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정기모임 - 내게 무해한 사람
토론 도서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발제자
최보영
장소
왓코커피
서울 마포구 서강로16길 63
서울 마포구 서강로16길 63
후기
병준
"착하게 말고 자유롭게 살아, 언니." p.282
나의 작은 블록은 무엇이었을까.
후기를 쓰는 지금까지도 정확히 찾지 못하고 머리 속에서 질문만 맴돌고 있다. 초심인 것도 같고, 혼자만의 시간인 것도 같고 잘 모르겠다. 단지 나사가 빠진 것마냥 요즘 나의 일상은 삐걱대고 있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저만치 멀리서 나와는 상관없이 피고 지는 것처럼 허무할 뿐이다.
오히려 블록이 도중에 빠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 블록을 건너 뛰고 쌓아온 것이 아니었나도 싶다. 처음부터 있지도 않은 블록을 찾으려니 우리 모두 힘이 들고, 결국 찾기를 포기하고 블록의 빈자리를 다른 것으로 쉬이 채우려 든다. 누구는 승진으로, 누구는 자식으로. 그게 그런다고 채워질는지.
나 역시 그렇게 되기 전에 하민처럼 훌쩍 떠나면 좋으련만 이제는 겁이 많아져 쉽게 그러질 못한다. 열아홉, 고향을 등질 때 호기롭게 길을 나서던 나는, 3분만에 짐을 싸고 매일 아침 다른 길을 걷던 20대의 나는 이제 정말 까마득하다. 서울살이 12년에 비해 이사짐은 초라한 나지만, 잃을 것이 그렇게 많아졌나보다. 나아가기 보다는 자꾸만 지금의 자리를 고수하고만 싶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과거보다 현재가 더 소중한 나날이다.
그러고보니 책의 표지는 내 기분과 달리 노스탤지어를 의도한 것이었나보다. 수록된 작품 속 주인공들은 모두 과거를 회상하고 있고,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관계를 그린다. 나 역시 이제는 이름도 가물가물한 사람들을 지나왔고, 그들 덕분에 내가 성숙해질 수 있었으므로 후회는 없다. 단지 그들이 어디서든 행복하기를 바랄 뿐.
마지막으로, 랄도가 끝내 하민을 만나러 가지 않은 이유는, 이제 랄도도 잃을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날 때만해도 짝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겠다고 엄카까지 챙겨 떠난 그 역시 여행에서 그만큼 소중한 것을 찾았다고 봐야겠다.
준민
토론 때 소설 속에서 공감할 수 있는 인물, 공감할 수 없는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대체로 기준 그러니까 “601, 602”에 나오는 효진의 오빠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많았습니다.
저는 이해가 됩니다. 물리적인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습니다만, 부모님에게 훈계조로 이야기를 한 것. 외아들이라 부모님의 부양을 한 몸에 받아왔다는 점. 기대가 많았다는 점 등등. 기준의 행동이 옳고 그름을 떠나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있습니다. 물리적인 폭력이라는 강렬함 때문에 나와는 다르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말을 통한 생채기 내기를 생각해보면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 집이 이상한 걸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최은영의 작품에는 종종 노골적으로 나쁜 사람이 나옵니다. 기준도 그렇고 “모래로 지은 집”에서 공무의 부모도 그렇습니다. 노골적인 나쁨 때문에 그 사람과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 겁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습니다. 첫 번째, 그렇게 베타화 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상처를 바라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하고요. 두 번째, 그렇게 노골적으로 나쁜 사람도 바뀔 수 있습니다. “아치디에서”의 주인공 랄도도 엄마에게 얹혀서 헤로인을 할 때의 모습만 떠올리면 그냥 나쁜 사람이죠. 하지만 바뀝니다.
해롭다. 일반적으로는 참 부정적인 단어입니다. 적어도 <내게 무해한 사람>을 읽으면 해롭다는 게 꼭 나쁘기만 하다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 즐겁습니다. 동시에 때때로 해롭습니다. 상처받고 상처 입히고. <내게 무해한 사람>은 그런 이야기를 모아 두었습니다. 친해서 다른 사람과는 달라서 그래서 상처를 입은 이야기. 내게 해로웠던 사람들의 이야기. 내게 소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실제로 최은영은 김중혁과의 대화에서 ‘제대로 된 관계가 아닐 때 무해한 사람이 되기 더 쉬운 것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http://ch.yes24.com/Article/View/36855) 친한 관계와 친하지 않은 관계 중에 어떤 쪽이 더 해로운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거 적고 보니 논제거리네요.) 적어도 최은영은 친할 때 발생하는 해로움에 초점을 맞추고 이 작품들을 썼을 겁니다.
