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정기모임 -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토론 도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발제자

이병주

장소

신촌 카페

후기

종찬

이 책을 읽고 토론하기까지는 의외로 그다지 힘들다거나 부담스럽다거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저자의 고통을 지켜보는 것은 힘들지만, 저자는 저렇게 쏟아내면서 나름대로의 삶의 의미를 찾으면서 가능한 부분은 치유해나가고 있었으니까요. 

삶이 항상 비슷하게 흘러간다는, 혹은 그래야 한다는 생각은 허구라고 생각해요. 더 나아질거라는 믿음이랑 비슷할 만큼. 그렇다면 어떤 사건이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건 그 경중이 다를지언정, 늘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골랐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실제로는 그냥 주어진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후기를 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자에게 일어난 일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만, (사실 그렇게 따지면 뭔들 비슷하겠냐 싶긴 하지만) 저 나름대로 잔펀치를 몇 번 맞느라 많이 우울해 있었거든요.

우울한 날도 있는 거죠. 마치 집에 기어다니는 벌레 같네요. 어쩌다 나오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실제론 어딘가 많이 숨어있겠죠. 다만 다른 점은 찾아서 박멸할 수가 없다는 점. 세스코마냥 원인을 찾아내 뿌리를 뽑아 버릴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거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이라고는 죽을 때까지 끊이지 않고 마약을 하던가(그럴 수 있을 만큼 돈을 벌어서요.) 아니면 가끔 우울한 건 그냥 우울하도록 두는 방법도 있습니다. 안 보이는 데 벌레 좀 산다고 큰일 나나요.

큰일 난다는 분도 있을 거 같긴 하네요.

그러게 세상엔 쉬운 일이 하나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요즘은 좀 우울해 있고 싶어하는 거 같아요. 스스로가. 밝게 구는 것도 좋지만, 에너지가 들잖아요. 우울하면 우울하니까 평소보다 조금 느리게 행동하고 말해도 된다고.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고즈넉하게.


준민

토론이 끝나고 고기를 먹으러 가면서 저는 "이번에 후기에 쓸 이야기 정말 많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진심이었습니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으며 정말 많은 생각을 했으니까요. 소재가 요소요소 있었습니다. 

막상 쓰려고 하니까 쓰지를 못하겠네요. 사실 이 말은 거짓말이긴 합니다. 쓸 말이 없는 첫 번째 이유는 쓰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이 있다고 미루다 보니 쓰고 싶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게 제일 중요하죠. 하고 싶을 때, 떠올랐을 때 해야 합니다. 그게 글쓰기이든 그 외의 다른 일이든 말이에요. 

두 번째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변명이지만,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으면서 떠올렸던 생각들이 전부 예전의 것이 되어버렸음을 알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수 클리볼드가 이 책을 쓸 수 있었던 건 그에겐 예전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일 겁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오늘의 일로 남아있을거고요.

어쨌든 쓰기 시작했으니 책 이야기를 해보죠. 저는 이 책은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만족도가 많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건 수의 입장에서도 딜런의 입장에서도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장면씩 꼽아서 설명을 할까 했는데  구질구질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읽는 사람도 아 쉬바 이제 그만 좀 해라 이럴 것 같아 그만 할랍니다. 예전 일이니까요. 수 클리볼드처럼 잊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니까요. 아니 잊을 수 없는 일인 건 맞는데, 그 감정이 계속 되지는 않으니까요.

그래도 이 말은 해야겠습니다. 그 애에게 고백하고 차이고 이틀 뒤인 11월 3일에 회를 먹었습니다. 아마 맛있었다고 말했고 맛이 있었을테지만, 어떤 맛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며 아마 맛있게 먹지는 못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그 회가 있었기에 웃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수 클리볼드가 주변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는 장면을 보며 이상하다고 갸우뚱하면서도 묘한 기시감을 느꼈던 그래서 였을 겁니다.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오늘 쓰는 글이 당신을 향해 쓰는 마지막 글이 될거에요. 잘 지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올해에도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그 말이네요.

