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정기 모임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파도가 바다의 1이라면>

발제

이병주

발제문


위치

서울 용산구 청파로 290 <청파로 미쁘다>

후기

박종찬

후기를 쓰는 데 이렇게 힘든 적이 있었나 싶다. 뭔가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마치 안개 쌓인 숲을 바라보듯 몽롱하다.

후기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다들 후기에 대해서 받아들이는 게 이렇게 다르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많은 후기를 썼는데. 6년동안 썼는데. 그래서 후기에 대한 건 어느 정도는 다 안다고 생각했다. 후기를 읽어보면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 알 수 있다고 착각했던 것도 같다. 다른 사람들이 후기를 쓰는 마음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날아가 닿기는 커녕, 심연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책에 대해서도 그런 느낌이다. 심연이 정확히 어디에 어느 정도 깊이로 있는지 알기만 해도 넘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문제는 심연이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것. 책에 대해서도 내가 가 닿지 못한 그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그 사이에 얼마만큼의 심연이 있는지, 의미라는게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만약 독자로 하여금 이런 상황에 놓이게 하는 게 작가의 의도라면 성공한 것도 같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자기 존재의 기원을 찾는 이야기가 인기가 있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결핍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결핍은 채워서 없앨 수도 있지만, 결핍의 이유를 아는 방식으로 없앨 수도 있다. 요컨데 내 탓이 아니면 된다. 어린 시절의 사건이나 잘못된 부모님의 양육법 같은 것들. 화풀이로 먹는 초콜릿 같은 것.

그래서 회사에 있어야 하는 평일 동안에는 후기를 쓰는 게 어려웠던 것 같다. 회사에 올 때마다, 그런 것들은 제쳐놓고 눈앞에 있는 작업에 열중하게 되니까. 회사 내에서의 내 행동에 더 집중하게 되니까. 이번 후기에서도 이렇게 나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하나 찾아다가 붙여본다. 늦어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다.


배송이

책은 상당히 재밌었습니다. 특히 심금을 울리는 문장이 여럿 있어서 몇개는 인스타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책을 펼치기까지는 어려웠지만 한번 펼치고나니 몰입감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마치 드라마를 보듯 책을 읽었는데 막상 토론에 가니 다들 저보다 훨씬 심층적으로 책을 읽으셨더라구요...! 덕분에 많이 배워갔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왜 희재가 유이치와 헤어졌는가에 대한 토론이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인식은 다른 사람과 교제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제 자신이 불안정하면 타인을 온전히 받아들이는데 무리가 있을테니까요. 그렇기에 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면 그동안 받아들인 타인이 사뭇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기본 전제 '나는 카밀라다' 그리고 또 다른 전제인 '나는 유이치를 사랑한다' 를 통해 '카밀라는 유이치를 사랑한다'라는 결론이 나왔는데, 기본 전제 자체가 아예 틀어져버린거니까요. 이런 상황이라면 전제에서 결론이 따라나올 수 없죠.

일년 뒤에 다시 이 책을 읽고싶어요. 지금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그때는 뭔가 보일 것 같거든요.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함께 바다를 보며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네요. 여러 진지한 이야기를 하다 마지막에,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한마디 딱 하면 좀 로맨틱하지 않겠어요?


정준민

1부를 읽을 때 이 글이 떠올랐습니다.

최근 은유 선생의 강의를 들었는데 재미있는 문답이 기억에 남습니다. 수강생 누군가가 "10년 정도 매일 자기 인생에 관해 글 쓰면 좋은 책을 낼 수 있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은유 선생은 "아니"라고 답하더군요. 그리고 "대신 인생이 변합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책 내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글쓰기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글쓰기를 통해 내 삶의 가치가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책이란 오롯이 그 부산물로 나타나는 결과일 뿐입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꾸준히 글을 쓰는 이라면 결국 자기 이름을 건 책을 내게 될 것입니다.

- 프레시안의 '월요일, 출판사 투고가 넘쳐나는 이유는?'

글을 씀으로 인해서 카밀라는 지금까지 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카밀라가 아니라 희재로.

