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정기모임 - 자기앞의 생



토론 도서

자기 앞의 생.

발제자

김미정

장소

마포구 왓코커피

후기


보영

처음에는 주인공의 삶이 흥미로워 재미있었으나, 인물들의 삶이 우울해서일까, 공감이 되지도 않았었다. 사람은 자기가 관심있는 것만 보는 성향때문일까, 요즘 나이가 드는 것에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자기앞의 생의 중간 부분에 로자아주머니가 치매? 걸리는 부분 등이 나와서 급 몰입이 되었다.
나는 주인공 모모보다는 고난을 겪어온 로자아줌마에게 더 몰입되었던것같다. 힘겨웠어도 그 아이들을 키웠던 복이었을까 그래도 치매이고 혼수상태임에도 주위에 좋은 동료들이 함께해주는 것이 부러웠다... 
나에게 남은 날에는 어떤일들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만나는 사람들, 행하는 것들로인해 느끼게되는 행복을, 그리움을, 슬픔을 담을수 있음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그건들이 삶의 원동력, 그리고 내 존재가 될테니ㅋㅋㅋ
그리고 무서움에 이유없듯....지각에는.이유없지요ㅜㅜ 그저 늦게나온것뿐..다음번에는 예상시간보다 10분더일찍나오겠습니다. 그럼  지각면하겠지요.ㅜㅜ


세진

 * 소설의 배경은 황량합니다. 과거 엉덩이로 벌어먹고 살던 로자 아줌마가 창녀들의 아이들을 키우는 곳은 삐걱거리는 계단을 7층 올라가야 하는 낡고 허름한 건물이고, 뚜쟁이와 트렌스젠더와 이민자와 늙은 노인들이 사는 곳입니다.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 사는 곳은 빈민가를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뉴욕의 할렘가를 상상하면 떠오르는 막연한 공포와 어둠이 이 곳에는 없습니다. 되려 서로 약간 모자라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도움을 주며 공생하는 이들의 모습은 귀엽고, 순수한 느낌마저 줍니다. 왠지 모모를 상상하면 <꼬마 니콜라>의 그림체가 생각납니다. 비극적이지만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다분히 동화적인 환각을 불러 일으키는 소설이었습니다.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며, 늙고 뚱뚱한 로자 아줌마를 지키고 마지막 순간까지 남기는 한 마디가 사랑해야한다, 라니. 얼마나 낭만적인가요. 토론 때도 말했지만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향기도 나고, 성장과 상실과 사랑 등 마음을 간지럽힐 만한 테마를 참 발랄하게 잘 풀어낸 좋은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 그 감성에 필요 이상으로 푹 젖어있어서 토론에서 다소 아쉬운 소리를 했는지 모릅니다. 모모가 생의 순간 순간 느꼈을 박탈감, 분노, 흥분, 행복감 등 얘기해보고 싶은 장면이 많았던 탓입니다.  하나씩 같이 곱씹어보며 더 큰 여운으로 남기고 싶었던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궂은 날씨에 함께 모인, 그리고 흐름이 끊기지 않게 계속해서 이야기를 풀어준  참석자들과 함께한 시간은 참 아늑했습니다. 이야기가 흘러가는대로, 그 방향을 가만히 듣는 토론도 묘미가 있음을 알게 되었네요. 새로운 책으로 2017년도 함께해요. (연말모임을 못가는 관계로) 미리 새해복 많이!


종찬

작가는 사람이 무서운 데는 이유가 없다고 썼다.

나도 무섭다.

전에는 믿었던 것들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믿음들이 사라졌거나, 남아 있어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대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소한 걸 믿음의 영역에 넣어 놓는 사람은 없다. 그냥 아무렇게나 결론을 내서 정보의 영역에 휙 집어던지지.

전에는 막연해도 괜찮았다. 표정이 밝고 그런 건 아니었어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낙관적으로 생각했었다.

