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정기모임 - 당신 인생의 이야기

토론 도서

당신 인생의 이야기

발제자

박동희 ❤️ 최원섭

장소

CEO의 탄생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156길 20)


후기

종찬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습니다. SF소설이면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는 좋아하는 장르지만 그런 것 치고는 표지가 아주 의심스러웠으니까요. 정말 그 푸르딩딩한 색은 왜때문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반면 테드 창의 글은 정말 명확하게 자기 색을 가지고 있는데다 완성도까지 높았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걸 저런 걸로 감싸고 있었다니. 

토론에서도 말했지만, 최근에 과학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어요. 어릴 때 생물 선생님이 라이트 노벨 같은 걸 보면 뇌가 썩는다고 한 이후로 (그 선생님이 가르치던) 과학을 썩은 토마토처럼 대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도 문과인이 되었지만 생각해 보면 1학년 때 공통으로 배울 때는 과학 점수가 훨씬 높았거든요. 애들한테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닙니다. 그때부터 망한거야 난.

아무튼 그래서 문이과로 두동강난 이 나라에 문과로 살았습니다. 그런 주제에 일은 이과인들의 영역에 와서 하려고 하고 있죠. 눈초리들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우리 좀 사이좋게 지내요. 저도 월급 주시면 잘 할 수 있단 말이에요.


준민

너와의 데이트는 빌린 책을 돌려 주면서 시작해. 빌린 책을 전부 읽지는 못해. 읽은 순서대로 돌려주고 가져간 것 보다 더 많은 책을 들고 집으로 돌아와. 나는 책을 부지런히 읽어가지만 너에게 빌린 책은 늘어나기만 해. 나는 평범한 사람보다 조금 빨리 책을 읽어. 하루에 5권도 느긋하게 읽어버리는 너와는 달라.

오늘 네가 빌려줄 책은 두꺼워서 벌써부터 겁이 나.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까?

그래도 읽어 야지.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빌려주는 책이니까. 너를 만나기 전까진 읽어본 적 없었던 SF를 꾸역꾸역 삼키는 일은 너무 힘들지만.


토론 때는 딴지를 걸었지만, 사실 한국은 SF 불모지가 맞습니다. 다만, 수많은 불모지 중에 하나이며 SF가 잘되기를 바라는 골수 팬 층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무엇을 불모지로 보느냐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요.

제 입장에서 보면 한국은 SF보다 프로그레시브 록이 훨씬 더 불모지입니다. SF보다 프로그레시브 록을 더 좋아하니 하는 말입니다. 불모지는 자신이 바라는 이상이 현실과 괴리가 있을 때 할 수 있는 흔한 수식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SF가 한국에서 유독 불모지인 이유를 꼽아야만 한다면, 토론 때 병준이 했던 말이 (실제로 부합하는지는 별개로) 가장 무난하게 설득력을 가질 겁니다. 과학 소설하면 왠지 어렵고 부담스러우니까요. 이건 종찬의 말처럼 저의 인종이 문과라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네가 빌려주는 책이 전부 재미있는 건 아니야. 이건 아니다 싶은 것도 많아. 그래도 솔직하게 말하지는 않아. 네가 울상을 지으니까. 어찌어찌 정신을 집중에 끝까지 읽어내고, 고민고민해 너에게 재미있었다고 말할 장면을 찾아내지. 그리고 우선 나에게 말해봐. 이건 이래서 재미있고 저건 저래서 재미있다고. 너보다 나를 설득하는 게 먼저야

너가 너무 좋아하지만 나는 유독 이해할 수 없어서 잊을 수 없는 작품이 두 개 있어. 하나는 <별의 계승자>, 다른 하나는 <신들의 사회>. 이 중에서 조금 더 충격적이었던 건 <별의 계승자>야.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소설의 플롯 따위는 이 소설엔 존재하지 않아. 달에서 발견된 고대인의 시체를 두고 서로 다른 가설을 가지고 있는 학파가 대립하며, 서로의 주장을 어떻게 검증하는지 그리는 소설이니까. 그 논의들을 보고 과학적이라 말하겠지만 내게는 그냥 검을 글자야. 그래도 마지막 반전만큼은 놀라워.

