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정기모임 - 타인은 지옥이다.

토론 도서

타인은 지옥이다

발제자

전현정

장소

사당 MOIM


후기

준민

이번 토론에는 자신이 해본 가장 끔찍한 상상을 이야기해보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저는 상상은 아니고 오랫동안 반복해서 꾸었던 꿈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수업에 지각해서 졸업을 못하는 꿈에 대해서.

후기를 쓰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니, 토론 때 했던 이야기는 잘못된 것입니다. 토론 때는 지각, 그러니까 ‘시간 강박’에 초점을 두고 말했지만 실제는 아닙니다. 제가 실질적으로 두려워한 건 지각이 아니라 ‘졸업을 못하는 것’입니다. 

계절 수업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안 들으면 졸업이 어려웠습니다. 계절에서 좋은 학점을 받지는 못했으나 어찌어찌 패스는 했습니다. 꿈에선 다릅니다. 늦잠을 자거나 시간표를 잘못 파악해서 수업을 들어가지 못합니다. 몇 번의 결석이 반복되어 학점을 못 받는 상황이 되고 졸업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고통받으며 잠에서 깹니다. 이런 꿈을 실제로 졸업한 후에도 1년 정도 꾸었습니다.

졸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악몽으로 나타난 거라 생각합니다. 졸업을 못하면 학교를 못 떠납니다. 학교를 못 떠나면 사회로 나갈 수 없습니다. 저는 삶을 학교와 사회로 크게 나눈 후, 사회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어쩌나 계속해서 두려워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 꿈을 꾸었고 아마 지금도 그럴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가 꾸는 악몽의 무대는 언제나 학교입니다. 졸업 못하는 악몽 말고는 이런 게 있었습니다. 같은 학교 같은 반이었던 그 애가 제 얼굴을 절대로 보지 않으려고 피해 다니던 꿈.

다행히 요새는 특별히 악몽을 꾸지는 않습니다. 꾸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기억나는 건 없습니다. 그럼에도 만약 악몽을 꾼다면 회사에서 쫓겨나는 꿈, 혹은 회사에 들어갈 수 없는 꿈을 꾸게 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일을 못해서 문제가 터지고 그 결과 사회생활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판결을 받게 되는 플롯일 겁니다. 

이번 토론에서 농담 반 진담 반 결론은 ‘정신과의 문턱이 낮아져야 한다’였습니다. 그래야 상담도 받아보고 문제도 찾아보고 심리적인 안정도 얻을 수 있다고. 그런 것 같습니다. 비록 상담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악몽에 대해서 야야기도 해보고 글도 써보니 제가 가지고 있는 어떤 스트레스의 원천 같은 게 조금은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게 실제로 스트레스의 원천이든 아니든 사회에서 버티는 데 도움은 되겠지요. 

<타인은 지옥이다>는 마리가 한나를 보러 가기를 다짐하며 끝납니다. 사실 작품 내에서는 그 둘의 우정이나 어떤 유대가 독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엘리와의 관계를 그려가는 것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차이가 큽니다. 아마, 독자가 모르는 사이에 이런 저런 마음을 터놨을지도 모르죠. 

문득,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를 보살피기 위해서 꼭 관계가 돈독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선의로 다가갈 수도 있죠. 그런 선의가 누군가의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고요. 

먼 길을 돌고 돌아 저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정신과의 문턱이 낮아져야 하는 것만큼 작은 호의로 다가가는 것도 낮아져야 한다’고. 정신과의 문턱이 지금 당장 낮아지기는 쉽지 않을 것 같으니 일단 개인 레벨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준우

소설 내에서 주인공은 결국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살인행위를 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면서 누명을 벗고 정신병원에서 퇴원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살인에 대한 실행 유무를 떠나서 그런 살인행위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른 생각에서 바른 행동이 나온다고 믿는 한 사람으로서 결말이 어느 정도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그 후에는 분명히 어떤 다른 형태로든 비슷한 결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인공이 무죄 판결을 받은 후에 일터(어린이집)에 복귀하니 주변 부모들이 아이들을 보내지 않은 부분은 제3자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되는 대목이였다.