몰두할 것도 있었다. 그게 뭐 좋은 거든 아니든, 지금의 내가 누군지 말해주는 것이 있었다.
심지어 외롭기라도 했다. 외로운 사람이라는 아이덴티티라도 있었다.
지금은 그것들이 모두 빛이 바래서, 사소해 보인다.
다른 거대한 건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얘길 하면 또 연애 얘길 꺼낼 사람들도 있겠지만, 지금은 정말로 싫다. 
내 삶에 또 누가 있다니, 피곤하다.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아무 것도 없는 곳에 무서움이 들어온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 것도 없는 게 무서운 걸까.

사는 게 재미없고 외로운 것도 아니다.
적당하고 사소하게 재미꺼리가 있고, 외롭지도 않다. 누굴 보고 싶지도 않다.

일도 재밌다. 하루하루 안개가 걷히고, 전보다 조금 더 나은 방법으로 일할 수 있게 되어간다.
보람있다. 정말로. 힘들어도 개발은 재밌다.

그렇게 적당히 행복한, 굉장히 비슷한 하루하루다.

그러다 그냥 뜬금없이 현실감이 없다. 모든 게 다 터무니없이 망가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들면, 뭐 때문에 그런지 생각해본다. 

그런데 아무 것도 없다. 정말로 괜찮은데 말이다.

아참. 토론 이후에, 정말로 완독을 했다. 다시 돌아가서 궁금한 것들도 봤다.
그런데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 아무튼 본편 다음에 있는 그 글은 굳이 읽지 말 걸 그랬다. 
난 그걸 읽으니까 소설에서 받았던 감동이 반토막 났다.

아무튼 다들 연말에 봐요.


병주

참 묘한 책 인거 같다. 처음 읽었을 때 들었던 느낌은 이게 그렇게 극찬 받을 만한가 였다. 아이의 시선으로 써내려간 표현은 너무 좋고 맘에 드는 글도 많은데 너무 난잡한 느낌이 싫었다. 난 개인적으로 일관된 스토리로 진행되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것이 좋다. 이 소설은 그런 부류의 소설은 아니었다. 토론이 다 끝나고 후기를 쓸 무렵이 되니까 기억나지 않는 좋은 표현들을 찾고 싶어서 다시 읽었다.
p137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서 살아 있을 때의 제자리로 돌아왔다. 누군가가 단추를 누리자 모든 것이 뒷걸음질쳐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자동차들이 거꾸로 달리고 개들도 뒤로 달리고, 무너졌던 집이 내가 보는 앞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시체에서 총알이 튀어나와 기관총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살인자들은 뒤로 물러서서 뒷걸음질로 창문을 훌쩍 넘어 나갔다. 비워졌던 잔에 다시 물이 차올랐다. 흐르던 피가 시체의 몸으로 다시 들어가고 핏자국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으며 상처도 다시 아물어버렸다. 뱉은 침은 다시 입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말들이 뒤로 달리고 팔층에서 떨어졌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창문으로 돌아갔다. 거꾸로 된 세상, 이건 정말 나의 빌어먹을 인생 중에서 내가 본 가장 멋진 일이었다. 나는 튼튼한 다리로 서있는 생기 있는 로자 아줌마를 떠올렸다. 나는 좀더 시간을 거슬러올라 아줌마를 아름다운 처녀로 만들었다. 그러자 눈물이 났다.

