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정기 모임 <콰이어트>


<콰이어트>


발제

김민경

발제문


위치

서울 중구 필동로1길 7 1층 카페 <이리로>

후기

전세진

 2019년의 첫 토론입니다. 독토에 온지 벌써 3년이 넘어가지만 토론은 여전히 즐거웠어요. 특히 새로 오신 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신 덕분에 발언이 편중되지 않고 균형감 있게 잘 흘러간 것 같습니다. 토론 시간만 되면 생각과 동시에 말이 술술 나가고, 토론이 끝난 책은 다시는 안 펴보는 걸 보면 꽤나 즉흥적인 외향형 인간이 된 것 같아 뿌듯합니다. 그러다가도 토론 내용을 곱씹어보면서 나 혼자만 너무 신나서 떠들어 댄 것은 아닐까 불안해지고, 후기를 쓸 때도 신중하게 말을 골라서 써야 마음이 편한 걸 보면 타고나기가 내향형 인간인 것 같습니다. 

 외향형 이상을 강요하는 사회, 외향적 인간들이 득시글거리는 세상에서 내향적인 사람에 대해 변호해주는 책의 내용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편도체의 반응성에 대한 뇌과학적 설명도 흥미로웠고, 자유특성가설처럼 어떻게 내향적인 사람이 외향성을 획득하는지에 대한 이론적 설명도 신선했습니다. 어떤 이론, 가설 같은 설명을 통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이름을 붙이고, 명쾌한 답을 제시하려고 하는 부분이 유난히 좋은 걸 보면 이것도 정말 뼛속까지 내향형 취향인 것 같네요.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처럼 하나하나 뼛속까지 내 얘기라고 공감이 가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사례들도 나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분량이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사례를 수집하는 것’ 역시도 저자의 성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자신이 궁금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직접 강연과 세미나를 뛰는 저자의 모습에서 약간의 동질감도 느껴졌습니다. 미지의 영역의 것들을 최소한으로 하고 싶은 ‘위험 회피’ 성향은 역설적으로 적극적으로 무엇인가를 배우러, 체험하러 뛰어드는 적극성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런 내향적 인간의 향기가 묻어나는 글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사회생활을 할 때 외향성이 더 요구된다는 명제에는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내향적인 인간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힘들지 않나요. 어릴 때 외향적이었던 사람들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처럼 깨지고 깎이면서 자신을 숨기는 내향성을 채우고, 내향적인 사람은 사회생활을 하며 화려한 퍼포먼스를 위해 공포와 맞서면서 꾸역꾸역 외향성을 채우는 것 같습니다. 그 강요된 내향성과 외향성이 혼재된 상태로, 상황마다 요구되는 얼굴을 만들기 위해서 힘들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건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고난 게 외향적이면 어떻고 내향적이면 또 어떤가 싶기도 합니다.

 인생 1회차 스물여덟 번째 해는, 타고난 것은 타고난 대로, 내가 원해서 만들어낸 것은 그것대로 자연스러운 나로 받아들이고 살아야겠습니다. 안 그래도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내 마음이라도 조용하고 편안했으면 좋겠습니다. 

박종찬

게임 이야기를 하다 보면, 밸런스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테다. 특정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보다 월등히 유리하거나 하면 사기캐라고 불리고, 그 정도가 심하면 개발사가 욕을 먹는다.

한편으로는 하나의 캐릭터 안에서도 그 캐릭터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실력이 갈린다. 어떤 사람은 일반적으로 똥캐로 불리는 캐릭터도 잘 활용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사기캐를 잡고서도 그 장점을 활용하지 못한다.

콰이어트는 세상의 밸런스를 들여다본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다. 모두가 가진 능력(크기, 방향, 종류)이 다르고, 성격도 다르다. 그리고 그에 따라 각 개인의 경쟁력은 (당연하게도) 달라진다.

사회 차원에서 보면, 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기는 어렵다. 완벽한 밸런스는 비디오 게임에서조차 찾기 어려우니 당연한 일이다. 근데 정도가 심하면 좀 패치를 해야 한다. 손절하는 사람(어떤 방식으로든)이 너무 많으면 사회든 게임이든 문제가 되니까. 

개인 차원에서 보면, 유불리를 떠나 지금 들고 있는 이 캐릭터를 이해해야 한다. 딜러가 아닌데 자꾸 물리 데미지를 불평하면 안 된다. 말을 잘 못하면 개발을 배우든가 하는 식으로.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이렇게 사례를 총동원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아이디어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상황을 아는 것도 중요한 거 같아서.