모든 일이 그렇듯, 초반에 그런 점을 감지하고 잘 대처했다면 그 정도까지 심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추기에만 급급해 한번도 본적 없는 온라인상의 사람에게 털어놓기보다는 좀 창피스럽더라도 여러 주변사람들에게 툭 터놓았다면 최악의 상황을 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나 자신의 주변에도 이런 비슷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나 한번 더 돌아보게 되었고 과연 나의 생각도 누구 앞에서 자신감 있게 얘기할 정도로 떳떳한가에 대한 반성도 해보게 된다.
물론, 언제나 100% 떳떳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생각만큼은 올곧게 하리라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완성도 높은 발제문을 만드느라 고생한 현정이와 다른 참석자분들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에 또 함께 하길 :)

종찬

“타인은 지옥이다.”
피곤한 제목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즐거운 유년기를 보냈던 것 같다. 친구가 많았던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내성적이었던 건지 서울에서 시골로 이사해서 그렇게 변한 건지는 모르겠다. 

별 상관 없었다. 혼자서도 잘 놀았다. 그 시절 추리소설은 정말 좋은 친구였다. 똑똑하지만 고독한 탐정이 일사천리로 범죄를 해결하고 으시댄다. 나는 탐정에 감정이입을 했고, 너무 통쾌했다. 동기는 보물이라던가 사랑이라던가 부모의 원수라던가 아무튼 로맨틱.

그에 비하면 현실의 고민들은 너무 시시했다. 그래서 난 베이커 가라던가 고립된 섬이라던가 침대가 있는 특급 열차 같은 곳에서 불가능 범죄를 쫓으며 그 시절을 보냈다. 그때는 책이 있고 부모님도 있고, 그거면 될 줄 알았다. 내일 같은 건 생각하지 않던 때였다.

꽤 오랫동안 장르만 바꿔 가며 소설 속에 살았다. 어느 날 어린 시절 내가 무시해왔던 것들이 그러니까 이를테면 먹고 사는 일이라던가, 인간 관계라던가, 연애라던가 그런 것들이 어떻게든 해야만 하는 현실이 되기 전까지는. 그 후론 범죄 소설에 대한 관심이 식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 그랬는지 제목이 너무 피곤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독서토론의 좋은 점은 꿈도 희망도 없는 소설에서 온기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이다. 소설 속에선 살인에 이용되는 강박증이 현실을 사는 친구들의 집착에 대한 실화로 변하고, 그걸 통해서 현실 세계를 이야기할 수 있게 해 준다.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현실세계란 그 자체로 훌륭한 위로다. 이제는 소설 속이 아니라, 현실 사이에 앉아있다는 게 감개무량하기도 하다.

그렇게 웃고 떠들면서 조금이나마 용기를 얻고 나면 황사에 휩싸인 초겨울 사당역 인근에서도 객기 비슷한 로맨틱을 꿈꿀 수 있는 기력이 생긴다. 이런 시간들이 조금 더 길게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질리지도 않고 또 해본다.

열심히 준비하고 온 발제자, 너무 수고했습니다. 

모두들 결산 때 봅시다!


민경

요즘 계속 완독하지 못한 채 토론에 참석해서 토론 참석하는 분들과 발제자분들에게 죄송했었는데 이번에도 마지막 부분을 미처 다 읽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 갖고 참석했는데,
반전이 있는 소설이었네요. 저는 그 반전을 못 읽고 참석한 거예요. 벌 받았나 봐요.
마지막 반전을 못 읽어서 사람들 다 같이 웃고 공감할 때 혼자 멀뚱히 앉아있던 제가 좀비게임 술래 같았어요. 반전을 알아도 책을 읽기로 약속하고 다른 분들의 생각을 듣는 것도 나름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마치 실제로 있었던 일 같았던(반전내용을 읽기 전까지) 소설 내용은 발제자님의 취향을 ‘실화 덕밍아웃’을 통해서 조금 알 수 있었던 이달의 책이었습니다.
집에 와서 못 읽은 부분을 마저 읽는데 분명 반전이 있다는 것도 알고, 토론도 했는데,
마치 책이 반전도 내용도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읽혔습니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토론 내내 반전이 있다는 것만 말해주고 반전의 디테일은 토론할 때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거 같아요. 아니, 디테일을 말했는데 제가 못 알아들은 것일 수도 있구요. 이럴 땐 눈치 없는 게 참 다행이긴 하네요. 다 읽고 토론에 참석했더라면 더 좋았을걸(뭐 이 생각은 매번 하는 생각이긴 하지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론 때문에 사당역은 처음 가봤는데 지하철역사 안에 에꼴드크루아상 빵 너무 맛있었습니다.


