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정기모임 - 사소한 것들의 과학

토론 도서

사소한 것들의 과학

발제자

박종찬

장소

홍대 슈퍼스타트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21길 29

후기



민경
정말 오랜만에 홍대가는 날 눈까지 내리다니 감격.  스터디 룸에서 밖에 눈내리는 풍경을 보고 또 감격. 이렇게나 많은 준비를 하고 토론을 하는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책을 다 읽지 못하고 참석한게 너무 죄송했어요. 책을 읽는동안 교양 강의시간 같았다던 이야기는 정말 공감 백배였어요. 에스프레소로 만들 수 있는 커피의 종류가 다양하듯이 이와같은 것들이 뭐가 있을지 생각해내는데 제 머리속이 하얗게 지워지는 동안 누군가 알파벳을 떠올려서 대단하다 느꼈습니다. 3시간 동안 책에 대해, 또 자신에 대해 얘기하고 그 얘기를 들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음에는 꼭 완독해서 좀 더 많은 책이야기를 해보고 싶네요.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해 누군가와 이렇게 다양한 얘기를 해보긴 처음이였지만 너무 좋은 경험이였습니다.



영진
수능을 준비하던 시절 화학에서 원자, 분자 공부할 때, ‘사람은 왜 벽을 통과할 수 없을까?’ 궁금증이 들었다. 당연한 질문인데 좀 더 근본적인.. 해봐서 안 되는 건 아는데 왜 안 되냐고.. 책을 계속 보니 아무래도 공유결합의 길이와 인력, 척력에 관련된 것 같았다. 오래돼서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대략 끄적여보면.. 원자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반발력이 커지는데 계속 가까워지면 무한대에 가까울 정도로 커지는 것 같다. 그래서 빽빽하게 원자로 이루어진 사람이 빽빽하게 원자로 이루어진 벽을 원자간의 척력 때문에 통과할 수 없다고 해석했다. 그냥 얕은 지식으로 추론한 것일 뿐 답이 아닐 수도 있다. 이렇게 ‘사소한 것들의 과학’은 내 궁금증을 명쾌하게 풀어준다(답이 아닐지라도). 

  오랜만에 복습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재밌게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화학에 기본적 지식이 없었다면 어쩌면 지루했을 것 같다. 과학서적이라 토론주제에 제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토론이 걱정했던 것 보다 활발하게 진행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과학에 대한 질문보다 개인의 생각이나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서 그랬을 것이다. 발제자의 의도처럼 몇몇 발제는 토론 시작할 때 했던 자기소개보다 더욱 자신을 잘 나타내는 자기소개가 되었다. 새로 오신 분, 있던 분 서로 처음인 자리에 적절한 소재였다고 생각한다.


준민
후기를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컴퓨터가 있는 책상에는 수많은 플라스틱이 올라와 있습니다. CD 케이스입니다. 새삼스럽지만 정말 많네요. 최근에는 부산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콜렉션을 몇 장 늘리기도 했습니다. 

모든 CD 케이스가 종이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것은 종이로 되어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집니다. 나름 고급지게 만들어지는 디지팩과 (물론 대다수의 음반 콜렉터들은 디지팩을 싫어합니다.) 부피와 원가를 줄인 얇은 슬리브 케이스. 

늘 보는 풍경이지만 함께 읽은 책의 내용 덕분에 조금은 새롭게 보입니다. 진짜 제 방에는 플라스틱과 종이가 엄청 많네요. 책이랑 CD가 대부분이라 당연하다면 당연합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별 것 아닙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다 소중합니다. 음. 말하고 보니 거짓말이네요. 아직 읽지 않은 책. 아직 듣지 않은 음반. 이런 건 별로 소중하지 않죠. 저와의 접점이 없으니까. 하지만 자주 보는 책이나 자주 듣는 음반은 그냥 종이와 플라스틱이 아닙니다. 음. 또 말하고 보니 이상한데 종이와 플라스틱이 ‘그냥’ 이라고 표현할 것은 아니긴 하네요. 일상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기 위해서 정말로 많은 노력이 필요했으니까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싶으면서 고유명사로도 남고 싶다고요. 얼핏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사람의 바램이라는 것이 본디 모순적이지 않겠습니까?


미정
<이과적인 책 재료로 문과스러운 토론을 한 0121>

1.
'사소한 것들의 과학'은 문과생인 저에게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는 책이었습니다.
한편으론 덕지덕지한 수사 없이, 재료를 분석한 과학자의 문장은 저를 되돌아보게 하였습니다.