책도 그렇습니다. 친 엄마를 찾는다는 소재는 살짝은 달콤하면서 무언가 아련한 느낌을 주니까요. 그런 식으로 계속 갈 줄 알았지만 이야기는 과거로 흘러가면서 노동 이야기까지 갑니다.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만, 처음 인상과 많이 다르다는 말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라는 문장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죠.

많은 것들은 처음 예상과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처음 예상대로 가는 게 매우 드문 일이니까요. 처음 독서 모임을 시작했을 때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죠.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후기를 쓰면서 각자가 처음의 모습과는 많이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기대가 됩니다. 지금 당장은 이번 모임의 후기가 기대가 됩니다. 모임 때 후기를 소재로 이야기를 나눠본 만큼 평소와는 조금은 다른 글이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최보영

19.3.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카밀라는 카밀라니까 카밀라밀라인거지” 카밀라가 너무 강렬해서 그 뒷 이야기들이 약하게 느껴졌으나, 기억이 반감될 때쯤, 지은의 뒷편부터 읽으니 캐릭터들 모두 각자의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냈다.   읽는 동안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휘몰아 쳐서, 혼돈을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신혜숙처첨 잔인하게, 미옥처럼 무책임하게, 최성식처럼 비겁하게, 진남의 사람들처럼 방관하면서… 사람들 마다 생각이 다르고, 기억하는 것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누군가를 극한으로 몰아갈 정도였다면 기억을 해야하는게 마땅하지 않을까? 자신에게 합당한 과거를 선택한다고 하고, 나역시 그렇겠지만 책을 덮고 난 후에 멍함과 분노가 함께 찾아왔다.
 과거의 어떤 상황에서 친구들마다 다른 이야기들이 나올 때가 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억울할 때도 있고, 어의 없을 때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다. 어떻게 저렇게 받아들였지?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친구들도 내 이야기에 저렇게 생각할 때가 있을 것이다.
카밀라 편을 볼 때에는 마냥 흥미로만 읽었는데, 지은과 우리편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을 보면서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참 무섭다고 느껴졌다. 이상적이지만 작가가 말하는 심연을 건너 본심에 닿을 수 있는 날개가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숙대 생각보다 위치가 괜찮네요~ 여러 다양한 생각들도 많이 나온 것 같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많이 안 읽는 것을 알게되어서 좋았습니다. 지각 안해서 좋고, 책도 좋고, 장소도 좋고, 뒷풀이 장소도 좋고, 마냥 좋은 모임이었습니다.  끝!!


배병준

'삼십 대의 중반을 넘기면서 그런 나날들마저도 지나가고 전화벨도 더 이상 울리지 않으면서 하나의 인생이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p. 251

'요즘 세상에는 값싸게 즐길 수 있는 고독이란 게 없어...우리 시대의 고독이란 부유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럭셔리한 여유가 된거야.' p. 244

심연, 날개, 풍문 등 이 책에서 다뤘던 소재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고독'이라는 소재가 가장 끌렸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는 제목과는 굉장히 모순되지만 카밀라의 고독, 지은의 고독, 그리고 서른 이후에 '우리'가 보편적으로 느끼는, 아니 누리고 싶은 고독까지 덤덤하게 잘 풀어낸 것 같아 좋았다. 사실 지은이 죽음을 선택한 것은 '핍진성'(김연수 작가의 에세이 '소설가의 일'에서 언급)이 좀 떨어진다고 느꼈다. 자신의 딸을 날개라고 생각하고 애지중지하던 지은이었는데 그 딸만 세상에 남겨놓고 홀로 떠난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의 고독은 그렇게 일차원적으로 바라볼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모바일과 SNS로 선 없이 하루 종일 연결되어 있고, 혼자서는 밥 한번 먹기도 주위 눈치가 보이는 현시대에 내 고독도 아닌 남의 고독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토론은 다소 아리송한 부분이 있었지만, 소설을 주제로 토론을 하면 늘 그렇게 되는 것 같다. 그게 또 소설의 매력이고. 이번 토론은 다른 무엇보다 토론 후기와 관련한 각자의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못내 귀찮은 일거리 일 수 있지만 적어도 내게는 토론의 완성이고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라 무척이나 애정 한다. 시간을 내어 책을 잃고, 또 시간을 내어 토론을 하고, 덧붙여 이 글을 쓰기 위해 시간을 들인다는 것. 먹고사는 일이 아닌 무언가에 이렇게 시간을 쏟을 수 있다는 것은 비록 고독은 아니지만 충분히 '럭셔리한 여유'이리라. 삼십 대의 중반을 향해 가는 요즘, 실제로 한 사람 말고는 전화도 잘 오지 않고, 하나의 인생이 서서히 빛을 잃어갈 때, 캄캄한 밤의 장막 뒤에서 대체 나는 무얼하며 이 긴긴 밤을 보내야 하나 고민해보는 나날이다.


