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월 정기토론 <혜성을 닮은 방>


토론 도서

혜성을 닮은 방 (김한민)

발제자

박동희, 오윤정

장소

익선동 '익선동 121'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2.3.4가동 121

후기


정준민

# 인터넷을 하다가 본 출처 불명의 말. 

“떠남과 그리움. 단어 두 개가 모이면 이야기가 된다.”

그렇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들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조금 더 활발하게 나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의 반의 반의 반도 못하고 사는 요즈음입니다.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 혼잣말을 할 수 밖에 없겠죠. 그런 혼잣말을 담아두는 도서관은 어떤 곳일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 깊이 몰두하는 것이 예전보다 어렵다는 고민이었습니다. 그 외의 것들에 행복해서 다른 것들에는 집중하기 힘들다고.

편지를 보고 “사람은 어떤 행복 속에서도 불행을 찾아내는 천재구나” 라며 감탄한 요네하라 마리 여사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쓰라고 해서 고민을 적기는 했지만 쓰는 자신조차도 조금은 민망했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집중 좀 안 되면 어때요. 신경 쓰지 마요. 『쇼코의 미소』의 저자 최은영은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씁니다. 

“십대와 이십대의 나는 나에게 너무 모진 인간이었다.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미워하고 부당하게 대했던 것에 대해 그때의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애에게 맛있는 음식도 해주고 어깨도 주물러 주고 모든 것이 괜찮아지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따뜻하고 밝은 곳에 데려가서 그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그렇게 겁이 많은데도 용기를 내줘서, 여기까지 함께 와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어디 따뜻한 곳에 가서 달달한 거 먹으며 자기자신에게 집중력이 떨어지는데도 지금까지 집중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해주세요. 배경음악으로는 백예린의 Zero가 좋겠네요. 

늘 좋은 일만 있을 순 없단 걸 알아도
늘 내려놓지 못할 뿐
행복하고 좋은 일들만 하고 싶다며
떼를 써봐도 지금이 행복한 거라고

이런 하루들 속에 그대는
나의 전부 같은데
이런 날들로 채워질 내 안의 그대는
사이사이 피어있는 꽃이길 바래요


김미정

사람들의 문장들이 제 기억 속에 온전히 모두 남아있지는 않지만, 독토 친구들의 문장과 고민들이 가끔 제게 날아와 꽂혀 있습니다. 그게 가끔 저를 '성찰'하게 하기도 하고요.

이말인 즉슨,저처럼 남말 오지게 안듣는 인간도 독토와서 여러분의 고민과 문장을 성가신 것이 아닌, 무이에 오는 고민편지처럼 소중히 여긴다는 말입니다. 

모든 것을 놓고, 토론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아무도 싫어하지 않아요.ㅋ.

그리고 편지를 급하게 써서 죄송합니다요...


브로콜리가 변론함
-  이원


부끄러웠어요

자꾸만 부끄러웠어요

부끄러워요는 치욕스러워요와

같은 말. 그러니까 더 부끄러워

얼굴 안으로 얼굴을 집어넣었어요

몸 안으로 팔을 집어넣었어요

발을 무릎으로 밀어넣었어요

문둥이처럼 잘린 팔과 다리를

가졌구나

뭉툭한 곳을 툭툭 쳐댔어요

부끄럽니는 사라져버려와

같은 말. 그래서

어디서였는지도 모르고 몸 안을 휘젓는 팔

무턱대고 돌아다니는 흙발

풀어질 것이 없다구요

괴로움이 없는데 괴로웠어요

얼굴이 꽉 차서 속눈썹 하나

깜빡여지지 않았어요

얼굴이 없는데 비명이 들렸어요

세상에서 가장 긴 포물선이었어요



*



나예요. 가슴 앞에 모은

양쪽 손 안에 들기 좋은

초록의

덩어리

적막



부케

모래 언덕



파닥거려요?

아직도 흘러내리는 것은 살처럼 따뜻해요?

엉킨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어요

새어나오는 것들

아삭거려요?



