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직업으로서의 정치 후기



업으로서의 정치

발제자 조영진

후보였던 책 덕후감

일시 2016년 7월 23일


세진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지요. 하지만 직업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정당하지 않더라도 특정 직업군에 요구되는 특수한 능력과 자질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정치가라는 직업은 국가의 폭력행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악마적 힘'을 다룬다는 점에서, 정치가의 '능력'이 개인의 도덕적 성격적 '자질'과 깊게 연관되는 특수한 직업이지요. 원론적인 말로 풀어놓기는 했지만 스스로 정치인들에게 높은 도덕성을 기대해왔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명료하게 와 닿았습니다. 

 열정과 책임감을 균형감각을 가지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 신념윤리를 기본으로 하되 책임윤리가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 이러한 베버의 주장은 묘하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을 떠올리게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A와 B가 모두 필요하다'는 식의 모호한 하이브리드 주장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인데.... 베버같은 사람이 내리는 결론도 이렇게 흐르는 걸 보면 어쩔 수 없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겠지요. 리더십과 아집, 유연함과 우유부단함 사이 그 어느지점을 취하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겠다 생각이 들면서도, 그 어떤 자질도 없는 함량미달의 인물들이 정치를 하는 우리 사회를 보면 이런 논의가 무의미해보이기조차 합니다. 여러모로 마음이 복잡해졌네요. 그런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앞으로 참정권을 행사할 때가 되면 더욱 날카롭게 그들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어렵다면 어려운 책이었고 정치의 폭력성이나 윤리에 대한 논의가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토론 자체는 첨예하게 이루어진 만큼 더 재미있었어요. 말로도 글로도 나의 생각을 잘 표현하는 건 참 어렵고, 토론에 참여하는 횟수가 쌓여갈수록 내공이 부족함을 느끼네요. 어려운 토론 이끌어준 발제자님도, 토론의 열기를 불태워준 분들도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 고등학교 윤리 시간을 떠올려봤을때 신념윤리에서 합리론, 책임윤리에서 경험론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이건 너무 기초적인 이야기인가 싶어서 말을 못 했..... 저부터 서양철학사에 대해서 좀 더 공부해서 이야기 나누어보고 싶네요. 사회과학적 현상으로서 정치를 다루었지만 결국 철학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인문학적인 소양이 더 요구되는 책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보영
이 모임이 아니었다면 스스로 찾아서 읽을 책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더 기대되었습니다. 역자의 서문을 읽을 때만해도 흥미를 가지고 읽었습니다. 1919년대에 나온 강연이라 하였는데 우리는 일제와 싸우고 있던 시기였기에 그시기에 이런 이야기를 논하는 유럽이 부러웠습니다. 2016년인 지금의 정치와도 유사성이 있어 신기하면서도 앞으로 가야 할 우리의 정치를, 정치인들의 자질을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만 지식이 부족하여 이 책을 조금밖에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또한, 질문지 중에 단순해 보였던 질문에도 목에 핏대를 세우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열정(?)과 지식에 부러웠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전제와 타인이 생각하는 전제는 다를 수 있기에 상대방과의 대화가 어려운 일임을 새삼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것이기에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이번 모임에 감사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종찬
 내가 독서토론 멤버로서 결격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좋다는 것은 요약만 읽어봐도 알 수 있었다. 독서토론을 하면서 이러한 책을 읽을 기회를 갖고 이야기해볼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하지만 읽는 동안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내 사는 일 하나 끌어안기도 어려운 사람이 이런 걸 읽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

'아니야, 그렇게 다 한 명씩 놓아 버리니까 세상이 이 모양이 되는 거야. '

왔다갔다 했고, 결국 마치 읽은 것처럼 보이려고 지나다 줏은 생각에 천착했다.

폭염을 뚫고 발제했을 영진이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한다.

지금의 나는 내 생활을 정상화하는 일이 고작인지도 모른다. 조금은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다들 그럴 때가 있잖아요.