김미정

누군가는 ‘서른이 넘고 나서는 새로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을 확신하고, 단단하게 만들어간다’라고 했다. 갓 배움을 시작한 상태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벽하게 배운 상태도 아닌 것이 30대임을 느껴가고 있다. 예전으로 따지면 40, 유혹되지 않는 불혹이다. 사실을 보고 자신의 식대로 해석하기도 하고, 사실이 아닌 것을 보기도 한다. 사실이 아닌 것을 보면서 사실이라고 믿기도 한다. 찌라시가 그렇다. 사실이 아님을 의심하면서도 믿기도 한다. 소설 속에서 이러한 현상의 피해자는 지은 한 명이었지만, 현실 속에서 이러한 피해자는 물론 더 많을 것이다.
여기서 더 무서운 것은 소설 속의 ‘우리’들처럼 어리석게 소문이나 사실 아닌 것들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소설을 읽으면서 의심스러운 정황대로, 혹은 더 자극적인 방법으로 카밀라의 출생의 비밀을 나는 상상하고 있었다. 나를 의심하는 일, 토론에서 나온 것처럼 나의 확증편향이 있음을 인지하고 다른 증거에 비추어 판단하는 것이 나를 불혹 아닌 불통으로 이끌지 않는 길이다. 사실 완벽하지 않은 나의 묘하게 어그러진 모습을 더 굳혀가고 유지하는 것의 가장 1차적 피해자(?)는 자신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은 사람임을 자부하지만 실제로는 기울어지고 어그러진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걸 스스로 깨닫게 되는 날, 나는 이제까지의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마저 상처주고 오해하며 나은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타인의 심연 혹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그어놓은 심연을 건너는 일은 평생을 해도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부당히 오해하고 오롯이 스스로만을 믿어 심연을 더 깊고 넓게 하는 것은 막아야하지 않을까. 불혹 이전의 나이에서.


전세진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이런 인간의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ㅡ 김연수, <세계의 끝 여자친구> 작가의 말 중

1. 언젠가 인스타그램에서 이 글을 본 것이 김연수 작가에 대한 첫인상이다. 서로 이해할 수 없기에 노력해야 한다는 명제를 저렇게 따뜻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단단한가. 다소 간지러운 책 제목은 차치하더라도 꼭 읽어보고 싶은 작가로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Tmi : 연희동 책바의 주인장께서 좋아하는 작가라며 게시판에도 종종 문구를 써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더 호감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2. 놀랍게도 무진기행 같았다. 안개 같았다. 소설의 배경도 그랬고 내용도 그랬다. 진남의 바다와 검모래는 음침하고 어둠컴컴하게 느껴졌고 이야기의 흐름은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알 수 없었다. 카밀라에서 희재로의 정체성 찾기를 그리고 싶은 것인지,  출처 없는 소문의 폭력성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타인에 대한 이해불가능성을 각인시키고 싶은 것인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잔인함을 알리고 싶은 것인지, 그 모든 것인지. 주제의식 하나를 진득하니 파고드는 스타일에 익숙해서인지 풀다 만 듯한 이야기에 끌려가는 모호함이 불편하기 그지 없었다. 1부 <카밀라>가 중편으로서 딱 좋았는데 중반부 이후로는 그만큼의 몰입감을 느끼지 못해서 산만해지기도 했다. 김연수 작가에 대한 기대치에 비해서는 조금 아쉬웠다. 대신 책의 모호함을 반영하듯 토론의 스펙트럼이 넓어 이를 상쇄시켜준 듯 하다. 책에 표시를 해 둔 부분이 상당 부분 발제문과 겹쳐서 반갑기도 했고, 같은 부분을 발췌하더라도 내가 발제자였다면 생각하지 못했을 질문을 맞닥뜨려서 전반적으로 신선했다.

