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모임 <팩트풀니스>



<팩트풀니스>

발제

박종찬

발제문


위치

혜화 예술가의 집

후기


영현

꼭 읽어봐야 하는 책,
그러나 꼭 읽어봐야 하는 책들 중에서는 최하점을 주고 싶은 책,
참석하지 못했다면 후회했을 유익한 토론.

1. 꼭 읽어봐야 하는 책
지금껏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나 역시 알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알고 있어야 하는 이유가 충분한 사실들을 담고 있는 책이다. 심지어 그 사실들은 사람들이 관심이 없어 전혀 모르는 내용이 아닌, 다수가 선입견으로 인해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세상을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사실들에 속하는 내용들을 정확하게 전달하며 편견을 부숴주는 책이다.

2. 그러나 꼭 읽어봐야 하는 책들 중 최하점을 주고 싶은 책
이렇게 좋은 컨텐츠를 가진 책이었으나, 그 컨텐츠의 양이 많지 않았다. 그 컨텐츠를 전달한 뒤로는 계속 반복되는 내용들이 이어져 점점 책을 붙잡고 있는 것이 루즈해졌다. 통계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의 위험성을 제시하면서 저자가 설득하는 근거들은 통계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했다(하지만 이 부분은 통계 외에 근거로 제시할 수 있는 대안이 떠오르지 않기에, 일부 인정하는 바이다). 또한 저자의 목적이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았다. 초반에는 팩트에 기반하여 중립적으로 서술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세상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세상은 생각보다 좋다’를 관철시키기 위한 책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줄어드는 나쁜 것’과, ‘늘어나는 좋은 것’에 대한 그래프를 보여주는 순간 두 종류의 통계들 사이에 결이 맞지 않는 것들이 눈에 띄며 그 기분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무언가를 받아들일 때 여러 편견, 제시하는 ‘본능’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느낌이 종종 들어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다.
대체로 대다수의 통계는 현 상황을 극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쓰인다. 그것이 좋은 의미에서 극적이든, 나쁜 의미에서 극적이든 말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제시되고 있는 국가를 4단계로 나눈 것도 현재를 좋게 보여주기 위한 기준에 맞추어 단계를 설정하였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저자의 말대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려면, 현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바텀업 식의 기준이 설정된 그래프보다는, 앞으로의 지향점을 잘 보여줄 수 있는 탑다운 방식으로 기준을 설정한(현재로서는 다소 부정적일 수 있는)그래프가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3. 참석하지 못했다면 후회했을 유익한 토론
하지만 토론은 정말로 좋았다. 다양한 의견을 듣는 것은 언제나 기쁜 일이지만, 특히나 이번 토론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 책에 점수를 매기는 기준이 각자 다른 점도 재미있었고, 점수를 매기는 선택지가 몇 개가 적당한지 등을 다르게 생각하는 점도 흥미로웠다. 추천을 위한 채점 방식은 이분법적이면 충분하다는 말씀이 처음에는 굉장히 의아했는데, 토론이 끝나기 전에 설득당하게 되었다.
책에 대한 이해 측면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CSR적인 내용을 ‘정확하게’ 알기에는 진입장벽이 높다(대다수가 잘못 알고 있다는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정확히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임에도 일반인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하지만 그 진입장벽을 낮춰준 책이라는 평이 굉장히 인상깊었다.
또한 앞서 언급한 책이 다소 편파적으로 느껴졌던 부분으로 ‘줄어드는 나쁜 것’과 ‘늘어나는 좋은 것’들을 제시한 그래프를 예시로 들었는데, 여기서 ‘줄어드는 좋은 것’과 ‘늘어나는 나쁜 것’도 함께 제시되었다면 더욱 책이 중립적으로 느껴질 수 있었을 것이라는 평도 매우 공감되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논의하며 전반적으로 책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다양한 시각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코로나로 무료했던 최근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 토론이었다.


병준

'악당을 찾지 말고 원인을 찾아라. 영웅을 찾지 말고 시스템을 찾아라.'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저 말의 의미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국뽕은 조심해야겠지만 객관적으로도 대한민국의 의료 및 방역 분야는 영웅이 아니라 시스템을 찾은 듯 보인다. 메르스라는 풍파를 겪으면서 쌓인 경험치가 충분히 빛을 발했다. 반면 악당이 아닌 원인을 찾는 데는 다소 실패한 것 같다. 시국이 길어질수록 국민들의 비난 본능이 더 거세지고 있다. 처음에는 봉쇄 정책을 시행하지 않은 정부가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 후로 신천지, 이태원 클럽, 학원 강사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악당을 찾는데 혈안이 된 바람에 원인에 대한 고민은 뒷전이 되어버린 듯하다. 끊임없이 비난의 대상을 찾고, 또 개개인이 조심한다고 코로나가 과연 종식될까 회의감이 든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곧 끝날 것 같았던 코로나가 다시금 활개를 치는 그 원인을 알 수 없어 답답하다.

