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정기모임 후기





선정도서
아트인문학 여행
(후보였던 책 : 지식의 미술관)

진행 정재승

100자 후기

정준민
알아주는 이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한들, 알아주는 이가 없다면 세상에 나올 수 없습니다. 아트인문학 기행에 나오는 예술가들은 모두 누군가가 알아주었기 때문에 명성을 날릴 수 있었습니다. 

논어 학이편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이 말은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할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제대로 알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라고 번역됩니다. 일반적으로 남 탓을 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는 뜻으로 여겨집니다. 내용적으로는 논어의 첫 번째 문장인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않은가?’와 연결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자기자신의 마음 수양이란 겁니다.

일본의 유학자 오규 소라이는 이런 전통적인 해석에 반기를 듭니다. 논어를 마음수양으로 해석하는 것은 공자의 의도를 왜곡하는 것이라 여깁니다. 그는 논어를 철저히 정치적으로 해석합니다. 특히 사람이 어떻게 관직에 오르는가, 관직에 오른 사람이 어떻게 관리를 채용하는가, 등등에 초점을 맞춥니다.

전통적인 논어 해석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소라이의 견해는 꽤나 당혹스럽습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거리는 부분이 많습니다. 논어가 정치서적이라는 견해가 일관적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되기 때문입니다. 글자 하나하나를 분석하여 왜 그런지를 철저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저는 논어를 어떻게 볼까요? 기본적으로 소라이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공자의 원래 의도는 정치적이라는 견해입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논어를 반드시 정치적으로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앞서 언급한 부분을 보면, 꼭 사람을 관직에 채용할 때만 적용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말을 일상생활에서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고 나름의 교훈도 얻을 수 있습니다. 

저는 아트인문학 여행을 자기계발서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서 이런저런 걸 보고 얻은 깨달음을 풀어 쓴 자기계발서’ 정도가 됩니다. 이 책에는 그림도 조각도 건축도 있습니다. 그래서 동희가 예술에 초점을 맞춰서 읽었다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이 책을 그림책 (혹은 조각책이나 건축책)이라고 말하면 고개를 갸우뚱 할 것입니다. 그건 저자의 의도를 홀라당 빼먹은 표현이 됩니다.

이제 글을 정리하기 위해서 위에서 언급한 논어의 구절을 살펴봅시다.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말고 자신의 수양에 힘써라. 자기를 안 알아준다고 성을 내는 건 인격이 덜 되어서 그렇다.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고개를 갸우뚱 흔들게 합니다. 이거 가능한가요? 다른 사람의 인정을 못 받으면 섭섭한 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엄밀하게 따지면 맥락에서 좀 벗어나긴 합니다만) 소라이는 다른 사람의 인정을 못 받을 때 걱정되고 실망스러운 건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다만, 처음 무언가를 시작했을 때의 마음을 귀하게 여겨서 그 실망스러운 마음을 다잡을 뿐이라고요. 

섭섭함은 기대에서 나옵니다. 어떤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섭섭한 마음은 커집니다. 노력했으나 이루지 못했을 때, 노력이 크면 클수록 안타까움도 커집니다. 사람이니 만큼 허탈함이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그런 허탈함을 견뎌내고 이겨내는 건, 처음 품었던 어떤 기대,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서 들였던 노력, 그로 인해 얻은 작은 수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동희
아트인문학 여행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인문학? 생소함이 밀려오네요.
책을 읽으면서 아트와 여행에 눈이 팔려 인문학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이탈리아를 거닐며 르네상스 천재들의 사유를 배우다. 
책을 보면서 작가와 같이 이탈리아를 걸었고 천재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유까지는 배우지 못한것 같아 씁쓸함이 몰려왔습니다.
책 표지의 하늘 색에 매료되고 뾰족한 첨탑을 따라 내려오면서 빽빽히 모여있는 건물들의 생소한 건물색들로 이어지고 마지막 눈길의 종착지가 "여행이 시작된다!"에서 멈춘 탓입니다.
후기를 쓰는 지금, (스스로에게)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분발할껍니다. 으하하.
독립에 성공한 발제자님, 앞으로도 기대할께요.
아, 여의도... 음식은 아닌걸로.