세진

1. 독서의 취향
20대 동안 책을 읽으면서 형성된 나만의 편향적인 취향이 있습니다. 저는 사회과학과 인문학 분야를 좋아하고, 소설은 외국 작가보다는 한국 작가의 책을 선호합니다. 세계문학 전집은 솔직히 재미보다는 지적 허영심으로 꾸역꾸역 읽고, 수학이나 과학 교양서는 그나마도 잘 읽지 않습니다. 자기계발서나 경영서 등은 기본적으로 싫어하고요. 그런 취향의 영역으로 말하자면 '장르소설'은, "좋아하지만 돈과 시간을 쓰기엔 조금 애매해서 결과적으로 잘 안 읽음" 정도의 위치에 있습니다. 고로 이번 책은 발제자님이 아니라면 제 알라딘 장바구니에 들어갈 일이 없던 책이었고, 자타공인 표지성애자로서 그로테스크한 책 뒷표지의 삽화를 고려하면 더더욱 고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이 추천한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때로는 나의 취향을 벗어나 다른 사람의 취향을 수용해보는 모험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모험은, 조금 으스스하고 등골이 서늘해지지만 쾌감이 있었습니다. 흡입력있고 재미있었어요. 

2. 누구나 그렇다는 위안
이 책의 미덕을 찾아보자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발현되는 강박증을 가진 여자의 심리묘사를 들 수 있겠습니다. 그 무시무시한 상상의 디테일에 공감한다기보다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습관이나 감정의 소용돌이나 골칫거리들이 나타나는 기제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 점에서 감정이입이 되었고 토론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지요. 마리가 강박사고에 시달리듯이 나에게도 떨쳐버릴 수 없는 강박적인 나만의 의식들, 알면서도 조절되지 않는 감정들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어찌할 수 없음이 너무나 인간적이고, 우리 누구에게나 있는 그림자라는 것을 공유하면서 묘한 위안을 얻은 듯 합니다. 생각은 행동이 아니고, 적당한 강박은 정상이고, 이런 비합리적 동물인 나도 적당히 잘 살고 있구나 하는 위안이요.

3. 추리소설의 법칙
개인적으로는 토론 중 추리소설의 법칙에 대한 이야기가 신선했습니다. '주인공 외의 모든 인물에게 반전이 있어야 한다'라고 했던가요. 솔직히 어떤 이야기를 읽을 때 그 인물이 평면적인지 입체적인지 그다지 의식하면서 읽어본 적이 없었고 인물에 대한 취향도 별로 없는 편이라 당혹스러우면서도 또 재미있었습니다. 발제자가 장르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던질 수 있던 창의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게 다양한 발제자를 거치는 토론의 장점인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영화에도 문법이 있듯이 소설에도 작법이 있고, 인물을 설정하거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도식이 있을 법 하죠. 논문을 보다 보면 읽는 눈이 생기듯이 한 장르를 읽다 보면 이야기의 전개를 예측하며 읽는 눈도 길러지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모로 다독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4. 무의미의 축제
처음 독한녀석들에 왔을 때 <무의미의 축제>로 토론을 했던 기억이 나요. 꼭 의미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죠. 이번 책은 큰 의미부여를 할 만큼의 명작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평작 내지 수작 정도), 아주아주 내밀한 이야기나 무거운 생각거리를 던지는 그런 토론도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상당히 재미있었고, 많이 웃었고, 솔직했고, 좋았습니다. 꼭 의미를 찾지 않아도 즐거운 토론을 만들어준 참석자와 발제자 모두 수고하셨어요.


현정

추리소설 참으로 오랜만에 읽었습니다. 한때는 추리소설이 재미있는 만큼 너무 추리소설만 읽어서 고민이었는데 말이죠. 나름 다독하려고 노력중이었구나 싶기도 하고 오랜만에 읽으니 술술 읽혀가며 집중하게 만드는 장르 소설이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충동적으로 구입하게 된 소설이었는데 실은 선택 실패였어요. 많이 아쉽고 실망스러웠습니다. 아니에요, 읽다가 포기는 하지 않았으니 실패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완독 후 진한 쾌감의 여운을 남기는 책을 다시금 읽고 싶어지네요.

발제를 할때는 하고 싶은 논제가 너무 많아서 덜어내려고 애먹었는데 막상 발제를 진행하다보니 생각이랑 많이 다르더라구요. 가상으로 진행을 해보고 갈걸 내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글이 아쉬움 투성이네요. 저도 모르게 욕심을 많이 냈었나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토론에 참여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강박증 박사와 추리소설을 꾀고 있는 분 두 분 덕택에 좀 더 많은 도움을 받은 것 같아요.

간만의 발제였고 아쉬움이 있었지만 너무 즐겁고 재미있었습니다.

후기 단어 분석


이번 달 후기로 모아진 텍스트를 분석한 결과입니다. by 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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