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모임







<침묵의 봄>

발제

최보영

발제문


위치

모두의 집

후기


병주

https://www.ted.com/talks/derek_sivers_how_to_start_a_movement/transcript#t-45770

후기를 쓰면서 고등학교 때 우연히 봤던 테드 영상이 떠올랐다. 위 링크는 movement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재미있게 설명한 3분짜리 영상이다. 영상의 시작에선 한 명이 춤을 추고, 2명이 되었을 땐 혼자가 아니게 되며, 3명이 되었을 때 집단이 되었다. 그리고 tipping point를 넘어, 모두가 춤을 추기 시작한다. 17살의 난 영상의 마무리 멘트처럼 첫 번째 사람은 못되더라도 첫번째 사람을 도와주는 두 번째 혹은 3번째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후기를 쓰면서 이 영상이 떠오른 이유는, 더 이상 두 번째 혹은 3번째 사람이 아닌, 주위 사람의 눈치를 보며 마지못해 일어나는 그런 사람이 돼버린 탓일 것이다. 사실 마지 못해 일어서면 다행이지 처음 춤을 추는 사람한테 의심의 눈길을 보내며 앉아 있을 수도 있다.
왜 이렇게 변해버린 것일까? 최근 들어 공감하는 문제가 별로 없으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조차 쉽게 믿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박원순 서울 시장의 자살은 충격이었다. 우리 사회를 바꿔왔던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운동을 진행했을지 궁금하다. 처음부터 권력욕을 갖고 있던 것일까?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이 바뀐 것일까?  신념이란 것을 가져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스타트업의 기업가들이 좋다. 더 나은 세상이란 프레임 아래, 문제를 제기하고 돈을 대가로 그 답을 제시한다. 게다가 제대로 된 문제가 아니라면 리스크를 온전히 지는 것은 그들이기에 그. 작년 초 타다의 박재욱 대표의 강연을 들으러 간 적이 있다. 타다의 설립 취지인 이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교통 약자를 지원하고 이를 확대할 예정이란 말을 들었다. 장애인 학교에서 공익 생활을 하며 교통 약자들의 이동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봤었기에, 그의 문제 제기를 공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강연 내내 정말 그런 의도였을지 의심이 계속 들었다. 다만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의도가 어찌 되었든, 학교 아이들이 직접적인 도움을 받으면 그만이다.
결국 내가 보고 느끼는 문제에 관해, 현재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판단해보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환경오염은 잘 모르겠다. 침묵의 봄이 나온 1962년에는 심각했다는 것에 공감하며, 거대한 운동이 형성되었고, 그 영향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만 지금도 심각한가? 그건 모르겠다. 더 알아볼 수 있지만, 또 그렇게 할 정도로 큰 문제의식을 못 느낀다. 비겁하긴 하지만, 영상에서처럼 언젠가 환경오염에 관해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서면 눈치를 살피며 나도 같이 일어서지 않을까?


병준

'참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면,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다.'
 침묵의 봄은 언뜻 논문처럼 보일 수 있지만 르포에 가깝다. 저자는 1960년대 미국의 실태를 지하수, 토양, 강, 식물, 새 등을 통해 고발한다. 살충제나 농약이 인체에 해롭다는 것쯤은 상식이 된 시대에 뒤늦게 이 책을 보자니 저자의 칼날이 조금 무디게 느껴졌다. 하지만 상식이 없던 시대에 이 정도 진실을 맞닥뜨렸다면 충격이 상당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매일 만지는 휴대폰이 40년이 지난 후에 발암 물질로 밝혀진다면?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아직 상식이 되지 못한 채 주위에서 야금야금 해를 끼치고 있을 진실들이 무섭다. 모르는 게 약이려나. 그러나 저자는 아는 것이 우리의 권리라고 한다. 정치고, 환경이고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피곤한 삶이다. 
 영화 '테넷'을 봤다. 정신 꼭 붙들고 보는 와중에도 주인공의 대사가 인상 깊었다. 
 "그 세대 문제는 그 세대가 해결해야 하는 거야."
 우리 세대에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유독 많은 것 같다. 전염병을 비롯한 온갖 질병과 환경오염 그리고 사회적 병폐들까지. 기술은 그 어느 때보다 발전했지만 아직 부모 세대가 물려준 문제들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질병 관리와 환경 보전 간 우선순위를 두는 논제가 있었는데 말 그대로 순서의 문제일 뿐 하나의 가치만 추구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 어릴 때만 해도 당연히 잘 먹고 잘 사는 게 1순위고, 환경 따위는 논의의 대상도 되지 못했는데 이제는 우선순위를 논할 계제가 되었다는 것은 충분히 고무적인 일이다. 인간도 결국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기에 결국 질병이나 환경이나 다 나 자신을 위한 일이다. 토론 때 탄소 배출권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괜히 인간 본성에도 없는 이타심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무한한 욕망과 경쟁 심리를 이용한 정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책 내용을 떠나 오랜만에 토론 맛을 봐서 좋았다. 내 얼굴과 패널들 얼굴을 전부 쳐다보며 무전 교신하듯 하는 토론이 어색했지만 오히려 오고 가는 시간을 줄일 수 있어서 좋은 점도 있었다. 물론 뒤풀이 없는 토론은 하루빨리 끝났으면 좋겠지만.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토르가 '아스가르드는 장소가 아닌 백성'이라고 말한 것처럼 독한 녀석들 역시 장소나 형태가 어떻게 됐든 사람만 남아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으리란 안도감이 든다. 
 인기 강사 김미경 씨는 우리 사회가 코로나로 인해 단숨에 5년을 건너뛰고 2025년이 되었다고 표현했다. 갑자기 세상이 변했으니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다시 한번 점검해보고, 새로운 상식을 놓치지 않기 위해 늘 긴장해야겠다. 환경도, 건강도, 인간 관계도.
P.S.> 그나저나 작가의 한마디는 현 시국에 참 그럴듯하게 들린다. "참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면,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다." 이 시점에 우리는 과연 뭘 알아야 할까? 