 작가는 ‘데이터는 진실을 말하는 데 사용해야지,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행동을 촉구하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데이터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말처럼 쉽지 않다. 아마도 책 초반에 작가가 언급한 예시들은 단순히 “생각했던 것보다 세상은 나쁘지 않다”는’ 진실을 알리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글을 읽은 사람들 중 나를 포함한 몇몇은 설령 작가의 의도가 없었다 할지라도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의심하게 된다.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가 책을 잘못 읽었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데이터뿐만 아니라 데이터 너머의 의도까지 의심해 보는 태도를 통해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고 본다.

 토론을 하다 보니 같은 책을 두고 개인에 따라 자기 계발, 통계, 경영, 사회 복지 등의 주제로 읽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나는 걔 중에서 사회 복지적인 측면에서 주로 책을 이해한 것 같다. 반면 다른 관점에서 책을 읽은 패널들 덕분에 외국 자본의 유입이나 4단계 소득 그래프 등을 두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풍성한 시간이었다. 코로나, 언론 등과 연관지은 발제자의 시도도 좋았다. 비록 책의 내용과 100% 적합하지는 않았지만 ‘Fact’라는 관점에서 충분히 논의할만했다. 그중 언론의 신뢰성에 관해선 따로 토론해볼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었으면 좋겠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10점 평가나 작가의 의도 관련해서 의견 차이로 토론 시간이 많이 소비되었다. 토론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논쟁거리는 필수 요소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다만, 답이 없거나 혹은 굳이 답을 수렴할 필요가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각자의 의견을 존중하고 다른 문제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약 3개월 만의 토론이라 그런지 시간 내서 모이고 또 같이 떠들고 하는 행위 자체가 너무나 고맙고 뿌듯했다. 코로나 덕분에(?)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고들 하는데, 독토 역시 우리에게 그리운 일상이었나 보다.


현정

“평균은 분산을 숨긴다는 것을 명심하라” 책을 읽고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문장을 꼽으라고 한다면 내가 꼽을 문장이다. 분량이 꽤 되지만 그동안 저자가 말하고 싶은건 간단하다고 생각한다. “주어진 정보 안에서 쉽게 오인할 수 있다.” 특히나 긴 기간의 지표를 나타내는 경우 나타내는 방식에 따라 받아들이는 값은 큰 차이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책 내용 중 가장 인상에 깊으면서도 사실 앞으로 많은 정보지표들을 볼 때 책을 통해 배운 한가지 사실 “쉽게 오인할 수 있음”에 나 스스로 굉장히 큰 인식을 하며 볼 것임이 분명하다. 이 정도라면 저자는 책을 통해 본인이 전달하고자 함에 있어서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초반 내용이 임팩트 있게 남았던 방면 후반부에 대한 내용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걸로 보아서 눈에 띄는 내용이 없었거나, 저자가 너무 같은 말을 반복해서 늘어놓은 것 같다. 아, 참고로 책을 읽은지는 3개월이 지났다. 토론을 거친 덕분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내 기억력에 이정도 잔상이 남아있다면 읽을만한 책이라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극단적이진 않았지만 책에 대한 개인의 호불호가 꽤 있던 편이라 토론이 즐거웠던 만큼 후기 또한 흥미로울 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초반 예상했던 것처럼 팩트만 주구장창 나열한 책이었다면 책을 읽다가 잠들었을지도. 오히려 작가가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할 때 독서에 불이 붙는다.
간만에 참여한 토론은 너무나 즐거웠고, 팩트풀니스를 발제도서로 픽한 종찬오빠에게 너무나 고마움. 희희


동진

통계라는 분야를 볼때 난 늘 반복적 생각하는 패턴이있다,이통계가 맞는건가 다른인과관계가 개입한게 아닐까
예를 들어 민식이법의경우 시행이후 어린이보호구역미성년자 사고발생률이 현저하게줄었다고한다(법시행이후 코로나로 학교를친구들이가지않은것도 같이~~) 책의 저자는 통계를 통해 우리가 알고있는  세계에 보는 느낌적인 느낌??!! 을 통계를 통해 통념을 깨주는 책으로 볼수있을거같다.
세계는 헬스케어나 생활환경측면에서 나아지고있다.조아지고있다.통계에 관심이 있다면 추천해줄만한책이다. 저자의 테드를 보지는 않았지만 저 테드동영상이
책보다 더재밌을거같다는생각도 동시에들기는한다. 이번토론에서는 살짝아쉬운점이 있었는데
주제에대한 토론자들이 대화가 쏠림으로 다양하게 애기를 못들은거같아 나또한 말많이한1인으로 아쉬운점이 남는다


