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정기 모임 [게으름에 대한 찬양]


<게으름에 대한 찬양>

발제

전세진

발제문


위치

스타벅스 종로R

후기

병준

'과학이 세상을 완벽하게 바꿔 놓은 상황에서 역사에서 나온 논거들을 현재와 미래에 적용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p.114

책보다 훨씬 흥미진진한 토론이었다.
책은 키워드만 남기고 나머지는 내 머리를 스치고 날아가버렸다면, 토론은 키워드만 주어졌는데도 머리를 송두리째 쓰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냉소주의에서 혐오 그리고 일본불매운동까지 이어질 줄이야! 대부분의 것이 불확실한 시대에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고, 반대로 불확실한 대상에겐 냉소적이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헬조선'이 있기까지 국가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분노조차 발휘할 의지가 없는 냉소적인 국민들 역시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본다.
또, 토론 중에 사고나 여론의 획일화를 논하면서 자본 혹은 플랫폼의 획일화 그리고 다양성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한 물음 또한 의외였고 의미있었다. 앞으로 획일성과 다양성을 아전인수 격으로 활용하는 상황을 마주치면 잘 간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여유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정부 차원의 강제성을 부과한다든지, 노동을 측정하는 기준을 시간이 아닌 성과 중심으로 바꾼다든지 하는 발상은 무척 조심스럽기는 하나 계속해서 고민해볼만한 논제였다. 우리 사회의 일과 여가는 어떤 식으로 정의되고 또 발전해나가야 할지 고민하는 것 자체가 바로 무용한 지식이 아닐는지.


재승

사실 책 자체를 읽는것이 오랜만이어서 끝까지 잘 읽을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그 당시 사회 배경을 어느정도 알고 있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없지 않아 있어서 매끄럽게 읽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챕터를 다 읽은 후에는 머릿속의 잔상들로 하여금 어떤 메세지를 떠오르게 하는 독특한 필체의 책이었습니다.

토론 역시 오랜만에 해서 바로 적응하는것이 쉽지는 않았으나, 조금씩 익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패널분들의 토론은 여전히 명쾌하였고, 한편으로는  발제자님의 진행능력에 감탄하면서 참여했던 것 같습니다.

잠시나마 무더위를 잊게 해주는 청량한 토론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발제자님과 다른 패널분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동진

처음 책 제목을 보고 우리가 예전에 했던 피로사회랑 맥이 닿아 있지 않나 생각하기도 한 책이다. 내용이 다소 어려운 파트가 있었지만 거의 90년 전에 쓴 책임에도 현재 2020이 다 된 시점을 관통하는 유의미한 부분이 있었다. 토론 또한 항상 그랬듯이 유쾌하고 많은 얘기들이 오가서 즐거웠고…

저번달에 게으른 86년생 조동진이 온다고 멘트를 써서 책을 게으르게 읽지 않고 미리 읽어보려 노력했으나 역시나 그랬듯 게으른 86년생 조동진님은 급하게 책을 또 읽었고요.
책을 미리 안 읽은거 자체가 게으름의 방증일까요?  아무튼 게으름에 대한 찬양하기 위해 후기도 게으르게 날로 먹어보려는 생각도 해봅니다.

요즘 사실 회사에서 혹은 집에서 충분히 게으르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게으르다는 것은 일 외적인 시간에 해당되는 거겠죠.매일 피곤하다는 핑게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봅니다. 사실 여기서 보너스로 준 시간을 제대로  여가를 즐겨야 하지만 여가를 제대로 활용 못한 것에도 약간은 찔린 책입니다. 나 자체에 대한 나태함과 사회구조적으로 강제되는 부지런함에 대해서 생각해본 책이기도 합니다.

후기를 게으르게 한번 써보기 위해 이만 줄이렵니다.


종찬

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사람 같다. 그릇이 작고 얕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로 내 마음과 머리에 머무는 생각은 나와 내 주변에 대한 것들이다. 가끔 내 눈앞에서 일어난 일로 먼 곳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상에 머물 뿐 유용한 생각으로 빚어지는 일은 없다.

읽으면서 소재라고 해야 할지 분위기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생경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까지 거시적이고 점잖게 사물들을 단정하는 태도가 요즘의 나에게는 뜬금없는 모양이다. 러셀은 저 정도 크기의 이야기를 저런 태도로 쓸 수 있어서 유명해진 건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요즘 나는 저런 단위에서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어 버린 것 같다. 저렇게 큰 단위는 고사하고, 나 스스로가 직업으로 삼고 있는 개발자라는 집단조차 묶어서 생각하는 것이 의식적으로 불편하다. 그냥 나는 나고, 그 이상으로 뭘 엮어서 이야기할 자신도 없거니와 힘도 없다. 스스로 개발자라고 부르는 것도 요즘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개발을 업으로 하는 동안의 박종찬…정도로 바꾸는 게 더 맞는 거 같고.

