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정기모임 - 비행운

토론 도서

비행운

발제자

문혜리

장소

건대 다옴 (진짜 다 옴(!))
서울 광진구 아차산로 213 웅진빌딩 지하 1층

후기


종찬

저는 처음에 책이 불편했어요. 마치 이 사람들의 삶을 이렇게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묘사하는 작가의 프로페셔널함이 소설 속 주인공들을 대상화하는 듯해서요.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데 그걸 찍기만 하는 카메라맨의 표정 같은 게 느껴져서 무서웠어요. 등장인물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질 않아서.

그래서 조금만 더 희망의 모습을 보여주면 어떨까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게 진짜 캐릭터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위선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주어진 걸 살아간 사람들은 그 삶의 모습이 어떻든 존중 받아야 하겠죠. 감히 누군가가 내가 덜 불편하도록 네가 좀더 행복해주면 안되겠냐고 말할 권리가 있을까요.

그렇지만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심했다 싶어요. 훌륭한 작가님이지만 가까이 가고 싶지는 않은, 무서움 같은 게 남아 있어요. 사람은 아프기 싫은 법이니까요. 현실이더라도. 지금은 다른 사람의 아픔까지 볼 겨를이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좀더 강했더라면 그럴 힘이 있었을까요.

을씨년스럽고, 쓸쓸하고, 생생하고, 시끄럽고, 그 분위기만 볼 때 흠결없이 완전무결한 비행운을 위한 토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온 사람 준비한 사람 모두 수고했어요.


P.S.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책에 대한 기억이 또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대리 만족은 현실을 만나면 지워져 흔적도 없어지지만, 이렇다할 결말이 없는 끔찍한 대리 경험이었던 비행운은 오히려 우리 삶과 많이 닮아 흔적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살면서 작은 모멸감들을 만날 때마다 공항의 청소부 아주머니들의 두건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그 두건을 생각하다 보면 다시 어쨌든 어디론가, 내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정

이불 밖은 정말 위험하다.

이것은 비행운 소설이 내게 준 교훈이다. 벌레들에서 그녀가 A구역으로 나가지 않았더라면, '너의 여름은 어떠니'의 그녀도 옆 길로 새지만 았았어도. 난감하고 불행한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만 같다.

다만 돈을 벌든, 사람을 만나든 이불 밖으로 나갈 수 밖에 없으므로, 나는 항상 비행운에 노출되어 있다. 서른에서는 이런 비행운을 '뭘 하든 과정인 것 같았는데, 이제는 모든 게 결과일 따름' 이라고 표현한다. 


서른은 하나하나가 결과임을 깨닫기 '시작하는' 시기인 것 같다. 비행운도 나의 삶이라 생각한다. 직장을 때려쳐도 (다른 직장을 가도) 크게 나아지는 건 없다고 체념한다. 요즘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정신이 없고, 행복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주중 시간이 늘어났다. 그래도 난 혜미를 희생시키고 싶지 않다. 나만의 오만과 이기적인 행동이 남에게 비행운을 가져다주지 않길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20대로부터 남겨온 어린 도덕심이고, 선량함이다. 우리는 남의 비행운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된다. 꼰대가 되지 않게, 남의 이불 밖 비행운의 중심에 내가 서있지 않게.

수줍은 봄처럼 시작해 값진 토론을 만들어준 발제자에게 감사함을 전달하며 후기를 마무리하려 한다.


영진

세월호가 인양되는 모습을 매일 접했는데, 차가운 물이 넘실대는 ‘물속 골리앗’, 가만있으라 해서 가만있던 배 안의 아이들과 제자를 다단계회사로 끌어들인 ‘서른’처럼 ‘ 책 전체의 기운’이 세월호 사건과 “정말 궁합이 잘 맞는다” 싶을 정도로 내게 막막함을 안겨줬다. 배 안의 아이들이 나를 유독 흔드는 이유는,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가만히 있을 당시의 내 모습이 오버랩 되기 때문일 것이다. 말 잘 듣는 아이였으니까.

 사람이 많아서였을까 책의 분위기와 달리 토론은 붐볐고 웃을 일도 많았다. 눅눅한 소설의 내용과 미세먼지로 서울하늘 가득한 희뿌연 미세먼지로 꿉꿉했던 기분이 맑아졌다. 발제를 처음 맡은 혜리는 진행을 ‘이럴 거 왜 계속 피했던 거지?’ 생각이 들 정도로 잘했다. 다음 진행도 기대된다.


