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토론 무의미 축제 후기

무의미의 축제

발제자 정준민

후보였던 책 하얀 개,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일시 2016년 3월 19일




(이)현정

발제문 6-3 질문을 다시 보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건 인지작용이기 때문에 대상을 생각할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직관적으로 어떤 인상을 받는 것과는 다르죠. 곱씹어보면 일상 속에서 타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것도 다 나의 자원을 소모하는 일이잖아요. 결국 사람을 평가하는 행동은 일말의 호기심이든 뭐든 관심이 불러일으키는 최소한의 애정을 기반으로 한다고 생각해요.

라몽은 다르델로를 싫어한다지만 그에 대한 서술은 꽤나 깊은 고찰과 사유를 담고 있습니다. 비록 희화화된 나르시시스트였을지라도요. 확장해보면 라몽이 다르델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밀란 쿤데라가 인간에게 느끼는 애정, 세상을 바라보는 애증 어린 시선, 세계관과도 이어지겠죠.

나는 과연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나를 둘러싼 세상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너무나 당연히 존재하던 나 자신을 '배꼽'처럼 돌아보게 되네요. 

좋은 책,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토요일이었습니다. 5월에 만나요!


재승

처음에 책을 읽을 때에는 걱정이 조금 되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책이 난해한 편이라서 과연 토론이 잘 진행될지, 게다가 이번 달에 새로 오신 분들께 부담이 되지는 않을지 염려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발제문을 받아서 보니 준민형도 많이 고민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되도록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은 피하고 우리 토론의 특성(?)답게 자기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발제문이 많아 새로 오신 분들도 어렵지 않게 토론에 임하실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토론에 대한 감상은 여기까지만 하고 책에 대한 저의 감상을 몇 자 적어보겠습니다. 저는 이 책에 '인간의 실존에 대한 고찰'이라는 다소 거창한 주제를 조심스레 붙여볼까 합니다. 토론 때에도 언급했지만 이 책에서 드러나는 알랭의 어머니에 대한 애증, 스탈린의 칼리닌에 대한 연민, 다르델로의 이유 없는 거짓말 그리고 칼리방과 포르투갈 여인 의 사이에서 외국어로 빗대어 지는 남녀관계의 허물 등은 인간이 갖고 있는 거의 모든 모순점들을 비추고 있습니다.  급기야 알랭은 자신을 사과쟁이라고 부르며 출생의 단계에서부터 뒤틀려버린, 모순덩어리의 자신을 부정하려 하고 이는 본문에서 배꼽에 대한 알랭의 의식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이상적이고 순수한 인간의 존재는 추락하는 천사처럼 정말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이에 대해 작가는 인간이 모순적인 동물일지언정 그 존재 자체가 모순은 아니다. 그것은 너도 나도 모두 마찬가지니 이를 받아들이고 그저 유쾌하게 축제처럼 살다 가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저만의 감상이기 때문에 각자 이 책에 대해 느낀 바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그저 제가 느꼈던 것처럼 조금은 힘을 빼고, 어딘지 약간은 가볍게 그저 좋은 기분을 찾아 떠나는 인생을 살아볼까 합니다.


미정

심각한 것, 진지한 것이 미덕이라 생각해왔습니다. 사실 아직도 그렇습니다.

이러한 제게 무의미의 축제라는 책은 엉망이면 어때? 세상의 논리랑 다르면 어때? 라고 가벼움을 일깨워준 책이었습니다. 물론 토론에서 그러한 해석들을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진지하고 가벼운 해석이 만나 충돌하는 그 지점에서 듣는 재미가 생겼습니다. 

다만 진지한 사람으로서 무의미의 의미에 대한 중심 주제에 대한 논의가 조금 덜하지 않았나하는 진지한 사족을 붙입니다. :]


영진

혼자 읽은 후 감상은 현대미술 같았다. 그런데 토론 후엔 현대미술 보단 클래식음악이 더 어울린다고 느꼈다. 중압적인 러시아풍의 음악이면서도 유쾌함이 스며있는.. 얼마 전 준민형과 다녀온 쇼스타코비치와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4차원적이지만 웅장하기도 하고 발랄함과 코믹함까지 보여주는.. 칼리닌의 도주와 스탈린의 호쾌한 동상 파괴의 배경음은 영화 ‘킹스맨’의 머리 폭발 장면의 느낌이 오버랩 되면서 색다른 감상의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 

13인의 패널이 참여하는 토론을 무던하게 진행하던 준민형이 어찌나 부럽던지.. 앞으로 닥칠 내 진행이 걱정이다. 

새로 참여한 분들의 활약이 정말 환상적이었다는 소감과 함께 이만 마치렵니다. 

환영합니다.


동진

이번 책은 제목과 끝에서 모든걸 다 끌어 내보자.
무의미한것이 모여서 의미 있는 것을 만든다고 표현한다면 너무 진부한 표현이다.
하지만 익히 알던 것이라 진부할 뿐 우린 익히 알던 것도 사실은 평소에 인지하지 못한다.
(혹은 나만)
수다에 대해 관점에 놓고 무의미를 논해보고 싶다.
우리의 아무 의미 없는 수다들.
무의미한 시시콜콜한 수다가 우리가 한주를 버티는 힘이 된다면 그건 더이상 무의미가 아닌 유의미일 것 이다라고. 
식탐수다쟁이 1인이 써본다.
(이번 토론은 뉴페이스들이 온가운데서도 끊기지 않고 잘 이어진 것에 대해 발제자준민옹과 뉴페들의 노고에 심심한박수를!)


종찬

무의미한 시간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무의미한 시간은 나에게 무의미한 의미들이 넘쳐서 무의미를 만드는 데서 온다. 무의미한 시간을 무의미하지 않은 시간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내가 만들어낸 무의미가 필요하다.