문득 윤지운의 <디어왈츠>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제 상처에서는 눈을 떼지 못하고 남의 상처 앞에서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최은영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이런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모든 걸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제가 최은영의 소설을 좋아하는 건 제 자신이 저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그러니까 저 문장이 유독 기억에 남아 있겠죠.
이번에 보영이 토론을 진행할 때 제가 살짝 도왔습니다. 토론 전날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과는 잘 모르겠습니다. 토론 때는 하아 답답하다, 이런 생각을 했던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답답한 거야 신경을 썼으니 오는 일종의 반작용입니다. 아마 보영이 어떻게 해도 답답했을 거에요. ‘제 상처에서는 눈을 떼지 못하고 남의 상처 앞에서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라는 말을 지금의 상황에 빗대어 바꿔보면 ‘제 노력에는 눈을 떼지 못하고 남의 노력은 바라보지 못하고’ 정도가 되겠죠. 반대가 되어야 하는데 늘 그렇게 되질 않습니다.
어쨌든 토론 준비하는 걸 도와주는 건 서로에게 아쉬움을 남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 아쉬움에만 목매달면 안 되겠죠. 여하튼 한동안은 토론 진행하는 분들하고 알음알음 이야기를 하면서 준비를 도와주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준비하면서 뭔가 필요하면 요청을 주세요. 제가 먼저 말을 할 수도 있고요. 저는 띠겁지 않습니다. 민경아 미안하다!
때로는 그 과정에서 해로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겠지만, 그 해로움 보다는 긍정적인 효과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이제는 제가 “손길”이 가장 좋았던 이유가 이해가 되려고 합니다. 미정의 말처럼 무언가 긍정적으로 끝이 나거든요. 혜인은 여자에게 상처를 입었지만 그래도 좋았던 때를 훨씬 많이 떠올리니까요.
때로는 해롭더라도 긍정적인 순간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현정
작가의 해설을 읽으면서 ‘내가 감정적인 면에서 다소 예민하지 못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 책의 구성과 흐름, 상황에 대한 이해와 공감 등에 치중되어있었지 각각의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는 세밀한 감정들에 대해 들여다볼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던 터라 아직도 가장 강렬하게 잔상으로 남아있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특히 여성이라면 더욱이 챕터마다 깊은 공감을 가지지 않을까 싶어요. 인물마다 명확한 상황이 놓여 있어서 대입해볼 수 있는 선택지가 많고 개인적으로는 페미니즘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토론을 이어나가면서 내가 경험했던 지난날, 공감을 통한 분노 등 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며 이어져 나갈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독서를 할 때보다 토론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어요. 토론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이만큼 이 책에 대해서 다양하고 깊게 들여다보지 못했을 겁니다. 바쁘단 핑계로 너무나 오랜만에 참여한 토론이었지만 역시 시간을 할애한 만큼 값진 보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보영 언니 수고 많으셨어요♥
미정
철없던 시절, 배려 없이 굴며 때로는 내가 그런 일로 상처를 받던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그렇게 행동하는 게 아무렇지 않은 일인 줄 알았지만, 조금 더 성숙하게 행동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입니다.
물론 해설에서의 말처럼 '우리가 지닌 천진함이란 연약하면서 맹목적이어서 .... 관계 끝네는 쉬이 지워지지 않는 상흔들이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영이를 상처받게 한 601, 602호의 어른들을 보면 꼭 어른이 되어야만 성숙한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자연스레 이뤄지는 것이 성숙의 과정이 아니라, 내가 거쳐간 무해한 사람 혹은 내가 되었던 해가 되었던 일들을 생각하며 '다음엔 그런 상처를 주지 말아야지', '다음에 만났을 땐 어떻게 대해야지'라는 다짐을 조금씩 해나가며 또다시 무해할 수 있는 사람과의 에피소드들을 대비해나가야 합니다.
아직도 이런 제게 익숙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은 이상 더이상 모래로 지은 집을 짓거나 방관해서는 안될 것 같다는 부채 의식을 느낍니다.
