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정기모임 - 전쟁의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토론 도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발제자

전현정

장소

종로 마이크임팩트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철동 45-1

후기


종찬

오랜만에 많이 웃은 토론이었습니다. 기억나는 대로 더듬자면 전쟁에 대해, 용기에 대해, 남녀에 대해, 다음 세대에 대해, 기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토론이 그래도 몇년 간 진행되다 보니, 비슷한 이야기도 다시 하게 됩니다. 

예전에 내가 그 주제들에 대해 어떤 자세로 토론에 임했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치기어린 핏대를 세웠었고,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새로워서 신기해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계속 마주치게 되는 주제가 반복입니다.

‘같은 것을 되풀이하는 것.’

그 자체의 뜻에 역설적으로, 반복은 그 반복되는 무언가를 새롭게 하는 것 같아요. 같은 주제를 지금의 내가 지금의 관계로 이해하고 이야기함으로 해서,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뻔한 얘기를 길게 했지만, 이 맛에 토론 하는 거죠.
처음 토론 준비한 현정이 고생했고, 열심히 읽고 참여한 멤버들도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토론과 기록을 반복해 나가요.


준민

알렉시예비치는 그들에게 두 개의 진실이 있다고 말하지만 어느 쪽에 더 가치를 두는지는 명확합니다. 자신에게 한 이야기는 ‘더 솔직하고 더 진실한’ 이야기이지만, 듣는 이가 많아 졌을 때 나오는 이야기는 ‘덜 솔직하고 덜 진실한’ 이야기입니다. 

글쎄요. 상황마다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잘 정돈된 이야기’가 ‘덜 진실한 이야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잘 정돈되지 않은 이야기’가 ‘더 진실한 이야기’라 생각하지도 않고요. 책에 나오는 화자들이 대중에게 했던 이야기에도 분명 진실은 담겨 있을 겁니다. 알렉시예비치에게 말하지 않았던 혹은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그렇다고 책에 쓰여 있는 내용이 덜 진실하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그저 A에게 말하는 말과 B에게 하는 말이 다르다고 해서, A에게 말한 것은 참이고 B에게 말한 것은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둘다 참일 수도 둘다 거짓일 수도 있습니다. 말이라는 건 그렇게 무처럼 단칼에 잘라지는 게 아닐 겁니다. 많은 경우 A도 B도 진실인데 어디선가 A만을 말하라고 강요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장뤽 마리옹이라는 프랑스의 현상학자가 있습니다. 그의 견해를 어설프게 빌려와서 (어쩌면 심하게 왜곡해서) 이야기를 해봅시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어떤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그 사건은 적어도 그 자신에게는 아주 거대한 것입니다. 자신의 인지로는 그 사건이 어떤 의미인지 파악할 수 없습니다. 당황스럽습니다. 그 사건을 제 나름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봅니다. 무슨 의미인지 알기 위해서요. 

다음 달 선정도서 후보로 들고 갔으나 한 표도 받지 못한 책 『크리스토퍼 스몰, 음악하기』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베이트슨과 스몰의 관점에 따르면, 이 때 '관계를 파악하는 작업'을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곧, 무엇에 대해 '안다'는 것은 '무엇과 자신 사이의 관계를 인지한다'는 뜻이다.
- 최유준의 『크리스토퍼 스몰, 음악하기』

어떤 사건을 보면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보는 건 그 사건과 나와의 관계를 알기 위해서 하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그렇게 바라보기만 해서는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이야기를 해봐야 압니다. 이 사람에게도 저 사람에게도. 하지만 분명히 같은 사건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는데 이 사람에게 하는 이야기와 저 사람에게 하는 이야기는 다르겠지요. ‘누구에게’ 말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 그 달라짐 속에서 사건은 다른 방식으로 포착됩니다. 사건이 다른 방식으로 포착된다는 건 사건과 나의 관계를 새롭게 인지한다는 의미이며 결국 자기 자신을 새롭게 알게 된다는 뜻이 될 겁니다. 

어쩌면 사람은 어떤 현상에 대해 반복해서 하지만 조금은 다르게 말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지금의 저는 그렇다고 해두지요. 현상에 대해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말해보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포착해내는 것. 어쩌면 이것이 지금의 저를 살게 하는 생의 의지일 것입니다. 


영진

전쟁에 이기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갑니다. 전쟁에서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도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갑니다. 전쟁에 휩쓸린 사람들의 후유증을 극복하는 것에 비하면 건물, 도로, 항만, 공장 등의 복원은 수습과정에서 비교적 쉬운 과제에 속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회복은 눈에 보이지 않을뿐더러 돈을 지불한다고 해서 뚝딱뚝딱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책에선 전쟁 후유증을 겪게 된 여러 사연이 나옵니다. 작가의 능력 때문인지 편집기술 때문인지 책이 술술 읽혔는데, 그것조차 미안할 정도로 가슴이 아팠습니다. 책의 글은 유난히 공감이 잘 가도록 쓰였습니다. 당사자들이 느꼈을 전쟁의 비극적인 감정을 책에 담아서 독자가 그 감정에 전염(?) 되도록 말이죠. 전쟁은 비극입니다. 
  ‘민주주의의 확산이 전쟁을 억제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 근거가 있겠지만 독재체제나 절대왕정체제 하에서 전쟁을 벌이는 것 보다 민주주의체제 하에서 전쟁을 벌이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이겠죠.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빨리 분단된 상황이 끝나고 평화로워 지면 좋겠습니다.