영진

코로나19 때문에 상당히 오랜만에 만난 패널들. 약 3개월 만에 본 것 같네요. 오랜만이기도 하고 진행도 좋아서 토론이 상당히 재밌게 진행되었습니다. 토론 시작과 끝에 점수를 매기는 수미쌍관 진행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초기 점수 매기는 과정에서부터 열띤 토론이 벌어진 건 꽤나 의외였던..
저자의 문체부터 시작해서 책의 성격까지 골고루 얘기를 나누었는데요, 저는 자기개발서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아마도 저자의 문체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어떤 때는 이렇게 하고 또 어떤 때는 저렇게 하라는 식의 내용이 많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책 내용을 충실히 다루고 저자의 의도에 대한 토론도 있었기 때문에 더 알차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몇 가지 다루지 못하고 지나갔던 논제도 시간만 더 있었다면 다룰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나중에 밥 먹으면서 얘기 나눠봐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준비하는 과정에 발제자의 노고가 굉장히 많이 들었겠다는 느낌이 드는 토론이었습니다.


준민

1. 어떤 것에 대해서 점수를 주거나 주어진 것을 볼 때 중요한 건 기준입니다. 점수를 주는 사람은 기준이 있어야 점수를 줄 수 있고 보는 사람은 기준을 알아야 점수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컨텐츠의 별점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 계기는 듀나의 글이었습니다. 저는 별점에 대한 글 중에서 이만한 글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꼭 한 번 읽어보세요. 길지 않으면서 고민할 구석이 많은 글입니다.
http://www.djuna.kr/movies/about_stars.html

그래서 저는 듀나처럼 별점을 주는가 하면 그렇진 않습니다. 저는 5점 만점으로 점수를 주며 반점은 주지 않기 때문에 5단계입니다. 아마도 별은 5개가 만점이어야 하는 선입견에 7단계로 세분화해서 구분하기는 어려워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분류할 수 있는 한계가 5단계입니다.

각각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 추천합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우선적으로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 추천합니다. 특정한 분야나 장르, 작가 등등 어떤 카테고리에 관심이 있다면 우선적으로 (다른 말로는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 추천합니다. 하지만 읽고 싶지 않다면 읽지 않아도 좋습니다. (다른 말로는 강력하게 추천하지 않습니다.)
★★: 추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특정한 분야나 장르, 작가 등등 어떤 카테고리에 관심이 많아서 다양한 정보나 관점을 얻기를 원한다면 읽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 추천하지 않습니다. 제발 읽지 말아주세요. 제발. 제발.

점수를 주다 보면 애매한 것도 있는데 그냥 적당히 마음 가는 곳으로 찍습니다. 5와 4 사이 그리고 3과 4 사이가 애매합니다. 이 애매한 것도 분류를 한다면 총 7단계가 되겠군요. 지금은 굳이 구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 않아서 현재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점수라는 건 결국 편의적인 구분이고 중요한 건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입니다. 그 근거들을 스스로 구체화해서 가지고 있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2. 통계 수치로 사회를 바라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수치 집계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고, 수치를 제대로 읽지 못할 수도 있고, 수치로 볼 수 없는 세부적인 디테일의 한계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시야에 닿는 것으로만 세상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 때 발생하는 여러 오류를 <팩트풀니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지식을 업데이트할 창구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게 좋습니다. 저는 캔자스대 사회학과 김창환 교수님의 블로그를 주로 참고합니다. 아, 내가 잘못 알고 있었구나 싶었던 내용도 많고 사람들의 댓글도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흥미롭습니다.
https://sovidence.tistory.com/

3. 모임을 끝내고 나는 <팩트풀니스>에서 어떤 부분들이 마음에 들었었나 돌아봤습니다. 대체로 세상을 잘못 바라보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거나 수치를 오해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을 사진으로 많이 찍어 두었습니다. 하지만 토론 후에는 이 구절에 마음이 갔습니다.

문제는 거의 항상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여러 원인이 얽힌 시스템이 문제일 때가 대부분이다. 세계를 정말로 바꾸고 싶다면 누군가의 면상을 갈기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이 구절의 핵심은 ‘누군가의 면상을 갈기겠다는 생각을 버리자’라는 부분입니다.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 되었을 때 화를 터트리는 건 대체로 좋은 결과를 낳지 않습니다.

