낯선 작품이었지만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친근하게 여러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어서 재미있었습니다. 종찬 오빠가 중간중간 넣은 이슈들도 흥미로웠구요. 더불어, 병준 오빠께서 대만과 관련된 정보들을 많이 공유해주셔서 좀 더 값진 토론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피로한 몸을 이끌고 토론에 참석하신 분들 모두 수고 많으셨어요~


준민

1) 나는 지금까지 한 번 이사했어. 그러니까 지금은 두 번째 집에서 살고 있지. 사실은 세 번째 집이야. 내가 기억할 수 없는 어린 시절에는 다른 곳에 살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사를 했으니까.

우리 집의 두 번째이자 첫 번째 집을 나는 아직도 기억해. 반지하의 셋집이었는데 그래도 방이 두 개나 있어서 내 개인 공간은 있었지. 몰래 <타이의 대모험>을 보곤 했어.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하고 1년 즈음 뒤에 옛 집을 찾아간 적이 있어. 깔끔하게 사라지고 멀쩡한 빌라가 세워져 있더라. 우리가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 주인 할아버지도 이사했으니까. 주인 할아버지가 이사 간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집이 깔끔하게 사라져 있으니까 뭔가 좀 허탈한 기분이더라고.

당시에는 ‘아 고향을 잃어버리는 게 이런 기분인가?’ 싶었어. 초등학교 6학년 즈음이었으니 중2병을 빠르게 앓았던 것 같아. 제법 조숙했지.

2) 토론이 끝나고 소감을 이야기 할 때 현정의 말이 뇌리에 박혔습니다. 디테일한 워딩은 다를텐데 대충 이랬습니다. 독서 토론을 하면 한 권의 읽어도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 다양한 시선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

솔직히 2018년 상반기는 독한녀석들 역사를 쭉 돌아봤을 때 썩 잘 된 시기라고 볼 수 없습니다. 아마 저점에 속할 거에요. 나오는 사람만 나오고 뭔가 삐걱거리고. 그렇게 된 일에는 저도 어느 정도는 지분이 있을 겁니다. 신규 회원을 제대로 유치하지 못했고 제가 진행했던 토론에서 썩 잘 하질 못했죠.

저는 ‘아직까지는’ 독한녀석들을 잘 유지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친한 사람들의 모임을 유지하고 싶은 게 가장 큰 이유이고, 관성적으로 하던 거니까 계속 하고 싶은 이유가 두 번째입니다. 지적 욕구는 없는 건 아니지만 예전보단 덜 할 겁니다. 아마 그걸 채우기 위해서는 독한녀석들이 아니라 새로운 독서 모임에서 조금 더 세부적인 방향으로 계획해서 진행하겠죠. 사실 생각하고 있는 주제가 있기는 하고요.

어쨌든 독한녀석들이 휘청거리면 저도 사람인지라 심리적으로 좀 흔들리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현정의 말은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심리적 위안이라고 보면 좋겠네요. 친한 것도 좋고 더 친해지는 것도 좋지만, 그럼에도 독서 토론을 하는 어떤 핵심적인 가치 (아이고 빌어먹을 아무래도 저는 스타트업을 너무 오래 다닌 모양이네요)는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에게 그러라고 요구할 수는 없고 딱히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만, 바지 회장이라도 어쨌든 회장이라면 이런 생각을 좀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종찬

폭풍의 전야는 고요하다고 합니다. 발제자로서 이번 토론을 보자면 폭풍이 지나간 후가 고요했네요.

사람이 누군가 앞에 나서고 자신을 평가받는 것은 굉장히 긴장되는 일입니다. 4월말부터 5월 내내 그런 시간을 보냈어요. 구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대단원의 막을 (거의) 내리고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에서 토론 전 주를 맞았습니다. 여행까지 가서 나름대로 열심히 밑작업은 했지만, 최종 면접 몇 개가 남아 눈에 들어올 리 없습니다. 그리고 토론 전 날 최종 면접에서 이전에 제출했던 과제물에 실수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발제문 작성을 시작했어요. 이것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평가를 받는 자리처럼 느껴졌어요.

숨이 막히더군요.

그래도 제 나름대로 소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들을 짚어보고자 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잡힐 거 같은 의미를 모아 발제문을 만들었고, 나름 전체를 관통할 수 있게 구성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정도면 선방했어. 하고 생각했어요.

완성된 발제문을 몇 명에게 보내서 의견을 들어 봤습니다. 그 중 한 명이 문제 하나 말고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어요. 처음에 그 얘기를 듣고서는 복잡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이미 너무 지친 상태였고, 책 자체에서 뭘 더 끌어내야 할지 더 떠오르는 것도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발제하는 토론인데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이야기하는 게 나쁜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단칼에 자르는 평가에 좀 서운하기도 했구요.

일단은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서, 그냥 놓고 드라마를 켰습니다. “중쇄를 찍자” 라는 일본 드라마였어요. 그 날 본 드라마에선 자기 만화를 재밌다고 해주는 편집자의 말을 믿고 있다가 연재를 중단하게 된 만화가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편집자는 독자의 생각을 제대로 만화가에게 전달하지 못한 것을 사과했어요.

그걸 보고 있자니, 제 발제문이 독후감처럼 느껴졌습니다. 책과 저의 해석이 들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발제문은 이야기를 전제로 하는 거죠. 이야기를 촉발시키는 게 목적일 겁니다. 그러려면 제가 아니라 패널들을 넣으려 해야 하는 거였습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보니까, 첫 번째 발제문을 가지고 토론했을 때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게 뻔해 보이더군요. 그런 시간을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만들었습니다. 잘 진행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게 의도가 있다고 해서 잘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다시 다듬은 덕에 조금은 더 나은 발제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칭찬은 기분이 좋지만, 함정이 될 때도 있습니다. 특히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칠할 준비를 할 때는 피곤해도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솔직한 피드백을 해 준 친구에게 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번 달에도 만나서 반가웠어요 :)



후기 단어 분석

이번 달 후기로 모아진 텍스트를 분석한 결과입니다. by 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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