안으로 파고들어 무엇이 진짜 분자이고, 구성인지에 집중하지 않고,
보이는 것, 꾸밀 수 있는 겉모습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겉핥기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요즘입니다.

2.
새로운 토론참여자분들로 인해, 이전과는 다른 재미있는 시선을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은 이번 토론의 성과였습니다.

3.
토론은 발제자가 의도했듯 '서로를 알 수 있는 논제'로 구성하다 보니 문과스러운 토론이었습니다.
고민을 많이 하였을 발제자에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지훈
오래만에 참여한 독서토론이었다. 언제나처럼 데드라인에 몰려서야 책을 다 읽고 독서토론에 참여하였다. 그래도 '사소한 것들의 과학'은 과학책임에도 저자의 솔직담백해 보이는 서술에 재미있고 빠르게 읽혔다. 물론 가끔 구체적인 과학내용은 2~3번씩 다시 읽으면서 이해해야 했지만 말이다. 토론에서도 과학적인 내용보다는 주로 우리들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들로 채워졌던 것 같다. 서로서로의 집착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이어진 족발과 치킨 모두 만족스러웠고, 2017년을 책과 함께 시작한 기분이라 뿌듯하기도 했던 모임이었다.


혜리
우리 주변에 있는 물건, 재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왠지 모르겠지만 종이 파트에 휴지입니다. 매일 휴지를 만들기 위해 나무 2만 7천그루가 잘려나간다는 사실은 꽤나 충격이었기 때문에 (아니라면 종찬오빠 고쳐주세요) 이렇게 우리가 매일 마주하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문과생이라 용어가 조금 어려웠지만..!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이번 첫 토론과 함께 2017년엔 열심히 출석도장을 찍을 수 있게 노력할게요.


혜윤
잠깐 태블릿PC로만 책을 읽던 때가 있었다. 종이로 된 책은 무거워서 출 퇴근길에 불편하게 느껴지곤 했는데, 태블릿은 안에 몇 권의 책을 넣어도 가방이 가볍다는 점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두달 정도는 진짜 전자책만 읽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책값이 과연 얼마나 싼지 호기심에 들르게 된 중고서점에서 나는 태블릿으로 읽던 책들을 실제로 보게되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카톡으로만 연락을 주고받던 사람이 지금 내 눈앞에 서 있는 느낌이 드는거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아, 너가 원래 이렇게 생겼었구나. 컴퓨터로만 봐서 몰랐어” 

글을 쓰다보니 예전에 움베르토 에코가 자신의 소설 ‘장미의 이름’의 종이책과 전자책 두개를 루브르박물관 2층에서 던졌다는 퍼포먼스가 생각이 난다. 바닥에 떨어진 전자책은 산산조각이 났지만 종이책은 멀쩡했다. 무엇이 실제에 가까운지 생각해보라는 메세지를 던진것이다. 물론 전자책이 우리에게 주는 이점은 많다. 저런 퍼포먼스를 했던 움베르토 에코도 사실 전자책을 이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책을 읽는 ‘경험’을 선사하는 것은 아무래도 종이책이 아닐까. 전자책은 책을 읽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경험’만을 제공한다면 말이다.


보영
보통 저자같은 일을 겪으면 칼과 사람을 무서워하는데 범상치 않은 저자가 피곤하게 사는구나 라는게 프롤로그 읽고 난 후의 소감. 브랜드와 옷의 재질만 보다 마는 단순한 사람에게 재질의 이야기를 들려주니 피곤이 몰려왔으나 점점 일상생활에 접하는 예들로 설명해주니 신기했다. 보통 숟가락을 그냥 사용하고있지만 크롬을 씌워서 무맛이 나게 된거라는 내용은 조금 신기해서 재료를 생각해볼까? 하는 호기심을 일으키려했다. 다들 알고 있는 내용일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몰랐었다. 아무생각 없었다는게 더 맞는 말이지만. 강력한 귀차니즘으로 책을 읽는 것으로 끝이겠지만.... 뭐... 잠깐의 생각쯤은 해보게 될 듯... 꼭 애니 덕후만 덕후는 아니고 누군가 하나씩에는 집착을 하고 덕후기질은 조금씩 있으니까... 어려운 과학 책이 아닌 쉽게 생각해볼 수 있는 내용의 과학 책이라 좋았고여전히 멋진 사람들의 좋은 수다였고 새로운 사람들과 이야기해서 좋았고 눈이 더럽게 많이 와서 좋았고 족발도 맛있었고 그냥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모두 좋은 날이었습니다. 발제하기 힘들었을 텐데 발제하신 발제자님께 박수를... 