혜리

오랜만에 모니터로나마 반가운 얼굴들을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이 그리웠기에 책을 읽지 않았음에도 선뜻 참여했어요.
 최근에 환경문제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던 유익한 토론이었습니다.
 토론을 하면서 나란 존재는 지구를 잠시 빌려 쓰고 있는 것이기에 최대한 깨끗이 쓰고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환경운동도 운동이라서 실천해나가려면 귀찮음과 노력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그게 습관이 된다면 당연한 듯 일상에 녹아들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저는 일회용품을 써야 하는 선택의 기로나, 분리수거가 귀찮을 때 제가 다음 생에 물고기로 태어나고 싶다는 사실을 떠올리곤 해요.
그러면, 순간의 편리함보다는 귀찮은 선택을 고르게 되더라고요. 다음 생에 비닐봉지를 해파리로 착각해 먹어버리거나, 제 주둥이에 플라스틱 고리가 끼어버려 아프긴 싫으니까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보아왔던 많은 환경운동의 캐치프레이즈들이 조금 잘못된 방향은 아니었나 싶기도 하네요.
제가 나중에 물고기가 되어서 고통받고 싶지 않아서 일상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실천들을 해나가듯, 인간은 좀 이기적이라서 북극의 눈물이라던가, 빙하가 녹아내리고, 아마존이 불타는 모습들 보다 더 직접적으로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가 환경문제의 피해자가 될 거란 사실을 알려줬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점점 그런 환경문제들이 제 눈앞에 닥쳐오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깨닫고 노력해 나가지 않을까 싶어요.
 모니터로 처음 인사를 나눈 귀엽게 웃고 있는 아기를 보니 "지구 혼자 쓰는 거 아니니까 예쁘고 쓰고 돌려줘야겠다."라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습니다.
처음 온라인 토론이라서 어려운 점도 많았을 텐데, 잘 진행해 주신 발제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들 정말 정말 반가웠어요.

종찬

토론이 끝나고 본가에 내려갔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2020년 들어 처음 내려갔습니다. 성묘를 하고 돌아오는데, 사이클링 하시는 분들이 수돗물을 받으시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시골 수돗물은 왠만한 서울 정수기물보다 깨끗할거야. 정말이야.” 
활짝 웃으면서 득의양양하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걸 보니, 그 말씀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침묵의 봄이 꼭 필요한 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0여 년 전에 쓰여진 이 책이 아직도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건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말로 하면, 그 사이에 좀더 요즈음의 상황을 반영한 책 중에 이 책처럼 경각심을 줄 수 있는 책이 없다는 뜻도 되겠죠. 혹은 필요이상의 과장을 하지 않은 채 저만큼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소재가 줄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토론하기 쉬운 책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3개월이 밀렸고, 사상 최초로 온라인 토론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재미있게 토론하고, 의외로 온라인 토론도 할만 하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오만 걱정을 다 하고 앉아있을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것들은 해보는 게 중요하겠죠. 환경 문제도 그런 것 같습니다. 당장 모든 플라스틱을 버리고, 당장 모든 육식을 중지하지 못해 걱정하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보는 게 중요하겠죠.