그냥 아무 판단도 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냉소적인 걸까. 그래도 내 삶 주변에서는 예전보다 훨씬 내 맘에 드는 선택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건 상대적이고 스스로 냉소적으로 살려고 한 적은 없으니, 그냥 좀 더 신중한 것으로 믿으면 어떨까 싶다.

삶의 진실을 찾지 않더라도, 눈 앞에 있는 사물이 가지런히 놓이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싶다. 아무것도 약속되지 않고 약속하지 않는 홀가분한 길을 걷고 싶다.

4시간만 일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삶의 방식이라는 게 좀 유감이지만.

1. 토론장소가 너무 좋았다. 넓고, 직선이 많고, 밝았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적절한 보상을 받는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것도 좋았다. 조화로워 보였다.

2.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무용한 지식에 관한 이야기였다. 세상은 이미 무용한 것들을 당연히 배우는 중이고, 잘 활용하겠다는 마음만 먹는다면 개인의 삶은 충분히 재밌어질 여지가 있을 것 같다.

다음 달에 봐요!


준민

토론 때 이런 저런 메모를 많이 했습니다. 후기를 쓰기 위해서 들춰보는데 눈에 들어오는 게 있네요.

여가란 체력이 중요하다.

영진이 물었습니다. 하루 4시간의 시간이 생기는 게 8시간 일을 하고 생기는 것이냐 아니면 노동시간이 4시간 단축되어 4시간이 생기는 것이냐고. 네. 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는 체력이 정말 중요합니다. 꼭 여가만이 아니라 무엇이든 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필요합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거죠.

그 다음은 우리 시대의 냉소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언젠가 아는 분이 저에게 진보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여쭈니 그래도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그러니까 진보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답을 주셨습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저는 여전히 많은 것들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나아질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희망을 품고 사는 편입니다. 예전의 저는 꽤나 냉소적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많이 변했고, 어쩌면 그 당시에도 냉소적인 사람이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희망 같은 무언가를 품고 사니까요. 저도 언젠가는 연애를 할 수 있겠지 뭐 그런 거.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모든 게 잘 안 될 것만 같은 순간이 옵니다. 이런 저런 장벽을 느꼈을 때도 그렇지만, 그럴 때 마다 늘 체력의 문제가 따라왔습니다. 막혀 있다고 해도 힘이 좀 남아있으면 추스려 볼 수 있지만, 체력이 없으면 힘듭니다. 그럴 때 변합니다. 냉소적이고 공격적으로. 모든 것에 까칠하게 대응합니다. 태도가 문제가 됩니다.

러셀이 말했듯, 태도는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까칠한 태도에서 나오면 사람의 반감을 일으킵니다. 까칠한 말은 다른 사람에만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상처를 냅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그러다가 또 나쁜 생각을 하게 되고. 악순환이 반복되죠.

그렇기 때문에 체력입니다. 여가를 즐겁게 보내기 위해서. 희망적인 생각을 이어가고 힘들 때 버티기 위해서. 그리고 그러고 싶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고 마는 까칠한 태도를 막아 내기 위해서.


미정

주52시간, 저녁 있는 삶이 이슈로 떠오른 건 비교적 최근 일입니다. 지금도 완벽하진 않지만 여가 시간이 예전보다 확보되었다면, 나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여유를 뼛 속 깊이 즐길 준비가 되어있을까요. 그 시간을 삶을 충만하게 채울 수 있는 무용한 지식으로 채우고 있을까요. 스스로부터 그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삶을 리프레쉬를 할 수 있는 무용한 지식이 무엇일지 아직도 확실하진 않습니다. 사실 유튜브를 보는 것 조차 저는 단지 현실을 회피하거나 혹은 유용한 지식을 찾으려 했습니다만, 그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무용한 지식을 파고들어 즐거움을 찾진 못한 것 같습니다.
러셀의 말이 지금 시점에서 모두 옳은 말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너는 무용한 지식 하나는 갖고 있냐고 꾸짖어주는 건 휴식시간을 그저 갖갖 시발비용과 미디어의 홍수 속에 떠다니는 저를 깨워주는 말이라 의미 있었습니다. 휴식도 충분히 값질 가치가 있는데 말이죠.

+ 맛있는 커피와 함께 난해한 책을 벗어나 집중하여 토론을 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병주

*냉소주의: 현대의 냉소주의는 인간의 동기나 행위의 좋음이나 진실성에 대하여 불신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특히 사회, 기관, 권력에 대한 높은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을 경우에 사회적, 도덕적 가치들에 대하여 불신하게 되는 경향이 짙어진다. 이러한 태도는 사회를 향한 좌절감, 불만, 환멸 등으로 도출될 수 있다.

토론을 마치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냉소주의였습니다. 기억에 남았던 이유가 저 또한 사회를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인거 같습니다. 위에 써 놓은 것은 두산백과에서 찾아본 냉소주의의 정의입니다. 핵심은 불신, 기대, 그리고 표출인거 같아요. 기대와 불신은 원인은 다양할 것이고 어떤 것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둘은 주변에 너무 만연해진 것 같습니다. 누구는 화, 혐오 등으로 풀어내고 또 누구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거 같습니다. 전 후자인 거 같아요. 그냥 사회에 대해 높은 기대가 아닌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고 사는 거 같습니다.