그래서 이제 조금 더 (지금까지보다도 더) 당당하게 가기 싫은 곳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다음 달 발제가 나다. 아이고.

배송이

프롤로그에 이런 말이 있어요.

"여러분이 이 책에서 가져갈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통찰이 있다면, 나는 그것이 '자기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된다'는 느낌이라면 좋겠다." 저자가 말한대로 전 제 자신을 전보다 더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한때 가까웠던 사람이 저더러 참 이상하고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여러 대외활동을 하면서도 혼자있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하는 제가 그 사람에겐 참 모순적이었나봐요.

저자가 말했듯 세상에 완전히 내향적/외향적인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완벽한 '이념형'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항상 밝고 열정넘치는, 그런 외향적인 사람을요. 슬픈 일이 닥쳐도 캔디처럼 웃을 수 있는 그런 사람. 만약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항상 사려깊고 논리적이며 꼼꼼한 내향성의 표준인 사람이어야 할 것만 같죠.

근데 사실 현실엔 그런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비중의 차이만 있을뿐 어떤 상황에선 외향적이면서 또 다른 상황에서는 내향적이 되곤 하죠. 그래서 외향과 내향의 스펙트럼 중간에 선 저는 저 자신을 어떻게 범주화해야할지 참 애매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저를 굳이 외향/내향이라고 나눌 필요가 있나요?  이 책은 주로 내향적인 사람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전 이 책을 통해 그런 구분법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로 다짐했어요. 

결국 이 책이 말하고 싶은 건, 외향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내향적인 사람이(정확히는 항상 외향적이지는 않은 사람이) 모난 돌이 아니라는 것 같아요. 사회 구성원이 모두 같은 색일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드네요. 책에서 내향성의 장점을 계속 강조한건 그만큼 미국이 견고한 외향성지상주의 사회라는 거겠죠. 내향성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외향성과 동등한 가치를 갖고 있다는 걸 강조한 것 같아요. 

번역이 다소 아쉬운 책이었지만, 그래도 제가 늘 갖고 있는 고민에 대해 좋은 실마리를 안겨준 것 같아 꽤나 흡족한 책이었어요. 책도 책이지만, 저를 있는 그대로 대해주는 이 모임에 대해서도 상당히 만족했습니다. 덕분에 편하게 이야기하며 환히 웃을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정준민

저는 내향적인 사람입니다. 아주아주 내향적인 사람입니다. 진짜로요. 사람 만나는 건 늘 귀찮고 피곤한 일입니다. 에너지 소모가 너무 많아요. 집에서 느긋하게 책 읽고 게임하는 게 더 좋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나갈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 ‘어쩔 수 없이’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납니다. 그래야 그나마 남아있는 인간관계라도 남아있겠다고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독서 토론에서는 꽤 외향적인 면모가 도드라집니다. 저만 그런 건 아닐 거 에요. 모임 때 많은 분들이 스스로를 내향적이라고 말했지만 글쎄요. 토론 때 다들 적극적으로 자기 할 말 하는데 내향적이라고 보긴 좀 그렇죠. 

내향성과 외향성을 너무 이분화해서 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ㅎㅎ

참 뻔한 결론이지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네요. 내향과 외향, 어느 한 쪽으로만 살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 순간 순간에 맞춰서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내향적이고 싶을 때 내향적으로 행동하고 외향적이고 싶을 때 외향적으로 행동하고. 이런 저런 상황이 잘 맞물려서 그러고 싶을 때, 혹은 그래야 할 때 각각의 성격이 잘 나오기를 바라봅니다. 

독서 모임으로 치환해보면 책을 읽어야 할 때는 내향성을 확 발휘해서 제대로 읽어오고, 이야기를 할 때는 외향성을 확 발휘해서 자기 하고 싶을 말을 하고. 그런 게 되겠지요. 

새로운 분들도 합류한 만큼 이런 조화로움이 잘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김민규

전통 사회에서 우리는 언제나 오랫동안 알던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았다. 우리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친밀함을 느꼈다. 그곳에서 우리는 특별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당연하게 그 작은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고 무언가를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온갖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 찬 공간에서 살아간다. 슈퍼마켓, 지하철, 버스, 학교, 오고 가는 모든 길에는 모르는 사람뿐이다. 우리는 하루에 수백 명의 사람들을 지나치지만 정작 우리가 그중에 친밀감을 느끼는 사람의 수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곳에서 우리는 극심한 외로움을 느낀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은 우리가 고립된 것처럼 느끼게 만들고 마음은 공허함으로 가득하다.