동진
작가는 자전적 내용과 인간관계에 대한 허전함과 상처를 세심하고 감성적이고 다소 담백한 어조로 풀어나간다. 토론은 늘 그랫듯이 재밋었고,시험때문에 오랜만에 참여해서참 반가웠다.책이 참 좋았다.오늘따라 후기가 잘 안써졌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책을 읽으면서 먹먹함이 약간 남아 있는 것 같다. 나이먹고 청승 떤다고 해도 어쩔수 없는 일이다.제목처럼 난 무해한 사람보다는 유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것을 보니 사람과사람사이에서 부대끼면서 살고 싶어하나보다.유해하게 할 수 있는 마음의 거리에 들어가고 싶은건지도...
세진
돌이켜보면 나는 나를 상처입히지 않을 것 같은 사람, 콤플렉스를 자극하지 않는 사람, 불편하지 않은 사람들을 곁에 두려고 한 것 같다. 나의 소심함은 교활하게도 나의 말을 잘 들어주고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 같은 착한 친구들을 본능적으로 탐지해냈다. 그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한 소수의 친구들이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생각할때면 진심으로 고맙고, 또 동시에 부끄럽기도 하다.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라는 믿음은 얼마나 무심하고 자기중심적인가. 내가 그들에게 그다지 상처받지 않았다면, 역으로 내가 그들에게 무심코, 혹은 의도적으로 상처를 준 순간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내게 무해한 사람>은 이렇게 내가 기억 속에서 애써 외면해왔던 지점들을 하나씩 열어젖힌다. 읽으면서 몇 번이나 울컥했고, 그 울컥함을 견뎌내면서 꿋꿋이 읽었다. 다 읽어내고 나니 감정의 소용돌이가 한창 지나간 후의 고요 같은 것이 찾아왔던 것 같기도 하다. 친하면 어느 지점에서 해로울 수밖에 없는거야, 그때 그렇게 상처 줬던 것, 상처받았던 것은 어찌할 수 없던거야, 하고 담담하게 위로를 받았다가- 동시에 그렇다고 해서 너 그거 잊어버리고 모른척 하면 안 되는 거야, 똑바로 기억해, 하고 나긋하게 타이르는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 날카로운 배려가 아프면서도 정말, 정말 좋았다. 종종 떠올리며 잊고 싶지 않은 책이었다. 올해 읽은 문학 가운데 가장 마음을 울린 작품으로 꼽고 싶다.
토론은, 감상의 차이였을지는 모르겠으나 조금은 주제의 언저리만 돌다가 만 느낌이 들어서 아쉬움은 있다. <601, 602>와 관련된 여성주의적 관점에서의 발제 정도가 소설의 중심적인 정서를 잘 짚었다고 생각이 드는데, 이런 식으로 중심되는 지점을 짚어내는 질문을 더 많이 다루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래도 어쨌든 같이 최은영의 작품을 이야기 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로 즐거웠다. 어쩌면 나의 가장 내밀한 치부들까지 얘기하지 않아도 되어서 즐거웠던 것일 수 있겠다. 아, 그리고 두번째 찾은 왓코커피는 어김없이 아늑하고 좋았다.
친해지는 과정은 서로의 그늘을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그 화두를 오래도록 곱씹게 될 것 같다.
영진
읽는 내내 답답하고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특히나 「601, 602」에서의 몇몇 등장인물은 불편함을 넘어 혐오스럽다고까지 느꼈었더랬습니다. 동생을 아무렇지 않게 패는가 하면 어머니가 노골적으로 아들의 눈치를 보는 굴종의 모습은 계속 읽기 불편하더라구요.
지나가는 밤에선 동생의 정겨움을 다시 느꼈습니다. 어릴 적 귀여웠던 모습도 생각나고 지금도 많이 귀여워 해줘야겠다고 다짐했더랬죠.
토론 중간 남녀의 차이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토론 주제를 크게 벗어나기 전에 잘 끊었다고 생각합니다. 소감에서 누군가 말했듯이 책을 관통하는, 작가가 책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한 번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다면 더 좋을법했어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활발하고 풍성한 토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발제자의 다음 발제문도 많이 기대됩니다.
민경
그렇게 따뜻하게 좋은날 마당이 예쁜 카페를 갈 수 있어서 운이 좋았습니다.