너에게 말해. 어려워서 간신히 책을 넘겼지만 마지막 반전에 놀랐고, 학회가 얼마나 따분한 것인 지 잘 그려내서 흥미로웠다고. 너는 내 말에 활짝 웃으며, 맨 마지막 장면을 읽어줬으면 해서 빌려준 책이라고 말해. 그리곤 학회 SF부터 시작해서 SF의 세부 장르에 대한 설명을 시작해.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에 나는 귀를 기울이겠지.


장르 구분은 알아야 할 수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같아 보이는 것도 아는 사람은 세밀하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잘 아는 사람에게는 어떤 유형별로 공통적인 특이성이 보이며 우리는 그걸 장르라고 부릅니다. 물론, 장르를 칼처럼 나눌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완벽하게 구분할 수 없는데 장르를 나누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는 분도 있을 겁니다. 장르를 구분할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있습니다. 독자의 입장에선 비슷한 작품을 찾기 좋습니다. 재미있게 읽은 작품의 유사한 즐거움을 찾을 때 장르 구분만큼 좋은 게 없습니다. 저자의 입장에선 장르마다 통용되는 문법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탄탄히 만들 수 있습니다. 문법이 형성되고 익히고 발전하고 깨트리고 다시 형성하는 과정을 통해 이야기는 발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부정적인 효과도 있습니다. 자신 만의 틀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 독자도 저자도 있겠죠. ‘진정한’ 장르는 무엇이냐며 트집을 잡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저는 장르가 사람을 모으고 외연을 넓히는 이득이 더 크다고 믿습니다. 외연이 늘어나기 위해선 절대적인 숫자가 필요하고, 숫자를 늘리기 위해선 군집이 필요합니다.


 “<인사이트 밀>은 정말 너무너무 재미있었어. 미스터리의 요소요소를 아주 잘 가지고 놀더라.”
 “그지. 엄청 재미있지? 읽으면서 무섭지는 않았어?
"무서워?"
“너 빌려주기 전에 여동생 빌려줬었거든. 다 읽고 나서는 너무 무서워서 혼자 못 잔다며 내 방에 막 들어와서 오랜만에 같이 잤어.”
"나도 무서웠어."


장르에서 문법과 클리셰가 왜 중요하냐고 묻는 분에게 <빙과>를 권합니다. 특히, 원작소설의 2권이자 애니메이션으로는 8화에서 11화에 해당하는 부분을 꼭 보세요. 미스터리의 문법과 역사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전개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즐거웠던 부분은 한 캐릭터가 미스터리는 장르를 오해하는 대목입니다. 주인공들은 찍다 만 미스터리 영화를 보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 등장인물은 이렇게 말합니다. 전개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다 죽이면 된다고. 주인공의 친구는 미스터리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화를 내지만 또 다른 친구는 납득합니다.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잘 모르는 사람이 미스터리는 단어를 들었을 때,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것은 가면을 쓴 살인귀가 사람을 죽이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은하영웅전설>은 어때? SF로는 제일 유명한 작품인 것 같던데."
"일단 <은하영웅전설>은 스페이스 오페라지 SF가 아닌데..."
"스페이스 오페라는 SF가 아니야? 우주에서 싸우는 이야긴데 왜 SF가 아니야?"
"아... 설명하기 어려운데. 어쨌든 <은하영웅전설>은 SF가 아니야. 우주선이 나온다고 다 SF가 아니라고!"

어렴풋이 <은하영웅전설>이 왜 SF가 아닌지 알 것도 같지만 모른 척해. 그게 아니라며 토라지는 네 모습을 조금 더 오랫동안 바라보고 싶으니까.