외로운 우리는 특별해지기 위해 발버둥 친다. 더 특별해질수록 우리는 더 많은 관심과 인정을 받는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약간의 순간적인 연결감을 느낄 수 있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아 우리는 그것을 더 많이 원한다. 그래서 더 특별하기로 결심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에 잘 띄어야 한다. 나라는 사람을 상대에게 가장 효율적으로 인식시켜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크게 행동하고, 사건을 일으키고, 큰 소리로 말해야 헀다. 그러자 사람들이 우리에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더 많은 주목은 더 많은 관심과 인정을 의미한다. 그러한 특성은 이 외로운 사회의 미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누구나 더 큰 주목을 받기 위해, 그것을 위해 더 특별해지기 위해, 그것을 위해 더 큰 소리로 말하고, 더 크게 행동하고, 더 주목받을 만한 사건을 일으킨다.

결국 우리는 이 한없이 외로운 거대한 공간에서 끝없는 공허함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외향성을 최고의 미덕으로 받아들이기로 모두가 합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내향적으로 분류된 우리는 이곳에서 어떻게 사람들에게서 관심과 인정을 받아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만의 방법을 찾아냈다. 그것을 스스로의 세계에 파고들어 우리가 만들어낸 무언가로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을 받는 것이다. 외향적인 이들은 사람들 앞에 직접 나가 영향력을 행세하며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을 즐긴다. 스스로의 존재를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느낀다. 우리는 사람들의 세계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것을 느낀다. 우리는 가장 구석에서 사람들이 우리가 만들어낸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의 업적을 인정하는 것을 바라보며 만족감을 느낀다. 우리는 어떤 매체를 통해 사람들에게 연결된다. 그 매체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고 때로 사람들을 돕는다는 것에 충분히 만족한다. 굳이 우리 자신이 수많은 사람들에 갇힌 채 그들로부터 박수 세례를 받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결국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은,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과 다른 누군가를 연결하기 위해서이다. 연결이 가져다주는 안정감과 동질감을 위해 우리는 그 모든 행동들을 하는 것이다. 다만 외향적인 이들과 내향적인 우리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어느 방법이 옳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고, 어느 방법이 더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다 각자 나름의 방법을 추구하는 것뿐이다.

최보영

내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을수록 내 자신을, 그리고 주위 상황을 제대로 보고 있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외향보다는 내향적 성격이 강해서, 사회생활이 조금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찾은 사람들을 보니까 스위트 스팟도 찾고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성격 그자체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도 방법인 것 같습니다. 
 타인의 성향이 다름을 인정하지만, 타인보다 친밀한 가족의 성향이 다름은 틀림으로 인식하고 바꾸려고 강요했다는 것.... 도 생각해 봤습니다. 부모님이나 저나 이걸 읽어도 바뀌지는 못하겠지만 인지는 할 듯 합니다. 
 너무 두꺼웠지만... 내향적인 관점에서의 책은 처음인지라 지루와 흥미를 넘나들면서 읽었습니다. 정신은 분리된 상태에서의 참석한 모임이었으나 매끄러운 진행과, 생각해 볼 만 한 것들이 이야기로 나와서 좋았습니다.

배병준

‘삶의 비결은 적절한 조명이 비치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브로드웨이의 스포트라이트가, 누군가에게는 등불을 켠 책상이 그런 장소일 것이다.’ p.405

나에 대해 잘 아는 것은 꽤 편리한 일이다. 단순히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의 나열이 아니라 어떨 때 동굴로 들어가고, 어떨 때 긴장하며, 어떨 때 실수하는지 잘 안다면 주변 사람들을 당황케 하거나 숱한 밤을 이불킥하는 일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나를 맞추느라 본인의 핸드폰만큼도 본인을 챙기지 못하고 사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발제 책은 그 두꺼운 페이지 수만큼이나 나를 반추해볼 수 있는 기회를 반강제적으로 선사하였기에 참으로 감사하다.

100여 명이 동시에 자판을 부숴버릴 듯 내리치고, 다 쓴 후기를 지 맘대로 지워버리는 컴퓨터가 사람 수만큼이나 열을 내며, 신의 후광보다 더 번쩍이는 형광등이 사무실을 가득 채우는 직장에서 나는 최소 9시간 최대 12시간을 보낸다. 때론 내가 외향적인가 착각이 들다가도 회의나 보고 직전이면 화장실 한 칸에서 쉼 호흡을 해야 할 정도로 나는 영락없이 내향적인 사람이다. 그런 내게 회사는 극도로 자극적인 환경이다. 반대로 오렌지색 따스한 스탠드 하나에 두 사람의 지저귐만으로 충만한 나의 집은 저자 말대로라면 나만의 ‘회복 환경’이며, 정말이지 큰 행복이다.

