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월 정기토론 <나의 점집문화답사기>


토론 도서

나의 점집 문화 답사기 (한동원)

발제자

정준민

장소

망원동 '갤러리원'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2길 20

후기

미정

1. 이번 토론의 기억은 ‘가벼움’ 입니다.
가벼운 소재, 이보다 더 가벼운 문체,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산뜻했던 토론. 진지한 책과 논제에 다들 어느정도 구속된 채로 상태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쯤이면 진지하지 않은 책도 논해 볼만 하죠. 그것이 세상 진지한 준민오빠였다는 게 포인트고.

2. 이번 토론의 즐거움은 ‘타로’입니다.
타로 보는 법이 흥미로웠습니다. ‘상대를 잘 아는 사람’이 그에 특화되어 고민을 해석하는 타로, 잘 쓰면 약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타로는 ‘점’이라는 네이밍보다는 ‘카운셀링’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조만간 타로 한 번 보러 가보려고요.

3. 휴머니즘이 다소 없어 아쉬웠던...
전 정말 기대했는데 말이죠…

4. 옹기종기 이야기하는 분위기라 좋았어요.
다음에는 대규모 토론도 기대하겠습니다.


종찬

2016년 10월 22일. 오후 3시 50분. 백수생활을 19일 하고도 6시간 남짓 보낸 날. 너무 일찍 도착하지나 않을까 고민하며 자신의 철두철미한 출석시간준수정신에 때아닌 감동을 느끼며 보무도 당당하게 합정에서 내려 유유히 삑 소리 내고 경쾌하게 개찰구를 탈출하고 나서야 망원동에 가려면 망원역에서 내려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런 전차로 토론 시작 2분 전에야 겨우 도착한 토론 장소 갤러리원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으니, 결코 천편일률적인 공장식 익스피리언스를 제공하고 싶지 않다는 주인아저씨의 강력한 신념이 반영된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자유분방한 공간이었는데, 결코 그 어떤 테이블도 동일한 가구를 쓰지 않으려고 기를 쓴 흔적이 돋보이는, 그야말로 메인 거리에서 두 세 골목 정도 떨어져 젠트리피케이션을 예감하는 카페만이 가질 수 있는 시크하고 아방가르드한 스피릿이 가득한 곳이었다 하겠다.

훌륭한 스피릿을 추구하는 카페답게 커피값도 싸지는 않았으나 맛과 멋을 아는 문화인이라면 결코 그런 것에 이러쿵저러쿵 토를 다는 법이 없다. 허나 문화인이라기에도 애매하고 주머니 가벼운 백수인 내 입장으론 메뉴판을 한참 응시할 수밖에 없었는데... 바들바들 떨며 주문한 그 커피 맛을 느낄 새도 없이 노련한 발제자의 숙련된 발제 솜씨에 조금씩 빠져들고 있을 때쯤 넌 나보다 내 친구에게 관심을 더 보이며 날 조금씩 멀리하던

이게 아니고.

아무튼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가히 발제왕의 칭호를 주어도 아깝지 않은 회장의 솜씨를 엿볼 수 있는 역대급 핵꿀잼 토론이 아니었다 할 수 없다. 특히 모두가 자신의 인생을 반추할 수밖에 없었던 점 봤던 경험 고백, 감히 컨텐츠가 없어서 채워 넣은 것이라고 의심할 사람이 있다면 척추를 산산조각내서 CD장에 ABCD순으로 넣어주어야 할 아마추어 타로 점술, 거기에 삼포세대에 대한 사회경제학과 운명철학을 아우르는 통찰 등, 그야말로 융합과 창조의 현장이었다 하겠다. 컨버전스.

그렇게 다년간의 발제 경험으로 다져진 회장님의 질문 순서 바꾸기 스킬 시전에 의해 책에서 그리도 비웃었던 조교들마냥 단박에 흐물흐물해져 홀린 듯이 질문마다 온갖 드립을 뿌려댄지도 3시간. 어느 새 시간은 훅 지나 언제나처럼 냉미녀 미정의 얼굴에 허기가 짙게 감도는가 하더니 급기야 내가 왜 이 이야기를 하고 있지 하고 독백하는 상황까지 갔고 모두가 신변의 위협을 느끼어 음식점을 찾아 나서야만 했던 것이다.

난 이런 말투 꽤 좋아한다.

P.S. 아참. 서비스로 봤던 타로점의 결과는 완전히 변명의 여지 없이 처절하고 강력하게 무너졌습니다ㅎ
복채를 내지 않은 탓인지, 그 분이 낯선 분인 탓인지, 에이. 원래 다 그런 법이죠.


동진

사실 미신이나 점 징크스를 부정하는 편이다. 나 자체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게을러 터지긴 했지만 그래도 나의 의지가 만들어낸 하나의 발자취라 생각하는 쪽이기 때문이다. 진지병이 또 도졌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투표할 때는 이 책에 손을 들었다. 아마도 점집에 관한 애기가 듣고 싶었던 듯하고 실제로도 이번 토론에서 말을 많이 하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은 점의 어떤 예지력이나 인생방향의 선견지명으로서의 그런 점집보단 카운슬러로서의 점집의 더 초점을 맞히고 그래서 점술자의 임기응변 혹은 어떤 피점술자에 대한 서비스에 초점을 맞히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에서 본 내용도 좋았지만 토론자들과 함께 한 시간이 많이 즐거웠던 시간이었고, 또 하나 느낀 것은 난 점을 안 봐도 되겠다는 생각도 같이 든 시간이었다.