수이는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었고, 선택의 순간마다 하나의 선택을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에 대해서는 어떤 변명도 하지 않는 것이 수이의 방식이었다. 수이는 자동차 정비 일을 하면서 그것이 자기 인생에 어떤 의미로 작용하는지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선택한 일이니까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_36쪽, 그 여름
무엇보다 ‘그 여름’의 ‘수이’가 마음이 많이 쓰였다. 소설은 그렇게 끝났지만 수이의 30대는 성숙하고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최은영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었는데 감정 묘사가 너무 디테일해서 마치 내가 10대, 20대로 돌아간 듯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과거엔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내가 어떤 상처를 주고 받았는지,
어떤 감정을 갖고 있었는지,
다시한번 그때의 감정을 생각 할 수 있었던
노랗고 예쁜 책이었습니다.
보영
왜 최은영 최은영 했는지 알 게 된 책이었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들을 잘 나타나 있어서 읽을수록 매 순간이 공감이었던 만큼 애써 외면하였던 감정들도 느껴져서 불편감도 같이 느껴야했습니다. 친구들사이 미묘했던 감정, 나를 옥죄었던 이야기, 나와 내 동생이 떠올랐고, 지금 상황을 돌아보게되고 과거를 다시 마주해야했습니다.
작은 블록들이 하나하나 빠져나가 대부분의 블록들이 사라지고 이제는 불필요한 블록외에는 남아있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시 채워가겠지만 기존의 것들과는 다르다는 것이 아쉽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여전히 발제는 어렵고, 책을 2,3번 읽어도 읽을 때 마다 정리는 안되고 공감만 하고 있고... 답답한 와중에 준민오빠의 손길이...
발제과정에서 준민오빠 도움을 받았는데, 오빠가 이야기해준 다양한 부분들 중에 다뤄보고 싶었으나 무거운 주제들이 될까봐,
이야기를 이끌어낼 자신도 없고 이야기가 나올수록 스스로 상처받을까봐 못한것들이 있습니다.
그냥 관계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고싶었습니다만 그렇게조차도 되지않아 아쉬울 따름입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아 도움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부족하였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 노력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먼 길까지 왔으나 아쉬운 부분들이 많은 모임이 되게 만들어서 죄송스럽습니다. 참석해주셨던 분들이 짜증은 커녕 부족한 부분들을 메워주시려 더 열심히 말씀들을 해줘서 감사했어요~~ 다음 번에는 지금보다는 나아질 수 있기를...ㅠㅠ
"착하게 말고 자유롭게 살아, 언니." p.282
나의 작은 블록은 무엇이었을까.
후기를 쓰는 지금까지도 정확히 찾지 못하고 머리 속에서 질문만 맴돌고 있다. 초심인 것도 같고, 혼자만의 시간인 것도 같고 잘 모르겠다. 단지 나사가 빠진 것마냥 요즘 나의 일상은 삐걱대고 있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저만치 멀리서 나와는 상관없이 피고 지는 것처럼 허무할 뿐이다.
오히려 블록이 도중에 빠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 블록을 건너 뛰고 쌓아온 것이 아니었나도 싶다. 처음부터 있지도 않은 블록을 찾으려니 우리 모두 힘이 들고, 결국 찾기를 포기하고 블록의 빈자리를 다른 것으로 쉬이 채우려 든다. 누구는 승진으로, 누구는 자식으로. 그게 그런다고 채워질는지.
나 역시 그렇게 되기 전에 하민처럼 훌쩍 떠나면 좋으련만 이제는 겁이 많아져 쉽게 그러질 못한다. 열아홉, 고향을 등질 때 호기롭게 길을 나서던 나는, 3분만에 짐을 싸고 매일 아침 다른 길을 걷던 20대의 나는 이제 정말 까마득하다. 서울살이 12년에 비해 이사짐은 초라한 나지만, 잃을 것이 그렇게 많아졌나보다. 나아가기 보다는 자꾸만 지금의 자리를 고수하고만 싶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과거보다 현재가 더 소중한 나날이다.
그러고보니 책의 표지는 내 기분과 달리 노스탤지어를 의도한 것이었나보다. 수록된 작품 속 주인공들은 모두 과거를 회상하고 있고,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관계를 그린다. 나 역시 이제는 이름도 가물가물한 사람들을 지나왔고, 그들 덕분에 내가 성숙해질 수 있었으므로 후회는 없다. 단지 그들이 어디서든 행복하기를 바랄 뿐.
마지막으로, 랄도가 끝내 하민을 만나러 가지 않은 이유는, 이제 랄도도 잃을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날 때만해도 짝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겠다고 엄카까지 챙겨 떠난 그 역시 여행에서 그만큼 소중한 것을 찾았다고 봐야겠다.