‘외향성’과 ‘내향성’이라는 키워드로 전인류적 신드롬을 설명했다는 것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흥미로운 접근이었고, 토론 또한 그 흥미를 잘 이어 간 것 같아 만족스럽다. 단순히 본인이 외향적이냐 내향적이냐 구분하기보다 이번 기회에 내향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나 자신과 주변인들을 더 잘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김미정

외향성의 시대에 문제를 제기하고 내성적임을 논하는 작가의 주제의식이 처음에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켰을까 궁금하다. 나로선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였다. 그래서 신선한 책이고 토론이었다. 
한편으로는 토론 참석자 거의 모두가 내성적임을 고백하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외향적인 사람들도 본인이 내성적이라 생각하는 것을 보며 모두가 자기만의, 내면으로 파고드는 휴식과 고요함을 어느정도 필요로하는 듯 보였다. 고요하지 않은 사회에서 혼자만의 내성적인 시간을 보다 추구하는 이들이 보다 더 많아진 탓이 아닐까.
성격은 끊임없이 변한다. 아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너무 다르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도 내가 가진 성격은 나의 일부이다. 변화를 스스로 자책하지 말자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생각을 해보게끔 그리고 듣게끔 해준 발제자에 박수를 전하고 싶다.

김은선

2019년 1월 26일 [콰이어트]
처음 참여하는 토론의 날이어서 도착 전까지 긴장이 많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다들 환하게 웃으며 맞이해주고 열린 귀로 공감해주는 모습들 덕분에 콰이어트의 책을 홀로 읽었던 시간보다 더 재밌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두가 ‘제가 내향적이어서…’ 라고 운을 떼며 얘기하는 모습들이 왠지 모르게 시작부터 빵 터졌던 것 같습니다. 

콰이어트는 내향성을 가진 사람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서술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다양한 사례들을 대입해보며 제 스스로는 어느쪽에 가까운지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다만, 이런 사례들이 너무 넘치게 많게 느껴져 중간에 다소 읽기의 속도, 흥미가 조금 떨어졌고, 아무래도 작가가 내향적이라는 것은 이런것이다! 하는 정형을 정의하기보다 이런 다양한 측면이 있다라고 대변하는 느낌의 글이어서 그런지 다 읽고 나서 뭔가 뚜렷한 개념의 느낌을 갖기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토론때는 책 속의 여러 내용을 실 생활과 연관 지어 토론해볼 수 있는 발제문이 있었고, 그 중 몇가지는 내향성/외향성의 차이에서 오는 상황에 관한 토론 시간(근무환경, 발표의 시간, 파티하는 부부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대다수의 의견들이 책에서 제시된 상황 해석과 해법이 적절한 것인지 의문을 가졌는데 저 또한 이 부분에서는 저자의 설득력이 다소 떨어지는 부분이라고 느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미국인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서 이 부분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건지, 뭔가 명확하게 해소되지 다소 아쉬운 부분입니다.

또, 토론때의 시간에서 책에 관해 얘기하기보다 자신과 결부지어 얘기하는 시간이 더 많아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오히려 다른 분들을 처음 만나는 저의 입장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을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라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저도 독한녀석들의 한 녀석이 되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시간이었습니다.

이병주

평소 내향적인 성격과 외향적인 성격에는 크게 구분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이유는 나도 변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에는 말도 적고 밖에서 놀기 싫어하는 내향적이었던 모습이 기억난다. 어느 순간 바뀌었다.  다만 왜 그렇게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외향성 자체를 많이 의식해서인지 아님 그것 자체에 익숙해서인지... 지금의 난 내향성과 외향성 그 사이 어딘가에 애매하게 있는거 같다. 사실 내 성격이 내향인지 외향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거 같다. 그보다는 토론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내가 나를 더 잘 아는 것? 어떤 상황에 편하다고 느끼는지 내가 뭘 잘하는지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할듯하다.

2019년 1월 첫 토론이었다. 이렇게 후기를 쓰다보면 벌써 이렇게 시간이 되었네라는 생각이든다. 특히 설도 끼고 그랬어서 더 빨리간 것 같다. 취업 준비에 학업에 올해도 정신없이 가겠지만 그 와중에 올해 계획한 소소한 것들을 잘 해나갔으면 싶다. 열심히 살아보자.