다닥다닥

오돌도돌 돋은 소름. 나예요



목덜미

허리

발목



그때처럼

잘린 아래를 잡아도 좋아요



배병준

몽중몽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내게 이번 12월 선정도서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본심으로는 만화의 가벼움을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오히려 표현 수단이 가벼운만큼 그 안의 서사는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아마 전권을 읽었다면 그 무게에 짓눌렸을 수도 있을 것 같아 1권이 내게는 딱 알맞은 무게인듯 하다.

나 또한 9평 남짓한 방에 갇힌 것마냥 살아갈 때가 있었는데, 그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혼자만의 시간, 혼자만의 상념들이 헛된 시간이 되느냐, 성장의 밑거름이 되느냐는 고작 한 끗 차이일 뿐이다.

무지개뱀 이론에 대해서 토론이 많이 이루어졌다. 단순히 너와 나의 관계만 인식하다가 제3자 혹은 조력자에 대해 논할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고, 민망하지만 무이에게 보내는 편지도 후기를 통해 더 풍성해질 것을 생각하니 발제자의 기획이 좋았다.

결국 한 문장만 남고 나머지는 사라진다는데, 사람 사는 것도 그렇지 않나 싶다. 결국은 하나의 이미지, 하나의 추억만 남기고 숱한 인연들이 바스라지지 않던가. 적어도 우리 모임은 그 시점이 되도록 늦게 찾아오길 바랄 뿐이다.

P.S.> '17년 여름엔 아즈하의 도서관에서 토론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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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무이.

To 종찬.


이제 가야만 한다 -최승자


때로 낭만주의적 지진아의 고백은 
눈물겹기도 하지만, 
이제 가야만 한다 
몹쓸 고통은 버려야만 한다. 

한때 한없는 고통의 가속도, 
가속도의 취기에 실려 
나 폭풍처럼 
세상 끝을 헤매었지만 
그러나 고통이라는 말을 
이제 결코 발음하고 싶지 않다. 

파악할 수 없는 이 세계 위에서 
나는 너무 오래 뒤뚱거리고만 있었다. 

목구멍과 숨을 위해서는 
동사(動詞)만으로 충분하고, 
내 몸보다 그림자가 먼저 허덕일지라도 
오냐 온몸 온정신으로 
이 세상을 관통해보자 

내가 더 이상 나를 죽일 수 없을 때 
내가 더 이상 나를 죽일 수 없는 곳에서 

혹 내가 피어나리라. 



전세진

무이처럼 순수하게 이야기꽃을 만들 능력이 안 되는 관계로, 노래를 이것저것 찾아들으며 알맞은 시가 없을지 찾아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마음에 쏙 드는 표현이 없는 것은, 제가 편지의 주인에게 오롯이 공감할 심정적 여유가 없었음이라 이에 미안함을 표합니다. 그래도 이 곡은 좋은 곡이니, 한번 들어보세요 ♪

믿었던 꿈들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그대를 등지고
깊은 생채기만 남겼대도
잊지는 말아줘

네게 정말로 필요한 
그 모든 것들은
그대의 안에 다 있어요

-INNER(루시아)중

음, 솔직히 말하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여가가 제일 먼저 떠오르긴 하지만요.
모두에게 행복한 12월이길!



박종찬

받은 쪽지에 적힌 고민은 인간 관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메세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의 자신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것들이었어요.

상대방한테 보낸다기보다, 제가 그런 고민을 할 때 떠오르는 글을 모아 봤습니다.

1. 
...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푸쉬킨


3.

연극이란게 할 때는 진짜거든요. 그런데 끝나면 아니고.


-최악의 하루


2.

오레안다에 도착한 두 사람은 교회당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벤치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며 말이 없었다. 새벽 안개 속에서 어렴풋이 얄따가 보이고, 산 정상에는 흰 구름이 걸려 있었다.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았고, 매미들이 울고 있었다. 아래에서 들려오는 단조롭고 공허한 바닷소리가 우리 모두를 기다리는 영원한 잠, 평온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래에서는 바닷소리가, 이곳에 아직 얄따도 오레안다도 없었던 때에 울렸고, 지금도 울리고 있고, 우리가 없어진 후에도 똑같이 무심하고 공허하게 울릴 것이다. 어쩌면 바로 이 변화 없음에, 우리 개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완전한 무관심에, 우리의 영원한 구원에 관한, 지상의 끊임없는 삶의 움직임에 관한, 완성을 향한 부단한 움직임에 관한 비밀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4.