3. 결국은 기억에 대한 생각들을 해보게 된다.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의도없이 취사선택된 기억들은 차곡차곡 쌓여 하나의 인간을 형성한다. 그것이 환희이든 절망이든 연민이든 사랑이든, 내가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그 기억의 편린들은 나의 현재를 꾸준하게 건드린다. 그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음에 절망하며 또 그 합당한 과거를 딛고 살아왔음에 안도한다. 그런 애증의 나를 인정하고 사는 건 쉽지 않은 과제다.

4. 웃으면서 인간은 한꺼풀만 벗기면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한다고 했고 그건 진심이다. 자기 자신조차 잘 모르는 것은 나도 그렇거니와 타인도 그렇다. 내 마음도 타인의 마음도 심연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겠지.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이해한다고 착각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해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보다는  적어도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다. 날개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꿈꾸는 사람이면 좋겠다.

+ 후기를 쓰며 벌써 10년전이 된 고등학생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매일매일 영혼 없는 시체처럼 살던 고등학교 시절 기계적으로 공부했던 수많은 책들이 스쳐갔고, 그 중 문학시간 교재로 썼던 푸른색 문제집이 떠올랐어요. 유난히 많이 졸고 멍하니 있다가 필기를 늘 망쳤던 그 책에서 봤던 시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섬>

++ '독토 후기'에 대한 질문을 생각하다보니 유난히 후기가 잘 안 써져서 대형 지각을 했습니다. (저는 후기를 쓸 때 무조건 발제문을 다시 읽고 씁니다. 뒤풀이 다녀오면 기억이 흐릿흐릿해요.) 건강이 상당히 안 좋기도 했지만 글쓰는 스타일에 대해서 다 털고 나니 더더욱 이 밑천없는 글을 쓰기가 더 힘겹더라고요. 다이어트는 안 풀리는데 졸업사진 촬영날이 다가온 딱 그 기분입니다. 다음달에는 조금 더 글쓰기가 편해지기를 소망해봅니다.


이병주

사람과 사람 사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심연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알다 가도 모르겠는 정말 아리송한 심연... 정말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가도 갑자기 절대 다가갈 수 없게끔 느껴지는 벽 같은 이 느낌을 심연이라는 단어로 정말 잘 표현한 거 같습니다. 내가 이런 감정을 느꼈던 만큼 남들도 저에게서 이런 감정을 느꼈을까요? 아마 남들만 알겠죠.

p287
일어날 수도 있었던, 하지만 끝내 이뤄지지 않은 일들을 들려주는 이야기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심연을 건너오지 못하고 먼지처럼 흩어진 고통과 슬픔의 기억들,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고 빛바램과 손때와 상처와 잘못 그은 선 같은 것만 보여줄 뿐인 물건들.

실제로 위 글처럼 심연을 보여주는 물건들을 모아 놓으면 어떠할까요? 처음에는 ‘당시에 조금만 더 배려했다면 달라졌을 텐데’ 와 같은 후회만 보일 거 같아서 맘 아플 거 같았어요. 좀 더 생각해보니 결국 그 물건들이 후회로 기억될지 추억으로 기억될지 구분하게 하는 것은 결국 지금의 나의 상태일 거 같아요. 나의 상태가 좋으면 긍정적으로 기억을 짜맞추지 않을까요? 너무 비약이려냐요?

 쓰다가 너무 감상적이게 되어서 이번 후기는 더더욱 묵혀 놓을거 같네요. 그래도 한달 동안 발제하면서 난 생각 그리고 써놓은 글들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많이 날 거 같아요. 어수룩한 발제였지만 다들 와주셔서 감사해요. 다음 발제 때에도 힘내보겠습니다.



워드 클라우드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2020년 2월 정기 모임 <사람, 장소, 환대>

2023년 4월 토론: 아버지의 해방일지

2023년 12월 토론: 사랑의 생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