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정기모임 - 나를 보내지 마

토론 도서

나를 보내지 마

발제자

문혜리

장소

세컨드뮤지엄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7길 12-24)


후기

민경

‘장기이식’, ‘이식’ 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던 때가 생각납니다.
‘느낌표’의 ‘눈을 떠요!’라는 프로그램에서 각막 기증을 통해 시각 장애인들이 시력을 찾아주는 그런 일요일 저녁 예능.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때 시각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사연 위주로 방송이 되었고 그들이 각막을 기증받고 수술을 통해 눈을 떴을 그들의 가족을 보며 펑펑 울고 MC들도 함께 울었던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검색을 해보니 코너 후반에는 장기 기증자들의 가족을 만나서 감사패를 전달하는 모습도 보여줬다고 하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만약 배우가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애기하고 있었어.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 하고 말이야.
-p.118

헤일셤의 클론들은 순수했습니다. 풀밭에서 책을 읽고 혼자 있을 때면 노래를 듣고 그림을 그리고 축구를 하고 시를 쓰고 교제하고 꿈을 꿉니다. 
캐시는 남들이 잘 보지 못하는 것도 유심히 관찰할 줄 알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알고, 자신이 가졌던 못된 마음을 스스로 반성하기도 합니다.
클론들이 너무나 그 또래 아이들과 비슷해서 그들의 미래가 그러니까 간병인이나 장기 이식을 위한 존재로만 살아야한다는 것이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이렇게 후기를 쓰려고 거듭 내용을 되뇌다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새해가 되고 처음으로 참석하는 토론이라서 꼭 완독을 하고 싶었는데 아직도 책과 어색한 사이인지라 책 한 권을 완전하게 읽는 게 어렵네요. 일주일동안 남은 부분 다 읽고 후기 알차게 써야지! 다짐했는데.. 일주일을 또 그냥 보냈네요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먼저 책을 다 읽고 영화를 봐야 한다.’고 뭐 주변에서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이번 책은 영화를 보고 소설의 나머지 부분을 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조언에 조만간 영화를 찾아서 보고 나머지 부분도 찬찬히 읽어야겠다고 살짝 다짐해봅니다.


종찬

올해 첫 소설 토론이었죠. 소설이란 게 등장 인물들이 있고, 제시된 상황이 있고, 등장 인물들은 그 상황에 반응하는 거죠. 우리 토론도 역시 비슷합니다. 등장 인물이 맴버들이고, 발제가 상황이고, 반응이 발언이 되겠죠.

발제가 땅 떨어지면 사람들은 짧든 길든 눈치를 봅니다. 누군가가 말을 시작하면 주로 3가지 유형 안에 들죠. 1. 제시된 발제에 대한 답이거나, 2. 발제에 대한 보충 설명의 요구이거나, 3. 발제에 대한 비평입니다. 뒤의 두 가지의 경우에는 발제자가 간단히 보충하거나 질문의 방향을 틀거나 스킵할 것이고, 결국 발제에 대한 답이 나오기 시작하는 단계가 본격적인 토론이라고 할 수 있죠.

누군가가 대답을 시작하면 그 사람에 대한 평소 생각, 완독여부, (소감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한)책에 대한 스탠스같은 것들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대답이 예상대로인 경우도 있고, 빗나가는 경우도 있죠. (빗나가는 그 자체가 예상대로인 경우도 있고.)

첫 답변이 크게 의외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어 질문을 하거나 하지 않으면, 다음 타자로 공이 넘어갑니다.

여기서부터는 성향에 따라 좀 다를 수 있는데, 앞사람이 한 말이 자신의 생각과 많이 달라야 나서는 사람이 있고, 거의 비슷할 때 오히려 보충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튼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의견에 따라 파가 나뉩니다.

저는 이렇게 파가 나뉜 상태에서 각자가 새로운 시각이나 정보를 공급하면서 진행되는 토론이 재밌는 것 같아요. 

