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정기 모임 [ 90년생이 온다 ]


<90년생이 온다>

발제

배병준

발제문


위치

서울역 근처 볕 좋은 마당이 있던 집

후기

혜리

아침저녁으로 지하철 안에서 '90년생이 온다'를 읽었어요. 그럴 때마다 꽤나 자주 어르신들이 이 책을 들고 있는 걸 발견하고 저분들은 나 같은 90년 대생들을 이해하려 하시고 계시는구나 생각했더랬죠.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00년 대생들에 대해서였어요. 이제 내가 만나게 될 00년 대생들은 또 우리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행동할 것이고 그들은 90년 대생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들이요. 토론을 하면서는 '우리 독토 멤버들은 서로 많은 동일한 경험들을 공유하고 있구나.' 느꼈고 살면서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지 다짐하는 토론이었습니다.
거의 1년 만에 독서토론에 참여했습니다. 1년 만에 만나도 엊그제 만난듯한 기분이 드는 좋은 사람들과 보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거기에 너무나 좋은 날씨와 좋은 공간까지 함께 말이에요.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보영

처음으로 끝까지 읽은 이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자주 집중이 깨졌습니다. 아직은 익숙지 않아서 그런가 했는데, 이야기하다보니 종이책을 읽으면서 위치와 이미지를 기억하는 버릇이 여기서는 통하지않아서 그런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종이책이 좋습니다. 기기가 지금보다 발달되어도 종이책을 놓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일상의 익숙함, 과거생각, 그리고 사소한 것들까지 생각게하는 책과 발제였습니다.
회사것들이 90년대생이라 읽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읽으면서 들던생각은 90년대라는 틀에 놓는 것보다 개인의 성향이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오히려 회사것들이 엄청난 꼰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의 차를 이해하지 못하는 서로의 잘못일 수도 있으나, 퇴사를 결심하고 통보한 오늘 책을 부분부분 다시 읽으니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 같습니다. 처음 읽었을때와 다르게 논문이라 생각하고 읽으니 재밌게읽히기도 하네요. 역시 마음의 차이...
장소도 좋았고, 하늘도 좋았고, 고기도 맛있었고, 모기에게 헌혈한것도.. 모든게 좋은 날이 었습니다.


종찬

80년대 후반생들이 어린 시절을 보냈을 법한 집에서 80년대 전반생이 90년대생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묘하게 평온해지는 것 같았다.

가까이서 보던 비극이 멀리서 보니까 덜한 건지.
그 날 그 집의 분위기가 그렇게 만든 건지.
맑고 따뜻한 날이었다.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마당.

이 시간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세상을 그 나이로 살아보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심연이 있을 거다.
계속 함께 살 거라면, 이해는 조건 없이 해야 할 것 같다.

마루에 누워 그런 생각을 하니까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희망차게 멍하니 누워 있었다.

좀더 따뜻하게 지내자.


동진

책을 간단히 살펴보자면 90년 생이온다고 제목은 잡았지만 기성세대와 현세대까지의 차이로 봐야될 책이다. 즉 몇년생을 기준으로 잡는 것이 의미가 있는 일인가 싶지만  제목을 차치하고 이전세대들과 지금의 세대의 차이에 대한 책으로 보자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발제자의 책고른 의도는 당신이 이전세대들과 어떤차이를 보이는지 발제문에 뽀인트가 있는 듯 하다. 참고로 공무원을 지원한 젊은이들에 대해 내용상당부분을 할애했는데 일정부분 동의 혹은 동의하지않는다. 우리 토론이 책읽기보다는 즐거웠으며 발제문의 완성도가 좋았으며 그래서 더 많은 애기가 나온거 같아 좋았다. 발제문중에서 '동일한 경험 동일한 세대'에 관련된 애기가 기억에 남는다. 책을 읽는 행위가 간접적인 경험이라고 할 때  우리는 7년이라는 시간을 같은 책을 읽고 동일한 경험을 한셈이고 동일한 세대가 맞을것이다.(*물론 느낀바는 모두 제각각일 것이지만 뭔가 감회가있다*)
중간결산 장소도 매우 맘에 들었다. 그러고 보니 후기도 늦게 쓴거 같아 진짜 게으름뱅이 맞는거로ㅠ...
<86년생 게으름뱅이가 온다 올림>


준민

1) 토론 때 첫 번째 질문은 <90년생이 온다>에서 인정하는 부분과 인정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90년대생을 이해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이 이 책에서 가장 인정하는 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모임을 마치고 생각해보니 시도가 무조건 좋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설픈 시도가 오해를 낳을 수도 있으니까요.

일반적으로 시도는 좋은 것입니다. 어쨌든 시도를 했다는 건 좋은 겁니다. 시도를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단순히 시도했다는 사실에 만족하면 결국 시도에 그치고 맙니다. 무슨 일이든 벌리기만 잘 정리하지 못하겠지요.

균형을 잡는 게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시도했다는 사실에만 만족하면 시도 이상을 얻을 수 없고, 시도 이후의 완성도를 너무 따지다 보면 시도 자체를 못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2) 모임이 끝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세대차는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 차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연령 차이가 훨씬 클 것 같아요.