준민

매일 저녁, 오늘 무엇을 했는지 적어보며 돌아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매주 일요일 저녁에는 지난 한 주의 기록을 읽고 정리한 후 다음 주엔 어떻게 지낼지 계획을 세웁니다. 지난 주 일요일에 이번 주 계획을 세우며 ‘일상의 복원’ 이라고 적었습니다. 

일상이란 무엇일까요? 토론 때 이야기 나눈 ‘보통의 삶’만큼이나 막연한 이야기입니다. 이 또한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이라고 하면 딱 하나여야 할 것 같지만 걸리는 게 참 많습니다. 생각보다 욕심이 많나 봅니다. 그럼에도 딱 하나만 꼽자면 저에게는 아침 글쓰기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아침에 일어나서 무엇이라도 꾸준히 쓰는구나 그렇게 오해하는 분이 있을 것 같은데 글쎄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요새 거의 안 합니다. 하더라도 5분 정도? 

그게 무엇이든 일상을 누리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이상으로 운도 필요하고요.

여기까지 쓰고 무슨 말을 더 해야 하나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상을 누리기 위해서는 노력도 운도 필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일상을 지지해줄 환상이 필요하다고. 

『비행운』에는 몇몇 환상이 등장합니다. 『그곳의 밤 여기에 노래』에서는 명화가 남긴 테이프가 그렇습니다. 명화의 속마음은 알 수 없습니다. 용대는 그리고 독자는 추측할 뿐입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하지만 『비행운』은 그런 환상이 깨지는 순간을 더 많이 그려냅니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에서 미영은 선배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선배를 만나러 가지만 좋은 기억은 순식간에 무너져 버립니다. 

환상이 무너지는 건 정말 슬픈 일입니다. 여러분의 환상은 지금 어떻습니까? 부디 안녕하기를 바라겠습니다. 

저의 환상은 위태롭지만 아직 지켜지고 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 그것이 환상임을 알기에 지켜지고 있습니다. 환상이 아님을 검증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이 문장을 보고 참 많이 웃었습니다. 

선배는 내 글이 좋다고 했다. 나는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은 당연히 나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 김애란의 『너의 여름은 어떠니』

어떤 흐뭇한 순간을 떠올리게 했으니까요. 

오빠!! 편지 넘나 감동인 것 이제 집 와서 읽었는데 문체가 너무 좋았어요 ㅋㅋ 진짜 ㄹㅇ 책 하나 냅시당 

무엇이라도 쓸 때, 책을 낼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이라도 생기겠지요. 부디 내일 아침 일어나 무엇이라도 써 내려갈 수 있기를. 작은 환상이 무너지지 않고 일상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현정

전체적으로 암울한 내용의 소설이었으나 작가의 생생한 묘사로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독자에게 위로를 해줄 수 있으리라는 부분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진 못했지만 여기서 말하는 위로가 수용이라는 의미로 다가온다면 위로를 받은 느낌인 것도 같습니다. '그래, 세상 사는 게 다 그렇지' 극단적이기도 현실적이기도 한 각 주인공들을 보며 힘들고 어렵다는 마음이 지배적이었으나 결국 위와 같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다시 되새겨보니 세네번 다리를 거쳐 알 수 있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습니다. 요즘같이 고민이 많은 시기에 읽으니 책의 내용들이 잔상처럼 제 머리에서 떠나질 않네요. 나의 서른은?


세진

 겨우 보통의 존재가 되는 것-은 소박한 과제라고 할 수 있을까요. 토론 중 '보통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해 서 얘기했을 때 저는 '인간다움을 와해당하지 않을 정도'라고 발제문에 적어놓았습니다. 퇴근길에 후기를 쓰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비행운에 비행운이 겹치는 현실에 와해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김애란의 인물들은 극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현실적이라 서글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오늘 하루 인간답게 잘 살았나, 떠올려보면 명확하게 답할 수 없는 날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비행운이 견뎌내야 하는 수준인가, 생각하다보면 왠지 슬퍼집니다.