이런 냉소적인 생각들과는 별개로 저에게 이번주는 동심으로 돌아갔던 주였습니다. 워터파크, 놀이공원 그리고 안동으로의 여행 너무나 재미있었거든요. 딱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옛날에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을까요? 지금은 왜 그런 식으로 재미를 못 느낄까요? 농담이 재미있었을까요? 이제 어느 정도 미화되어서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고 뭉뚱그려서 '아 너무 재미있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번 여행은 그 뭉뚱그려 느껴지던 기억들을 펴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나중에도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매일 매일을 재미있게 살아가고 싶다? 지금 이 시간을 헛되이 쓰기는 너무 아깝고 정말 소중한 시간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거 같아요. 행복한 기억들이 많아지려면 더 좋은 사회로 만들어가야겠지만 나에게 그 정도의 여유도 없고 나의 열정과 힘은 쏟고 싶지는 않네요. 그저 남들이 일궈 놓은 변화에 숟가락을 얹고 싶은 마음? 지금 제 마음의 결론은 극악의 이기주의와 냉소주의의 끔찍한 혼종이네요.


영진

하루 근로시간을 4시간으로 줄이면 어떻게 될까요?
투잡을 뛸거라는 어떤 패널의 의견이 생각나네요.
단서를 달아서, 8시간을 근무 할 때와 동일한 수입을 유지한 상태로 4시간이라면요?
공부? 레저? 문화활동? 선택지가 너무 많아 생각하기 힘드네요;;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퇴근 후 또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길 것 같네요.
(토론을 한 달에 두 번 할 수 있을지도?!)

토론장소, 토론내용 모두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노동과 노동시간, 노동의 가치환산 등 생각할 거리가 많이 나온 하루였어요.
그래서 그런지 2차 뒷풀이 분위기가.. 다들 생각하느라 진이 빠져서 그런 것이었겠죠?

노동의 가치환산에 대한 책을 좀 찾아봐야겠습니다.


세진

올해 초 7월 토론을 진행하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이번 여름이 이렇게 바빠질 줄 몰랐습니다. 발제도 두어번 경험이 쌓이면 편하게 할 줄 알았는데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세미나급 행사를 하나 무사히 마친 후의 홀가분함이 몰려듭니다.

즐겨 보는 북튜버 <겨울서점>은 '휴가지에 어울리는 책'이라고 이 책을 소개한 바 있는데, 내용은 어울린다 한들 난이도가 어울리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확실히 현재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통찰력 있는 책이기는 하나, 당시의 사회상과 사상적 배경을 어렴풋하게만 아는 상태로는 이해가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어요. 나름대로 이해한 범위 내에서 지금 우리의 시대와, 삶과 관련되는 지점을 찾아보려고 했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것저것 많이 덜어냈는데 그렇게 하기를 잘 한 것 같아요. 진행할 때는 계속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서 잘 하고 있는건지 어땠는지 판단이 잘 안 되었는데, 다행히 토론이 좋았다고 말씀해주신 분들이 계셔서 진짜 감사했습니다.

여러 이야기 중에서는 일 중심의 삶을 벗어나기 위한 방향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사실 토론 전 주의 대학원 세미나에서 "4차산업혁명시대 미래교육"을 주제로 토론을 진행했는데, 그 때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인공지능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에서 인간 직업의 많은 부분이 대체되어 간다면, 인간만의 고유한 역량과 가치는 다르게 규정될 것이고, 그때는 노동의 가치가 다르게 측정될 거라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매뉴얼화할 수 있는 반복작업은 사라지고 창의성, 공감, 의사소통 같은 역량이 높게 평가되겠지요.
이렇게 되면서 지금 있는 많은 직업은 소멸될 것이고, 교육은 '직업이 없는 시대'를 살아갈 준비를 아이들의 세상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두려워하지만, 어쩌면 러셀이 말하는 '게으를 수 있는 사회'로의 진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여가의 바탕이 되어야 할 사회적 경제적 안정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도 같이 병행된다는 전제하에요. (러셀은 사회주의의 실현을 통해 가능하다고 했지만, 과연 21세기에서는 그 이상이 어떤 제도적 형태로 구현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여전히 자기계발 신화의 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권태로움에 취약한 한 사람으로서, 좀 더 게으르게 여가를 즐기는 삶을 상상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당장 오지 않은 미래를 마음껏 생각해보는 것이야말로 '무용한' 상상력의 힘이고 문명을 추동하는 여가의 힘일 것입니다.

무용한 이야기를 마음껏 하는 독한녀석들과의 시간이 참 좋습니다. 8월에도 또 만나요 :-)

워드 클라우드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2020년 2월 정기 모임 <사람, 장소, 환대>

2023년 4월 토론: 아버지의 해방일지

2023년 12월 토론: 사랑의 생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