원섭은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처음 읽고 이게 SF가 맞나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다들 비슷했을 겁니다. 외계인이 나오는 <네 인생의 이야기>야 그래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SF에 부합하지만, <바빌론의 탑>이나 <지옥은 신의 부재>같은 작품은 ‘이건 SF가 아니라 판타지 아니야?’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게 사실이니까요.

토론 때 제가 다소 의외였던 건, 많은 분이 <바빌론의 탑>을 재미있는 작품으로 꼽았다는 부분입니다. 물론 탑을 올라가는 묘사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이죠. 다만, 전형적인 SF가 아니고 이해하기 쉬운 작품도 아니니까요.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 가장 속도감 읽힐 작품은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지능 발달에 대한 SF 정도로 읽히지만, 중간 즈음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서 스릴러의 성격이 더합니다. 그 긴장감이 좋습니다.


“<바빌론의 탑>도 좋았고 <지옥은 신의 부재>도 좋아. <네 인생의 이야기>는 솔직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이거 잘 쓴 작품 맞는 거야? 음. 사실 내 취향으로 따지면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소고>지.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걸 좋아하니까. 그래도 제일 재미있었던 걸 하나만 꼽으면 <이해>야. 머리 좋아지는 과정을 그리는 게 너무 좋아.”

오랜만에 신이 나 떠들었는데 너는 내 이야기에 웃지 않아. 나는 무슨 말을 잘못했나 걱정해. <네 인생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고 말했어야 했을까? 그냥 어려워서 못 알아먹겠다고 하면 그만인데, 잘 쓴 작품이 맞느냐고 말해서 기분이 상했을까? 너는 여전히 웃지 않고 무언가를 고민하지.

너는 다음에 만날 때 나에게 두 권의 책을 빌려줘. 하나는 <앨저넌에게 꽃을>. 다른 하나는 <어둠의 속도>. 둘 다 지능 발달을 소재로한 소설이야. 둘다 재미있지만, 나는 특히 <어둠의 속도>에 끌려. 네가 빌려준 소설 중에서도 몇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게 되겠지.

<어둠의 속도>는 주인공이 바라던 것을 이루면서 끝이나. 하지만 주인공이 바라던 것은 우리가 생각하던 것이 아니야. 지능이 발달한 주인공은 예전의 자신이 바라던 꿈을 인지하고 있지만 그것을 사소하게 여기게 되어버려. 다른 꿈을 이루지. 예전에 좋아했던 것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되는 모습을 보니 씁쓸해. 그래도 이게 현실이야. 너와 나는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다 결국 다시는 만나지 않게 될 테니까.


재미있게 본 SF를 추천해 달라는 마지막 질문에 저는 시미즈 레이코의 <비밀>을 권했습니다. 작년부터 열심히 밀고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 2017년 최고의 책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좋은 SF는, 아니 좋은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비밀>은 이 설명을 충실히 해내는 작품입니다. 읽을지 말지 고민되는 분이라면, 1권 앞부분에 있는 단편을 읽어보세요. 본편도 훌륭하지만 이야기의 모체가 되는 이 단편도 훌륭합니다. 사람이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바라보는 것은 무엇인지. 바라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무엇인지.

<비밀>은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입이 이래저래 근질거리네요. 제발 누군가 이 작품을 읽고 저와 수다를 떨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럴 가치가 있습니다.


너와는 홍대 북새통에 여러 번 가게 돼. 매장을 돌아다니며 만화책의 표지를 보고 수다를 떨어. 익숙한 그림체가 눈에 들어와 너에게 물어봐. 요새 한참 연재하는 작품도 <용이 잠드는 별>처럼 재미있냐고. 너는 시큰둥하게 나중에 찾아보라고 말을 해.

너는 늘 그런 식이야. 나에게 많은 책을 읽히지만, 내가 아니면 접하기 힘들 작품들만 골라서 권하지. 언젠가 읽게 될 작품을 굳이 네가 알려줄 필요는 없다며. <용의자 X의 헌신>도 <허니와 클로버>도 너는 끝내 빌려주지 않아.