이종락

첫 후기인만큼 조금 뻔하게 몇 글자 남깁니다.
왜 이제야 이 책을 읽었지 싶을 정도의 좋은 책을 추천받아,
좋은 사람들과 다양한 생각들 나눌 수 있었던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모임에서 말한 것 처럼 400여 페이지로 짧은 편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관점에서 내향성에 대해 이야기를 끌어나가고 있어,
개인적으로는 매 챕터마다 새로운 책을 읽는 느낌으로 재밌게 읽었습니다. 
덕분에 3시간 동안 계속 많은 이야기들도 오고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쉴 틈 없이 이야기가 이어진건 다양하게 생각 나눌 수 있는 발제문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드네요.

책을 읽으며, 그리고 여러 분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내향적, 외향적이라는 성격에 대해서도 새롭게 정의하게 되었습니다.
엄밀히는 그동안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지만. 
모임 중에 이 책을 읽고 누가 자신이 외향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던가 연애야 말로 최고의 외향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행위인 것 같다 생각들이 신선했고 공감이 됐습니다.
사실 공감가는 말씀들이 너무 많아 자주 펜을 들어 끄적였네요.

문화적으로 외향성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스스로 의도적으로 외향적이라는 성격을 임시적으로 취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는데, 
이번 모임에서는 저도 모르는 새 자연스럽게 외향성을 띄고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그리고 구지 나의 성격을 정의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모습으로 잘 살자... 라고 생각이들며,
다시 책 읽기 전의 원점으로 돌아온 것 같아 책을 제대로 읽은게 맞나 생각도 드네요.
그리고 책장 마지막에 다가가며 다소 피로감이 쌓여서 사례만 계속해서 나열되었던 부분은 대충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모임에서 이야기 나누면서 다양한 생각들으니까 갑자기 책을 끝까지 재미있게 보았던 것 같은 신기한 경험도 한 것 같습니다.

그간 다양한 책을 읽어야지 마음먹다가도 익숙하고 읽기 편한 책을 찾았었고,
편협한 사고 방식을 갖고 있어서 책을 읽고 나서도 편한대로 해석해왔었는데요.
이 때문에 독서모임을 찾게 된 것이었지만, 같은 이유로 또 걱정되기도 했는데, 기우였던 것 같네요
계속해서 기억에 남을 책 추천받고 덕분에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민경

 아일랜드 여행 중 드라이브를 하다가 잠시 해안도로에 차를 세우고 주변을 가만히 보았다. 
주변을 뺑 둘러봐도 보이는 건 잔잔한 해안가, 푸른 초원 그리고 저 멀리 양 몇 마리,
들리는 소리는 바람소리, 파도소리가 전부. 
‘이렇게 조용한 동네에 살면 진짜 행복할 것만 같다.’ 라는 생각을 했던 순간이
여행 중 많은 좋았던 순간 중에 가장 좋았던 순간.

 이 책을 고르게 된 이유도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조용함을 내향성으로 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어린 시절 나를 되돌아보면 조용함이 내 내향성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유독 낯가림이 심하고 어릴 때는 동생 말고 친구도 없어서 혼자 그림 그리거나 종이 접고 노는 걸 좋아했었다. 유치원에서 과일가게 놀이를 하면 내가 팔았던 과일은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어서 처음 그대로 놓여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인관계가 별로 좋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랬던 내가 32년을 살다보니 적당히 외향적이고 적당히 내향적인 삶을 사는 것 같다.
10대, 20대 때는 따돌림 당하기 싫어서 적당히 튀고 적당히 어울리며 외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던 것 같다. 지나보니 그랬던 나의 노력이 지금 되돌아보면 흑역사 같기도 하지만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고마운 과거의 나이다.

 30살이 되면서 독서토론을 시작한 것도 어쩌면 외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이었을지도 모른다. 항상 다들 본인의 생각과 이야기를 잘 말해주기에 ‘이 모임이 참 외향적인 모임이네.’라는 비슷한 생각했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갈수록 그들이 잘 말할 수 있었던 건 잘 들어주는 또 다른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이번 토론을 진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나는 내향적인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향적인 사람들끼리 모여 이렇게 외향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웠습니다. 동시에 내가 이들과 함께 이 모임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ps, 책과 술을 좋아하는 모임이 어디 그리 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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