 아침에 '왜 우리는 커피를 마시는가' 라는 칼럼을 읽었습니다. 커피 살 돈 담배 살 돈을 모은다고 집을 살 수도 없는 노릇, 나를 돌보는 소비를 하자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큐티클'이 겹쳐집니다. 교대에 다니던 시절 거대한 건물 근처에서 종종 마주치던 양복 입은 청년들의 무리가 생각납니다.  '서른'의 어떤 장면이 또 떠오릅니다. 한 편 한 편 읽을때마다 감당하기 힘들었던 우울감의 무게는 나는 아닐꺼야, 하고 거리를 두고 싶은 께름칙함과 현실의 서늘함, 그리고 너무 익숙해서 잊고 있던 먹먹함 같은 것에서 왔나 봅니다. 구구절절하게 썼지만, 아무튼 한 편 한 편이 무겁고 힘들었습니다. 문장은 명료하고 표현은 명랑하지만, 솔직히 당분간은 펴 보고싶지 않은 책이네요.

 책 표지를 보며 비행운, 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무엇일까도 생각해봅니다. 불행, 비극, 비운 등 보다 명백한 단어들이 있음에도 작가가 이를 '비행운'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저는 '불운'을 '불행'이라고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작가의 거리두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희망고문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머피의 법칙보다 지독한 현실을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조금 고통이 덜 하니까요. 지나고 보면 굴곡있는 스토리나 무용담으로 치부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지독하게 끔찍했던 첫사랑도 정성들여 받은 네일케어가 무참히 깨진 날도, 지나고 나면 '비행운'이었네, 하고 돌아볼 수 있길 바라는 응원으로 바라보고 싶습니다. 그런 여유가 생겼을때 다시 읽어보고 싶을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경험담을 끌어내주는 재미있는 발제문을 끌어내준 발제자, 대인원의 토론에서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놓아 준 참여자들 모두에게 행운이 가득한 하루이길!


동진

약간은 힘든 책었었다.........
책을 말하기전에 독토 전날 공교롭게도 금요일 비행운과 노란리본이라는 세월호 관련기사가 몇 개의 포털검색어에 올라와 있었다.
책을 읽기 전 비행운은 행운이 없다 비행운인줄 알고 책을 폈었고 물론 행운이 없는 비행운과 비행기가 날아거서 생긴 비행운 모두를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었지만..
책을 읽는 주에 몸과 마음이 좀 지친 탓에 아침에 버스에서 이 책을 핀 조금은 어렵고 피로하게 책을 읽었다.
특히 두 번쨰 파트의 ‘벌레들’ 같은 경우에 출근하는 아침에 읽는 불상사를 겪기도 했다. 김애란의 소설을 다읽어본건 아니지만 성향자체가 다크에 있다고 생각이 들었고 항상 읽기전에 맘의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좋았던 부분은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 이 파트 읽은거로 이 책은 나에게 그 본분을 다하였다고 판단했다.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어려운게 아니라 공감하면서 곱씹으면서 읽는게 어려운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한편 하게된 한주였었고,
첫발제를 한 문혜리양에게 수고했다는 한마디 .....


병준

'이십대에는 내가 뭘 하든 그게 다 과정인 것 같았는데, 이제는 모든 게 결과일 따름인 듯해 초조하네요.'
-'서른' 중에서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런 결과일 뿐이라면?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끝없이 침전할 뿐이라면? 이번 책은 그런 노답 인생을 철저히 의도한 것 같아 짠하면서도 때때로 욱하며 읽었다.

유시민 작가는 '노력하면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어도 상식적인 수준의 보상이 이루어지는 국가가 정의로운 국가'라고 정의했다. 우리는 김애란의 작품 속 주인공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얼마큼 노력했는지는 아쉽게도 알지 못한다. 특히 '그 곳에 밤 여기에 노래'의 '용대'같은 경우엔 그에 대한 일화와 묘사로 인해 어쩌면 누군가는 그의 불행을 당연하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번쯤 반추해볼 만한 건 이 모진 세상, 진정 노력해야만 꼭 행복해질 수 있는가 하는 것. 토론 때는 어린 아해들의 꿈과 희망을 위해 말을 아꼈지만 노력하지 않고서 행복을 누리는 계층이 그 반대보다 많은 게 현실이다. 내가 아닌 부모 혹은 그 부모의 부모가 노력한 걸지도 모르지만 행복의 연좌제는 좋건 싫건 부당함을 지울 수 없다. 용대라고, 또 우리라고 왜 예쁜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을 낳을 권리가 없겠나.