토론에서 가장 중점을 둔 작품은 <네 인생의 이야기>였습니다. 내심 아쉬웠던 부분은 순차적 의식과 동시적 의식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겠냐는 질문에서 별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던 점입니다. 어쩌면 이 화제는 저만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네요.

토론 때도 말했듯 저는 동시적 의식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사실 지금도 동시적 의식을 가지고 살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하곤 합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요. 그냥 지금의 나는 죽기 직전의 내가 회상하고 있는 어떤 기억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그저 회상하는 순간이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습니다.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미래를 보는 것을 ‘기억’이라고 말합니다. 그 기억은 햅타포트를 만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의 기억이지만 모든 것이 한 번에 다 떠오르는 건 아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경험을 한 순간에 모두 떠올리는 것은 아니니까요.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는 논 제로섬 게임이란 단어를 떠올리지 못하는 장면을 통해, 모든 장면을 매 순간 기억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려줍니다. 그렇다고 결과가 정해지지 않은 건 아닙니다.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과거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듯, 주인공이 미래를 잠시 잊었다고 한들 그 미래가 사라자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동시적 의식을 가지는 건 단순히 미래가 고정되는 의미가 아니라고 봅니다. 중요한 건, 미래가 정해지는데 그 과정에서 최소화와 최대화가 적용되는 부분입니다. 동시적 의식을 가지게 되면 늘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미 의식으로 자신이 바라는 최소화와 최대화를 향해가게 되니까요. 이 순간 이걸 해야 그 최소화와 최대화를 도달할 수 있음을 알고 있으니까요. 동시적 의식을 가진다는 건 역설적으로 지금에 ‘충실할 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어떤 사람은 행복의 최대화로 향할 수도 있지만, 어떤 이는 불행의 최대화로 향할 수도 있습니다. 동시적을 언어를 배워도 목적지는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그러니 최선의 의미도 다르겠지요.

저는 운명을 참 좋아하나 봅니다.

예전부터 늘 생각했습니다. 운명론을 믿는 사람은 지금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일 거라고. 어떤 형태로든 지금의 나를 긍정하지 않으면서 운명론을 믿기는 어렵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너무 힘들겠죠. 네. 저는 지금의 저를 긍정합니다. 부족한 점도 많고 그러지 않았어야 했다고 떠오르는 기억들도 많지만, 그 총체적인 결과값으로의 저 자신에 만족합니다.

운명에 대한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6시간 후 너는 죽는다>입니다. 작품의 주인공이자 예지 능력자 케이시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에게 운명이 정해져 있지 않다면 예지라는 능력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미래가 가변적인 경우 모든 예언은 실현 여부가 모호한 망언이 되고, 예지 능력자는 양치기 소년에 지나지 않게 된다. 운명을 믿는 결정론과 예언자의 존재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심증적으로 긍정하기 싫지만 행복한 인간과 불행한 인간은 그 운명을 벗어날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6시간 후 너는 죽는다>는 <네 인생의 이야기>아는 달라.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말하지만 뒤에 가서는 그 운명을 깨거든. 클리셰지. 그럼에도 운명에 저항해 결국 깨트리는 클리셰는 강력한 카타르시스를 주니까. 그래서 좋아해.

그럼에도 <6시간 후 너는 죽는다>가 여타 운명을 다루는 작품과 다른 건, 행복을 보장받았던 사람이 운명을 깨트린다는 점이야. 일반적으로 운명에 저항하고 깨트리는 사람은 불운하니까.

<6시간 후 너는 죽는다>는 네가 알려준 책은 아니야. 너와 헤어지고 도서관에서 읽은 책이지. 읽으면서 네 생각을 많이 했고, 할 수 밖에 없어. 블로그에 후기를 남기니 너는 댓글을 달아. 나도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나는 네 덧글에 시큰둥한 댓글을 달지. 너는 나중에 시큰둥한 반응에 상처를 받았다며 말하고 나는 또 어쩌지 못하고 쩔쩔매겠지. 만약 <6시간 후 너는 죽는다>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올리지 않았다면, 너의 댓글에 시큰둥한 댓글을 달지 않았다면, 우리가 다시 만나기는 했을까?