하지만 안심하세요.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입니다.



주인공은 행복해질 거에요.





오윤정

슬픈 날의 편지

                  이해인

모랫벌에 박혀 있는

하얀 조가비처럼

내 마음속에 박혀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슬픔 하나

하도 오래되어 정든 슬픔 하나는

눈물로도 달랠 길 없고

그대의 따뜻한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다른 이의 슬픔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듯이

그들도 나의 슬픔 속으로

깊이 들어올 수 없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지금은 그저

혼자만의 슬픔 속에 머무는 것이

참된 위로이며 기도입니다

슬픔은 오직

슬픔을 통해서만 치유된다는 믿음을

언제부터 지니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항상 답답하시겠지만 

오늘도 멀찍이서 지켜보며

좀 더 기다려주십시오

이유 없이 거리를 두고

그대를 비켜가는 듯한 나를

끝까지 용서해달라는

이 터무니없음을 용서하십시오


보통 내가 누군가를 위로하는 방법은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데, 참 힘들더라. 그렇지만 이렇게 해결이 되더라.' 이런식으로 말해왔는데. 그건 위로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위로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의 위로라는걸 알아.

사실 슬픔, 아픔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고, 어쩌면 위로라는 것도 스스로가 위로되기로 '결정'하지 않는 한 해결될 수 없을지도 몰라.

그리고 그 결정에 이르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슬픔을 느끼는 시간을 갖는 것이 현명하고도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과거의 나는 끊임없이 타인을 통해서 슬픔을 해결하고 싶고 답을 찾고 싶어서 몸부림쳤었지만 결국은 스스로 슬픔을 인정하고, 제대로 그 슬픔을 마주하지 않는 한 해결되지 않았던거같아.

굳이. 지금 당장 빨리, 슬픔을 해결하려고 할 필요는 없을것 같아. 다만 슬픔을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서 네가 두려워서 혹은 당시에는 어쩔수없이 머뭇거렸던 것들을 남겨놓지말고 충분히 후회없이 했으면 좋겠어.



박동희

Dear ...

I Listen to the trees, and they say:

"Stand tall and yield.
Be tolerant and flexible.
Be true to yourself.
Stand alone, and stand together.
Be brave.
Be patient.
With time, you will grow."

I Listen to the wind, and it says:

"Breathe.
Take care of yourself --
body, mind, and spirit.
Take time.
Be quiet.
Listen from your heart.
Forgive."

I Listen to the sun, and it says:

"Nurture others.
Let your warmth radiate for others to feel.
Give yourself without expectations."

I Listen to the creek, and it says:

"Relax; go with the flow.
Tend to what's really important,
and let the rest go by.
Keep moving -- don't be hesitant or afraid.
Lighten up -- laugh, giggle."

I Listen to the mountains, and they say:

"Be there.
Be honest.
Be trustworthy.
Do what you say you're going to do.
Be true, genuine, and real.
Speak from the heart.
Don't cheat."

I Listen to the birds, and they say:

"Set yourself free.
Sing."

                               - I listen 中 by chuck roper

어젯밤 밤하늘,
높낮이가 다른 건물 사이로
노르스름한 초승달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초승달 너머- 저- 멀리에는
무이가 혜성에 걸터앉아
촘촘히 빛나는 별을 바라보고 있겠지요?

오늘밤,
휴대폰 뒤를 비집고 
발하고 있는 천장의 불빛도
이야기 꽃 가득 담겨진 저 너머로의
지표가 아닐까 설레입니다.

물음 하나.
- 소우주와 앙리같은 친구(!=human)가 있나요?
물음 둘.
- 당신만의 이론이 있나요?

묻고 싶었고, 있었으면 합니다.

11월 추운 날에도 
따뜻하게 토론하는 우리들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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