생일 축하해요. 


미정

토론을 가기 전에 좋은 부모란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차례 생각해보았습니다. 총기사건 가해자 딜런의 부모는 충분히 가정적이고, 적당히 이성적인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토론 때 나온 좋은 부모의 습관들 (같은 취미를 공유하기, 간식냄새를 풍기기 등)은 대부분 '나' 즉, 잠재적 부모의 경험에 의존한 것들이었습니다. 부모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다음 세대들에 깨달음과 적용, 변형으로 대물림된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합니다. 얼마나 조심해야할까요, 얼마나 자식의 입장을 헤아려 행동해야 상대는 만족스러운 유년기를 보냈다 자부할 수 있을까요.(그리고 이미 이모양으로 자란 내가 위인 엄마아빠같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팩트는 명명백백합니다..)

발제 도서를 읽고, 토론을 진행하고 나서는 좋은 부모에 대한 답은 없다는 게 더 굳어졌습니다. 다만, 토론으로 얻은 점은 '자식의 변화에 대해 민감히 캐치하고, 이에 대해 교류할 수 있어야 겠다 (이렇게 노력을 부단히 하는것)'는 방향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끼어드는 일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일인 것 같습니다. (특히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부모자식간에는 더욱..) 조심스럽게 대한다고 해서 아이가 잘 자라는 것도 아니고, 막 버려둔다고 잘 자라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적어도, 생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우울이나 정신적인 교류를 무시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생계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받는 문제가 많고, 상처받는 이들이 많아지는 현재들에 대해


병준

내가 어렸을 적, 그러니까 머리가 좀 굵어졌을 때 나는 내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으리라는 것에 조금의 의심도 없었다. 적어도 내 부모보다는 좋은 부모가 될 자신이 그 시절의 나에게는 있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부모가 될 때 즈음에는 내가 누구의 아들, 남편, 사위, 선배, 친구 그리고 그 밖의 숱한 이름표를 가슴에 빼곡히 달고 살게 되어 내 자식 하나만 바라 보고 살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이 책으로 토론을 진행한다고 했을 때, 나는 내심 좋은 부모가 되는 자기 계발서 정도를 기대하고는 조금은 위안을 삼았었다.

책에는 그런 강령이나 지침 따위는 없었지만 오히려 부모라고 자기 자식을 다 알지는 못하며, 자식이 자라는 데 있어 부모는 생각보다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는 한계점을 일깨워줌으로써 내게 위안을 주었다. 같은 의미에서 '부모의 책임과 의무는 언제 어디까지인가'라는 토론 주제는 조금은 무딘 감도 있지만, 꽤 오랫동안 묵직한 고민을 하게끔 하였다. 돌이켜보면 내가 커가는 데 있어 나의 부모가 나에게 해준 그간의 노력들은 이미 되갚을 수 없을 정도의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있는 걸 보면 자식에게 백 점짜리 부모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또 하나 뜻밖이었던 것은 이 책이 살인, 그것도 대학살보다는 아들의 자살에 초점을 맞춘 책이라는 것이다. 덕분에 자살에 대한 나의 편협한 사고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자살을 고민하는 사람들이라고 특별한 예외가 존재하지 않으며 살고자 하는 열망 또한 크다는 것과, 자살이 살인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 굉장히 새로웠다. 그리고 뇌 건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다 보니 매일 같이 힘든 삶을 용케도 버텨내고 있는 내 뇌에게 그간 수고가 많았다며 토닥토닥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무엇보다 아이는 혼자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다 같이 키우는 것이라는 옮긴이의 말이 요즘 시대에 정말 필요한 사고가 아닐까 한다. 가족과 사회가 다 같이 커가는 그런 나라가 하루빨리 도래하기를 소망한다.