세상이 빠르게 바뀐다고 하지만 그 바뀐 세상을 같이 살고 있고 공통된 경험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뭐, 세부적으로 보면 제가 보는 유튜브가 어머니가 보는 유튜브나 애들이 보는 유튜브와는 다르겠지만, 크게 바라보면 결국 유튜브라는 건 같으니까요. 진짜 차이는 아예 유튜브를 접하지 않는 분들하고 생깁니다. 그 차이는 83년생이 90년생을 바라보는 고작 7년따위가 아닐 겁니다.

그래서 10년을 놓고 세대 차이를 논하는 것이 좀 가소롭게 느껴졌습니다. 뭐, 저도 90년대 후반생과는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으니, 시간이 흐른 뒤에 제 생각을 가소롭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르더라. 진짜 세대차이가 있더라고. 뭐 이렇게요.

3) 요즘 들어 다름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같음에 초점을 맞추는 게 살아가는 데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 그 같음이라는 게, 나는 할 수 있는데 왜 너는 못하냐, 이런 식으로 흘러가면 안 되겠지만요.


미정

심심함을 달래려 인기있는 노래 차트 100을 열어보면, 상위 차트에도 모르는 노래가 한가득이고, 들어보고 싶은 마음도 잘 생기지 않는 요즘입니다. 음악 차트의 차이는 이제 80년생인 저와 2000년대생인 밀레니엄 세대 출신의 간극일 것입니다. 벌어져버린 음악 취향에서 90년대 생과의 차이와 이 사태가 주는 시사점을 어떻게든 찾아보려 합니다. *정말 저는 요즘 새로 나오는 노래들이 좋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려워 힘들 지경입니다.
서로 아는 노래가 다르단 것은, 영유해온 시대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같은 시대에 함께 눈을 뜨고있었지만, 서로가 주요하게 느낀 시대는 다릅니다. 저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치며‘서서히 취업시장이 얼어붙’어가고, 때로는 00년대에도 대학의 낭만이라는 이유로 바닥인 학점에도 즐거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세대는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 취업률과 나아가 공정하지도 않은 채용시장을 맞닥뜨리고 있고, 대학에서의 낭만은 과방도 없을! 정도로 누릴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혜리의 증언이 참 현실적이었지요). 사실 미세하게 다른 시대를 살고 있으나 경험이 확연히 차이나는 서로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할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새로운 노래를 듣지 않으려는 저의 취향이 책에 적힌 기성 세대와 동일하다고 생각됩니다. 비록 꼰대적 기질에는 누구보다 몸서리치는 저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최근 유행어와 그들의 소소한 직업적 소명을 모두 이해하지 않으려했던 게 사실입니다. 주류인 세대에 편승하려고 했으면 했지, 비교적 당황스럽게 느껴지는 10대, 20대 초반의 당돌한 마인드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유행어를 더 아는 게 사실 뭐가 중요할까요, 다만 classic은 통한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좋은 노래는 세대를 거쳐도 사람들에 꾸준히 스트리밍되고, 때로는 리메이크 되기도 합니다. 기존의 모든 것이 아닌 좋은 옛날, 기존의 생각을 갖고 발전하며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저의 자리에서 현 과제이고, 희망 사항이고, 나아갈 길이라 생각합니다.
음악은 늘 흐르고 있으니 서로가 서로에게 닿을 수 있겠죠.


병주

오랜만에 참가한 토론에서 많은 것들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책은 조금 아쉬웠지만 너무나 좋은 장소와 재미난 토론을 해서 좋았습니다. 특히 한번도 독토의 한강 모임을 가보지 못한 입장에서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고 그냥 풍경이나 날씨 너무나 완벽했었던 거 같아요.  토론에서 가장 흥미있던 부분은 아마 80과 90의 구분점이었습니다. 이번 학기 학회를 하면서 우리 세대가 갖고 있는 특징에 대해서 많이 알아봤던 거 같아요. 찾으면 찾을수록 느껴지는 건 사회의 분위기가 바뀌고는 있는데 그것의 원인을 뚜렷이 찾기는 힘들다는 점이었어요. 이것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90년생이 들어가면서 생기는 변화인지 아니면 기존의 기성세대인 60,70이 나가면서 그들에게 생기는 변화인지 아니면 그것 외의 다른 요인에 의해 생긴 변화인지.... 변화의 시작점이 무엇인지가 정말 모르겠더라구요.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기대하면서 책을 봤었는데 책은 이런 포인트를 집어주지는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이번 토론에서 느꼈던 것은 과연 80과 90 사이의 갭이 크지 않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형과 누나들의 이야기가 크게 위화감이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책보다는 토론에서 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이와는 반대로 한학기 동안 학회를 하면서  90후반 애들과 이야기를 하는데 나랑은 너무 다른 것이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더라구요. 그렇기에 토론을 하면서도 그들과의 위화감에 대해 많이 이야기 했던거 같아요. 오히려 학회 친구들과 나이 차이는 진짜 몇 살 안나는데 왜 그렇게 느껴질까 생각해봤더니 결국 토론서 이야기가 나왔던 배움인거 같더라구요. 즉 그냥 차이를 인정하고 너와 나는 다른 사람이야라고 벽을 쳐버리는 것인거죠. 90 후반애들이 왜 그런 것을 하는지 이해해보거나 배우려는 노력의 유무가 차이를 만드는 것 같더라구요. 요즘 들어 더 my way로 살아서인지 그 경향이 더 공고해지는 거 같네요. 최근에 트랜드를 정의하는 글을 본적이 있어요. 그 글에서 트랜드란 새롭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기저에 깔려 있던 것들이 확산되고 심화되는 것이라 정의하더라구요. 배우고자 하는 노력이 있으면 기저에 깔려있는 것들의 변화를 캐치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렇다고 지금 저의 꼰대 같은 모습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바꿀 생각도 없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바꿔보려고 합니다. 인스타라도 해야되나 싶긴하네요.