나는 운명을 믿고 그건 나를 긍정한다는 말이야. 과거로 돌아가 어떤 선택을 바꿀 수 있어도 그 선택을 바꾸지 않을 거야. 지금의 내가 여러 선택지 중에 최대화였음을 믿으니까.

그러니 오늘 네가 빌려줄 책도 읽어야만 하겠지. 첫 번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해. 만약 그 탑을 시나르의 평원에 눕히고 한쪽 끄트머리에서 다른 끄트머리까지 걸어간다면 족히 이틀은 걸릴 것이다. 


동진

먼저 재밌는 토론이었다. 책에 대한 토론 내용도 풍성해서 좋았다 항상 그랬던것처럼 유쾌하게,,, 테드창이라는 작가에 대해 이름을 들어봤으나 작품을 첨 접하는 나로서 책이 흥미진진했고 당신 인생의 이야기와 바빌론이 기억에 남는다 
 자유의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추가적으로 나는 선택이 자유가 아니라 답이 결정된 선택과 억압된 선택을 받고있어서 요즘  행복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라는 뻘생각도 해봤다. (sf의 편견을 깨준 테드 창은 천재인거로 인정)


보영

오랜만에 재밌게 읽은 책이었다. 바빌론 탑을 읽다보니 그 장면이 상상이되며 그들의 오만이 지금의 우리네 모습과 비슷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이런 결론이 나왔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으나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또한 삶에 정답이 없음을 생각했던 것 같다. 네인생의이야기에너 헵타포드를 나는 외계인이라 생각하지 않고 이해의 편에 나오는 호르몬을 맞은 또 다른 신인류로 생각을 하였었다. 그래서인지 제대로 이해못한채로 모임에 참석하여 들어서야 이야기들이 이해가되었다... 잉? 
호르몬K가 보급되어 맞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맥주는 맛없었지만 닭도리탕은 맛있었다.


병준

'미래를 안다는 것과 자유의지는 양립할 수 없었다.'

단순한 논리의 포자가 마음에 내려앉고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웠다.
소설 한 편이 내 사고를 바꿔놓을 수 있다니 신선한 충격이었고, 그 메시지를 외계인과 모성이라는 이질적인 것들과 버무릴 수 있는 작가의 능력에 질투가 났다.

본디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었지만, 최근 들어 바쁘다는 핑계로 책 읽기를 더 소홀히 했다니 이번에 특히나 읽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다른 작품들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을텐데 너무 날림으로 읽은 듯 해서 아쉬운 느낌이 크다.

SF란 꼭 우주선을 타고 외계 생물체와 싸우고, 미래를 살아야 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발제자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장르의 틀이 무너져서 오히려 큰 소득이었다. 
종찬의 말마따나, 장르고 뭐고 그저 다같은 소설일 뿐인 것처럼,
우리도 내 편 니 편 없이 그저 인간으로서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뜬금없는 생각으로 끝맺음 하련다.


미정

이번 발제 도서 '네 인생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은 뜻밖의 음식을 먹는 것처럼, 뜻밖의 휴일을 얻은 것처럼 평소와는 다른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평소 SF소설을 가까이 접하진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100% 이야기를 이해하기엔 어려운 얘기였습니다만 그래도 너무 재미있는 이소설을 더 이해하고 읽는 사람들은 얼마나 소설이 흥미로웠을까요. 