모두가 동의하고 넘어가도 밍숭맹숭할 테고, 새로운 시각이나 정보 없이 동어반복이 이어진다면 말싸움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그런 미덕이 잘 지켜진 토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그 여러 가지 이야기에 의해 중심 주제 한 두 가지에 대해 다각도로 생각해볼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그 한 두가지가 다른 사고를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어 주기도 했구요.

저 개인적으로도 (놀고 있으니) 평소보다 훨씬 준비가 잘 된 상태로 토론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더 재밌었던 거 같아요. 같은 토론이라도 내 준비 자세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는 것도 새삼 느꼈어요.

늦는 바람에 좀 급하게 걷긴 했지만, 서촌의 낮 골목길이 좋았습니다. 상쾌했어요.


병주

이 책은 앞 부분 10장 정도가 정말 읽기가 어려웠다. 첫문장에서 친절하게도 주인공의 이름 나이 직업을 다 말해준다. 친절은 거기까지였다. 주인공의 이름은 캐시 h.인데 저 줄인말인듯한 h.는 뭔가 숨기는거 같고 간병사로서의 경력을 줄줄이 읊는데 간병사 기증자 같은 단어들이 내가 아는 문맥이랑 다르게 쓰여서 내용도 이해가 안 간다. 재미도 없고 시간도 많이 남았어서 조금 보다가 책을 덮었다. 옮긴이의 말을 읽고 나서야 작가가 불친절한 구성을 통해 '들었으되 듣지 못한 것'을 의도했다는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도 소설 속의 클론들과 같이 죽음에 대해 들었으되 듣지 못하게 다뤄지는거 같다. 보통 어릴때 죽음은 하늘나라로 표현되고 tv나 영화를 보면서 막연하게 죽음을 접한다. 고등학생쯤 되서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그때서야 실감하는거 같다. 

난 아직도 내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소름끼치고 무섭다. 그래서인지 본능적으로 외면한거 같다. 신기하게도 자기 앞의 생을 했을 때 주변에 소중한 사람을 잃었던 모모에 감정이입해 부모님의 죽음을 떠올렸지 로자 아줌마에 이입해 내가 죽는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더욱이 내 죽음에 대해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정말 싫다. 후기를 쓰면서 뭐라도 써보려고 생각해봤는데 결론은 안 나고 생각할수록 복잡해진다. 결론은 그만 생각하고 후기내고 자는거 그게 지금의 답인거 같다.


준민

1) 말하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말했지만 말하지 않은, 들었지만 듣지 않은. 그런 게 바로 소설이고 문학이야, 이렇게 말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지만 그렇게 쓰는 것은 어렵습니다. 

<나를 보내지 마>가 정말 놀라운 건 이 지점일 겁니다. 작품에서 나오는 그런 정취를 작품으로써 구현하는데 성공하고 있으니까요. 들었으나 듣지 않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독자로 하여금 체감하게 만듭니다.

다시 한 번 말하겠습니다. 말하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2) 제가 늘 말하는 세상 사는 원칙 중에 “선의가 꼭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나를 보내지 마>의 뒤표지에 적혀 있는 문구들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선의였을 겁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작품의 몰입을 깨는 요소였습니다. 들었으나 듣지 않음을 보여주려는 소설의 핵심 정취를 깨트렸다는 점에서 말이죠. 

하지만, 꼭 나쁜 평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대충 인터넷 찾아보니 뒤표지를 읽어서 소설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는 걸 보면 말입니다. 

3) 에둘러 말하지 말고 솔직하게 직접적으로 말해라. 그런데 직접적으로 말하는 건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은 직접적으로 말한다고 말했지만, 듣는 사람은 그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에둘러 말한다고 느낄 수도 있고 어쩌면 오해를 하게 될지도 모르죠. 

