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정기모임 - 사소한 부탁

토론 도서

사소한 부탁

발제자

조영진

장소

서울 중구 을지로27길 29 ADD COFFEE

후기

준민

솔직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 모임이었습니다. 특히, 민경이가 그랬어요. 이해가 안 되는 글은 반복해서 읽었는데, 반복해서 읽으면 더 이해가 안 되기도 했다는 말에 엄청 웃기도 했습니다. 정우성의 오랜 팬이라고 말한 부분도 그랬고요. 

식상한 말이지만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한 달에 한 권 책을 읽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후기를 남기는. 그런 의례가 꾸준히 이어졌으면 합니다. 

모든 기록은 의미가 있을 겁니다. 제가 <사소한 부탁>을 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건 분량이었습니다. 꾸준히 기록한 것을 모아두었을 때의 감동. 압도. 누적되어야 설득할 수 있는 부분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뭐, 꼭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아도 좋을 겁니다. 아마, 새롭게 독서 모임을 해보겠다고 이것저것 찾아보는 사람이 독한녀석들 블로그를 보면 제법 놀라겠죠. “와. 2015년부터 했네. 한 달도 안 걸렀어. 후기를 쓰는데 길이가 엄청 길어.” 이러면서. 사실 기록만 2015년부터이지 그 전부터 했는데 말입니다. 

때로는 안 좋은 순간도 있겠지만 앞으로도 할 수 있는 만큼은 이어갔으면 합니다.


민경

- 적당하게 삭힌 홍어 한 점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어금니와 볼 사이에 그것을 밀어넣고 제대로 빚은 막걸리를 마시면서 무어라고 설명할 수 없는 맛이 난다. 그래서 ‘홍탁’이라는 말이 생겼다. 막걸리 없는 홍어회는 완전한 홍어회가 아니다. p.49

이 글은 읽자마자 바로 사진 찍어서 아빠한테 카톡으로 보냈다. 주변에 홍어 먹는 지인이 1명도 없어서 어릴 때부터 홍어는 늘 아빠하고만 먹으러 다녔어서 제일 먼저 아빠 생각이 난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나중에 독토 사람들과 홍어 먹는 날이 오길 기다려봅니다.

- 한번은 아이가 둘인 편집장이 ‘남자의 세계’라는 특집을 제안하며 ‘남자에게는 아내도 가족도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만의 세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p.211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들리는 문장. 남자만의 세계도 분명 있을 것이고, 여자만의 세계도 분명 있을 텐데, 저 문장은 왠지 ‘너는(아내, 가족) 설명해줘도 몰라~’의 분위기를 풍겨서 더 거부감이 컸던 문장이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저런 꼬장꼬장한 생각을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랐다.

- 풍속이 만들어주고 승인해주는 남자들의 습관은 자주 남자들의 생리나 본성과 혼동되기 때문에 반성을 해도 그 반성의 효과는 없다. -p.214
도대체 ‘풍속이 만들어주고 승인해주는 남자들의 습관’이 무엇인지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 안경환씨의 책에서 보게 되는 이상한 비관주의, ‘남자는 이렇게 생겨먹었다’호 표현되는 비관주의는 이 실천해야 할 쇄신 앞에서의 망설임이라고 말해야 하겠다. p.215
실천해야할 쇄신 앞에서의 ‘망설임’ 이라니. 
이렇게 예쁘고 수줍은 단어로 마무리를 짓다니.

- 저도 은주정 김치찌개 참 좋아하는데, 하필 그 날 방탄소년단 콘서트였네요 :)


동진

사소한 것들(아니 그렇게 여겨지는 것들)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
이제 독서에 글쓰기를 할 땐 한줄평을 남기면서 시작하려 한다/
토론에서도 말했듯이 불문과 관련된 사람들이 유난히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색채를 보인다 (지극히 개인적 주관) 우리가흔히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많은 기준 중에 이기적임으로 나눠볼때
보수는 인간을 불완전하고 이기적이며,,진보는 불완전하지만 이타성을 띠는 동물이다. 라고한다
난 진보라고 항상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실제 내 안의 생각과 표면적인 생각의 온도차이가 나는거같아 이 책을 보면서 고민이 생겼다.
토론은 항상그랬듯이 즐거웠으며, 사소한거같지만 사소하진 않았다
ps 회사 적응하느라 정신없었을 발제자의 노고에 감사하오


보영

사소하다 하였으나 사소하지 않는 책이었습니다.  한편 한편 과거부터 엮인 글들 이어서 그런지, 기입되어있던 날짜들을 보면서 과거에 굵직한 사건들이 어떤 것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1,2부의 홍어와근대주의, 두개의 시간등 다양한 이야기들에 공감을 했던 것을 보면서 나는 서서히 꼰대가 되어가나 싶기도 합니다. 짧은 글 들이어서 읽기 쉬울 것 같았으나 글과 친숙하지 않아서인지 3부부터는 의무감에 읽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알게된 분이지만 황현산 님의 글을 많이 읽어볼 수있는 기회여서 좋았습니다.
 적당한 위치에 우리만 있는 장소, 맛있는 김치찌개까지 너무 좋았으나 엘레베이터가 없는 4층은... 4층은...