영진

날씨가 매우 더웠음에도 토론장소의 나무그늘 때문에 토론의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책을 살 때 주변을 의식하게 되더라구요, 책 표지와 내용은 회사 중진이 읽을 법한데 사회 초년생인 내가 사려니 잘 안 어울린다고 속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20년 후에도 이런 종류의 책이 나오겠죠? 그땐 과연 어떤 마음으로 책을 고를지,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을지..
발제자의 노력으로 토론 후 뒷풀이는 정말 운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더불어 맛있는 고기와 비빔면 까지.. 토론부터 뒷풀이 까지 모두 곱씹으며 재밌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주제여서 많이 웃고 많이 떠든 토론날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병준

'나와 같은 세대 또한 꼭 죽음이라는 단어를 빌리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낡아 사라지고, 다음 세대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 그 시점이 언제인지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내가 이제는 새로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세대를 맞이하며 공존의 길을 찾는 일일 것이다.' p.13

토론 중에 동일 세대를 구분 짓는 '동일한 경험'으로 '교육 과정'이라는 키워드가 나왔다. 80년대 후반 생들은 '이해찬 세대'의 끝물로서 '하나만 잘 해도 먹고 산다'는 병맛같은 말에 저마다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겠으나 분명 삶이 휘둘렸을 게다. 돌이켜 보면, 정작 '무엇을' 잘하는 지에 대한 고민은 빼먹은 채 그냥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부푼 희망만 키운 것 같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동생들은 그 딴 희망마저 없는 디스토피아적인 사회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희망이 없으니 꿈도 없고, 당연히 오늘을 참고 넘겨야할 이유도 없다. 대학의 낭만을 전설로만 듣고 커 온 후배들에게, 또 언젠가 태어날 내 아이들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맞고, 또 어떤 꿈을 꾸라고 조언할 수 있을지 진정 고민하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원래 토론 논제 중에 '회사 안에서의 꿈 혹은 회사 밖의 꿈이 있나요? 둘 다 없다면 혹시 독서토론에서 이루고 싶은 꿈은 있나요?'라는 문항이 있었다. 시간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최종 탈락하게 된 이유는 사실 내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없더라. 꿈이 꼭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꼰대에 속하기는 싫지만, 있으면 좋은 게 또 꿈이 아닐까 싶다. 꿈이 있던 때가 언제인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입사 전이었던 것 같고, 마지막으로 꿈이 뭘까 고민했던 시점은 결혼을 준비하던 즈음이었던 것 같다. 생각난 김에 올해가 가기 전에 잃어버린 꿈을 꼭 찾고 싶다. 혹시 모르잖아... 뚱뚱한 회사원에서 꿈을 기억해냈더니 날렵한 피터팬이 될 수 있을지.

+ 이 모임의 끝을 생각해 보았다. 언젠가는 이 모임이 끝나거나 혹은 나 아닌 다른 사람들로 채워질 '독한 녀석들'을 상상하다보니 기억할만한 토론 하나쯤 남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공을 좀 들였다. 한달 전에 책을 다 읽고, 2주 동안 발제문을 10번 넘게 퇴고하고, 토론 장소나 뒷풀이에도 신경을 꽤 썼다. 아마도 다음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끝이 나지 않았다면 나는 또 마지막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겠지. 두려운 것은 그 다음이다. 길지 않은 삶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늘 모임이 이어졌다. 하나가 끝날 무렵이면 다른 또 하나의 모임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모임이 끝나면 새로운 모임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마도 主가 아니라 客이 되는 것이 이제는 낯설기 때문이리라. 세대가 옮겨지는 것도 비슷할 듯 싶다. 내가 늘 주인이다가 갑자기 손님이 된 기분, 카메라 앵글에서 점차 벗어나는 기분, 그렇게 40대가 되고, 그렇게 노년이 되면 누군가 내 이야기, 내 나이 또래의 이야기를 이렇게 글로 써줬으면 하는 바람이다.「80년생이 간다」뭐 이런 제목으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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