직접적인 말이 꼭 언어 자체만 가리키는 건 아닐 겁니다. 표정, 말투, 태도 등등이 직접적인 것에 속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 직접적인 것에 속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어쩌면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순간순간마다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새삼스럽고 뻔한 이야기지만, 말을 주고 받는 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나 고민하고 돌아온 답에 어떻게 답을 해야 할까 다시 고민하고. 뭘 그렇게 말을 해서 다른 사람에게 어려운 일을 시키고 그러는지. 

그러니 다음 모임에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가 말을 안 하면 다른 사람이 그 말에 답을 하기 위해 고민하며 고통받는 순간은 사라지겠죠. 세상이 조금은 평화로워 질 겁니다. 


현정

책 내용의 전말이 마지막에 휘몰아치는 경우는 추리 소설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인데, 이렇게 다른 장르에서 사용되는 책을 읽은 적은 처음이라 독서 후의 여운이 남다릅니다. 사실 책의 중반부를 훨씬 넘어서도 클론에 대한 생각을 단 한 번도 할 수 없었거든요. 책 뒷 표지의 글을 완독 후에 읽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직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저 스스로 어떠한 상황을 그리면서 책을 읽었을지 지금은 상상이 되지 않아서요. 가장 마지막에 휘몰아치는 부분 직전까지만 읽고 토론에 참여한지라 조금은 갈피를 잡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토론 후에 남은 부분을 읽어보니, 오히려 그냥 읽었다면 생각없이 흘렸을 부분까지 짚어보게되어 반대로 예상하지못한 만족감을 받았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지니고 바라보는게 꽤 큰 흥미를 불러왔거든요. 토론 전 읽지 못한 부분이 가장 중요한 결말의 시작이라는 점, 마침 완독하지 못했을 때 이러한 소설을 만난 점 모두 우연인 듯 필연적인 느낌입니다. 이번 감상문은 좀 터무니없고 감성적이네요.. ㅋㅋㅋㅋㅋ 결론은 독서와 토론 모두 즐거웠다!라는 것, 그리고 항상 저 혼자 책을 읽었다면 가질 수 없었을 다양한 즐거움을 공유해주는 독토 멤버들에게 고마워용


영진

읽을 시간이 있을 거야.. 
시간이 조금 생겼는데 읽어야겠다.. 
초조해서 글이 눈에 안 들어오네, 결과 나오면 읽어야지..  
이렇게 미루고 미루다 결국 토론 전날 결과가 나왔습니다.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진행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토론만 들어도 정말 생각거리가 많은 책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술복제와 인간복제,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의 경계는 무엇인가, 특히 내가 클론이라면, 또는 내가 선생님이라면 하고 전개한 상상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사실 이런 막다른 논제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가도 저런 방법으로 가도 절망만 느끼게 돼서요.. 그렇다고 논의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성찰을 경시하는 것도 아니지만요.. 잊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굳이 일부러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숙제가 다시 떠올라 버거움을 안겨주는 느낌적인 느낌. 

다음엔 완독하고 가렵니다.


혜리

 1년만에 하는 두번째 발제였습니다. 사실 지금 쯤이라면 ‘발제’라는 것에 익숙해져있어야되는데 제가 요리조리 피해 다녔던 것인지 왠지 느낌은 첫발제 같았습니다. 

 평소같으면 한번에 읽어내려갈 부분도 한번씩 괜히 되짚어보느라 천천히 읽게된 것 같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인간의 모습에 대해 생각했고, 또 내가 애써 외면하고 싶던 주제들에 대해 그나마 소설을 통해서 조금 유하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토론 중에는 책을 완독한 사람과 완독하지 않은 사람. 영화를 본 사람, 영화를 안본 사람 등으로 나눠져있었는데 그 점도 토론을 할 때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게 해 준 요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토론에 참여하고 완독을 하신 분들은 또 다른 느낌이겠지요? 

 이번 토론을 진행하며 발제자만이 볼 수 있는 독서토론의 앵글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꽤나 예쁜 그림이여서 또 발제를 하고 싶다고 느꼈어요! 

후기 단어 분석

이번 달 후기로 모아진 텍스트를 분석한 결과입니다. by 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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