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정기모임 후기


선정도서
캐비닛
(후보였던 책 : 1984)

진행 오윤정, 진

100자 후기


종찬

어릴 때부터 뭐가 하고 싶니 하는 질문보다는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하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캐비닛을 읽으면서 좀 더 자유롭게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미 자유로운 편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더 자유롭게 살아야 더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준민

토론 후기를 써야 한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응? 생각이 안 난다. 사고를 정지합니다. 뒤풀이가 무척 즐거웠으며 오랜만에 주기자를 만났다는 사실은 기억난다. 문제는 정작 토론 때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떠오르질 않는다. 

기억을 되살릴 도구가 필요하다. 가방을 뒤져 발제문을 꺼냈다. 눈에 띄는 단어가 있으니, 메모리모자이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모든 사람은 자신의 기억을 적당히 조작한다. 기억할 것은 기억하고 잊어버릴 것은 잊어버리고. 캐비닛의 등장하는 심토머들이 마냥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어떤 유형들과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마냥 남 이야기가 아니란 소리. 

토론 때 영진은 기억과 기록은 다르다고 말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기억은 상대적으로 개인적이나 기록은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 가공된 것이다. 무언가를 쓰는 행위는 어찌할 수 없는 '인위적 변형'을 일으킨다. 변형을 부정적인 것으로만 취급하면 그 어떤 기록도 남을 수 없다.

지금 쓰는 후기도 그렇다. 우리는 토론을 했다. 내가 꿈을 꾼 것이 아닌 이상 일어난 사실이다. 다만, 토론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서로 다를 수 있다. 토론 후기는 더더욱 다르리라. 어떤 이는 내 후기를 보고 자신의 기억을 왜곡했다며 분노할지도 모르겠다. 거기 분노하고 있는 당신, 잠시 진정하고 이렇게 생각해보자. 왜곡이 아니라 또 하나의 창조라고. 내가 만드는 인위적 변형으로 토론 때는 미처 보지 못한 어떤 단편에 주목하게 될 수도 있다.

우리는 토론을 하고 후기를 남긴다. 토론이란 공통 경험에 대해서 각자가 기록을 통해 변형을 가한다. 어차피 해야 하는 변형이라면 보다 창의적으로 해보는 건 어떨까?


동진

"13번의 캐비닛 안에서는 타인의 삶은 평가되는 게 아니라 그냥 그대로서 존재한다"

먼저 소감을 말해보면 이번 독토는 약 6개월 만에 온 거라 반갑게 왔을뿐더러 책 또한 재밌어서 상당히 즐겁게 토론에 참여했다.
김언수 씨의 다른 책(잽)을 잘못 빌려서 보고선 이 내용이 그대로 샘플링된 부분이 있다는 걸 안 건 나만이 겪은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자랑)
책 내용을 말하자면 작가는 전형적인 이야기꾼으로서 캐비닛을 통해 본인이 말하고 싶은 걸 다 끄집어서 유머러스하게, 때론 어떤 메시지를 내포하기도 하며, 때론 조금 경박하게 얘기를 풀어나간다.
심토머라는 소재 자체가 상당히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주는 느낌이다. 동시에 토론에서 누가 말한 것처럼 뒷부분에서 장편소설 분량을 맞추기 위한 인위적 늘임이 있지만 그걸 차치하고도 나는 상당히 매력적인 책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읽기에도 혹은 토론의 썰거리로도 좋은 책이었다.
심토머의 증상 중 난 타임스키퍼 부분에서 최근 공부한 생활이 떠올라서 격한 공감을 하기도 했다. 또 영화 표 팸플릿을 모으는 심토머도 좀 찔리기도 했다.
다른 측면에서 토론에 대한 의견은 심토머에서 타임스킵 말고도 다른 여러가지 심토머에 대해 논해보는 것도 재밌었을 것 같다.
나 또한 혼자 질문도 생겼다. 타인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1.취향 2.호감 비호감 차이 혹은 3.그것에 대한 동의 4.적극적 이해 혹은 5.걍 무관심이나 이런 게 있구나 인지만 하는 정도까지를 말하는 것인지...
물론 그 타자가 나와의 정신적 물리적 간극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에서 특히 "쟤 이상해"라고 말할 때 조금은 망설여지게 되는 고민이 생긴 건 틀림없을 것이다.


숙경

평소에는 지식을 얻는 책을 읽다가 오랜만에 편안하게 머리를 굴리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났다. 이 책은 판타지적 요소를 통해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슈를 간접적으로 제시했고 처음 읽었을 때는 가볍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무거운 내용이었다. 동화같은 이야기 속에 내포하고 있는 글쓴이의 의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인 특정인을 선정하고 강조함으로써 글쓴이는 사실 자신을 정상으로 생각하고 나와 다르면 비정상으로 배척하는 현실이 비정상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영진

유쾌한 모임이었다. 퍽퍽한 생활에 웃을 틈을 만들어 준 도서부터 시작해 토론, 뒤풀이 까지. 생각해봐도 이번 토론만큼 유쾌했던 뒤풀이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즐거웠던 만큼 발제자들의 노고도 잘 느낀 날이었는데, 토론 중간 쉬는 시간 두 사람의 대화 그리고 토론 후 두 사람의 표정을 보면 '아, 나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진지한 성찰을 했을 정도로 발제자의 노력이 잘 느껴졌다. 몇몇 멤버들의 케미(?)가 발견된 날이기도 하다. 잘들 이어가길.