병주

난 전후세대로서 전쟁을 경험해보지 않았다. 내가 배워온 교육과정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는 지구촌이었다. 세계는 서로 싸우기보단 하나의 마을로서 교류하며 지내게 변한 것이다. 그런 나이지만 모순적으로 전쟁은 익숙하다. 어릴때 하던 게임부터 수많은 영화들의 소재는 전쟁을 삼았다. 다만 그 전쟁은 주인공으로서이자 승자로서의 전쟁이었다. 이 책은 우리들이 흔히 기억하는 위대하거나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닌 개인들이 겪었던 참상을 나타내고 그것을 남자가 아닌 여성의 시각으로 그려 좀 더 와 닿았다.


동진

우리회사의 오월은 정말 전쟁같은 오월이었다.
이번책도 다크함이 묻어나기에 걱정했지만 그정도의 다크함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두가지 점이 좋았다. 인터뷰형식이라 사실적인 느낌이 좋았고(물론 편집을 엄청나게 했겠지) 개인의 전쟁을 보는 미시적 관점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여성만을 인터뷰함으로써 여성의 관점으로 본 전쟁을 보는것도 흥미로웠다. 이. 책에서 하나 건져 보고 싶은 것은 전쟁 옹호자들이 과연 전쟁에 관한 시점을 미시적으로 보면서 그 이면의 참상을 좀만 더 안쪽에서 본다면 전쟁말고 다른방법을 더 써보지않았을까 라고 생각이 든다(물론 전쟁이 일어나는 매커니즘은 매우 복잡하다고 들었다 ex철의 삼각형 등도 해당).
다크한 책에 비해 너무나도 활기찬 토론이라 좋았다.


세진

* 올해 상반기 토론에서 다룬 책들이 계속적으로 무거워서일까요, 책을 읽는 과정이 유난히 더 힘들게 느껴졌던 책이었습니다. <비행운>이 다분히 동화적인 비극으로 느껴졌다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실제로 있었던 비극이었고, 그래서 먹먹함을 넘어서 고통스럽다는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사람이 고통이 반복되면 외면하게 되거나 무덤덤하게 되듯이 먹먹함에 챕터마다 책을 덮었다가, 읽었다가, 끝에는 무감각한 상태로 읽어낸 것 같습니다. 서사로서의 몰입감도 있고, 잘 읽히는, ‘잘 쓴’ 책이지만 아직도 완독을 할 자신이 없기도 합니다.

* 500쪽에 달하는 책의 집필의도는 아주 명확하고 일관적입니다. 전쟁이라는 폭력 속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의 목소리와 얼굴을 보여주는 것- 그럼에도 그 이야기 면면을 다루면서 상당히 발제를 잘 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양한 방향으로, 마냥 무겁지 않은 분위기로 활발한 토론이 되어서 즐거웠습니다. 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야지’ 생각하면서도 무심코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를 이끌어내 준 발제자와 토론자들에게 언제나처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책을 읽고 든 생각을 하나만 뽑자면, ‘감수성’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제가 기본적으로 예민한 사람이어서 그럴지도.) 감수성-자극에 대해서 민감하게 인식하고 반응하는 성질 또는 경향-이 풍부한 사람들에게는 대개 ‘예민하다’거나 ‘유별나다’거나 ‘피곤하다’는 평가가 뒤따릅니다. 실제로 그렇기도 합니다. 상호간에 서로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조심해야 할 것이 많아지니까요. 그러나 ‘자극’에 대한 자각이 줄어들면 폭력에 대한 지각이 사라지고 공감의 범위가 줄어듭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문제를 ‘예민하다’는 논리로 치부해버리고,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언행을 문제라고 느끼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나와 다른 사람의 정체성과 인권에 대해서 우리는 민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약자에 대해서는 더욱 더.

 여성들이 겪었던 차별과 선입견, 전쟁의 상황에서 폭력에 무뎌지는 사람들이 모습, 그리고 사회에 만연한 혐오의 만연을 생각해보면서 나는 앞으로도 쭉 ‘민감하게 살겠다’는 비뚤어진 결심을 합니다. 내 언행이 성차별적인 생각은 아닌지, 학연과 지연에 대한 편견은 아닌지, 나의 언행이 누군가에게 폭력이 되는 것은 아닌지 조금 더 피곤하게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근데 나한테 향하는 편견에 대해서는 글쎄, 더 피곤하게 싸워야하나?) 


현정

처음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표지 때문이었습니다. 예뻐서요. 그 다음으로는 표지를 보고 유추해낼 수 없었던 전쟁이라는 면면의 사실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는 점에서 토론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어서 대상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이러한 부분이 더욱 책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여한 것 같습니다. 책을 읽을수록 전쟁뿐만이 아니라 성별, 불행 속에서의 용기 등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방면의 감정들을 고민해볼 수 있었음에 만족합니다. 다양하게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었는데 어떻게 잘 마무리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발제자로서 색다른 시선으로 토론에 참여해볼 수 있어서 너무 값진 경험이었고 무거운 책을 읽고 즐겁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신 참여자분들에게 감사합니다. 


후기 단어 분석


이번 달 후기로 모아진 텍스트를 분석한 결과입니다. by 준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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