준민
우리가 토론을 하고 있을 즈음에 방영된 『아이가 다섯』 45회에서 태민은 수와 우영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렇지만 마음은 표현해야 알 수 있는 거야. 내가 아무리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표현하지 않고 숨기고 있다가 상대방이 모르고 지나가버리면 아무 소용 없잖아. 안 그래? 늦었지만 오늘이라도 부모님에게 감사합니다, 라고 말을 해야 돼. 알았지?” 이 말을 들은 수는 말로써 우영은 글로써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번 모임에 참석하신 분이라면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를 다들 짐작하고 계실 겁니다. 잘못 한 게 있으면 잘못했다고 말을 해야하겠지요. 부끄러운 마음이 있다고 한들 표현하지 못하면 그건 아무 소용이 없을 겁니다. 여하튼 잘못했습니다. 미정은 이번에 벌어졌던 일련의 사태를 ‘개싸움’이라고 표현했는데 사실 그건 틀렸습니다. 개싸움을 어떻게 정의하든 그건 틀린 거죠. 그보다는 ‘스트레스를 받은 어떤 남자의 히스테리’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겁니다.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변명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히스테리를 부려도 되는 건 아니니까요.

지난 번 후기에 저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사람이란 좋게 말하면 영향력 나쁘게 말하면 폭력성을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어떤 일에 대해서는 각오를 하고 살아가야 할 겁니다.” 이런 말을 쓴 사람의 행동이라고 보기는 힘들었죠. 사사키 아타루는 이렇게 말합니다. 쓰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로 믿는 게 아니라고 말입니다. 자신이 쓴 말을 정말로 믿고 있다면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거라고. 결국 저는 제가 쓴 말을 믿지 않았던 셈입니다. 

베버는 직업 정치가의 세 가지 자질로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을 제시합니다. 토론 때도 말했듯 꼭 정치가에만 해당하는 내용은 아닐 겁니다. 어떤 상황이든 상관없이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정말 이 말이 옳은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일단은 그렇게 믿고는 있습니다만 잘 모르겠습니다. 앞서 언급한 사사키 아타루의 말처럼, 정말로 믿는다면 그렇게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지금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추후에 시간이 흐른 뒤에 쌓인 어떤 행적들을 보고 평가해야 할 영역이겠지요.


병준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단순히 입법 정치에 한정했다면 배부른 토론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입에 맞지 않는 호텔 코스요리를 먹은 듯 초라한 배고픔만 안고 돌아왔을 것이다.
애초에 [정치]라는 용어는 유연한 화제의 용수철즈음 되는 것이었다. 얼마든지 다른 곳으로 튀어 오를 수 있게 내재된 장치일 뿐이다. 소설을 읽는다고 소설 이야기만 하지 않듯이 토론 주제는 명백히 발제자의 독단적 권리 또는 상상력의 결과인 것이다. 다만 그 권리를 맥없이 이양할 때는 책임의 전가가 되어버리고 만다. 내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는 성립되지만 네 말도 옳고, 네 옆의 말도 옳다는 논조는 무리가 있다.

반면에 내 말은 무조건 옳고 나 이외는 전부 틀렸다는 관점은 토론의 장을 축소시킨다. 상상력의 용수철에 족쇄를 채우는 식이다. 설령 나 혼자 맞고 전부 엉뚱한 방향으로 내달리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발제자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아이러니하지만 막스베버의 명강의보다는 독한녀석들의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토론에서 그가 주장한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던 감사한다.

좋은 정치인이 된다는 건 결국 좋은 사회 구성원이 된다는 뜻이고, 좋은 상사, 좋은 아빠가 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일종의 권력 지향적이라는 점에서도 맥을 같이 하니까. 의도와 결과간의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에 종교가 존재한다고 읽었는데 그 간극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일어서는 망각 혹은 치유력을 마지막 자질로 뽑고 싶다. 권력에 굴복할 때도 철없이 다시금 덤빌 수 있도록...