준민
토론 때 소설 속에서 공감할 수 있는 인물, 공감할 수 없는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대체로 기준 그러니까 “601, 602”에 나오는 효진의 오빠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많았습니다.
저는 이해가 됩니다. 물리적인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습니다만, 부모님에게 훈계조로 이야기를 한 것. 외아들이라 부모님의 부양을 한 몸에 받아왔다는 점. 기대가 많았다는 점 등등. 기준의 행동이 옳고 그름을 떠나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있습니다. 물리적인 폭력이라는 강렬함 때문에 나와는 다르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말을 통한 생채기 내기를 생각해보면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 집이 이상한 걸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최은영의 작품에는 종종 노골적으로 나쁜 사람이 나옵니다. 기준도 그렇고 “모래로 지은 집”에서 공무의 부모도 그렇습니다. 노골적인 나쁨 때문에 그 사람과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 겁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습니다. 첫 번째, 그렇게 베타화 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상처를 바라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하고요. 두 번째, 그렇게 노골적으로 나쁜 사람도 바뀔 수 있습니다. “아치디에서”의 주인공 랄도도 엄마에게 얹혀서 헤로인을 할 때의 모습만 떠올리면 그냥 나쁜 사람이죠. 하지만 바뀝니다.
해롭다. 일반적으로는 참 부정적인 단어입니다. 적어도 <내게 무해한 사람>을 읽으면 해롭다는 게 꼭 나쁘기만 하다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 즐겁습니다. 동시에 때때로 해롭습니다. 상처받고 상처 입히고. <내게 무해한 사람>은 그런 이야기를 모아 두었습니다. 친해서 다른 사람과는 달라서 그래서 상처를 입은 이야기. 내게 해로웠던 사람들의 이야기. 내게 소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실제로 최은영은 김중혁과의 대화에서 ‘제대로 된 관계가 아닐 때 무해한 사람이 되기 더 쉬운 것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http://ch.yes24.com/Article/View/36855) 친한 관계와 친하지 않은 관계 중에 어떤 쪽이 더 해로운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거 적고 보니 논제거리네요.) 적어도 최은영은 친할 때 발생하는 해로움에 초점을 맞추고 이 작품들을 썼을 겁니다.
문득 윤지운의 <디어왈츠>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제 상처에서는 눈을 떼지 못하고 남의 상처 앞에서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최은영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이런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모든 걸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제가 최은영의 소설을 좋아하는 건 제 자신이 저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그러니까 저 문장이 유독 기억에 남아 있겠죠.
이번에 보영이 토론을 진행할 때 제가 살짝 도왔습니다. 토론 전날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과는 잘 모르겠습니다. 토론 때는 하아 답답하다, 이런 생각을 했던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답답한 거야 신경을 썼으니 오는 일종의 반작용입니다. 아마 보영이 어떻게 해도 답답했을 거에요. ‘제 상처에서는 눈을 떼지 못하고 남의 상처 앞에서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라는 말을 지금의 상황에 빗대어 바꿔보면 ‘제 노력에는 눈을 떼지 못하고 남의 노력은 바라보지 못하고’ 정도가 되겠죠. 반대가 되어야 하는데 늘 그렇게 되질 않습니다.
어쨌든 토론 준비하는 걸 도와주는 건 서로에게 아쉬움을 남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 아쉬움에만 목매달면 안 되겠죠. 여하튼 한동안은 토론 진행하는 분들하고 알음알음 이야기를 하면서 준비를 도와주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준비하면서 뭔가 필요하면 요청을 주세요. 제가 먼저 말을 할 수도 있고요. 저는 띠겁지 않습니다. 민경아 미안하다!
때로는 그 과정에서 해로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겠지만, 그 해로움 보다는 긍정적인 효과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이제는 제가 “손길”이 가장 좋았던 이유가 이해가 되려고 합니다. 미정의 말처럼 무언가 긍정적으로 끝이 나거든요. 혜인은 여자에게 상처를 입었지만 그래도 좋았던 때를 훨씬 많이 떠올리니까요.