표현도 표현이지만 마지막 모모의 말이 좋았다. 책에서는 노인이 너무 초라하게 나왔다.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무기력하게 생을 빼앗긴다는게 너무 무섭게 느껴졌다. 우리의 젊고 멋진 모습이 아니라  책 내부에서 가장 현명한 하밀 할아버지도 결국 시간이 흐르자 노망이 나버렸고 로자 아줌마도 아름답던 15 살의 모습은 사라져 버리고 초라한 모습만 남았다. 다만 이 책의 매력은 더이상 이쁘고 아름답지 않은 초라해진 노인들이지만 같이 시간을 보냈기에 모모의 눈에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엄마와 아빠가 많이 생각났다. 내가 태어나기 전, 젊은 날의 엄마 아빠는 어땟을까? 이야기나 사진 속에서 만난 부분으로서의 엄마 아빠가 아닌 과거서 직접 만나 이야기해보고 싶다. 내가 알아볼 수는 있을까? 지금의 모습이 그때에도 있을까? 둘이 만나기 전의 이야기는 어떠할까? 부모님의 젊음이 궁금한 것은 요즘따라 엄마와 아빠의 나이가 많아졌음을 느끼기 때문인거 같다. 어릴때 주말마다 뽑던 아빠의 흰머리는 뽑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아졌고 엄마는 류마티즘 때문에 관절이 안 좋아 오래 못 걷는다. 50대인 우리 부모님이 노인이라 초라해서 생각난 건 아니다. 로자 아줌마처럼 늙어가는 모습이 보이기에 생각났던거 같다. 그리고 이제부터 그런 모습이 늘어날 것을 생각하면 더 가슴이 아프다. 
다시 읽고 나니 호평했던 사람들이 이해가 되는 거 같다. 오늘 내가 보는 아이가 책을 반토막 내버렸다. 평소 같으면 읽었으니 끝이지 하는데 왠지 아쉬웠다. 언젠가 한번 더 보고 싶어질 거 같기에 그냥 다시 살까 한다.


준민

 1) 문장은 배치에 따라 의미가 만들어집니다.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이번에 발제문을 보면서 신선하게 들어왔던 건 엔딩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사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중요한 문장인데, 발제문에서 보기 전에는 눈에 안 들어왔습니다. 덕분에 이 문장을 놓치지 않아 고마움을 표합니다. 

2) 2판에는 제가 넘나 사랑하는 작가 최은영의 서평이 추가로 붙어 있습니다. 이 서평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을 꼽으면 

“누군가를 사랑할 때 왜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지.”

입니다. 그냥 저는 광범위한 의미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서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의 이야기들을 좋아합니다. 

3) 현실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모모와 로자 아주머니의 삶은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가난에 허덕이고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그럼에도 그 둘은 행복했을 겁니다. 그건 정말 객관이나 비교 같은 단어와는 저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4) 오늘 출근하면서 윤지운의 <눈부시도록>을 다시 읽는데 울컥했습니다. 희안과 좋은 추억을 남기고 더 나아가 짝사랑을 하게 된 석린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이것도 너에게는 사치스럽다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

사실 멋진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그런 게 사치스러운 건 아닐 겁니다. 석린 스스로가 그런 걸 사치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저렇게 말하겠죠. 

반대로 데이트 한 번이나 짝사랑 따위, 연애를 하는 것도 아닌데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기준에 따라 받아들이는 의미가 달라집니다.

5) 이쯤 되면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나 이상한 생각이 들고 있을 텐데 네, 잘 읽고 계십니다. 저도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시간은 새벽 1시 30분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저는 오늘 엄밀히 말하면 회사 일은 아니지만 사실상 따지면 회사 일 때문에 10시 30분에 퇴근했으니까요. 

그래서 기분이 우울하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실 기분이 무척 좋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으며 더 두고 봐야 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습니다. 

6) 그러고 보니 <눈부시도록>에는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유채선배도 하륜선배도 무척, 다른 사람처럼 보였지. 좋아하는 마음은 사람을 그렇게 바꿔 놓는 건가. 희안선배가 좋아진 나도 지금과는 다른 누군가가 될까.”


동진

책은 초반에 다소 루즈하게 모모랑 그 배경인물을 설명하고있다면 중반부터는 더흥미있게 책을 넘길수 있다. 사실 제목을 이해한다면 세드앤딩을 예상해볼수있다(본필자는 스포에대한 악취미가있어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감소시키는것은 반성한다) 내앞의 생애가 나오니깐 죽음도 같이소시지처럼 딸려오지않겠나 ...아무말대잔치는 이쯤하고 책은 잔잔한 슬픔을 담백하게 전해준다.맘에남는 문구들도 여러가지가 좋았다 게중에 하나남는말은 모모야 우린 늘 함께였지 이 별거아닌말이 오래도록 남는다.
이제 달력 마지막장을 남겨논 이때 내년이맘때도  독토와 늘 함께이기를