미정
정치 정치 정치!!!! 듣기만 해도 신물나고 무관심하고 싶은 주제였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나고 토론을 하고 나니 생각보다 정치가 어려운 거구나 균형감각이라는 것도 모호한 언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책에 모호하게 적힌 부분에 대해서 토론을 하면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명확한 것을 연역적으로 적용하는 것 보단, 귀납적으로 추론을 해나가 명징하게 밝혀서 하나의 우리만의 논리를 만드는 것도 꽤 재밌을 것 같거든요! ㅎㅎ



얇고 무거운 책이었습니다. 책은 분명 얇았지만, 저자와 표지서부터 이건 결코 얄팍한 책은 아니겠다 생각했습니다. 역자가 책머리에 정리해둔 저자의 논지 요약이 그래도 눈에 잘 들어온 덕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별거 아니라면 별거 아니지만, 덕분에 역자의 중요성도 느꼈습니다.
정치의 특성과 현상황, 정치가의 덕목과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제 이상주의적인 면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그래도, 현실이 워낙 시궁창이라 생각하기에, 저는 저의 이상을 아낍니다만...
원래는 진정한 정치가란 될 놈이 되는 것이고 할 놈이 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느 단체를 이끌던 사람이 얼마 전 책임감도 균형감각도 없이 자신의 열정만을 내세우며 모든 행동을 합리화하고 변명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단체에 소속되어 있던 사람들은 그걸 보면서 책임감과 균형감각의 중대함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정치가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덕목'을 반성하고 배우고 깨우칠 수 있음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이제는 안 될 놈이었더라도 앞으로는 될 수도 있고, 못할 놈이었더라도 후에는 할 수도 있겠다 생각합니다.


동진
<책제목만 보고는 아!! 내가 할 말이 되게 많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 것은 섣부른 것이었구나.>
책을 사실 보면서 무지 뻑뻑함을 느꼈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내가 왜 이렇게 뻑뻑할까 시험이 끝나서 마음이 둥둥 떠다녀서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오랜만에 생계전선에 뛰어든 노곤함일 수도 있겠다. 아니 1994년에 번역된 한자어 투성 번역을 탓할 수도 있겠다. 이런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대는 걸 보니 책을 잘 이해하지 못했나보다. 난 아마 책에 이런 것을 기대했었나보다. 우리나라의 후진적 정치문화가 바뀌려면 뭐가 필요하고 뭐를 버려야 하나?
하지만 그런 내용이 아니라고 이 책의 가치가 훼손되진 않는 좋은 책이다. 사실 나의 입장에서  이 책의 제목처럼 직업으로서의 정치와 직업으로서의 행정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앞으로 내가 갖는 직업 이 공적인 일을 다루는 곳이므로 직업으로서의 행정 즉 돈을 받고 공적 일을 하는 직업공무원이다. 이 책을 보면서 내 직장과 연결시켜서 내용을 건져 보았다. 책임감에 있어 정치와 행정 모두에게 1순위가 되야함은 토론이 끝나기 전이나 후나 변함이 없다. 그것은 정치와 행정에 파급력에 있다.입법 사법 행정 모두를 정치로 봤을떄 or 입법만 정치라고 봤을떄 조차도 조례나 법조항 한 개 토씨 하나가 국민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음에  이 책에서 책임감은 묵직한 단어임에 틀림없다.내가 10년 후에 볼 글로 작성 해본다. 뭐 거창하게 봉사한다는 미사여구보다는  내 책임감이라도 인지하고 살자고.....


영진
‘아쉬움이 남는다’는 아니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준비한 만큼 진행되었던 토론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논제를 숙고한 시간과 진행에 대한 구상 등 투자한 만큼 나왔어요. 정직하죠. 패널들이 아쉬워했던 점, 수용합니다.
 한 가지, 우리 토론모임의 새로운 느낌을 발견했다고나 할까? 아무튼 신선한 자극이었어요. 그건 분명 토론이었어요 논리가 있었고 근거도 있었죠 표현이 조금 까슬했을 분이지. 흥분상태임에도 자리를 박차지 않고 끝까지 앉아서 자신의 논리를 관철하려 노력했죠. 모두 성숙한 토론인의 자세 다웠달까? 당신들이 틀렸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그에 반박하고 또 반박하고.. 논쟁을 촉발, 활성화하는 좋은 자세죠. 토론 주제에 대한 내용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요.. 이런 격함, 나쁘지 않네요. 종종 보고 싶습니다.
 날도 덥고 습한데 치솟아 오르는 불쾌지수 붙잡느라 고생들 많이 하셨습니다. 부디 다음 토론은 뽀송뽀송하길. 
연애책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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