때로는 해롭더라도 긍정적인 순간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현정
작가의 해설을 읽으면서 ‘내가 감정적인 면에서 다소 예민하지 못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 책의 구성과 흐름, 상황에 대한 이해와 공감 등에 치중되어있었지 각각의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는 세밀한 감정들에 대해 들여다볼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던 터라 아직도 가장 강렬하게 잔상으로 남아있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특히 여성이라면 더욱이 챕터마다 깊은 공감을 가지지 않을까 싶어요. 인물마다 명확한 상황이 놓여 있어서 대입해볼 수 있는 선택지가 많고 개인적으로는 페미니즘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토론을 이어나가면서 내가 경험했던 지난날, 공감을 통한 분노 등 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며 이어져 나갈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독서를 할 때보다 토론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어요. 토론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이만큼 이 책에 대해서 다양하고 깊게 들여다보지 못했을 겁니다. 바쁘단 핑계로 너무나 오랜만에 참여한 토론이었지만 역시 시간을 할애한 만큼 값진 보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보영 언니 수고 많으셨어요♥
미정
철없던 시절, 배려 없이 굴며 때로는 내가 그런 일로 상처를 받던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그렇게 행동하는 게 아무렇지 않은 일인 줄 알았지만, 조금 더 성숙하게 행동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입니다.
물론 해설에서의 말처럼 '우리가 지닌 천진함이란 연약하면서 맹목적이어서 .... 관계 끝네는 쉬이 지워지지 않는 상흔들이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영이를 상처받게 한 601, 602호의 어른들을 보면 꼭 어른이 되어야만 성숙한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자연스레 이뤄지는 것이 성숙의 과정이 아니라, 내가 거쳐간 무해한 사람 혹은 내가 되었던 해가 되었던 일들을 생각하며 '다음엔 그런 상처를 주지 말아야지', '다음에 만났을 땐 어떻게 대해야지'라는 다짐을 조금씩 해나가며 또다시 무해할 수 있는 사람과의 에피소드들을 대비해나가야 합니다.
아직도 이런 제게 익숙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은 이상 더이상 모래로 지은 집을 짓거나 방관해서는 안될 것 같다는 부채 의식을 느낍니다.
동진
작가는 자전적 내용과 인간관계에 대한 허전함과 상처를 세심하고 감성적이고 다소 담백한 어조로 풀어나간다. 토론은 늘 그랫듯이 재밋었고,시험때문에 오랜만에 참여해서참 반가웠다.책이 참 좋았다.오늘따라 후기가 잘 안써졌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책을 읽으면서 먹먹함이 약간 남아 있는 것 같다. 나이먹고 청승 떤다고 해도 어쩔수 없는 일이다.제목처럼 난 무해한 사람보다는 유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것을 보니 사람과사람사이에서 부대끼면서 살고 싶어하나보다.유해하게 할 수 있는 마음의 거리에 들어가고 싶은건지도...
세진
돌이켜보면 나는 나를 상처입히지 않을 것 같은 사람, 콤플렉스를 자극하지 않는 사람, 불편하지 않은 사람들을 곁에 두려고 한 것 같다. 나의 소심함은 교활하게도 나의 말을 잘 들어주고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 같은 착한 친구들을 본능적으로 탐지해냈다. 그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한 소수의 친구들이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생각할때면 진심으로 고맙고, 또 동시에 부끄럽기도 하다.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라는 믿음은 얼마나 무심하고 자기중심적인가. 내가 그들에게 그다지 상처받지 않았다면, 역으로 내가 그들에게 무심코, 혹은 의도적으로 상처를 준 순간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내게 무해한 사람>은 이렇게 내가 기억 속에서 애써 외면해왔던 지점들을 하나씩 열어젖힌다. 읽으면서 몇 번이나 울컥했고, 그 울컥함을 견뎌내면서 꿋꿋이 읽었다. 다 읽어내고 나니 감정의 소용돌이가 한창 지나간 후의 고요 같은 것이 찾아왔던 것 같기도 하다. 친하면 어느 지점에서 해로울 수밖에 없는거야, 그때 그렇게 상처 줬던 것, 상처받았던 것은 어찌할 수 없던거야, 하고 담담하게 위로를 받았다가- 동시에 그렇다고 해서 너 그거 잊어버리고 모른척 하면 안 되는 거야, 똑바로 기억해, 하고 나긋하게 타이르는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 날카로운 배려가 아프면서도 정말, 정말 좋았다. 종종 떠올리며 잊고 싶지 않은 책이었다. 올해 읽은 문학 가운데 가장 마음을 울린 작품으로 꼽고 싶다.