세진

소한부탁 8월후기

1. 꼭 책을 다 읽고 나서 후기를 쓰겠노라 했는데, 결국 책은 끝까지 못 읽었고 후기는 후기대로 늦었습니다. 토론에서도 오간 이야기지만, ‘글 하나하나의 완성도는 매우 훌륭하나, 묶음으로 붙잡고 읽기에는 호흡이 가쁜’ 책의 구성 탓에 선뜻 손이 가지 않더라고요. ‘취향이 아니다’는 표현이 다소 건방져 보이지만 작가가 즐겨 쓰는 은유적인 표현들이 저에게는 그다지 와 닿지 않았던 탓이기도 합니다.하루가 다르게 감성이 메말라가고 있나 봅니다. 비록 끝까지 읽지는 못했지만, 이동진도 책을 고르는 과정, 사는 과정, 읽는 과정, 읽다가 그만두는 그 과정도 다 독서라고 하였으니 어쨌든 ‘독서를 했다’고 뻔뻔하게 생각하렵니다.두 시간의 토론까지 했으니 독서경험으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2. 저자는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이며 언어를 다루는 학자입니다. 그래서 그의 글에서는 언어를 다루는 학자의 집요함과 섬세함, 그리고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낱말 하나하나에 배어있는 역사적인 맥락과 의미의 결을 예민하게 짚어내며 차곡차곡 정리하고, 소중히 모은 언어들을 어떻게 보존해 나갈지 조목조목 설파하는 실천적인 학자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깊은 전문성과 동시에 연구자로서의 자세와 책임감이 글 전체에 어려있었습니다. 언어와 세계가 조응하며 한 사람의 세계는 그가 아는 언어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명제를 떠올리면, 이 노년의 학자가 가지고 있는 세계의 깊이는 어떨까 생각해보게 됩니다.아마 보통의 사람들보다 훨씬 넓고 깊고 아름답지 않을까요.

3. ‘사소한 부탁’이라는 이름으로 엮었지만 읽다 보면 ‘어른의 쓴소리’같은 느낌도 듭니다. 세태에 적당히 어울리는 기득권이 아닌, 사회 현안에 대해서 꾸준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글을 써온 어른의 당당함과 떳떳함 같은 게 있어요. 이미 지나간 사건들이지만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떠올려보게 되고, 또 익숙해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뭐 크게 세상을 바꾸는 인물은 아니어도, 불의에 적응하고 악의 평범함에 물드는 사람이 되지는 말아라, 이게 이분의 가장 사소한 부탁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4. 토론에서 다루었던 내용 중에서는 관계맺음과 성장에 대한 명제가 기억에 남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공들여 일구고 가꾼 것들과만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이를 통해서만 자기 존재를 확장할 수 있다’는 명제는 저한테는 개인적으로 가장 원초적이고 당연한 삶의 원리였습니다.타고난 게 별로 없어서 노력 없이 얻은 게 별로 없어요. 예를 들어 저는 낯가림이 심해서 (아무도 안 믿지만) 인간관계가 정말 무서웠던 사람입니다. 지금도 카카오톡 하나 보낼 때도 망설이고, 누구한테 전화도 잘 못 걸고, 신나게 이어지던 대화가 끊기면 불안합니다. 그런 제가 모임에 나오고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을 갖게 된 것은 시간과 노력의 결과물입니다. 솔직히 노력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손에 넣는 사람들도 많고, 그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만, 이제는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고요. 꼭 내 것이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내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결과로 나에게 쌓인 모든 것들은 정말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독한녀석들도 그런 것 같습니다. 열일곱번의 모임을 통해서 쌓인 시간들로 이제는 조금은 나의 내집단 같은 느낌이 들게 된 것 같아요. 앞으로도 저랑 잘 지내주셨으면 하는 사소한 부탁 올리겠습니다. 9월에 <내게 무해한 당신>과 함께 또 만나요. :D