민경

예전에 궁금한 이야기 Y에서 다뤘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A군의 엄마는 A군이 주로 어울리던 친구들 중 B군의 엄마로부터 아이들의 SNS를 확인 해 보라는 얘기를 듣고 확인해 봤더니 본인 아들의 노출 사진이 친구들 SNS에 올라왔던 것이었다.
친구라는 울타리 안에 약하기만 했던 A군을 장난이라면서 심하게 괴롭혔던 사건. 
B군 역시 가해자 였으나 B군의 엄마는 이렇게 알면서도 모른척 하다가는 A군이 정말 잘못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A군의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렸던.

내 자식이라면 특히나 끔찍이 여기는 우리나라 부모들이 대부분인데, 위 방송에 나온 B군의 어머니는 정말 새삼스럽게 대단하다고 다시한번 생각을 하게 된다.

수 클리볼드가 아들을 키워온 글을 읽다보면 나도 훗날 내 아이를 이렇게 키우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첫째에게 신경을 많이 쓰는 사이에 둘째에게 일어난는 일들을 많이 알아채지 못했다는 부분에서 그렇다면 아이를 한명만 가진다면 온 신경을 그 아이에게 쓸 수 있으니 아이가 엇나가는 것을 바로 알아챌 수 있을까?

토론중에 누군가 말했던 것 같다. 작정하고 속이려면 상대가 부모든 친구든 속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전에 대학 강의를 듣는데 교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자식은 복불복이야."

아무리 속이려하더라도 혹인 복불복이라도 
내 아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내가 바로 알아차리고 
바른길 아니 그냥 평범함 길로 함께 갈 수 있기를.


영진

  교내폭행처럼 가학사건이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걱정하게 합니다. 생각해보면 요즘처럼 가학사건이 주목받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근래에 사건이 많이 발생합니다. 토론도서는 가해자의 (입장이라고 하긴 그렇고 심정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아무튼 애매모호한데) 상태를 조금 엿본 것 같았습니다(책을 절반 밖에 못 읽었으니 ‘조금’ 엿본 것이 맞습니다). 정확히는 가해자 부모의 상태죠. 
  
  책에는 가해자의 부모에게 격려와 지지를 보낸 사람이 다수 있었다고 합니다. 토론 중에도 놀랍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우리사회에선 어려운 일 일거라 생각하는데, 공동체 가치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구성원 중 누군가 불미스런 일을 겪거나 힘들어 한다면 공동체 구성원들이 힘을 보태 함께 이겨내는 것이죠. 

  처음 진행한 병주의 발제문이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첫 진행인데 미처 완독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네요. 앞으로도 의미있는 책선정과 발제문 기대하겠습니다. 


병주

발제자로서의 첫 토론이었습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이 책으로 토론하면 재미있겠다란 막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발제란 작업은 쉽지 않더군요. 분명 처음 책을 읽을 때 할 이야기들을 정했는데 발제문을 만들어보니 세부 포인트만 다르지 큰 틀에서는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다시 읽으면서 든 생각들을 발제문으로 표현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고… 다만 어떻게 진행될지 예상하는 건 재미있었습니다. 역시나 실제 토론에서는 제 예상과는 전혀 다른 길로 가더군요. 그 부분들 떄문에 토론이 풍성해졌던거 같아서 감사합니다. 발제자로서 토론을 진행해보니 토론을 진행하셨던 분들이 다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확실히 해봐야 아는 거 같습니다. 다들 격려해주셔서 고마워요. 결과적으로 힘들긴 했지만 재미는 있었던거 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토론에 있어서 발제문들을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을 거 같네요.


후기 단어 분석

이번 달 후기로 모아진 텍스트를 분석한 결과입니다. by 준민




댓글

  1. 독서토론모임인데 블로그 포스팅을 마치 출판도서처럼 정리하신게 너무 좋아요! 저도 성인이 되면 이런 블로그를 운영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토론하는 장을 열어갔으면 좋게써요! :)
    물론, 지금 함께하고 있는 친구들도 너무너무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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