조영진
코시모 데 메디치의 피렌체 부흥을 위한 계획과 노력이 감명 깊었다.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플라톤 아카데미를 필두로 많은 인문학의 부흥을 이끌어냈다. 이는 피렌체의 부흥으로 이어져 피렌체를 세계의 수도로 만들고자 했던 코시모의 기대에 부응했다. 피렌체가 세계수도는 되지 못했지만 피렌체 인문학은 현대에도 조명받는 영광을 누린다.
그저 기행문일 것이라 생각했던 책이 의외로 아주 좋았다. 책에게 사과해야겠다. 발제자한텐 고맙다고 해야겠다.
이번 모임은 ‘새로움’이 많았다. 미술을 소재로 다뤘으며 그림을 감상하고 분석도 했다. 검은 활자만 보며 토론을 하다가 알록달록한 회화를 보며 이야기하니 토론내용도 컬러풀한 느낌이 들었다. 토론을 위해 해당분야 전문가(?)를 초대한 것도 새로웠다. 덕분에 처음 시도해본 분야의 토론이 부드럽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좋은 시도. 침착했던 발제자의 진행도 인상 깊었다.

김미정
개인적으로는 잊고 살던 중요한 삶의 태도를 화가들의 열정과 도전에서 되새길 수 있어 좋았습니다. 
언젠가 다같이 미술관 탐방을 하면 참 재밌겠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림 하나에도 각자가 다르게 생각하고있단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사실 그림을 뚫어지게 몰입해서 쳐다본 적도 굉장히 오랜만이었네요. 꼭 다시 이런 시간을 가져봤음 좋겠습니다-

박종찬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것은 참 재미있는 일이다. 사람은 자신의 일부를 자신이 만든 것에 남긴다. 그것은 즐거운 일이면서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 그것을 목적 아닌 수단으로 삼는다면 그 자신을 수단으로 써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도구의 도구는 소모품이다. 결국 자신이 닳고 해어져 만신창이가 되고, 도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도피임을 깨달았을 때 눈앞이 새하얘진다. 그렇다고 겁먹을 건 없다. 다시 그리면 된다.


평소 관심 있었던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의 인생 이야기를 두루 들어볼 수 있어 재밌는 책이었습니다. 토론 역시 미술과 미학에 대해 이루어지리라 생각했는데, 다른 내용의 논제가 많아 의외였습니다. 그 점이 조금 아쉽기도 했고, 토론이 너무 마니악하게 진행되지 않아 다행스럽고 즐겁기도 했습니다. 미대생 분과 함께 오셔서 그림 해석해주신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내년쯤에는 미술 관련 책을 읽고 오로지 미술 쪽 논제로만 구성해서 토론이 진행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방변
군대에서 자리를 잡으니 독서를 비롯해서 나를 위한 것들을 하나 둘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중에 하나가 독한녀석들에 다시 참석하는 것이었다. 

독한녀석들에 참석하기 위해 정말 오랜만에 책 한 권을 즐겁게 읽었다. 평소 교양이 부족했던 나로서는 르네상스에 대한 교양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의미있는 토론을 할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정재승
지난 3월에 영진 형과 공동 발제한 이후로 오랜만에 발제를 맡았습니다. 게다가 혼자서 발제하는 것은 처음이라 하나부터 열까지 저 혼자 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무턱대고 예술이라니! 준민형이 걱정하셨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겁니다. 사실 꽤 전부터 다음 발제를 맡으면 어떤 분야를 할까 생각하다가 다음에는 꼭 예술, 특히 미술 분야를 해야겠다는 각오를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기도 하고 독토에서도 이전에는 다루지 않았기에 발제도서의 스펙트럼을 넓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미술 분야는 처음이기 때문에 ‘아트 인문학 여행’ 뿐만 아니라 미술 관련 다른 책들도 읽으면서 견문을 넓히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문외한인 저 혼자 준비해서는 부족함을 느낀 탓에, 미술을 전공한 분에게 한 달 전쯤 양해를 구하고, 발제 책을 보여 드린 다음, 발제문 검토를 부탁 드렸습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성심 성의껏 발제 검토를 도와 주셨고, 토론 당일, 작품 설명까지 해주신 덕분에 저도 무리없이 이번 발제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발제 도와 주신 최희승씨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발제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신 영진형, 종찬형 그리고 준민형께도 감사드립니다.
이번 발제를 계기로 조금은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다음 발제를 할 차례가 되어도 이제는 전보다 더 자신감을 갖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중한 경험이 된 10월 발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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