애초부터 행운, 혹은 행복에 대한 정의가 제각기 다르다는 것부터 이야기는 흩어진다. 누군가는 제 손으로 돈을 벌지 못하는 지금이 불행하고, 또 누군가는 원치 않는 일을 하며 돈을 버는 하루하루가 불행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영화 '싱글라이더'의 재훈처럼 꽤 잘 살아왔다고 자부하다가 어느 순간 그간의 삶이 누굴 위한 삶이었나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나를 돌보는 느낌이 들게 하는 소비'라는 논제가 기억에 남고, 서른이 되면서 그런 소비가 많아졌다는 것도 새삼 흥미로웠다. 그러나 '큐티클'에서처럼 그러한 소비가 불행을 막을 것 같지는 않고, 불행이 행운이 되기까지 버티는 힘이 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 힘에 남들보다 돈이 좀 크게 들어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토론 때 언급했던 것처럼 이 책이 위로가 되지는 못했지만 토론을 하고 나니 오히려 겸손해진 것 같다. 여행으로 나를 돌보며 그런 나를 실어 나르는 회사를 저주하는 나의 괴리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모두들 자신의 비행운을, 네일 케어를 생각해보는 하루가 되길.

P.S.> 발제가 기대되는 장인이 한 명 늘었다. 고무적인 일이다.


병주

3월이 지나갔다. 단순히 지나간 것이 경제적으로도 관계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매주에 한 번씩 새로운 곳을 한번씩 쑤시고 지나갔다. 이 책을 읽었을 때 마치 내가 그 소설 속의 우울을 그대로 이어 마시는듯한 느낌이었다.
토론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다시 읽었을 때 피하듯이 읽었던 부분들이 새로운 느낌을 줬다.

P317
세월이 가도 옛날은 남느거 같다고 조만간 다시 옛날이 될 오늘이 이렇게 지금 제 앞에 우두커니 있네요

P318
제가 오늘 언니에게 무얼 받았는지 전하기 위해 이 편지를 써요. 언니는 그게 뭔지 이미 알고있을테지만 언니가 준것과 내가 받은 것은 다를수도 있으니까요

별 의미 없이 읽었던 구절인데 맘에 박혔다.누군가가 잘못했다고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맘을 정리하고 반성하는 부분이 너무 좋았다.



언니가 무엇을 주었을까 생각해봤다.
사실 성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찾지 않았던 인연이다. 비록 행복하게 그려졌지만 재수의 실상은 달랐을 것이다. 조그만한 공간에서 지금과 마찬가지로 보통의 삶에 닿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다만 지금과 옛날의 차이는 후회인거 같다. 자신의 잘못을 알기에 죄책감을 가지고 과거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해 옛날로 두고 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 편지는 힘들긴 했지만 후회는 없어 행복하게 그려지는 옛날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번달 내가 힘들어서 더 우울해지기 싫어서 자기방어 수단으로 합리화, 외면을 했다. 우울한 순간은 잠시지만 그 우울이 다른 우울과 함께 여운을 남기고 머릿속에 맴돌기에 즐거웠던 순간들마저 삼키고 지배할까봐 무서웠다. 그렇기에 내가 먹히지 않으려면 강하게 나가야되 나는 지켜야지 내가 힘든데 누굴챙겨 이런 생각들로 나를 무장했다. 이럴수록 당장은 괜찮지만 나중에 힘들어지는 걸 느꼈다.



 나름 정리한다고 했는데 아직도 머릿속이 복잡하다. 서른의 내용을 지금 내 기억에 의존해서 자의적으로 해석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나중에 이 3월이 옛날이 되었을때 다시 읽어보고 싶다.


민경

후기를 쓰려고 책을 뒤적 뒤적 다시 한번 훑어 보았습니다. 

분명 처음 읽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 단편은 큐티클이었는데, 
다시 훑어 보다가 지금의 저는 이 문장에 더 끌리고 있네요.

'호텔 니약 따' 중, 
"세계는 원래 그렇게 '만날 일 없고' '만날 줄 몰랐던' 것들이 '만나도록' 프로그래밍돼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어떤 사람 또는 어떤 곳 아니면 어떤 것을 만났을 때 행운이고 비행운인지.