이번 모임 때의 제 태도가 그랬는데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힌 탓입니다. 상대적으로 잘 아는 분야이기도 했고 모임이 오랜만에 다시 되어서 약간 긍정적인 흥분 상태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태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 이 글을 빌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4. 마지막 문항은 이번 모임을 별점으로 매기는 것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듯 점수를 줄 때 중요한 건 기준입니다. 기준이 있을 때 수치화가 가능하며 기준이 있어야 수치화 된 평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번 이번 모임이 어땠는지 이야기를 하지만 구체적인 기준은 없었습니다. 모두가 같은 기준일 필요는 없지만 각자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는 것은 필요합니다. 어쨌든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그것에 대해서 한 번씩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독한녀석들이 좋은 이유와 좋은 독서 모임의 기준(좋은 독서 모임은 일회적일 수도 있고 장기적일 수도 있습니다.)이 다를텐데 이 둘을 나눠서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번 모임을 평가했던 기준은 이렇습니다.

1. 진행자가 준비를 잘 해왔는가?
2. 참여자가 도서를 잘 읽어왔는가?
3. 토론 진행이 잘 되었나?
4. 참여자마다 발언 분배는 잘 되었는가?
5. 토론에 임하는 나의 자세는 어땠는가?

다시 돌아보니 3번과 4번의 구분이 불명확합니다. 4번이 3번에 속합니다. 변명을 하자면 급하게 만들어 항목을 검증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전체적으로 항목에 담긴 질문의 의미가 너무 큰 것도 문제입니다. 준비를 착실히 하는 것에도 여러 가지 항목이 존재하기 때문에 잘 이란 단어 하나로 모든 걸 다 정리할 수는 없습니다.

후기를 쓰면서 평가를 어떤 항목의 조합으로 나눌까 생각해봤습니다. 일단 큰 틀을 정하는 게 우선이라 시계열 X 포지션로 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시계열은 토론 전/토론 중/토론 후 이렇게 세 단계가 있고, 포지션은 진행자/참여자/나 이렇게 세 단계가 있습니다. 진행자일 때는 진행자와 나가 같으니 2단계가 되며, 토론이 막 끝났을 때는 토론 이후를 알 수 없으니 2단계가 되겠네요.

진행자 – 토론 전/토론 중
참여자 – 토론 전/토론 중
나 – 토론 전/토론 중 (참여자 일 때만)

대체로 지금까지의 토론 후 이야기는 진행자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전체적으로 다 살피는 게 필요합니다. 아주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진행자가 아무리 준비를 잘해오고 진행을 잘해도 참여자가 아무도 책을 읽어오지 않으면 토론이 제대로 이뤄질 가능성은 매우 드무니까요.

기준이야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어쨌든 숫자로 말 할 때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기준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좋은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쉽지는 않고 대체로 고루한 이야기가 오갈 가능성이 높지만 그럼에도 무엇이 좋은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만 합니다.

아 근데 아무 이야기라도 좋으니까 코로나가 좀 잠잠해져서 서로 얼굴 보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얼른 좀 돌아오면 좋겠네요.


종찬 

1. 토론하는 이유와 발제문
두 달이나 미룬 발제를 준비하려고 앉았을 때였다. 언제나 잘하고 싶은 건 당연하지만, 이번은 어느 때보다 잘하고 싶었다. 너무 막연한 얘기다. 발제를 잘 하고 싶다는데 도대체 뭘 잘하면 발제를 잘하는 걸까.

그야 토론이 잘 되면 발제를 잘한 거 아닌가. 아니, 애초에 좋은 토론이 목적이었다. 발제문을 못 써도 토론이 좋을 수는 있는 거니까. 그럼 좋은 토론은 뭐지? 이건 나 혼자 알 수 없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독한 녀석들 왜 하냐고. 좋았던 토론은 어떤 토론이었냐고.

거기서 나온 답변들을 크게 추리면 아래와 같았다.

1. 개인적인 이야기에 너무 치중하기보다 좀더 보편적인 주제를 가지고 논쟁이 이루어졌던 토론.
2. 논쟁이 같은 곳을 맴돌지 않고 한발짝씩 나아갔던 토론.
3. 사람들이 책 내용에 대해 잘 이해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이야기했던 토론.
4. 발제문이 명확해서 단어의 정의 등을 가지고 혼란을 빚지 않았던 토론.
5. 책에 대해 자신과 다른 관점을 들을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던 토론.