병준

없으리란 법 없다.
시간을 뛰어넘는 사람이나 몇 개월동안 동면에 드는 사람들이 없으리란 법 없다.
그리고 이 책은 없으리란 법없는 이들의 캐비닛을 담은 또 하나의 캐비닛이다.
다만 이번 캐비닛은 없으리란 법 없는 사람 뿐 아니라 분명코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까지 한 데 담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뒤엉켜 누가 분명 없고 누가 분명 있는지 분간이 어렵다.
그리고 이 캐비닛의 이름은 소설이자 곧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토론을 하고 있는 너와 나도 결국은 같은 캐비닛 거주자다.
밖에서 보면 우리 토론 역시 캐비닛 속의 캐비닛이고, 뒤풀이 삼차까지 준비하는 발제자는 또 하나의 심토머다.
어쩌면 개인적인 에피소드보다 큰 가치를 주로 다룬 이번 토론은 자신들이 심토머라는 사실을 숨기고픈 자기 본능은 아니었을까.
언제쯤 우리는 모두 다 커밍아웃할 수 있을까. 너나 나나 다 비정상이라고.


동희

- 놀이기구를 타는 아이처럼 이야기에 빠진 시간들이 즐거웠습니다. 
- "대표성의 잣대에 기대지 말고 개별성의 잣대로 사람을 대해달라는 것이다."(제발!)
- "왜 그들은 인간이라는 종족에 대해 정체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WHY?...snl ver.)
- "보는 사람 답답하게 먼지 풀풀 날리는 저 구석에서 혼자 밥을 처먹는 건 무슨 심보야."(너님 답답하게 하려는 심보.)
- "잘 마른 고추처럼 수분이 다 빠진 채 은행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었죠. ... 그는 껍질만 남았습니다."(껍데기는 가라.)
- "여자는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야." (그렇죠.푸하하하....)
- "아깝지만 버려야 해요. 요리는 온도거든요. 초밥은 더더욱 그렇고요." (술은 더더더욱.)
- "안전가옥이 필요합니다. 악어가 나를 노리고 있어요."(정말? 악어를 이렇게 연결시키심?)
- そして、私たちの議論は續くのです。


미정

성의 있는 발제문이 기억나는 토론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캐비닛 속의 인물들 하나 하나를 살펴보지 못한 건 아니었나하는 아까움과 미안한 함이 드는 토론이기도 했습니다. 분명 캐비닛 속의? 사람들은 각각의 개성을 가진 개인들이었으니까요.




2년 전, 괴기한 소설을 읽었습니다. 사실이 아니어야 맞는 것들이 사실인 양 소설을 가득 메우고 있어 읽는 내내 거짓과 참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동스러웠습니다. 그 글을 다시 읽으면서는, 기가 막힌 문구나 이야기 나눠보고 싶은 소재가 눈에 지나치게 잘 들어왔습니다. 하고 싶었던 얘기, 나누고 싶었던 얘기가 많았고 잘 하고 싶은 욕심도 넘쳤던 덕에, 배를 저은 사공은 둘이었음에도 저 한 명이 노를 여섯 개쯤 들고 배가 가야 할 길을 휘저어버린 듯해 아쉽습니다. 다른 사공 덕에 그래도 발제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고맙습니다.
발제와 토론 진행이 결코 쉽지 않았다는 사실과, 즐거웠던 뒤풀이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피드백 해주신 내용들 참고해서 다음 발제 땐 더 유연한, 이야기를 차근차근 쌓아올라가는(!) 발제를 해보겠습니다.


윤정

애초에 독한녀석들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한것이 '평소 내가 잘 집어들지 않는 장르의 책'도 읽으면서 독서의 폭을 넓히자는게 목표였습니다.

비록 의도치않게 현대소설이라는 낯선 장르의 발제를 맡게되어 당황스러웠고 책에 적응하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지만 발제자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열심히 읽고 분석하는 성장의 시간을 갖기 어려웠을겁니다.

소설은 하고싶은 말을 직접하는 장르가 아니기에 작가가 셋팅한 소설구조부터 문장하나 단어하나까지 작가의 생각을 읽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속에서 저 자신의 내면과 꽤 깊이, 오랫동안 마주할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첫 발제였기에 어려움도 많았고 무엇보다 잘하고싶은 욕심에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느라 오히려 논제의 핵심을 잡지못했던 것이 아쉽습니다. 

함께 발제를 준비한, 어리지만 무척 든든했던 진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마저도 완성하지 못했을거라 생각합니다. 협력과정에서 서로의 다른생각을 알아가는 것이 무척 뜻깊고 보람있었다고 꼭 전하고싶습니다.

끝으로 많이 부족했지만 노고를 인정해주고 언제나처럼 즐겁게 토론해준 독한녀석들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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