솔직하게는, 어려운 지적세계를 살아가거나 또다른 감각적 재능를 가진 주인공들 및 토론자들의 이야기가 모두다 와닿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하늘을 향하는 탑에서 자신들의 삶을 살고, 외계인의 언어를 행하는 와중에 딸이 있는 미래를 생각하는 이야기와 결과들을 보고있으니
결국 중심은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고, 개인들이 딛고있는 세상이란 생각이 듭니다. 결국 이런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에 SF가 아닌 현실에 충실해야겠다 -> 세상이 재미없다 -> SF를 본다 ->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 -> 그래도 현실이 중심이고 충실해야겠다는  무한 루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역시, 현실이 더 살기좋은 세계가 되어야겠죠?


원섭 

이 세계는 네가 모르는 재미있는 것들로 가득 차 있어.   - 카츠라기 미사토 (29세) 

나는 재미있는 것을 보는걸 좋아한다. 

나에게 재미있는 것이란 어떤 것일까?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것, 지적 자극을 주는 것. 요 정도가 바로 떠오르는 것들이다. 그리고 SF는 이 세가지를 모두 충족시킨다. 

SF매니아는 아니다. 많이 보지도 않았고, SF 좀 본다고 하면 기본소양으로 봐야할 이름난 고전이나 명작들은 본 것이 거의 없다. 하지만 SF를 좋아한다고 이야기를 꺼내면 대다수가 나를 SF매니아→광팬→너드로 본다. 그들이 SF를 본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SF에 관심이 없는 사람 중엔 SF가 정말 취향이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딱히 SF를 진지하게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동희가 독토 발제를 맡게 됐는데 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고,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 재미를 공유해보고 싶은 생각에, 나도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명작이라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던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추천했고 공동 발제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근래에 일 때문에 국내에서 발간된 SF단편들을 꽤나 읽어 보았었다. 딴에는 무슨 SF공모, 무슨 상 수상작들이었음에도 하나같이 허접했다… 단지 로봇이 나오면, 미래이야기이면 다 SF라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그러고나서 읽게 된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감탄만 나왔다. 이 어마어마한 상상력, 생각도 못해본 화두, 그리고 지적 고양감. 그야말로 완벽하게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테드 창의 소설을 읽고나서 근래에 본 국내SF들이 수준미달로 보였던 이유가 ‘과학적 사고’가 결여된 이야기이기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 뿐만이 아니라 이번 토론에 참석해주신 다른 분들도 이 소설을 즐겁게 읽었다면, 그리고 이 소설이 SF에 조금 더 마음이 열리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면 매우 기쁘겠다.


동희

물질 우주는 완벽하게 양의적인 문법을 가진 하나의 언어이다. 모든 물리적 사건은 완전히 상이한 두 방식으로 분석될 수 있는 하나의 언술에 해당된다. 한 가지 방식은 인과적이고, 다른 방식은 목적론적이다. 두 가지 모두 타당하고, 한쪽에서 아무리 많은 문맥을 동원하더라도 다른 한쪽이 부적격 판정을 받는 일은 없다.
-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인과론적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

그러므로 한치 앞을 볼 수 없기에,

희노애락이 있고 선택의 자유를 맛 봄과 동시에 선택한 것에 대하여 혹독한 댓가를 치루며 고군분투하는 우리 혹은 나. 

동시적 의식을 갖고 목적론적 삶을 살아간다면 지금 내가 직면한 상황들에 대하여 평온한 자세로 임할 수 있지 않을까. 

...

SF 이야기를 해보자면, 음, 전 SF를 좋아합니다. 아마도 영상매체를 기준으로 한다면 꽤 많이 본 축에 속할겁니다. 개인적으로 그 중에 최고봉은 "배틀스타 갤럭티카[BLOD!!]" 라고 생각합니다. 좀 오래된 미드이긴 한데 단연코 최고라 칭합니다. 그런데, 제 옆에 있는 최군은 기술적으로 하드-sf를 추구하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지적을 많이하더군요-_- 그래도 저에게 있어 최고는 아직까지 배틀스타 갤럭티카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제 한 번 다같이 sf 영화 한 편 보러 갔으면 좋겠네요 ;D

후기 단어 분석

이번 달 후기로 모아진 텍스트를 분석한 결과입니다. by 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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