영진

코로나-19 때문에 정말 오랜만에 독서토론을 했습니다. 그것도 온라인으로요. 아마 이번 토론의 가장 큰 도전은 ‘우리가 온라인에서도 독서토론을 할 수 있을까?’였을 것 같아요. 아마 다른 멤버들 역시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 등으로 일상 중 온라인으로 회의를 한 경험이 있었을 텐데요.. 그래도.. “독서토론을 온라인으로?” 일이나 수업이 아닌 취미활동을 온라인으로 한다는 것에 어떤 의식의 장벽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토론은 생각 이상으로 원만히 진행되었고 저는 의견을 말하는데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어요. 독한녀석들 사상 처음으로 온라인으로 토론을 진행한 보영이가 고생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다음 달은 어떻게 진행될지 걱정입니다.


준민

지나간 과거를 말하는 건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그 때는 미처 몰랐던 사실을 시간이 흐른 뒤에 알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침묵의 봄>에서 말하는 환경 문제도 그럴 겁니다. 아마 그 때는 왜 괜한 트집을 잡느냐는 의견이 많았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문제 제기를 해도 지금의 보건이 중요하냐 미래의 환경이 중요한지에 대한 논쟁이지 화학 약품을 과하게 쓰면 환경 오염이 발생한다는 건 다들 기본 상식으로 깔고 있으니까요. (물론, <침묵의 봄>에 적혀 있는 일부 내용이 시간이 흐른 뒤에 과학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글도 보았습니다만, 그게 <침묵의 봄>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해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토론 때도 다들 그런 입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안 살아봐서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 봤으면 놀랐을 것 같다. 시간에 따른 인식의 변화라는 게 참 놀랍습니다. 무릇 세상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당연하지 않았던 것이 대부분입니다. 여담으로,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걸 예전에는 당연하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책으로 데이바 소벨의 <경도 이야기> (AKA 해상시계)를 추천합니다.
사실 이번 토론을 조금 넓게 봤을 때도 그런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작년만 해도 온라인에서 화상 채팅으로 독서 모임 하자고 했으면 일반인은 물론이고 독서모임을 꾸준히 하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독한녀석들만 그런 건 아니고 대다수의 독서모임도 그럴 겁니다. 코로나가 활성화되고 아직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 사이에 회사에서 화상 회의 (혹은 화상 교육) 등을 많이 해서 경험치가 쌓인 덕도 있을 겁니다. 
지나간 과거는 지나간 과거이고, 지금의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인식이 코로나라는 거대한 외부 환경 때문에 어떻게 바뀌어 나갈지, 지금은 모르지만 나중에 알게 될 것은 무엇이 될지 궁금해집니다. 지금 쓰여진 글을 나중에 태어난 사람들이 읽으면 어떻게 될지도요.


동진

환경과 관련해서 사실적이고 과학적인 다큐멘터리 같은 내용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환경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다고 했을 때 이 책은 그와는 약간 다른 결에서 서정적이고 다소 감수성이 보이는 언어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책으로 보였다.
토론 자체가 줌으로 하다보니 어리버리 하게 참여하긴 했지만 색다른 경험이었으며, 중간에 일찍 마치게 되서 아쉬웠다.
이 책과 토론에서 내가 이번에 들었던 생각은 환경을 보호와는 별개로 그 당시에 어떤 환경보호에 관련된 이론이나 문제해결 방법이 현재는 적절하지 않거나 잘못된 정보였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는 것과 그것이 생계나 혹은 사람의 생명이나 안전을 고려했을 때 가치판단이 양립할 경우 우리들은 그리고 나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을 좀 하게 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세진

1. <침묵의 봄>은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으로 파괴되는 생태계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유독물질의 연쇄작용이 결국은 인간을 위협하게 된다는 경고를 보낸다. 책이 세상에 나왔던 1960년대에는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을 내용이지만 2020년에서 살충제의 유해성에 대한 내용을 일종의 상식이 되어 있다. 토론에서도 나온 이야기지만 우리가 그 시대를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시대의 사람들이 느꼈을 기분을 유사하게 경험하기란 불가능하다. 또한 이미 저자의 주장에 대해 알고 있는 상태로 책을 읽자니, 주인공의 결말을 아는 소설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끝까지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완독은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책에 대한 이미지는 비교적 선명하게 남는다. 수많은 동물들과 식물들의 이름이 불려지고, 그 이름들이 독극물에 물들어 사라진다. 생명의 흔적이 사라진 자연은 적막하고 황량하다. 책 곳곳에 배치된 일러스트처럼, 이 책을 보면 흑백 사진처럼 박제된 풍경이 떠오른다. 그런 잔상이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2. 오래된 고전인데다 외국 작가의 책이고, 배경지식이 부족한 환경 분야의 책이라 토론을 어떻게 진행할지 굉장히 궁금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아주 흥미롭고 좋은 발제였다고 생각한다. 1960년대의 살충제의 위해성에 대한 논란은 종결되었지만,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여전히 수많은 화학물질 속에서 살아가며 생태계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환경 문제를 연결지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침묵의 봄’이 없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토론이었다. 