병주
나에게 있어 과학이란 어렵고 생소한 소재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이후로 과학이란 것을 따로 접해본 기억은 거의 없고 TV서 다큐멘터리를 볼 때도 얼마 안 있어 넘기곤 했다. 책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다. 사소한 것들의 과학이라니 사소한 것이라면 굳이 책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텐데 굳이 썼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신기한 제목을 가진 과학 책은 많다. '코스모스'와 같이 평소에 듣도 보도 못한 것을 제목으로 삼는 경우나 '총,균,쇠'처럼 아예 자극적인 제목이 있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책을 펴보면 우리가 상상하는 자극적인 내용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 책은 지루하지 않았다. 이 책은 서술방식에 있어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많이 느껴져서 좋았다.  어려운 과학적 지식을 설명하기 보단 자신의 일화를 통해 흥미를 유발하고 천천히 재료의 특성에 대해 설명해 간다. 그리고 재료의 소재도 우리에게 친숙한 소재들 위주로 설명해서인지 다른 책보다 쉽게 읽히고 흥미로운 내용도 많았던 것 같다. 난 언변이 부족하고 글재주가 없는 사람이다. 무언가 알고 있어도 그것을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재주는 없다. 그렇기에 읽으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다 읽고 나니 저자는 재료 과학이란 분야를 사랑하고 즐기는 거 같아 보였다. 플라스틱을 모욕했다고 싸우는 장면에서는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 책을 쓴 이유도 재료과학이란 분야가 너무 좋은 것인데 사람들이 몰라주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남에게 소개해주고픈 그런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작가의 애정이 느껴져서 좋게 읽었던 것 같다.


종찬

1. 목표에 의해 계획하고, 정확하게 배치해서 놀라운 결과를 내는 것. 무엇에 대한 이야기일까요? 모든 물건입니다. 만들어지는 모든 것은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2. 물건이라는 것은 아무튼 인간에게 인식되는 개념입니다. 어떤 유용성을 지니거나 지니고 있었거나, 아무튼 인간 삶에 결부된 것이 물건이지요. (심리적 유용성도 포함해서요. 시장에서의 가치와 관계가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3. 1에서 “놀라운" 결과라고 했습니다만, 생각하기에 따라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될 걸 다 알고 만들었으면서 대체 무엇에 놀라는가, 여기에 놀라기 위해서는 문학적 감수성 같은 것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걸을 시기가 되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나 걷는 것을 보며 감동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죠. 재미있어요. 문 이과를 구분해 어느 게 낫다 뭐 그런 거 이전에 모든 것이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조금 더 관심이 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을 뿐이지요.

4. 어떻게 보면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물건이 인간이 살아서 남겨진 흔적입니다. CD케이스는 그 아티스트가 작업한 흔적인 동시에, 플라스틱을 처음 개발한 사람의 흔적이기도 하고, 그 앨범을 우리에게 판 사람이 살아남고자 했던 흔적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CD를 산 사람(거의 뭐 준민형이겠죠)에게 한 시기를 살았던 흔적이기도 할 겁니다. 오히려 돌산에 있는 돌, 시냇물, 강물, 바닷물보다 어떤 의미로는 훨씬 더 인간적입니다. 인간 삶의 흔적. 그것이 물건이기 때문이죠. 

5. 최근에 ‘교열걸’ 이라는 소설 원작의 일본 드라마(地味にスゴイ! 校閲ガール・河野悦子)를 봤습니다. 패션지를 동경해 출판사에 입사한 주인공이 ‘교열부’라고 하는 오탈자 및 사실 확인 부서에 들어가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에 교열부를 가리켜 ‘당연함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번 책도 당연함에 대해 많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최근엔 당연함을 마주칠 때마다 당연함을 만드는 사람들을 생각할 수 있다면 사람은 조금 더 풍성하게, 조금 덜 외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당연함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당연함이 깨어지지 않는 것이 명예로운 일이라고는 하지만 말이죠.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2020년 2월 정기 모임 <사람, 장소, 환대>

2023년 4월 토론: 아버지의 해방일지

2023년 12월 토론: 사랑의 생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