뭔가 오글거리는 멘트지만 난 이 멘트가 생각난다.

“정해져 있는 미래보다 바꿀 수 있는 미래가 더 재밌다”


동희

토론 전에 타로집에 들어서며 눈에 들어왔던 
"셔플당 만원"을 보고 한 번 놀라고(음의 방향으로) 카드를 뽑기 전에 타로 봐주시는 분의 기를(타로에!!) 불어넣는 모습에 또 한 번 놀라고(너무나 집중하시는 모습에 순간 신점을 보러온 줄!) 첫마디부터 시작된 그 분의 양변이* 스킬은 저의 식은땀을 흘리게 했습니다. -이하 생략-

룰루랄라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수고하신 발제자님께, 

희군속추야
산공송자낙
산보영량천 
유인응미면

당신을 그리던 가을날 밤
인기척 하나 없는 산을 거닐면서
하늘을 바라보고 시를 읊고 있네
홀로 숨어지내는 당신도
분명 아직 잠들지 않았으리           in seven seeds

깊어가는 가을 밤, 몽글몽글 해지시길 바라며
ChR↑♪헤헷♬

*양변이 : 상대방이 어떠한 공격력과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1/1(공격력/생명력)의 (한마리의 순한)양으로 변신시키는 주문카드 in 하스스톤 



영진

즐거운 토론이었습니다. ‘점’이라는 신선한 소재로 유쾌한 분위기가 계속 유지되었던 것 같습니다. 신문 구석의 ‘오늘의 운세’ 만으로도 친구랑 시간가는 줄 모르고 대화할 수 있는데 7명이 모여서 점에 대해 썰을 푸니.. 더구나 발제자 권유로 토론 직전에 점까지 보고 왔으니 ‘얼마나 재밌게요?’
내가 생각하는 친구의 성격과 점괘가 얼마나 일치하는지, 문뜩문뜩 생각해봤던 친구의 미래모습과 얼마나 비슷한지, 거기다 예상과 점의 결과가 다르면 다를수록 얼마나 재밌어지는지.. 점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어떤 내기를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점은 그냥 일반적인 이야깁니다. 
“연애운이 있네? 시작하겠는데? 그런데 여자는 생각은 있지만 마음을 열지 않았어. 남자가 계속 마음을 표현하고 다가가면 여자도 마음을 열거야” 
친한 동네형이 해준 말이 아닙니다.  아.. 내 5천원..
세상엔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분명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 설명할 수 없는 일을 경험할 수 있겠구나 기대하며 돈을 내고 방석에 앉기엔 뒷맛이 허무하네요.


현정

평소 점집에 적지 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있어 이 책은 존재 자체로 큰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작가의 문체가 좋게 말하면 유머러스하고 다르게 이야기하면 한없이 가벼워서 퇴근하고 노곤한 상태에서도 읽기에 큰 부담이 없어 이 점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책을 읽기 전-후 점집에 대한 큰 생각의 변화는 없다. 여전히 나에게 점집이란 흥미거리 중 하나이고 가끔 즐겁게 바람을 쐬러가고 싶은 장소이기도 하다. 한가지, 예나 지금이나 두려움에 앞서 도전하지 못한 신점에 대해서는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어서 만족한다. 주관적인 시선으로 다소 우스꽝스럽게 표현이 되어있긴 했지만. 아무튼, 우주 외계인, 귀신 등 비현실적인 것들에 대해 어느 정도 존재에 대한 믿음이 있는 나에게 있어서 이 책은 킬링타임용 영화처럼 "읽어볼 만한데?" 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주었음은 분명하고, 읽으면서 새로움과 도전욕구를 불러일으킨 손금은 직접 찾아가볼 의향이 있다.


준민

『나의 점집 문화 답사기』의 저자 한동원은 끊임 없이 적절한 복채를 강조합니다. 점집 또한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큰 의미에서 서비스업에 속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모든지 돈으로만 계산하는 사고방식을 싫어하는 편이기는 합니다만 어떤 것을 돈으로 환산해보면 색다른 무언가가 보이곤 합니다. 화폐를 통한 가치 측정에’만’ 너무 익숙한 탓입니다.

책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 세 시간. 독서 토론에 필요한 시간 세 시간. 2017년 최저 임금이 한 시간에 6470원 이라고 합니다. 후하게 반올림해서 6500원에 여섯 시간을 곱하면 39000원. 책 가격은 도서정가제에 입각해서 할인 없이 14000원. 그리고 장소를 빌리기 위한 음료 값 5500원. 이 모든 값을 더하면 이번 독서토론을 참여하기 위한 비용이 됩니다.

58500원입니다. 생각보다 큰 금액이 나와서 놀랐습니다. 진행을 한 입장에서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는지 궁금하고 걱정이 됩니다. 늘 참여자의 시간을 위해서 진행자는 꼼꼼히 준비해야 한다는 입장이기는 했습니다만 이렇게 돈으로 바꿔보니 더 민감해 집니다. 아무래도 오랜 백수 생활을 청산하고 일을 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준비가 허술했던 만큼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가벼운 책처럼 보이고 실제로 가벼운 책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또 얼마든지 깊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책이거든요. 이런저런 다양한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만 구현되지 않았으니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아쉽습니다. 모든 일에는 적절한 시기가 존재합니다. 그 시기를 놓치면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 지금 논제를 다시 만든다고 해도 의미는 없겠죠. 뭐 만들 생각도 없습니다만.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2020년 2월 정기 모임 <사람, 장소, 환대>

2023년 4월 토론: 아버지의 해방일지

2023년 12월 토론: 사랑의 생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