토론은, 감상의 차이였을지는 모르겠으나 조금은 주제의 언저리만 돌다가 만 느낌이 들어서 아쉬움은 있다. <601, 602>와 관련된 여성주의적 관점에서의 발제 정도가 소설의 중심적인 정서를 잘 짚었다고 생각이 드는데, 이런 식으로 중심되는 지점을 짚어내는 질문을 더 많이 다루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래도 어쨌든 같이 최은영의 작품을 이야기 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로 즐거웠다. 어쩌면 나의 가장 내밀한 치부들까지 얘기하지 않아도 되어서 즐거웠던 것일 수 있겠다. 아, 그리고 두번째 찾은 왓코커피는 어김없이 아늑하고 좋았다.
친해지는 과정은 서로의 그늘을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그 화두를 오래도록 곱씹게 될 것 같다.
영진
읽는 내내 답답하고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특히나 「601, 602」에서의 몇몇 등장인물은 불편함을 넘어 혐오스럽다고까지 느꼈었더랬습니다. 동생을 아무렇지 않게 패는가 하면 어머니가 노골적으로 아들의 눈치를 보는 굴종의 모습은 계속 읽기 불편하더라구요.
지나가는 밤에선 동생의 정겨움을 다시 느꼈습니다. 어릴 적 귀여웠던 모습도 생각나고 지금도 많이 귀여워 해줘야겠다고 다짐했더랬죠.
토론 중간 남녀의 차이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토론 주제를 크게 벗어나기 전에 잘 끊었다고 생각합니다. 소감에서 누군가 말했듯이 책을 관통하는, 작가가 책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한 번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다면 더 좋을법했어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활발하고 풍성한 토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발제자의 다음 발제문도 많이 기대됩니다.
민경
그렇게 따뜻하게 좋은날 마당이 예쁜 카페를 갈 수 있어서 운이 좋았습니다.
수이는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었고, 선택의 순간마다 하나의 선택을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에 대해서는 어떤 변명도 하지 않는 것이 수이의 방식이었다. 수이는 자동차 정비 일을 하면서 그것이 자기 인생에 어떤 의미로 작용하는지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선택한 일이니까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_36쪽, 그 여름
무엇보다 ‘그 여름’의 ‘수이’가 마음이 많이 쓰였다. 소설은 그렇게 끝났지만 수이의 30대는 성숙하고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최은영 작가의 소설을 처음 읽었는데 감정 묘사가 너무 디테일해서 마치 내가 10대, 20대로 돌아간 듯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과거엔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내가 어떤 상처를 주고 받았는지,
어떤 감정을 갖고 있었는지,
다시한번 그때의 감정을 생각 할 수 있었던
노랗고 예쁜 책이었습니다.
보영
왜 최은영 최은영 했는지 알 게 된 책이었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들을 잘 나타나 있어서 읽을수록 매 순간이 공감이었던 만큼 애써 외면하였던 감정들도 느껴져서 불편감도 같이 느껴야했습니다. 친구들사이 미묘했던 감정, 나를 옥죄었던 이야기, 나와 내 동생이 떠올랐고, 지금 상황을 돌아보게되고 과거를 다시 마주해야했습니다.
작은 블록들이 하나하나 빠져나가 대부분의 블록들이 사라지고 이제는 불필요한 블록외에는 남아있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시 채워가겠지만 기존의 것들과는 다르다는 것이 아쉽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여전히 발제는 어렵고, 책을 2,3번 읽어도 읽을 때 마다 정리는 안되고 공감만 하고 있고... 답답한 와중에 준민오빠의 손길이...
발제과정에서 준민오빠 도움을 받았는데, 오빠가 이야기해준 다양한 부분들 중에 다뤄보고 싶었으나 무거운 주제들이 될까봐,
이야기를 이끌어낼 자신도 없고 이야기가 나올수록 스스로 상처받을까봐 못한것들이 있습니다.
그냥 관계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고싶었습니다만 그렇게조차도 되지않아 아쉬울 따름입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아 도움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부족하였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 노력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먼 길까지 왔으나 아쉬운 부분들이 많은 모임이 되게 만들어서 죄송스럽습니다. 참석해주셨던 분들이 짜증은 커녕 부족한 부분들을 메워주시려 더 열심히 말씀들을 해줘서 감사했어요~~ 다음 번에는 지금보다는 나아질 수 있기를...ㅠㅠ
후기 단어 분석
이번 달 후기로 모아진 텍스트를 분석한 결과입니다. by 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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