내가 만드는 무의미. 동료가 만드는 무의미. 그렇게 하나 이상의 무의미들이 만나면 축제가 된다. 집단이 적극적으로 의미로부터 벗어나 무의미가 될 때, 우리는 희열을 느낀다.

연인들은 둘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무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기에 자신들의 의미를 새겨 넣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소중한 무의미.

거짓말이라고 소리칠 바에야 스탈린이 되고 싶다. 거짓말이라고 소리치는 사람은 정당하고 정의롭지만, 지루하다.


민정

밀란 쿤데라의 책은 전부터 한번쯤 읽어보고 싶었는데 독한 녀석들을 통해 읽게 됐다. 우리들은 언제나 의미 있는 뭔가를 찾는다. 의미 없는 뭔가를 하거나 이에 관련되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심지어 괴로워하기도 한다. 무의미의 축제를 읽으면서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뭔 말인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 혼자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을 나는 또 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의미해 보였던 짧은 이야기들은 제목 그대로 축제를 이루어 나의 독서 시간과 토론 시간을 즐겁게 해주었다. 무의미의 축제라니 그렇다면 애초에 무의미한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윤영

처음 다른 사람들과 토론을 해봤는데 너무 재밌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잘 이해가 가지않던 부분도 이해 할 수 있었고 자고새 이야기에 웃었나요? 같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 너무 재밌었습니다!! 앞으로 이런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병준

어쩌면 무의미한 것들의 가치가 가장 평가절하 당하는 시대가 아닌가 싶다.

삶의 포인트마다 그 놈의 목표라는 걸 세워두고 그곳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지 아니한 것은 죄다 무의미한 것이라 규정한다.
10대에는 대학이, 20대에는 취업이, 30대에는 결혼 그리고 나서도 육아, 내 집 마련 등 끝이 없다.

허나 소위 ’유의미’한 것들을 이루어 낸다고 해도 행복을 장담할 수 없다.
오히려 대학 시절 아무 의미없이 친구들과 술 마실 때가, 기업 연수에서 말도 안되는 공연 준비할 때가, 침 흘리며 잠든 아내나 아이의 모습을 볼 때 오히려 우리는 행복과 마주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유의미한 목표보다는 그 이후의 일상이 우리에겐 더 중요할 것이다.

기승전토론인 감이 있지만, 독한 녀석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신입부원이 새로 들어온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에게 남은 무의미한 시간들을 묵묵히 자축해야 한다.

발제 하나를 끝낼 때의 그 성취감과 토론에서 전혀 생각지 못한 발상을 들었을 때의 감동같은 것들은 집단 밖에서 봤을 땐 그저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무의미한 것을 의미 있게 받아들이고 의미 있는 것들을 무의미한 것 인냥 덤덤하게 넘길 때 우리의 생이 조금은 축제 분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게 니가 말하는 무의미의 축제냐 밀란 쿤데라 양반? 당췌 모르것네 아직도
근데 꼭 알아야 될까?


동희

뿌연 대기를 헤치며 
독한녀석들을 향하는 
나의 걸음걸음은 
설레기도 하면서 두려웠고

커다란 빌딩 앞에 도착하여서는 
배가 고프단걸 깨달았다.

바싹 마른 공기들이 가득찬 방에서
우리들이 서로 마주했을 때
어색함에 싱긋싱긋 거렸고

토론을 하면서
점점 더 배가 고파졌다.

주작은
주작은
청보랏빛 우리들을 아직 
무슨 색인지 모르는 끈으로
묶었고

나는 이제
배가 부르다. 꺼억.

나는 카클리크가 좋은데, 그런데


(전)현정

단순히 꾸준하게 책을 읽고 싶다는 이유로 독서 모임이 참여하게 되었는데 첫 모임을 통해 심도 있지만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시선으로 의견을 나누다 보니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여러 장르의 책들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진

나로서는 근 2년만에 처음으로 소설을 읽었다. 책을 읽고 하는 '독서토론'이라는 걸 해본 건 기억 아득한 옛날 일이었고, 낯도 많이 가리는 나로서는 꽤나 긴장감을 안고 참여한 첫 토론. 난해한 소설이었던지라 혼자 읽을 때는 그냥 무심코 넘겨버린 문구 하나하나를 깊게 뒤집어보면서 생각을 구체화시킬 수 있던 것이 참 좋았다. 솔직히 생각하는게 다 비슷하겠지 싶었는데 참여자마다 해석의 차이도 커서 흥미로웠고, 이게 집단지성의 힘이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나의 텍스트를 통해 경험을 공유하는, 대화 자체로 힐링되는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그야말로 '무의미의 축제'였다.


준민

1. 결과는 중요합니다. 결과가 좋다면 중간에 다소 문제가 있어도 넘어갈 수 있습니다. 물론 과정 중에 생긴 문제나 불만이 온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야무야 넘기는 것이니 임시방편에 불과합니다. 이번 토론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제가 했던 선택들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래저래 문제가 있었죠. 그래도 나름의 성과를 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2. 뭐 그래도 평소에 읽지 않던 걸 읽어줬으면 좋겠는데. 책만큼 타인의 생각에 푹 잠길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깐. 자신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일수록 깊이 읽어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해. - 사이토 켄의 '꽃의 이름'

3. 시간을 내서 책을 읽고 또 시간을 내서 모임을 갖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번 모임을 위해 투자했던 시간들이 각자에게 의미 있는 시간으로 남았기를 바랍니다.

4. 그나저나 우리가 만났던 4월 23일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책의 날’이었다는 건 알고 계셨나요?






편집자의 변
사람들 후기를 보다 보면, 각각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나중에 한 번 사람 기준으로 모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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