이 중에서 내가 집중했던 것이자 가장 공감했던 것은 1번과 2번이었다. 2번은 패널들 손에 달렸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1번의 환경, 쟁점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건 물어보기 전에도 하고 싶었던 거였다. 하지만 막막했다. 토론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이 책에서 정보를 잘 받아들이는 방법,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 나의 생각을 가질 수 있는 방법 같은 것들을 배웠다. 무릎을 탁 치면서 맞아 맞아 그럴 때 있지. 내가 오해하고 있었네. 앞으론 이렇게 봐야겠다. 이런 식이었다. 내가 책을 보는 관점이 이런데 어떻게 논쟁을 만들어야 하지?

우리는 어쨌든 최대한 ‘좋은 책’으로 토론을 하고 싶어한다. 발제자의 역할은 좋은 책을 고르는 데서 시작한다. 그래서인지 토론에서 책을 칭찬하거나 옹호하는 것은 곧 발제자에 대한 칭찬으로 받아들여진다. 스스로 돌아보니, 내 발제문은 은연중에 내가 고른 책이 좋은 책, 그러니까 책의 내용이 옳다는 전제를 항상 깔고 있었던 것 같다.(내가 좋아하는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본 사람이라면, 작가의 편이다 못해 팬이 되어 있는 걸 많이 봤을 것 같다.) 그러니 작가가 쟁점을 제공하지 않은 이상, 스스로는 제공할 수가 없었다.

사실 이건 내가 매번 발제할 때 느끼는 답답함이었다. 그런 고민을 하면서 위의 1~5번을 되풀이해 읽고 있는데, 5번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과 다른 관점을 들을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던 토론.

생각해보면 토론에서 사람들이 책에 대한 소감을 말할 때 깜짝 놀란 게 한두번이 아니다. 오히려 안 놀란 때가 적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면 논쟁을 떠나서 내 생각만을 기준으로 토론을 진행하는 그 자체가 잘못인 건 아닌가. 그런 토론을 한다는 건, 팩트풀니스에서 도무지 아무 것도 안 읽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래서 이 책을 나와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읽은 사람을 찾아 나섰다. 개중에도 내가 쉽게 뭐라 반박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결국 완전히 만족스런 사례를 찾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스스로가 설득이 안 되는 논리가 만족스럽기도 어려울 거 같다고 위로하면서 7번 발제문을 만들었다.

결과가 어땠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100%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발제문 자체도 정제되지 못한 부분들이 있었고, 진행은 정말 끔찍하게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게는 하나의 도전인) 책을 비판하는 주장을 직접 발제문 안에 넣음으로써, 그걸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책과 나에 대해 많이 배운 것 같다.

바둑판 위에 의미없이 둔 돌은 없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 정도 경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몇몇 귀퉁이에서 스스로 생각을 가지고 싸워본 것 같다. 그만큼은 성장했으리라 기대해볼 수밖에.

2. 토론을 평가한다는 것
토론의 시작과 끝에, 책과 토론에 점수를 매겨 달라는 부탁을 했다. 다들 힘들어했다. 무슨 기준을 제시한 것도 아니고 그냥 무턱대고 1점부터 10점, 그리고 긍부정 평가를 해달라고 했다.

통계를 다루는 책이니 상징성도 생각했지만, 그보다는 측정을 해보고 싶었다. 적어도 이번부터 측정을 해야, 다음에 내가 발제할 때 지금보다 나아졌는지 주저 앉았는지 알 수 있을 것 아닌가 싶어서. 그래서 이번에는 기준을 세운다는 생각으로 별도의 가이드 없이 해달라고 했는데, 이게 실수였던 것 같다. 책에 대한 기준은 각자 다를 테니 어쩔 수 없다 쳐도, 토론은 저 위에 1~5번을 가져다 놓고 각각 0점 아니면 1점으로 평가해 달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이번에 조사한 건 무슨 의미인지 알기 어렵게 되어 버렸다.

바둑판 위에 의미없이 둔 돌은 없어야 한다고 하는데, 잘 두다가 안이한 마음이 들어서 잡을 수 있는 대마를 놓친 것 같다. 다음번엔 절치부심 하리라 다짐할 수밖에.

3. One more thing...
바둑판 위에 의미없이 둔 돌은 없어야 한다고 하는데, 왠지 3번을 짜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코로나 뉴스를 보고 있으니 올해 더이상 토론을 진행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 토론을 통해 배우고 싶은 게 많이 남았는데... 어떻게든 시국이 진정되어 얼른 다시 볼 날을 기대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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