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정기모임 후기


선정도서
소년이 온다
(후보였던 책 : 노동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진행 정준민, 조영진

100자 후기

병준

책이 꼭 쉽게 읽히란 법은 없다.

특히나 쉽지 않은 내용이거나 쉽지 않았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그것이 설령 소설이라 할지라도 결코 쉽게 읽혀선 안 되리라.

그런 의미에서 이번 토론은 성공적이었고, 역설적이게도 같은 이유로 아쉽다. 자칫 쉽게 시작했다가 쉽게 끝날 뻔했다.

노련한 발제자들 덕분에 결과는 좋았지만 과연 같은 운을 우리가 계속 바랄 수 있을지.

이 나라 역사 교육 역시 이러하리라. 방향성의 제시가 자칫 낭떠러지로 안내하는 꼴이 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종찬

이례적일 정도로 심하게 몰입한 책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일부러 그럴려고 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되짚어봐도 특별히 이유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저도 모르는 여러 가지 우연과 훌륭한 작가가 만나 일어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치 내가 직접 무슨 폭력을 당하기라도 한 기분이었고, 아직도 떠올리는 것조차 편치 않습니다.

사실 그래서 토론에 집중을 하지 못했습니다. 발제자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동진

<죽은 놈만 불쌍하지......아니 산 놈은 더 불쌍하다>

첫 장을 읽고 선 계속 미뤄서 토론 주가 돼서야 조심스럽게 들춰봤다. 어릴 때 드라마 M을 보면서 실눈을 뜨고 본 기억 그것과 좀 비슷했다. 소설에 감정이입을 한껏 해서 보는 나로서는 요즘 같을 땐 특히나 우울하고 슬픈 소설을 읽지 않아 그랬을 것이다. 호들갑이라고 욕할 수도 있겠고, 나이가 몇이냐고 핀잔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랬다. 내가 보기 껄끄럽다고, 혹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어두운 이면의 말들은 내가 나중에 보려고 미뤄 놓지 않았나, 또 나중에 본다는 핑계로 외면 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이런 소설을 읽어서겠거니라고 하기엔 조금은 힘든 소설이었지만, 아마 지금 안 읽었으면 언제 읽었을지는 몰랐을 소설이기도 했고……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 할 때(물론 사실로서의 역사, 기록으로서 역사를 차치하고), 소설은 주관적이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객관적 사실을 소설을 통해 맘속에 투영해보면 그 와 닿는 감정의 강도는 특히나 강하다는 것을 이번에 특히나 느낀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사실로 알고 있던 내용이 소설로 보니 가슴을 탕치는 어떤 그것이 있다. 소설의 효용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한강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덤으로 얻은 큰 수확이다. 특히나 6장에 꽃 핀 쪽으로 파트는 가슴을 후벼 파는 슬픔이 있었다.

발제에서 슬픔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말을 했다면 난 말을 별로 못했을 것이다. 먹먹함이 말로 표현이 되기가 어렵기에. 가벼움과 무거움의 균형이 좋았다.

재승

처음 책을 읽으면서 솔직히 말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너무나 무거운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다루면서도 그 필체는 유려 했기 때문입니다.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심리를 무던히 담아내면서 시어에 가까운 문구들로 승화시키는 작가의 역량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가까운 시점에서 주인공들을 관찰하여 전달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이 때 희생된 이들이 결코 낯선 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가족, 친구들의 이야기임을 일깨워줍니다. 저는 비록 이 시대를 살지 않아 그 무거움을 느낄 수 없었지만, 이 책을 통해 잠시나마 이 책의 주인공들과 같은 시대를 호흡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좋은 책이지만, 또한 너무나 가슴 아픈 책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다룬 책에 비해 어딘지 토론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없지 않아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웠고, 이 책을 읽은 것만으로도 적지않은 수확이었습니다. 준비하고 발제하느라 고생하신 준민형, 영진형께 감사 드립니다.




여러 시끄러운 사건이 터진 와중에 책을 읽게 되어, 현실과 책 사이에서 조금 붕 뜻한 기분으로 글을 읽었다. 비교적 '요즘' 작가답게 표현적으로 꽤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게 보였고, 읽는 내내 묵직한 주제가 머릿속에 아릿하게 남게끔 글을 기술적으로 잘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론을 하면서는 멤버들의 가정사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보다 깊이 있게 들은 덕에, 각자가 무슨 류의 이야기를 할지 예상이 가면서도 내용은 전부 새로웠다.

발제자들의 토론 진행 능력이 멋졌다. 덕분에 곧 돌아올 다음 발제 걱정이 더 커졌다.


동희

점포에서 밖을 나와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후기를 쓰는 것도 처음이라.
한달 전, 소년을 처음 마주했을 때,
그의 강렬했던 첫인상이 쉬이 지워지지 않으리라.
술 한잔을 하고 그를 떠올리려는데,
그의 그림자만이 희미하게 어른거리는게
나의 잘못일까
사회의 잘못일까
미안한 감정이 밀려온다.
그래도 그를 마주한 순간의 내 감정의 소용돌이를 알아준다면
이 마음이 조금이나마 옅어질까.