병주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싶지만 글을 읽으면서 작가는 꼰대스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정작 그 부분을 발췌하려고 봐보니 명확히 여기다 싶은 부분은 없었다. 그는 여러 편의 사설들을 통해 민주주의, 언어, 살아가는 태도 등 많은 주제들을 다루고 많은 부분은 공감이 갔다. 다만 어떤 부분은 좀 과하게 다가왔다. 특히 황현산씨는 민주주의를 굉장히 넓게 보고 많이 강조하는데 그 의견에는 공감이 잘 가지 않았다. 자신의 세대는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민주주의에 있어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객관적이기 힘들다는 말을 아빠가 한 적이 있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들었던 꼰대적인 느낌이 이것이 아니었을까? 잘은 모르지만 그의 글이 주는 진보적인 성향으로 미루어봤을때 45년 생인 그의 젊은 날은 민주화의 굵직한 사건들과 함께 했을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한 후에 태어난 94년생인 나에게는 민주주의는 그 이상 그이하도 아니다. 이러한 차이는 우리 세대가 관심이 덜하고 그런 것을 떠나 살아온 배경의 차이의 영향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 둘에게 같은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도 없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넘어서지 못하기에 역사 속에서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한다. p 79

경험을 넘어선다는 말은 내가 평소 생각하던 꼰대와 어른을 나누는 기준과 비슷해서 맘에 와 닿았다. 다만 그 꼰대도 되기 위해서도 전제가 필요하다.

인간은 자기가 공들여 일구고 가꾼 것들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이 관계를 통해서만 자기 존재를 확장할 수 있다. (p 136)

 먼저 자신의 것이 있어야 하고 꼰대의 여부는 그 후의 문제이다. 그 방법으로는 다른 세대와의 소통과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있겠다. 그는 20대인 나보다 어플들을 잘 알고 익숙하며 다른 새로운 문물들도 잘 받아들인다.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해 고뇌하고 최근 예술계의 문제에 대해서 과감하게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다면 그가 꼰대스럽게 느껴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 강렬한 경험들이었기에 아무리 소통과 성찰을 해도 포기할 수 없는 그 부분들 때문일거 같다. 그의 글에서는 노력하는 모습과, 남들이 뭐라 해도 객관화 할 수 없는 오로지 나만의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이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그래서 드문드문 보이는 그의 꼰대스러움은 자신의 젊은 날을 열심히 살았다는 훈장이고 멋있게 느껴진다. 게다가 그의 강렬한 부분은 역사적으로 도덕적으로 방향 마저도 같이하니 더욱 빛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그의 장례식에서는 그의 가는 길을 축복해주는 조문객들로 붐비지 않았을까?

요즘 들어 점점 고집이 세진다는 것을 느낀다. 무언가를 납득하기 보단 괜히 한번 아닌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좋다 싫다를 확실하게 말한다. 예전에는 이런 부분이 적어 대부분의 일에 예스맨이었다면 최근에 그 부분들이 넓어져 사소한 충돌이 생긴다. 그래도 주관이 없던 나에게도 나만의 무언가가 생기는 과정 같아 이 모습이 아주 싫지만은 않다. 다만 이렇게 내 것들이 쌓인 후에 그 경험들을 넘어설 수 있을까? 그 때의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미래의 나에게 무언가를 바란다면 무엇을 들이밀어도 포기 못하는 내 것이 있고 그것이 의미가 있을 수 있게 계속해서 노력했으면 좋겠다. 황현산 씨와 같은 어른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


영진

토론을 준비하며 예상치 못한 것들. 

1. 생각보다 책이 읽히지 않았다. 
  한 편, 한 편 읽는 것과 그것들을 한 권으로 묶어서 책으로 읽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각 편마다 울림을 주는 내용이 있었고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는 유익한 글도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글이라도 한 권 분량의 책으로 엮으니 예상보다 책을 다 읽기가 어려웠다. 나름의 속도를 조절하며 읽어야 하는 책.

2. 논제 뽑기가 어려웠다.
  음.. 그렇다. 어려웠다. 정확한 이유를 생각해봤으나 모르겠다. 어려웠다. 

3. 생각보다 바빴다. 예상보다 60% 이상 바빴다.(그저 느낌적인 수치)
  내가 이렇게 바빠질 줄은 생각도 못했지..

변명만 잔뜩.

  토론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접한 작가의 부고는 작품만으로 작가를 접하는 것 뿐 아니라 그 외의 방법으로도 그를 접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요즘 공들여 일구고 가꾸는 일에 한창입니다. 제가 공들여 가꾸는 것은 어떤 물건이 아니라 능력, 기술 등 무형의 것입니다. 이 주제를 논제로 뽑을 때도 저는 물질 보다 어떤 것을 능숙하게 하는 것을 계속 떠올렸더랬습니다. 지금은 내 업무를 능숙하게 하고 싶어서 공들이는 중이고 그 전엔 시험교재의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서 공들였고, 테니스를 잘 지고 싶어서 테니스 연습에 공들이고 가꾸었던 기억이 납니다. 공들인 것이 조금씩 내 것이 되어가는 느낌은 보람차기도 하고 소소한 자부심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토론 진행도 능숙하게 하고 싶어지는 욕심이 생기는데 얼마나 공들여야 할지 감도 안 잡히네요.

후기 단어 분석

이번 달 후기로 모아진 텍스트를 분석한 결과입니다. by 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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