이 책을 만나고 읽고 이 문장을 알게 된 것이 나에게 행운인지 비행운인지

기가막힐 노릇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행복했고(그저 내 스스로 나의 일상이) 즐거웠으나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휘몰아치는 비행운을 겪고 나니 왜 다들 읽는 내내 힘들었다는 지 이제와서 이해가 간다.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이 지금은 큐티클이 아닌 이런 분위기의 글. 

비행운을 읽는 다고 또는 읽었다고 비행운을 겪은 것이 아닌 것을 안다.

그래서 그런것일까. 해설 글 마지막에 이 책이 위로가 될 것이라는 글. 정말 위로가 되는 것만 같은 기분입니다. 

그냥 책을 읽을 때보다 후기를 쓰기 위해 책을 한장 두장 대충 넘기다 보니 위로가 되는 문장들이 여기 저기 곳곳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혜윤

연달아 한국소설을 읽다보니 내가 그동안 번역투에 익숙해져있음을 알수있었다.
혼자서는 도전하지 못했을텐데 확실히 남들과 함께 읽으니 책을 편식하지 않게되어 좋다. 

김애란작가의 소설에서 묘사된 상황은 절망적이지만 묘하게 인물들은 희망적인것 같다. 불명확하지만 미래는 지금 보단 나을 것 이라는 낙관주의가 미세하게 깔려있다. 그래서 소설은 더 현실적이고 희망적이다. 미래는 지금보단 나을 것 이라는 작은 희망이야말로 현재 많은 사람들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작품이라서 그런지 더욱 깊은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소설 속 등장인물은 모두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도 하고...   

앞으로 소설에 더 취미를 붙여볼 수 있을 것 같다. 당분간 비문학은 ㅃㅇ !


윤아

그동안은 책을 읽은 후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혼자 여러 감정들을 감당했었습니다. 이것도 물론 매력이 있지만,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머리와 마음 속에만 있던 ‘감정’이라는 것들을 한 자 한 자 말로 내뱉어보니 생각이 더 확장되는 것도, 내 생각이 더 견고해지는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역시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즐거웠습니다!

2월의 책인 <러브 레플리카>를 읽을 때, 좀 버거웠습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내용 자체가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책을 읽기 전에 영화 <라라랜드>를 봤던 것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이번 3월의 책인 <비행운> 역시 읽으면 읽을수록 착잡해지고 무엇인가 가라앉는다는 느낌이 매우 많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이 책을 읽기 전 날 영화 <미녀와 야수>를 봤었습니다. 하루 사이에 정말 동화 같은 이야기와 안타깝고 슬프지만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이야기, 그래서 더 씁쓸했던 이야기를 오가니 많이 버거웠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주변에서 바보 같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책에 간간히 나오는 ‘짜이날(어디에)이라는 말이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고, 그곳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친절할 것이라는’ 세상,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온기는 그리 많은 양이 아니라, 이만하면 충분하다’라고 느낄 수 있는 세상이 아주 가까이에 있다고 믿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혜리

개강과 함께 비행운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고른 책이 다른 사람들이 일상을 무겁게 눌러내릴까 조금 걱정이 되었다. 러브 레플리카를 읽었다면 책선정을 이렇게 하지 않았을텐데

책의 내용은 무겁고 어두웠고 내 기분도 그랬다.
삶 속에서 그 크기와 무게가 어떻든 우리는 비행운(非幸運)을 맞닥뜨린다. 
책 속의 이야기는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인듯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러한 인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비행운이 가장 무겁고 힘들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지금의 내 모습에 대해 많은 생각을 거듭하게되었다.
교복을 입고 현재를 꿈꾸던 내 모습과 지금의 나.
그래서 비행운과 함께 휴학했다.


이제 '반신입'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인가. 
왜 다들 그렇게 나에게 발제를 하라고 헸는지도 알게 되었다. 
발제를 해보니 확실히 독서토론의 참여자일 때와 다른 재미가 있다.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감사했고, 다음엔 좀 더 매끄럽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2020년 2월 정기 모임 <사람, 장소, 환대>

2023년 4월 토론: 아버지의 해방일지

2023년 12월 토론: 사랑의 생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