3. 토론을 하면서 일상 속에서 지나쳤던 수많은 순간들을 다시 건져 올렸던 것 같다. 발암물질이 검출되는 여성용품 뉴스를 보고 느꼈던 불안감. 코로나19 예방을 명목 삼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일회용품 사용과 택배 쓰레기. 언젠가 아이들과 함께 보았던 미세플라스틱을 삼키고 죽어가는 거북의 모습. 이런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칠 때면 죄책감과 무력감이 묵직하게 떠오른다. 지금 이 쓰레기가 전국에서 나온다면, 전 세계에서 나온다면. 지구 단위로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히면서 나의 존재가 세계를 오염시킨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나 하나 노력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 라는 무력감과 허무함이 따라온다. 그 감정을 회피하고 싶어서 생각을 멈추고, 침묵의 공범자로 지냈던 것 같다.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보자고 생각한다. 적어도, 텀블러 정도는 들고 다닐 수 있겠지. 

4. 직무상 매일같이 줌을 쓰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이 플랫폼 자체에 대한 피로감과 매너리즘이 있던 상태였다. 온라인으로 토론은 잘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재미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막상 얼굴을 보면서 얘기하다보니 나름대로 열띤 토론이 되었고, 오랜만에 본 얼굴들이 너무나 반가웠다. 만남에서 오는 기쁨을 잊고 있던 건 내 쪽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발걸음을 잘 떼었으니, 앞으로 어떤 상황에서라도 꾸준히 모임은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긍정적인 기대감이 든다. 여러 가지 상상을 해 본다. 줌 번개를 해서 함께 슬로리딩 시간을 갖는다든지. 영화를 보고 나서 함께 랜선 감상회를 한다든지. 내가 줌으로 발제를 하게 된다면, 토론 시간을 금요일 8시로 해서, 불금 토론 후의 랜선 먹방 뒷풀이로 추진해보고 싶다. 흠.재미있겠는데?


보영

갑작스럽게 찾아온 코로나로 환경 오염에 대해 더 생각해보는 계기들이 많았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공장이 멈춘 후에 지구 온난화를 피부로 느꼈던 것처럼, 코로나로 인해 일회용품 사용 횟수가 더 늘어서 쓰레기 처리 문제가 부각되고 있는 것처럼, 이런 갑작스럽게 다가온 환경 문제 때문에 이 책이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토론 중, 60년대 당시의 미국을 살아보지 않아서 이 책이 주는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저는 오히려 현재의 상황과도 유사한 부분들이 있어 어느정도는 생각할 점이 많았습니다. 아직도 변화되지 않고 한국의 상황과 겹쳐지는 부분들이 많아서 아직도 우리 사회는 변화되고 제정되어야 할 것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화평법, 화관법이 2020년이 되어서야 정식 시행되는 상황이고, 산업체들은 이런 규제에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들은 여전합니다. 책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기업은 이익을 위해서는 환경은 신경쓰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더욱 규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물론 나 역시, 환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비용이 발생하는 순간의 선택을 주저할 것입니다. 
환경 관련하여 ‘우리가 사용하고 오염시키는 환경을 다음 세대가 피해 보는 것이 옳은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과 다양한 관점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편리함을 위해 생태계를 파괴하는 화학물질을 선택하기도 하겠지만, 이런 외부 자극을 통해 환경에 대한 인지를 통해 생각을 변화시키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인지 못하는 환경 관련 문제들이 생각보다 많다. 기회가 된다면, 생태 환경뿐만 아니라 요즘 이슈인 기후위기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시대와 생각에 따른 마음 졸이는 기나긴 기다림과 연기 끝에 온라인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마음의 짐이었던 발제가 끝났습니다. 여전히 내 생각을 말하고 발제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더 압박이 있었던 온라인이었으나, 오히려 한사람 한사람 얼굴을 자세히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발제야 어떻든 오랜만(?)에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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