미정

518은 역사 속 얘기지만, 힘든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지금도 옆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편 토론 도중 나온 고통을 견디는 방법 중 '남에게 사과를 받아 용서하기' 라는 수단이 인상 깊었습니다. 내가 아닌 상대방에 대한 화해의 제스처를 먼저 내밀어 깨끗이 타인을 수용한다는 점에서 아직 스스로 갈 길이 멀다는 점을 느꼈습니다. 주위에 이런 값진 교훈을 줄 수 있는 사람과 모임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든든하게 다가옵니다.


윤정

아! 소년이 온다.

책을 읽는 내내 과거에 지독히도 무심했던 스스로를 반성하며 참회했습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팩트를 따지고 명확한 인식을 강조하는 것에 엄격했던 터라, 그런 나 조차도 회피했던, 책의 주제가 이것이었다면 선뜻 읽어 내려가지 않았을.

너무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굳이 마주하고 싶지는 않았던 그래서 맞닥뜨리는 과정 내내 괴로웠지만 이제 조금은 무관심에 대한 죄책감을 덜 수 있을 것 같아 안도감이 느껴지는.. 어렵고도 반가운 책이었습니다.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깊은 깨달음을 얻은 독자의 입장에서, 다 자란 성인의 내면을 반성케 하고 깨닫게 하는 작가 한강의 필력에 감탄했습니다.

토론은 책만큼 무겁지 않았지만 무거운 주제를 주저함없이 대화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무척 만족합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보석을 발견한 듯한 반가움과 치열한 깨달음을 주는 책을 기대합니다.


영진

토론하기 미안할 정도의 책이 있다는 걸 처음 느꼈다. 무겁고도 잔혹하며 가슴이 미어지는 상황을 어찌 공감하고 이해하여 스터디룸의 책상 위에 올려놓고 뜯어볼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논제를 만든 건 일종의 ‘기록자’의 사명감과 비슷하다면 비슷한 ‘공론자’로서의 역할을 해내고 싶어서다. 덮어두기엔 더 미안하니까.

후보도서 두 책을 선정한 이유였던 ‘못(안)보던 것을 보게 한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 같아 만족스럽다.

다만, 광주와 서울로 대표되는 그 외의 지역 간의 미묘하고도 모호한 물밑 감정선에(한 쪽의 일방적 감정일지도 모르지만) 대해 건드려 보고 싶었지만 내 역량의 한계를 체감할 뿐이었다. 역시 발제는 어렵다. 뒤풀이 자리 고르는 건 더 어렵다.


준민

“겁이 있으면 없을 때와 어떻게 다릅니까?”
“겁이 없는 사람보다 몇 배가 더 생각하게 되지요.”

기타가타 겐조, 영웅 삼국지

# 저는 겁이 무척 많습니다. 토론을 진행할 때도 늘 두렵습니다. 책을 잘 읽었을까? 내가 만들어낸 질문이 제대로 이해가 될까? 진행하다가 돌발적인 상황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지? 온갖 걱정에 시작하기 전부터 얼굴에 열이 오릅니다. 목소리도 미묘하게 갈라집니다. 아아, 나는 긴장하고 있구나, 떨고있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깨닫곤 됩니다.

이번에 토론을 진행하면서도 겁을 많이 냈습니다. 예리한 질문을 던지기 보다는 한 발 물러섰고 토론 분위기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자 내심 안도했습니다. ‘사람들이 웃으면 좋은 거 아닌가? 재미있게 웃고 떠든 토론에 비판적이지는 않으니깐.’ 중반 이후부터는 가급적이면 웃음이 나올 수 있도록 이끌기도 했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책에 있는 밀도 있는 접근이 아닌 적당히 웃음으로 때워버리는 방식으로 토론을 진행했던 것은 아닐까 아쉽습니다.

겁은 많았으나 고민이 부족했던 셈입니다.

4. 은숙은 인문사회 서적을 발간하는 출판사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녀는 수배된 번역자와 만난 것이 경찰에게 들켜 뺨을 맞게 됩니다. 3장은 은숙이 얻어맞은 뺨을 극복해나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하루하루 자신이 맞았던 장면을 떠올려가며 상처를 지워 나갑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겪은 힘든 기억을 어떤 방식으로 극복합니까? 은숙처럼 자신을 아프게 한 장면을 떠올리며 잊는 편입니까?

힘든 기억을 떠올려가며 잊는 편이다.
힘든 기억을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5-1. 삭제

7. 아이가 이번 주 토요일에 예정되어 있는 대규모 집회에 나가겠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부모라면 어떻게 대응하겠습니까?

# 나름대로 준비를 해도 토론을 해보면 걸리는 부분이 존재하게 마련입니다. 후기를 쓰며 논제를 수정해보았습니다. 바꾼 질문이 제 의도를 조금 더 잘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따금 저에게 좋은 논제가 무엇이냐고 묻는 분이 계십니다. 글쎄요. 잘 알고 있다면 토론이 끝나고 질문을 수정할 일은 없겠지요. 실제로 토론을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원론적인 답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그것을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오늘도 논어의 한 구절을 빌려옵니다. 저는 논제를 뽑고 토론 진행을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만, 시작할 때 마다 얼굴에 열이 오르는 걸 보면 아직 즐기는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좋아하는 만큼 진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가급적이면 먼저 나서는 편이기도 합니다. 논제를 어떻게 뽑아야 하냐고요? 기회가 되는대로 논제도 뽑고 토론도 진행해보며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즐기는 자가 되도록 합시다.

<출처, 이말년 서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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