병준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문득 잊는다는 것, 잊혀진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한 때는 하루의 전부를 쏟아붓던 블로그, 동아리, 취직준비, 그리고 지난 연애가 지나고 보면 내 하루의 1초도 자리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물론 그 기억들이 전날 밤 마셨던 술 따위에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또 구태여 찾지 않으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만 저장되어 내 뇌 어딘가에 꽁꽁 숨어있다는 게 기특하기도 하고 이래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나 싶기도 하다. 망각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모모에게 로자 아주머니는 지금까지의 삶에서 가장 큰 축이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모모는 잃게 된 것이고. 누군가를 잃는 것에 대해 배운 적이 없는 10살(14살)짜리 꼬마에게는 앞으로의  삶에서 그녀와 함께한 시간이 얼마만큼의 크기로 자신에게 남게 될지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이제 모모는 그녀를 잃은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녀를 잊게 되는 자신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작가 로맹 가리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비평가들에게서 잊혀진다는 절망, 또 한편으로는 잊혀지고 싶다는 욕망이 그를 에밀 아자르로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 이외의 다른 누군가로 살고 싶은 삶이 있느냐는 발제문은 참으로 좋았다. 나로 살아온 인생에서 타인에게 잊히고 싶은 순간 혹은 타이틀과 내가 살아보고픈 이상에 대해서 두루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무드셀라 증후군이라는 용어가 있다. 지나간 것은 다 아름답게 보는 심리를 말하는데 대표적으로 내가 그러하다. 모모가 로자 아주머니를 회상하며 가끔 아름다웠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심리일 것이다. (물론 끔찍하다고 언급할 때가 더 많았지만) 지난날의 나와 또 그때 그 사람들을 지금 시점에서 아름답게 추억하는 것은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우선은 그 기억 자체만으로 힘든 오늘을 견딜 수 있고, 또 시간이 지나면 이런 오늘도 아름답게 돌아볼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최근 추억팔이하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현재를 살아가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굳이 과거를 회상하지 않더라도 현재를 살아갈 이유가 분명해서 그러지 않았나 싶다.
맞다. 사랑해야 한다.

P.S.> '잊히다'라는 피동에 또 피동의 뜻을 나타내는 '-어지다'를 붙인 '잊혀지다'는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입니다. (네이버 국어사전)
'잊혀지다'라는 어휘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잊었다는 의미를 어지간히도 강조하고 싶은 마음이 알알이 담겨있는 표현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틀린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쓰련다.


민경

세상에나 거의 한시간 가까이 지각 했던 토론이었습니다. 초행길이라 일찍 나간다고 나섰는데도 늦어버렸습니다.

토론이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 참여하게 되어 아쉬워서 못다한 후기 남깁니다. 

1. p. 69
"그곳은 내가 무서울 때 숨는 곳이야."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진실된 말이기 때문이다.

가장 진실된 말. 그런 말을 하기도 듣기고 참 힘든거 같아서 앞으로 그런 말을 내가 얼마나 할 수 있고 들을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3. 왈룸바씨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러브액추얼리, P.S 아이 러브 유 같은 영화에서 보면 장례식에서 고인이 좋아했던 노래를 듣고 다 함께 고인과 함께 했던 즐거운 추억을 나누곤 하는 장면이 꽤나 낯선 풍경이었지만 너무 부러운 문화였습니다.
내가 아플때 죽음을 앞두고 있을때 그리고 장례식장에서도 왈룸바씨처럼 다함께 모여 내가 좋아했던 신나는 노래를 듣고 맛있음 음식을 먹고 좋은 이야기를 나누며 보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한번 더 하게 되었습니다.


영진

  사람의 머리가 일이나 미래걱정 그리고 스트레스로 꽉 차있다는 것은 머릿속에 감동을 느낄 틈새도 없어진 다는 말 아닐까요? 영어로도 이걸 ‘head-space’라고 한다죠. 책을 읽을 당시의 환경이 중요합니다. 저는 책이 상당히 감동적이었는데요, 책을 읽을 당시의 환경이 어떠했는가 생각해보니 주변이 번잡하지 않은 늦은 밤에 조명만 켜놓고 홀로이 독서에 집중 할 수 있는 환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감성 터지는 밤이니 인물에 감정이입이 쉬웠을 테고 가족들 모두 잠들어있으니 집중도는 말 할 필요도 없겠죠. 그런데 정신적 여유가 없었던 4개월 전에 이 책을 잡았더라면 혹평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로자아줌마가 멋있게 느껴졌습니다. 환경이 엉망이고 몸도 마음도 아프면 돈은 돈대로 받고  양육도 대충대충 하고 싶어질 텐데 어떤 철칙을 꾸준히 지켜가며 모모를 키우는 모습이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예를 하나 들면 인종적 정체성을 지켜주는 양육 같은 것 말입니다. 모모도 그걸 알기에 끝까지 로자 아줌마 곁에 남았던 거겠죠. 
  ‘아이는 마을이 키우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속담이 여기서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게 정말 아이러니했습니다. 하밀 할아버지, 카츠 의사 선생님, 검둥이, 나딘 양 등등 우리 기준으로 본다면 아이가 크기엔 정말 최악의 환경이라 볼 수 있지만 모모는 그저 잘 큽니다. 아니, 그저 소설이라 잘 커 보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모모를 만난다면 기피할 것 같아요.
  이웃을 위하는 모습이 많이 사라진 오늘날에 로자 아주머니를 치료, 위로, 인내 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뭉클했습니다. 앞으로 사는 동안 기억에서 이런 장면을 한 번 쯤 꺼내 이웃을 위할 날이 오면 그걸로 독서는 성공했다고 생각하렵니다.


미정

세상이내마음대로되지않는다는건.

왜 독토 발제를 할 때마다 저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요. ‘자기 앞의 생’으로 발제문을 처음 만들었을 때에는 사실 이정도면 괜찮겠다라고 부끄럽게도 생각했습니다만, 토론이 실제 진행되고 나서는 내가 생각한 의도가 명확한 건 아니구나, 혹은 내 의도가 남에게는 와닿지 않을 수 있구나, 더 나은 생각들이 있구나라는 생각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같은 소설을 보아도 이 소설 속 ‘누구를 친구로 삼고싶은지’ 생각이 다 달랐고, 소설의 호불호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라졌다는 점입니다. 다양한 우리 독토인들에 박수를...

사실 토론이 끝나고 토론과 책 (주로 책에 치중한 생각이지만..) 이후의 소감은 위에서 말씀드린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모모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즉 로자 아줌마와 백만년 즐겁게 살 수는 없었고, 현실 속의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도 그럴 것입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흔하고, 사람 관계도 그렇고, 숱하게 좌절합니다. 그래도 모모는, 로자아줌마는, 그리고 벨빌가의 사람들은 각자의 치료와 위로 방법을 갖고 발휘하며 살아갑니다. 그들이 즐거워 보였던 건 나름대로의 최선의 진심을 행동으로 발휘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때로는 내 마음대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상대가 움직이지 않아, 혹은 심지어 내 속마음과는 다른 가시돋힌 말들이 나와 후회하고 마음 아픈 일들이 많습니다. ‘현재의 모모’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앞의 생을 살아가고, 그리울테지만,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로자 아줌마를 그리워 할 것이라고 말하듯이, 네, 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진 기억과 마음을 갖고 내 앞에 놓인 생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싶습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 어딘가 교훈적이어 보이긴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교육을 놓은지 오래 되었으니 (세진이 제외..) 다시한번 모모와 친구들을 통해 그 소중함을 떠올리면 좋겠습니다. :)
이번 토론에는 약 9명의 많은 분들이 참석해주었고, 진지하게 뜻이 깊은 의견을 제시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후기 단어 분석

이번 달 후기로 모아진 텍스트를 분석한 결과입니다. by 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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